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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퍼 - 무공수확자-74화 (74/175)

74화

절강행(53)

신창양가 정안각 탐안 팔 조장은 내가 묻는 말에 성의껏 대답했다. 괜한 오해 사기 싫다는 태도가 확고했다.

탐안 팔 조장이 아는 것은 별로 없었다. 그들이 영파 부도로 스며든 이유도 별것 없었다. 왜구 때문에 영파 부도의 검문 검색이 까다로운 탓에 정보 조직이 적 세력권에 침투하는 훈련을 하기 좋은 곳이라나?

그들이 ‘도련님’ 혹은 ‘애새끼’라 칭한 습격자는 그들이 영파 부도로 출발하기 전에 합류했다 한다. 상부의 명령이라 그냥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건진 것은 ‘양언경’이라는 이름뿐. 이름만 보면 언 자 돌림의 직계 혈족이 분명했다.

“젠장.”

신창양가가 무슨 수작질을 부리는지 이해가 안 된다.

당장 신창양가가 멸왜단을, 진우탁을 건드릴 이유가 없지 않은가. 어제 일어난 일은 잘 풀리면 천문위인 진우탁 개인과 원한을 살 일이다. 그리고 십 중 칠은 절강 무림 전체와 싸워야 할 일.

얻을 것도 많은 육가장을 놔두고 왜 손해만 볼 진우탁을 쑤시냔 말이다.

진우탁을 쑤셔야 하는 내가 모르는 무슨 이유가 있다 해도 신창양가의 행보는 앞뒤가 안 맞는다.

탐안 팔 조와 함께 들어온 것은 매를 의식한 행동이 분명했다. 매의 눈을 의식하지 않았다면, 매에 대해 몰랐다면 당당하게 성문을 통과할 게 아니라 야밤에 성벽을 넘으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움직였다가는 매의 눈에 띄기 십상. 그러니 탐안 팔 조와 함께 영파 부도에 무슨 볼일 있는 사람처럼 들어온 것 아닌가 말이다.

그렇다면 일을 치르기 전에 탐안 팔 조를 먼저 빼돌리는 것이 순리다. 그런데 탐안 팔 조를 방치하고 혼자 내뺐다. 전후 사정 모르는 탐안 팔 조는 당당하게 자신이 신창양가임을 밝히고 있는 상황.

“신창양가는 군문과 연이 깊은 가문인데….”

병법을 공부한 자가 많을 수밖에 없다. 그냥 힘만 믿고 날뛰는 빡대가리들의 모임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어제 일만 보면 완전 일 처리가 빡대가리 소리 들어도 할 말 없을 정도다.

흡사 분노한 진우탁이 멸왜단을 움직여 신창양가를 후려치기 원하는 모양새 아닌가.

“다른 세력의 수작질?”

아무래도 그쪽으로 무게가 쏠린다. 어쨌든 탐안 팔 조의 인원들은 벽해문에 기별을 넣고 총타로 압송했다.

거처에 막 눕자니 농꾼의 보고가 귀를 울렸다.

- 리퍼, 응5가 목표를 놓쳤습니다.

“역시 대비가 되어 있었네.”

매로 쫓을 것을 알고 있다면 대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 어디서?

- 가흥부에 들어서고 강에 당도하자 바로 입수했습니다.

지도가 뜨고 습격자가 사라진 위치가 표시되었다.

- 그 후 흔적을 찾을 수 없습니다.

응 시리즈의 추적은 초음파와 시력에 의존하는 바가 크다. 그러니 땅속이나 물속으로 숨어 버리면 당장 찾을 길이 없다.

= 강변에 비트 같은 것을 만들어놨겠지?

- 그럴 가능성이 큽니다.

= 통신 벌레는? 못 붙인 거야?

- 벌레가 따라붙을 시간적 여유가 없었습니다.

수십 킬로미터 땅굴을 파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응 5를 근처에 대기시켜 놓으면 다시 따라붙을 수 있었다.

아니 얼굴을 확인하지 못했으니 비트에서 축골공으로 체형을 바꾸고 옷을 바꿔 입고 기어 나오면 놓칠 가능성도 있다.

= 응5 대기시키고 근처에 통신 벌레 풀어. 근처로 신원 불명 초극 고수 지나가면 다 붙여.

- 예, 리퍼.

= 육가장에서 작전 중인 서생원 시리즈 중 절반은 양주의 신창양가로 보내.

- 육가장에서 수거해 신창양가로 재배치까지 대략 112시간 정도 소요될 듯합니다.

= 서생원 배치 완료되면 초극 고수들에게 벌레 붙여서 실시간으로 위치 파악한다.

- 예, 리퍼.

