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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퍼 - 무공수확자-68화 (68/175)

68화

절강행(48)

“오강의 분가가 무너졌습니다.”

“뭐? 오강 분가라면 수감장을 말하는 거잖아! 천격 그 녀석이 제 동생들과 같이 들어앉은 곳인데 무너졌다고?”

육천경의 눈이 커졌다.

“천격은? 그 녀석은 지금 어디에 있어? 직접 와서….”

“천격 형님과 아우들은 현장에서 사망했습니다.”

육천동의 대답. 육천경은 어이가 없다는 얼굴이 되었다.

“그 형제들이 다 죽었다고? 철혈사수가? 그게 말이 되는 소리냐! 그 녀석들은 우리 배분에서 합공에 가장 능하잖나! 멸왜단 분타주가 죄다 몰려왔다 해도 그 넷이 뭉치면 빠져나오지 못할 리가….”

육천경은 끓어오르는 격정에 이를 악물었다.

“하아, 후!”

심호흡으로 감정을 다스리고 말을 이었다.

“멸왜단 이 미친 것들이 진짜 전면전을 하자는 건가! 도대체 얼마나 많은 인원이 들이친 거냐?”

“호감장을 들이친 인원은 셋, 실제로 천격 형님이 이끄는 아우들과 싸운 인원은 하나랍니다.”

육천동의 말에 육천경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격정을 토했다.

“혼자서 철혈사수를 감당해? 그리고 넷을 모두 황천길로 보냈다고? 그딴 짓이 가능할….”

육천경이 갑자기 입을 닫고 자신의 자리에 몸을 파묻었다. 합공에 능숙한 초극 고수 넷을 감당하고 황천길로 보냈다. 그런 짓이 가능한 자들이 무림에 없지는 않았다. “빌어먹을 천문위의 고수가 나선 것인가?”

“예. 멸왜단주 진우탁이 직접 나섰습니다.”

“빌어먹을 놈. 천문위란 놈이, 조직의 수장이란 놈이 그렇게 엉덩이가 가볍다니….”

육천경의 얼굴이 구겨져서 펴질 줄 몰랐다. 천문위를 상대하려면 제대로 된 합공법을 익힌 초극 고수들이 열은 있어야 된다는 것이 무림의 소문이다. 그것도 천문위가 정면 대결을 택했을 때나 가능한 일. 치고 빠지기로 작정했다면 그 배가 있어도 잡지 못하는 것이 천문위다.

“진우탁이 나섰다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가주께 부탁을 하자는 거냐?”

육천동의 말에 육천경이 구겨진 얼굴을 한층 더 구기며 물었다.

“예. 천문위를 막으려면 천문위가 나설 수밖에 없습니다.”

“하아!”

육천동의 말에 육천경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태호 본가로 갈 채비를….”

“이미 왔으니 그럴 필요 없다.”

육천경의 말을 끊으며 집무실로 들어서는 자가 있었으니….

“가주를 뵈옵니다!”

“가주를 뵙습니다.”

육천경과 육천동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일어나 예를 차렸다.

바로 육가장의 당대 가주인 육진성이었다.

“쯧쯧. 한심한 것들, 이러니 내가 이 나이 되도록 이 자리에 앉아 있을 수밖에 없지.”

육진성이 육천경과 육천동을 보고 혀를 찼다.

“일단 판을 짠 대로 육가장의 가주가 등장했군.”

서생원 시리즈의 감시 영상을 끄며 침상에서 몸을 일으켰다. 천문위의 무위를 생각하면 살이 떨렸다. 하지만 전쟁은 빨리 마무리가 되어야 했다.

멸왜단은 아직 왜구라는 족쇄를 벗지 못한 상태. 육가장과 대치가 길어진 상태에서 왜구가 저번처럼 육로로 기어들어 와 사고라도 친다면 골치 아파진다. 멸왜단이 본분을 잊은 꼴이 되니 절강 무림이 등을 돌릴 것은 당연지사다.

항주 흑도 역시 장기전은 좋지 않다. 어쨌든 중원 최대의 향락 도시인 항주다. 그런 항주의 수익에 기대는 것이 항주 흑도. 육가장과 대치가 길어지면 항주를 찾는 사람들의 마음도 불안해지기 마련. 그렇게 되면 수익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진우탁의 거처는 내 거처 바로 옆방이었다.

“피곤하다고 건들지 말라더니?”

내가 거처에 들어서니 진우탁이 툴툴거렸다.

나와 진우탁이 있는 이곳은 오강의 수감장. 진우탁이 이곳을 점령하는 것을 응 시리즈로 확인하기 무섭게 항주에서 이쪽으로 달려온 것이다.

