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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퍼 - 무공수확자-80화 (80/175)

80화

절강행(59)

캉, 카카카카카캉!

요란한 금속성과 강기가 만들어 내는 빛살의 향연이 대청 안을 휘몰아쳤다.

신창양가의 중진이 모여 있는 대청 안으로 갑자기 호통을 치며 뛰어들었으니 집중 공격을 받는 것은 당연지사다.

구민신창이 아무리 천문위라지만 스물이 넘는 초극 고수들을 피를 보지 않고 제압하는 것은 무리. 아니 살수가 배제된 상태기에 도리어 몰릴 수밖에 없다.

“진 사제가 양 노 선배의 좌측을 맡게. 나는 우측으로 파고들 테니! 떼어 놓아서 싸움을 멈추게 해야 하네.”

황학약이 칼을 빼 들고 뛰어들었다. 진우탁 역시 창을 들고 난장판에 합류했다.

“타압!”

“하압!”

콰콰콰콰쾅!

기합성과 함께 두 천문위가 전력을 다해 휘두른 공격이 공간을 휩쓸었다.

“한 명이 아니다!”

“물러나!”

“진을 정비해!”

살벌하게 덮쳐드는 공격을 피해 뒤로 성큼 물러났던 신창양가의 중진들이 서로 의견을 교환하며 진을 변형시킨다. 그리고 상대를 직시했다.

“아버지?”

구민신창의 얼굴에 양심성은 기겁한 얼굴이 되었다.

“태상?”

“태상이 어떻게?”

“맙소사, 미쳤다는 소문이 사실이었어?”

대청에 모여 있던 가문의 중진들이 창진을 이룬 상태로 수군거렸다.

“감히 누구에게 창을 겨누느냐?”

사사혈창대 대주 양묵일이 호통을 내지르며 그들 앞에 나섰다. 그와 동시에 사사혈창대의 다른 열아홉이 구민신창을 보호하듯 세 천문위와 신창양가 중진들의 사이로 늘어섰다.

“사사혈창대!”

“실종됐다지 않았나?”

“저 작자들이 왜 태상과 함께 나타난 거야?”

가문의 중진들이 사사혈창대의 등장에 주춤거리자 양심성이 나섰다.

“뭣들 보고만 있나? 가주를 시해한 반도를 제압하지 않고!”

양심성의 외침에 중진들이 창을 고쳐 잡았다. 솔직히 중진들이 모여 있는데 냅다 호통을 내지르며 들이친 모양새가 진짜 미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렇게 그들이 막 움직이려는 찰나.

쾅!

굉음과 함께 대청이 흔들렸다. 진우탁이 창대로 대청 바닥을 힘껏 내려찍은 것이다.

“신창양가는 절강 무림과 전쟁을 원한다 그거군!”

진우탁이 자신의 존재감을 그렇게 뽐내니 옆의 황학약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듯 나섰다.

“진 사제, 왜 자꾸 피 볼 생각만 하는가! 신창양가나 우리 보타산 속가나 같은 정파의 동도 아닌가!”

당장 튀어 나갈 것 같은 진우탁을 그렇게 말리면서 말을 이었다.

“신창양가의 여러분! 오해가 있으면 풀어야 하는 법 아니오. 말로 합시다! 말로! 일단 이쪽은 멸왜단 단주인 진우탁, 진 사제를 비롯해서 도화도에서 온 나 황학약, 그리고 구민신창 양 노 선배가 있소이다. 사사혈창대와 벽력응주도 있고.”

말로 하자지만 그 내용은 협박이다. 이쪽은 천문위가 셋이니 무력을 사용하면 당장 피 보는 것은 네놈들이라는 소리 아닌가.

“멸왜단주에 도화도주라니?”

“보타산 속가가 자랑하는 천문위들이 왜?”

두 사람을 알아본 신창양가의 중진들이 인상을 썼다.

당연하다. 태상가주인 구민신창이 주화입마로 미쳐서 가주를 죽였다는 사실은 무림에 소문나면 가문 이름에 똥칠할 만한 사건이었다.

그런데 그 당사자가 절강 무림의 천문위 둘을 이끌고 가문으로 돌아왔다. 숨겨야 할 일이 무림 전역에 소문나게 생긴 것이다.