그렇게 농꾼에게 명을 내린 다음 한숨 자려는데….

“대주, 단주께서 부르십니다.”

나를 찾는 소리가 있었다.

“알겠다.”

바로 옷을 차려입고 진우탁의 거처로 향했다. 거처에는 진우탁 혼자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 불러 놓고 이제 오는군.”

도화도주 황학약이 나를 반겼다.

“도화도주께서 이렇게 빨리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웃으면서 예를 취했다. 그는 내가 수확한 절강의 천문위 중 하나로, 보타산 보제사의 속가제자였다. 법우사 속가제자인 진우탁에게 사형 소리 듣는 사람이다.

분노해서 튀어 나갈 수도 있는 진우탁을 무력과 항렬로 붙들 수 있는 사람이라 급히 연락해 불러들인 것이다.

그런 내 속셈을 눈치 챈 진우탁이 곁에서 인상을 썼다.

“진짜 신창양가의 수작질이면 단주를 노리고 있다는 것이 되는데, 그렇다면 만약을 대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딸이 죽다 살아난 진우탁이다. 평소보다 감정적으로 움직일 공산이 크다. 그러니 한 대 맞기 전에 재빨리 변명을 했다.

“무슨 일인지 나도 좀 아세.”

도화도주의 말이다.

“단주께 못 들으셨습니까?”

“제대로 된 양가창법을 쓰는 살수에게 예아가 죽을 뻔했다는 이야기만 들었네.”

도화도주의 말에 나는 내가 알아낸 것들을 풀어 놓았다.

“지금까지 알아낸 사실로는 신창양가의 짓으로 볼 수밖에 없다. 그거군.”

도화도주가 인상을 쓰며 말을 이었다.

“지금 신창양가의 가주가?”

“겸청이 놈 맞습니다.”

진우탁의 답이다.

“겸청이 아니라 심청 아닙니까? 양심청?”

진우탁이 말하는 신창양가의 가주가 내가 아는 이름과 다르기에 물었다.

“지금은 양겸청이 아니라 양심청이 맞지.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라 신창양가에서 예아나 사제를 노릴 이유가 있냐는 걸세?”

“저로서는 짐작 가는 것이 전혀 없습니다.”

도화도주의 말에 진우탁이 고개를 흔들었다.

“육가장에서 부리는 수작일 가능성은? 솔직히 양가창법의 고수는 군문에 많지 않나?”

“예아를 상하게 할 정도의 고수는 많겠지요. 하지만 초극 지경에 발을 디딘 철검화가의 후계자까지 단숨에 제압할 고수는 몇 없습니다. 그리고 그런 고수를 섭외할 능력이 육가장에 있었다면 예아를 암살할 일에 동원할 것이 아니라, 뇌응대주 암살에 동원했겠지요.”

“그건 또 그렇군.”

“거기다가 육가장은 남직례 흑도들과 손을 잡고 강남 흑도맹을 결성했습니다.”

“육가장이 강남 흑도맹을 결성해? 그건 못 듣던 소리인데?”

도화도주가 놀란 눈이 되었다.

“며칠 뒤, 소문이 날 것입니다. 어쨌든 육가장은 남직례 흑도들의 도움으로 성세를 회복하겠다는 속셈입니다. 지금 신창양가와 절강 무림이 충돌하면 육가장으로서는 좋을 게 없습니다.”

절강 무림의 북상을 막기 위해 육가장을 방벽화 하는 것이 남직례 흑도들의 속셈이고, 육가장의 명분이다. 그런데 절강 무림이 신창양가와 충돌해 힘을 대거 소모하기라도 한다면? 남직례 흑도들이 육가장의 방벽화에 투자를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하아.”

육가장이 나설 때가 아니라는 말에 도화도주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자네는 신창양가에서 행한 짓이라 보는가?”

“드러난 사실로 보면 이 일에 신창양가가 관련된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니 신창양가에게 책임을 물어야지요. 흉사를 벌인 대가를 치르거나 아니면 관련자들을 잡아서 말입니다.”

진우탁이 어째 좀 진정된 모습이라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데….

“신창양가를 혼자서 압박하기는 힘드니 나를 불렀다 그거군.”

진우탁이 신창양가와 전쟁을 외치며 도화도주에게 도움을 청했다면, 도화도주가 이렇게 급히 달려오지는 않았을 터였다.

진우탁이 홀로 신창양가에 덤벼들지도 모르니 그걸 말려야 한다며 내가 불렀기에 바로 달려온 것이다.

“사형도 아시다시피 제가 부른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사형을 부른 것은 어디까지나 뇌응대주입니다. 그래도 이왕 오셨으니 좀 도와주시지요. 황 사형.”

“하아.”