수백의 인원이 상주해도 될 만한 대장원이지만 이 넓은 장원에 지금 머무는 인원은 나와 진우탁 뿐이다.

“소주 육가장을 감시하던 매의 시야에 육진성의 모습이 잡혔습니다.”

“오늘, 늦어도 내일이면 끝나겠군.”

내 말에 진우탁이 미소를 지었다.

***

오강 수감장.

수감장 현판이 내려가고 육가장의 인원들이 물러갔다지만, 그들을 대신할 멸왜단 사람들이 몰려온 것도 아니고 새 현판을 내 걸지도 않았기에 여전히 수감장이다.

진우탁은 텅 빈 수감장의 대청 앞 연무장 중앙에서 화로에 불을 피워 밤을 굽고 있었다.

은은히 내리쬐는 달빛 아래에서 화로 안에 익어 가던 군밤을 골라서 까먹다 보니 어느새 다 먹었다.

그 탓에 진우탁은 다시 화로에 생밤을 한가득 집어넣었다.

“천문위나 되는 놈이 무슨 청승이냐?”

육진성이다. 조구흥이 박살 낸 뒤 그대로 놔둔 탓에 뻥 뚫려 있는 정문을 유유히 통과해 화로 앞에 섰다.

“제 청승이야 육 노선배 탓 아닙니까? 육 노선배가 언제 오실지 모르는데 주위에 사람을 둘 수가 있어야지요.”

진우탁이 태연히 대꾸했다.

“그걸 아는 놈이 내가 나서게 만든 것이냐?”

“싸움 길어져 봐야 서로 좋을 것 없지 않습니까? 여기 군밤 좀 드시겠습니까?”

진우탁이 숯이 타오르고 있는 화로를 가리켰다.

“일 없다.”

“구운 놈 성의를 생각해서 좀 드시지요.”

“시건방진 놈, 그냥 죽어라!”

노성과 함께 육진성의 두 손이 흑광에 물들었다.

콰앙!

단매에 화로가 박살나고 숯불이 허공으로 흩날렸다. 그 아래 흑광에 물든 두 손이 공간을 휩쓸었다.

타타타타탕!

한 자루 창이 일진광풍을 일으키며 공간을 점하는 두 손을 베고 두드렸지만, 흑광에 물든 두 손은 거침이 없었다.

“이게 육가 비전인 현천나락수(玄川奈落手)군요! 그럼 저도 법우사의 벽력천인(霹靂穿刃)을 보여드리지요.”

흑광이 만들어 내는 궤적에 밀려 연신 뒤로 물러나는 와중에 입은 호쾌하게 외친다.

우우웅!

창이 거센 울부짖음을 토한다 싶은 순간, 진우탁의 신형이 푸른 빛무리에 뒤덮였다.

콰콰콰쾅!

굉음과 함께 흑광과 벽광(碧光)이 빗발쳤다. 요동치는 빛무리를 따라 청석이 뒤집히고 박살났다. 공간이 떨리고 고통에 울부짖는다.

그렇게 주위를 파괴로 물들이며 격렬하게 맞붙던 흑광과 벽광이 약속이나 한 듯 서로 물러났다.

“흥, 제법이구나!”

두 손으로 흑광을 거두며 본 모습을 드러낸 육진성이 코웃음을 쳤다.

“십 년 전과는 다르지요?”

진우탁도 빛무리를 거두어 창을 왼쪽 어깨에 걸치며 대꾸했다.

“그래 봐야 반나절 드잡이질 상대지.”

육진성의 두 손이 다시 흑광을 흩뿌리며 몸을 뒤덮으려는 찰나.

“보타삼문의 어르신 중 육 노선배와 칠주야 동안 드잡이질을 할 수 있는 분들이 세 분이나 되심을 잊으셨습니까?”

진우탁이 낭랑하니 외쳤다.

“협상하자는 것이냐?”

육진성이 노안을 구기며 물었다.

“육 노선배께서도 내심 기대하고 오신 거 아닙니까?”

“조건은?”

육진성의 말에 진우탁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협상 대상자는 제가 아닙니다.”

진우탁의 말.

이제 내가 등장할 차례다.

응 시리즈와의 시야 동조를 해제하고 바닥을 박찼다. 피풍의가 펼쳐지고 내 몸이 수감장을 향해 쏜살같이 날아든다.

수감장 뒷담을 넘어 내전과 대청을 지났다. 그리고 두 명의 천문위가 박살 낸 연무장에 내려섰다.

“이놈은 또 뭐냐?”

