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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퍼 - 무공수확자-84화 (84/175)

84화

절강행(63)

세 천문위의 진격에 양묵현 쪽에서는 초극 셋이 물속으로 스며들었다.

양묵현과 초극 여섯이 위에서 버티고 셋이 물 아래에서 방해를 하겠다는 속셈이다. 이에 황학약이 바로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달리던 와중의 입수인데도 물도 튀지 않는다. 천문위답게 데이터로 받은 수공을 바로 몸에 적응시켜 수공 고수의 면모를 드러냈다.

“이 무슨!”

“수공의 고수였다고?”

“말도 안 되는!”

양묵현 쪽에서는 눈이 튀어 나올 수밖에 없는 광경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놀라고 있을 수만 없었다. 목혜를 신은 천문위 둘이 그들을 덮쳐들었으니깐.

창날이 번뜩이며 강기를 토해 내고 그 강기가 만들어 내는 물기둥이 격전장에서 쉴 사이 없이 치솟는다.

우웅!

군문의 음공인 굉효가 간간이 터지며 양묵현이 어떻게든 힘을 내보지만, 아까와 달리 목혜를 신은 탓에 발밑이 든든해진 천문위 둘이다.

능숙하게 받아넘기고 피한다. 거기에 물 아래에서 튀어 나오는 공격이 없으니, 두 천문위의 손발은 뭍에서와 다름없이 움직인다.

신창양가의 창술과 보타산의 창술이 다르다지만 둘 다 창술의 극에 이르다 못해 천문위가 된 자. 내공이 달라 합공은 무리지만 협공은 톱니바퀴처럼 돌아간다.

천문위와 초극 고수 여섯의 합공이 대단하긴 했지만, 두 천문위가 한마음으로 창을 질러대자 감당하기 힘들어 보였다.

그렇게 물 위의 사정은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하니 물 아래의 사정을 살핀다.

물 아래의 사정도 다르지 않았다. 세 명이 힘을 합하지 않으면 감당하기 힘든 것이 천문위의 공력. 황학약은 물속을 빠르게 돌아다니며 그들 셋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우웅!

콰콰콰콰쾅!

굉효의 음파가 유달리 격하게 터지는 듯하더니 물기둥 역시 격하게 터졌다.

그리고 전신을 강기로 감싼 퍼런 인영이 내 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벽력응주, 피하게!”

구민신창의 목소리가 귀를 울린다. 양묵현이 나를 잡기 위해 달려오는 것이다. 구민신창 역시 전신을 강기로 물들여 뒤를 쫓고 있지만 간단하게 따라잡을 것 같지 않았다.

“젠장!”

전력을 다해 튄다. 피풍의가 펼쳐지기 무섭게 수면을 박찬다.

125, 123, 125, 130.

피풍의 덕에 거리가 좀 벌어지는가 싶더니.

128, 125, 123….

다시 거리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 왜 저래 빨라?

천문위라 해도 너무 빠르지 않은가. 나는 지금 죽을힘을 다해 뛰느라 입과 코로 숨쉬기 바빠 말도 못 하는데 말이다.

- 나노 머신이 숙주의 위기 상황으로 인식해서 적극적으로 개입한 듯합니다.

= 육체 강화라도 했다는 거야?

- 우리 쪽 피풍의의 변화를 보고 베르누이의 원리를 깨달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걸 직감으로 양묵현에게 전달, 양묵현이 경공에 적용한 것으로 추측됩니다.

씨발, 욕 나온다.

고개를 돌릴 것도 없이 뒤따라오는 양묵현의 모습이 시야에 떠오른다.

강기와 호신강기를 일원화시켜 전신을 감싸던 짓거리는 어느새 관두고 양팔을 벌리고 옷소매를 풀어 날개처럼 활용하고 있다.

양묵현이 저 지랄을 하는데 구민신창이 따라잡을 수 있을 리 없다.

= 진우탁 이 양반은?

양묵현을 뒤쫓는 게 진우탁이라면, 이쪽에서 베르누이 원리를 넘겨서 양묵현을 따라잡게 만들 수도 있었다.