도화도주가 한숨을 내쉬며 나를 노려보았다.

“…….”

천문위의 매서운 눈초리에 위가 아프다.

빌어먹을 멸왜단주! 당신 잘난 거 충분히 알거든! 그러니 그냥 말을 하라고! 이렇게 상황으로 몰아가지 말고!

날이 밝기 무섭게 멸왜단주와 도화도주 두 천문위의 이름으로 신창양가에 추궁의 서신이 발송됐다.

***

추궁의 서신을 보낸 지 나흘째 신창양가에서 사람이 도착했다.

열 명의 창잡이. 그 중 마흔 중반 날렵한 몸매의 사내가 대표로 나섰다.

“신창양가의 집법당 부당주인 양심관이라 하오.”

“신창양가의 호목천장(虎目穿墻)이시군요. 멸왜단 뇌응대를 맡고 있는 이도연입니다.”

멸왜단 쪽의 대응은 내가 하게 되었다. 당연한 것이 지금 응 시리즈로 범인을 추적하고 있는 것도 나요, 정안각 탐안 팔 조를 잡아들인 것도 나였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이오? 우리 신창양가에서 사람을 보내 멸왜단의 추왜검랑을 살해하려 했다니!”

“그 말대로입니다. 귀가의 정안각 탐안 팔 조의 인원들이 영파 부도에 들어서고 닷새 뒤 양가창법의 고수에게 본 단의 뇌응대 부대주들이 급습을 당했습니다. 그 중 추왜검랑은 살수에 당해 사경을 헤맬 지경이었습니다. 양가창법의 고수가 도주한 뒤 귀가의 정안각 탐안 팔 조의 인원들을 체포하였는데, 영파 부도에 들어섰을 때보다 한 명이 적더군요.”

“말도 안 되는 말이오. 정안각 탐안들은 조장이라도 기껏해야 일류의 무위를 지녔을 뿐이오. 뇌응대 부대주들은 죄다 절정 무인으로 이름 높은 자들이 아니오?”

“그 중 철검화가의 후계자인 화인천 부대주는 절정이 아닌 초극의 고수이지요. 그런데 그 한 명을 막지 못했습니다. 양가창법으로 초극 고수를 간단히 제압했습니다. 그만한 양가창법의 고수를 양가창법의 본가인 신창양가에서 모른다는 게 말이 된다 생각하십니까?”

“억류되어 있는 정안각 탐안들을 만날 수 있겠소?”

“파옥(破獄)의 우려 때문에 다수는 힘들고, 양 대협 단독이라면 가능합니다.”

“그럼, 부탁드리오.”

양심관과 함께 탐안 팔 조가 갇혀 있는 감옥으로 향했다.

양심관은 감옥 안에 들어앉은 그들을 훑어보고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정안각 탐안 팔 조의 정원은 스물일곱이오. 여기 스물일곱 전원이 있지 않소?”

“영파부 관아에서 작성한 부도 북문의 출입 관리 기록입니다.”

준비한 서류를 펼쳤다.

“입(入)에 보시다시피 스물여덟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준비한 것은 그 하나만이 아니다.

“그리고 그 부분에 대한 탐안 팔 조의 증언도 이렇게 확보해 놨습니다. 출발 직전에 상부의 명으로 합류한 사람이랍디다.”

탐안 팔 조의 수결이 들어간 증언들을 내밀고 다시 출입 관리 기록을 내민다.

“이것이 스물여덟 호패에 대한 기록이고. 이것이 그 습격자가 사용한 호패에 대한 기록입니다. 탐안 팔 조의 위장 신분과 같이 신창양가에서 관리하는 호패 아닙니까?”

내 말에 양심관이 자기가 준비해둔 서류를 펼치고 훑었다.

“끄응.”

인상을 쓰는 것이 영파 부도 북문 출입 대장에 적혀 있는 신상이 신창양가에서 관리하는 위장 호패가 맞는 모양이다.

멸왜단에서 조작하고 싶어도 알 리 없는 것이 위장 호패의 신상이다. 탐안 팔 조도 마찬가지다. 작전 투입 전 자신들이 지급 받는 호패의 신상만 알지 다른 위장 호패의 신상을 그들이 알 리 없었다.

고로 신창양가에서 스물여덟을 보낸 것이 맞다는 소리.

“탐안 팔 조에서 그의 이름이 ‘양언경’이라 하더군요.”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오.”

“양 대협께서는 우리 멸왜단에서 신창양가를 추궁하기에 근거가 모자란다고 보십니까?”

“…….”

“멸왜단은 신창양가의 혈족 명부 원본의 열람을 원합니다.”

‘양언경’이라는 놈이 진짜 있는지 없는지 족보를 까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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