“절강 무림이 신창양가의 내부 문제에 끼어들겠다는 것이오?”

이에 양심성이 목청을 돋웠다.

“끼어들 수밖에 없지! 신창양가의 권력 다툼에 절강 무림을 끌어들인 건 양심성 네놈이잖아!”

진우탁이 바로 맞받아쳤다.

“네놈이라니! 멸왜단주는 말을 조심하시오, 본인은 신창양가의 집법당주요!”

“집법당주라는 놈이 무슨 원한이 있어서 내 딸의 목숨을 노린 것이란 말이냐!”

“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딸이 습격당했다는 거짓 주장을 아직도 계속할 생각이시오?”

진우탁의 말에 양심성이 코웃음을 쳤다. 뭔가 이상하다. 진짜로 진우탁이 개수작을 부린다는 투다.

설마, 이번 일의 시초가 된 진혜예 습격 사건이 양심성이 모르는 양묵현의 독단이라면?

미련 없이 튀어 버린 양묵현의 행동을 보면 신창양가를 장악하기보다는 엿 먹이는데 중점을 둔 것 같지 않은가.

양묵현이 신창양가 장악이 목적이었다면, 가주보다 전대 가주인 구민신창을 먼저 처리하는 것이 훨씬 쉬웠다.

저들이 가주의 명을 위조할 수 있었음을 생각한다면, 은퇴해서 집에 들어앉아 있는 전대 가주가 집 밖으로 나가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일이 많아 출타가 잦은 가주가 없었을 때를 노리는 것이 훨씬 쉽지 않나 말이다.

가주 명을 핑계로 전대 가주 거처를 둘러싸고 출입을 통제하고 가주 해치웠듯 구민신창을 해치우면 끝이다.

그리고 가주가 돌아왔을 때 전대 가주의 부름이라 사기 치고 가주를 끌어들여 해치우고, 전대 가주가 주화입마로 미쳐 날뛰어서 가주와 전대 가주가 양패구상했다 하는 게 훨씬 쉬운 일이다.

천문위가 만든 것이 분명한 상처를 입은 둘의 시체가 코앞에 있으니 가문의 중진들 설득하기도 쉽다. 그러면 괜히 절강을 끼워 넣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거짓? 네놈이 가주 자리 차지하기 위해 부린 수작들….”

“단주!”

내가 진우탁의 말을 끊었다.

“왜?”

“제게 신창양가의 집법당주와 이야기할 기회를 주시겠습니까?”

“쳇. 알아서 하게.”

내 말에 진우탁이 인상을 쓰며 입을 다물었다.

“멸왜단 뇌응대를 맡고 있는 이도연이라 합니다.”

사사혈창대의 울타리를 지나 앞으로 나서 인사를 한다.

“절강 무림이 벽력응주를 애지중지한다더니 사실이었군. 저 멸왜단주에게 양보를 얻어내다니.”

양심성이 나를 보며 이죽거렸다.

“이해가 되지 않아서 묻겠습니다. 집법당주께서는 왜 절강 무림을 자극하셨습니까? 처음에는 절강 무림과 신창양가의 분쟁을 이용해서 형님 되시는 분을 끌어 내리려는 게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더군요. 아드님인 양언직 양 공자의 스승 되시는 양묵현이란 분은 천문위의 무위를 가지셨고 그 휘하에는 합공이 가능한 초극 고수 열둘이 있지 않습니까? 충분히 쉽게 갈 수 있는 길이 있는데 왜 굳이 절강 무림을 자극해 어려운 길을 가시는 것이지요?”

“무슨 헛소리냐!”

내가 양묵현을 언급하자 양심성이 얼굴을 굳혔다. 지금 양묵현이 드러나면 같은 천문위인 구민신창만이 양가창법으로 가주를 죽일 수 있다는 주장에 오류가 발생하는 것이다.

“구민신창 양 노 선배님을 처리하기 위해 나간 분들 말입니다. 그분들이 있었기에 당주께서 이곳에서 마음 편히 양가의 권력 구도를 논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분들 어떻게 됐을 것 같습니까?”

“서, 설마.”