내가 진우탁 뒤에 내려서자 육진성이 물었다.

“육 노선배께서 협상을 진행할 상대입니다. 멸왜단 뇌응대주지요.”

진우탁이 미소를 지으며 나를 소개했다.

“멸왜단에서 뇌응대를 맡은 이도연입니다. 흑도 유일 세가의 주인을 뵙습니다.”

예를 차려 정중하게 인사한다.

“육가의 주인인 나보고 지금, 네 놈의 수하와 협상을 하라는 것이냐?”

육진성의 눈꼬리가 분노로 씰룩인다. 뭐 상식적으로 격 떨어지는 상대가 맞기는 하다.

하지만 세상이 언제 상식대로만 흘러가던가?

“뭐 대외적으로 멸왜단 소속의 제 수하이기는 합니다만, 이번 전쟁에서의 권한은 단주인 저를 넘어선 입장이라서요. 솔직히 제가 멈추고 싶어도 뇌응대주가 고개를 흔들면 멸왜단 단주인 저는 그 뜻을 따를 수밖에 없거든요.”

진우탁의 말대로다. 멸왜단이 아니, 절강이라는 지역이 왜구라는 족쇄를 벗느냐 마느냐가 내게 달린 상황이다. 그런데, 멸왜단이 내 뜻을 무시하고 나를 죽이려 한 육가장과 싸움을 멈춘다? 나보고 매들 죄다 수거해서 딴 데 가라는 소리나 다름없다.

“대외적으로는 저와 육 노선배 간의 합의가 될 것입니다.”

진우탁이 노 강호의 자존심을 생각해서 한마디 더 붙였다.

“좋다. 그 조건을 들어보자.”

“현재 금선방의 재산은 합법적인 방법으로 항주 흑도에 소유권이 넘어간 상태입니다.”

사로잡힌 금선방주는 흑도의 관례에 따라 탈탈 털렸다. 공식적인 계약서에 수결을 해서 금선방의 자산을 모두 넘긴 것이다.

“이걸 육가장에서 다시 사들여야겠지요?”

육가장에서 마다할 일이 아니다. 얼마냐의 문제일 뿐.

“얼마를 원하느냐?”

“은자 삼백만 냥.”

항주 흑도가 이백만 냥을 가지고 나머지는 멸왜단의 비상금이 될 돈이다. 한 오십만 냥은 나를 위한 예산으로 잡아도 뭐라 할 사람 없다.

“비싸.”

“비싸다고요?”

“그래.”

“항주 흑도에서 가흥부를 관리할 여력이 없다고 생각하시는 거군요.”

“사실이 그러니깐.”

뭐 그 말대로다. 현재 항주 흑도는 가흥부까지 관리할 여력이 없다. 아니, 하려고도 안 할 것이다. 여타 다른 흑도의 세력권이라면 몰라도 육가장, 흑도 유일 세가의 세력권이다. 육가장의 손이 어디까지 뻗쳐 있을지도 모를 지역. 관리하기 쉽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 값을 좀 깎자?”

“그래.”

“그냥 신창양가에 넘기란 말이죠?”

“신창양가가 흑도의 사업을….”

“정파 팔가(八家). 아, 이건 신창양가에서 기분 나빠 할라나? 오대세가(五大世家)의 일원인 신창양가가 흑도의 사업을 하기에는 그 명망이 너무 크다는 건가요? 하하.”

누굴 세상 물정 모르는 애송이로 보나?

“가흥부는 항주에서 강진까지 이어지는 운하의 절반이 속해 있는데요? 양주에서 산동까지 가는 대운하를 담당하는 신창양가가 항주에서 태호로 들어서는 운하를 거부할 리 없다 보는데요? 혹시 신창양가가 시비 걸기를 기다리시는 겁니까?”

위아래로 신창양가의 세력을 두게 되면 육가장은 좋을 것이 없었다. 거기다가 하나로 관리되던 수로가 그렇게 분할되면 여러 가지 골치 아픈 일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걸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신창양가에서 운하 관리 통합을 외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육가장은 신창양가와 각을 세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니 신창양가가 백 번 양보해서 가흥부의 운하 권리를 육가장에게 넘긴다 해도 결코 지금보다 싸게 넘길 리 없었다.

“좋다. 삼백만 냥.”

육진성이 힘껏 인상을 구긴다.

“그럼 두 번째 조건으로 넘어가지요.”

내 말에 육진성이 빨리 지껄이라는 눈으로 나를 본다.

“오강 수감장과 송강부에서 멸왜단이 철수하는데 은자 백만 냥!”

“좋다. 그 다음은?”