양심성의 반응에 내가 씨익 이를 드러내 보이며 웃었다.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을 보시지요. 멸왜단주 진우탁, 진 선배에 도화도주 황학약 황 선배십니다. 절강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천문위의 고수들이지요! 구민신창 양 노 선배는 제가 굳이 말씀드릴 필요 없지요? 천문위만 셋입니다. 천문위 하나를 잡을 생각으로 자신만만하게 추종향을 쫓은 그분들이 감당할 만한 전력으로 보이십니까?”

“언직은! 내 아들을 어떻게 했느냐!”

양심성이 노성을 터트렸다.

“어떻게 됐는지 굳이 말을 해야 압니까?”

“네놈!”

양심성이 노성을 터트렸다. 참 대단한 부정(父情)이다. 말 몇 마디에 그냥 홀라당 넘어오다니 말이다.

노성과 함께 양심성이 달려들었다. 아니 달려드는 것은 양심성 한명이 아니었다.

그의 주위에 있는 다섯도 함께다. 순식간에 여섯의 공력이 아우러지며 거대한 빛살이 된다. 제대로 된 합공이다. 오대세가의 일좌를 차지한 신창양가의 초극 고수 여섯이 펼치는 합공!

내가 막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러니 멀뚱히 구경만 한다.

왜냐고?

“이런!”

“어딜!”

천문위인 진우탁과 황학약을 믿거든!

쾅, 콰콰쾅!

두 사람의 천문위가 발휘하는 거력이 초극 고수 여섯이 만들어 내는 강기를 정면에서 찢어버렸다.

그리고 드러나는 틈을 향해 금속 코팅된 손을 움직였다.

“최대 출력!”

콰자자자작!

배터리가 뿜어 내는 여섯 가닥 벼락이 공간을 찢으며 내달렸다.

파파팡, 파팡!

공기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나에게 달려들었던 여섯 명이 인상을 쓰며 뒤로 연신 밀려났다.

한 명 정도는 잡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죄다 창날에 맺힌 강기로 막아낸다.

과연 신창양가의 고수들. 쉽지 않네.

“집법당주. 지금 하신 행동은 이 후배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것인지요?”

느긋한 얼굴로 묻는다. 집법당주를 불렀지만 이건 집법당주에게 하는 말이 아니다.

“집법당주! 설마, 벽력응주의 말을 다 긍정하는 것이오?”

“태상 가주를 처리하러 사람을 보냈다는 것이 진짜요?”

“천문위인 태상을 처리할 수 있다 믿을 정도면 가주를 시해할 능력이 있겠구려.”

“허, 이 내가 가문의 반도 손을 들어주고 있었다니!”

속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신창양가 중진들의 눈에 슬그머니 분노와 살기가 일었다.

“닥쳐!”

하지만 그 이상의 살기가 양심성의 전신에 넘실거렸다.

“감히, 감히! 내 아들을!”

아무래도 아들 때문에 제정신이 아닌 듯하다.

“그놈이 누군지는 알고 손을 잡았던 것이냐?”

구민신창이 자신의 둘째 아들을 안쓰러운 얼굴로 바라보며 물었다.

“내 아들이! 당신 손자가 죽었는데! 양묵현의 정체 따위가 중요합니까! 당신도 형님도 똑같은 인간들이오! 내가 삼 년간 세를 불렸으면 얼마나 불렸겠소! 내 아들놈 홀대당하지 않게 만들려고 만든 세력이었소! 그런데, 그렇게 짓밟으려 들어야 했소! 외부 세력을 끌어들여서, 저 절강 놈들을 말도 안 되는 거짓말로 끌어들여 그렇게 말이오!”

“무슨 소리냐?”

“내 모를 줄 아시오? 멸왜단주 고명딸의 습격 사건 따위 처음부터 없었지 않소! 다 내부 감사를 위한, 우리들을 확실히 쳐내기 위한 명분을 잡기 위한 수작이었지 않소!”

이제 아귀가 맞네.

양심성과 그 일당들은 애초에 가문을 뒤집어엎을 생각 따위 없었단 소리다.