이번에는 바로 수긍한다.

“본인에 대한 암살 시도가 이번 전쟁의 발단이 되었음은 알고 계시지요?”

“그래.”

내 말에 육진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일의 입안자와 최종 결정권자의 목을 원합니다.”

“뭐라!”

노성과 함께 폭풍처럼 일어난 살기가 내 전신을 압박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다. 진우탁이 창을 들고 내 앞을 막아섰다.

“선배! 고정하시지요.”

“저놈이 하는 소리를 듣고도 그런 말이 나오느냐! 육가의 주인에게 혈족의 피를 바치라고? 허, 네놈들 육가장이 우습게 보이는 모양이구나!”

육진성의 양손에서 흑광이 넘실거린다.

“육가의 혈족이라고요? 분노한 척 어물쩍 넘어가려 하지 마시죠!”

아나 간이 쪼그라든다. 앞에 진우탁이 있다. 진우탁이라면 내가 도망갈 시간은 충분히 벌 수 있다. 확인까지 했잖아!

할 수 있을 때 확실히 본보기를 보여 놔야 한다. 그래야 뒤가 편해!

이를 악물며 말을 이었다.

“제가 원하는 것은 이 일의 입안자인 육천동과 최종 결정권자인 육천경의 목입니다. 다른 누구의 목이 아닌 그 둘의 목을 원합니다!”

소가주라는 네놈 아들 모가지 내놔!

“협상 따위 결렬이다! 네놈들에게….”

“이거나 보고 말씀하시지요!”

미리 준비해 놓은 것들을 꺼내 육진성 앞에 던진다.

소주 육가장이 아닌 태호 육가장의 평면도다. 아니 평면도만이 아니다. 어떤 건물에 누가 살고 있고, 거기 인원이 몇이며, 그 사람의 하루 일과에 대한 내용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그리고 나부끼는 종이들은 그 인원들에 대한 용모파기와 신상명세들.

“이건….”

태호 육가장에 있는 것은 육가의 늙다리들뿐만이 아니다. 그 늙다리들이 애지중지 키워 나가고 있는 육가의 차세대들이 잔뜩 있었다.

“거기의 인물들이 어디의 누군지는 내가 말하지 않아도 잘 아시겠지요.”

“네 놈이 이걸 어떻게!”

단 한 번도 무림에 나가 보지 않은 아이들의, 차후 육가를 짊어질 미래의 기대주들에 대한 신상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내 별호가 괜히 응주, 매의 주인인 줄 아십니까? 협상 결렬, 좋지요. 하지요. 어디 한 번 크게 피를 봅시다!”

히죽 웃으며 목청을 돋는다.

“내 초극 고수 나부랭이라, 천문위는 못 이겨. 하지만 육가장 탈탈 털어 봐도 천문위는 눈앞의 당신이랑 ‘육진정’이란 이름을 쓰는 늙다리 둘 뿐이더라!”

입꼬리를 찢어져라 치켜 올린다.

“내기할까? 내가 태호 육가장의 초극 고수들을 피하고 천문위를 피해서 저기 적힌 애새끼들 몇이나 죽일 수 있는지!”

“내가 여기서 네놈을 못 죽일성 싶더냐!”

“나는 사부 없고, 동문 없는 줄 아냐? 이미 육가장에 대한 모든 정보는 사부와 둥문들과 공유했어! 내가 죽으면 끝날 것 같아? 아니, 그날로 육가장이 끝장나는 거야! 사부와 동문들이 모든 정보와 함께 신창양가와 남궁세가로 달려갈 거다! 우리 일문에서 제대로 부리는 매의 위력은 그동안 잘 봤을 텐데? 남궁세가와 신창양가가 그 혜택을 보며 육가장을 물어뜯는다면 어떻게 될 것 같아?”

큰 피해 없이 육가장이라는 커다란 이권을 뜯어 먹을 수 있는 기회를 두 세가가 놓칠 리 없다.

두 곳이 움직이지 않을 가능성? 신창양가와 남궁세가 둘 다 남직례에 자리 잡은 경쟁 상대다. 한쪽이 육가장을 씹어 먹고 거대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움직일 것이다.

“내 장담하지. 거기에 기록된 육씨들 하나도 살아남지 못해. 하늘 위에서 매들이 끝까지 쫓을 거거든! 남궁세가와 신창양가가 살려 둔다 해도 내 사부와 동문들이 살려 두지 않을 테니깐!”

“…….”

“그러니 육가장, 흑도 유일 세가라는 이름을 유지하고 싶으면 육천경과 육천동, 둘의 모가지 들고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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