양묵현 일당이 멸왜단을 자극하고 양심성에게 사기를 친 것이다. 멸왜단주의 고명딸 습격 사건은 소가주와 경쟁할 수도 있는 양언직을 잡아 죽이기 위한 명분을 얻기 위한 가주의 흉계라고.

그렇게 양심성을 내세워 가주를 갈아치우고 계속 멸왜단을 자극해서 절강 무림과 충돌시켜 신창양가를 공중 분해시키려 했던 것이다. 일이 틀어지자 미련 없이 발을 뺀 것이고 말이다.

“집법당주께서는 그냥 양묵현 그 사람에게 놀아난 거네요.”

내 말에 양심성이 살기 가득한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당주 아드님의 사형이라는 분. 양유경, 그 사람이 진혜예 부대주를 습격한 범인이거든요.”

“무슨 헛….”

“가주를 죽인 양묵현 그 녀석은 성환 형님의 아들이었다.”

구민신창이 양심성의 말을 잘랐다.

“성환이라면 설마?”

“가문에서 축출된?”

신창양가의 중진들이 웅성거렸다.

“내 아들이….”

“집법당주. 아드님의 생사라면 함께 떠난 양묵현에게 물어야지요.”

이번에는 내가 양심성의 말을 잘랐다.

“무슨 소리냐? 양묵현은 이미….”

“애초에 양묵현은 구민신창 노 선배의 뒤를 쫓지 않았습니다. 그저 신창양가에서 벗어날 구실이었을 뿐. 지금도 신창양가에서 멀어지기 위해 장강을 열심히 거스르고 있을 겁니다만?”

양언직이 뒈진 것을 지금 말할 필요 없었다.

“아아.”

양심성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건 내 말 몇 마디에 속아 넘어간 사실에 분해하기 보다는 양언직이 낀 일행이 우리와 만나지 않았기에 아직 살아있다고 여긴 안도의 한숨이었다.

“아버지, 그간 행한 모든 것을 실토하겠습니다. 죄를 반성하며 죽겠습니다. 다만 언직이, 그 아이는 살려 주십시오.”

아들이 죽은 사실을 모르는 불쌍한 아비는 그렇게 백기를 들었다.

“약속하마.”

양심성이 어떻게 가주의 명령을 위조했는지는 신창양가 입장에서는 꼭 알아내야 하는 일이기에 구민신창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주, 그냥 포기하실 생각이오?”

“하아, 이리 심약한 사람이었다니!”

“그러게 말이오. 집법당주가 이리 강단이 없을 줄이야.”

“이런 사람과 함께 일을 도모했다니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없었군.”

“자네나 나나 사람 보는 안목이 없긴 했어.”

하지만 그 불쌍한 아비가 끌어들인 다섯은 쉽사리 항복할 생각이 없는 듯했다.

“저항할 셈이냐?”

구민신창이 양심성의 뒤에 포진한 다섯을 보며 물었다.

“보는 눈이 없으면 태상 앞에 넙죽 엎드리겠습니다만, 저리 보는 눈이 있지 않습니까?”

한 명이 나를 비롯한 절강 무림인 셋을 가리키며 웃었다.

“그러게. 이대로 주저앉으면 양가의 중진들은 줏대 없다는 소리 들을 수도 있지.”

다른 한 명이 창대를 고쳐 잡았다.

“조용히 항복해도 어차피 살려 주지도 않을 거 아닙니까?”

퉁명스럽게 말하며 창을 겨누는 한 명.

“서자의, 방계의 서러움을 딛고 힘으로 가주 자리 차지했으면 방계들을 보듬었어야지요. 직계의 돌림자로 이름 바꾼다고 방계 혈통이 어디 갑니까?”

구민신창에게 이죽거리는 한 명.

“죽기 전에 잘난 천문위의 실력이나 보렵니다.”

마지막 한 명이 호기롭게 말했다. 그렇게 다섯 개의 창이 구민신창을 향해 겨눠졌다. 이에 구민신창은 말없이 창을 움켜쥐고 앞으로 나섰다.

다섯의 목숨이 사라지는데 걸린 시간은 이 각.

가주를 잃어 의기소침해질 수 있는 신창양가의 중진들에게 구민신창의 건재함을 확인시켜 주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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