- 양묵현이 리퍼 쪽으로 내달리자 수면 위의 초극 고수 여섯이 잠수를 했습니다. 이들을 따라 잠수를 택했습니다.

황학약에게 초극 아홉을 다 맡길 수 없으니 홀로 떨어진 양묵현은 구민신창에게 맡긴 것이다.

= 젠장, 육지로 간다.

육지로 가면 주변 지형과 인공 근육 다발인 활시위를 이용해서 몸을 좀 더 가속할 수 있다.

- 방향 전환 시 감속을 생각하면 가기 전에 따라잡힙니다.

= 잡혀 죽어야 한다는 소리야!

- 입수를 추천합니다.

= 베르누이 원리는 물속에서도….

짜증을 내려다 다물었다. 생각해 보니 물속에서는 피풍의를 통한 농꾼의 조력이 더 큰 힘을 발휘하지 않는가 말이다.

아니 천문위와 경주할 생각만 해서는 안 되지. 물속에서는 숨을 수도 있다. 그러니 내가 물속으로 들어가면 상대도 따라 들어와야 했다. 물속으로 숨으면 물 밖에서 찾기 힘드니 말이다.

그리고 일단 장강 물은 맑지 않으니 시야 차단 효과도 있다. 수공의 요체가 물의 흐름을 통해 주위를 읽는 것이지만, 피풍의를 조절하면 물고기처럼 느끼게 할 수도 있지 않은가.

양묵현의 체내 나노 머신을 생각하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이대로 내달리다가 따라잡히는 것보다는 훨씬 좋은 선택지다.

= 입수한다.

내 결정에 바로 농꾼이 피풍의를 변형시키고 내 몸이 물속으로 그대로 스며들었다.

물에 들어오기 무섭게 일단 강바닥으로 가라앉는다. 그리고 강바닥에 바싹 달라붙었다.

= 나를 찾지 못하게 위장해.

내 명이 떨어지기 무섭게 농꾼이 피풍의를 움직여 전신을 감싼다. 피풍의를 이리저리 움직여 커다란 물고기 형태로 위장한다.

양묵현이 나를 따라 물속으로 들어왔다. 뭔가 빨리 움직이고 있는 물의 흐름이 느껴지지 않으니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강바닥으로 내려올 수밖에 없다.

구웅! 궁!

양묵현은 강바닥을 향해 창을 휘둘러 충격파를 일으켰다. 내가 튀어 나오기를 바라는 것이다.

강바닥을 후려치는 충격파를 보니 수공에 능숙한 놈이 만들어 내는 것이라 그런지 그냥 몸으로 버틸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양묵현이 강바닥을 박살 내며 내가 숨은 곳으로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 이 상태로 급가속이 가능, 아니 그전에 활시위 강바닥에 박아 넣을 수 있어?

- 가능합니다.

= 죄다 박아 넣어.

하나당 톤의 힘을 발휘하는 것들이다. 수십 개를 이용하면 단번에 녀석을 떨칠 가속을 만들어 낼 수 있다.

= 구민신창의 위치는?

- 리퍼가 갑자기 시야에서 사라진 탓에 속도를 늦춰 주위를 살피고 있습니다.

= 통신 벌레로 연락해. 내 전음으로 위장해서 이쪽 위치 확실히 잡아 줘.

구민신창이 오면 단숨에 물 밖으로 나가 그 옆에 딱 붙어 있으면 된다.

- 예, 리퍼. 연락했습니다. 구민신창 도달까지 10초입니다.

구궁!

씨발, 양묵현이 만들어 낸 충격파가 이쪽으로 밀려오고 있잖아.

= 당겨!

전신을 뒤로 당기는 것 같은 압력이 몸에 걸린다 싶은 순간.

촤악!

내 몸은 물을 가르며 수면 위로 튀어 오르고 있었다.

이십 여 장은 족히 허공으로 치솟은 듯하다. 전신을 감싼 피풍의가 바로 펼쳐지며 활공을 시작한다.

파항!

물기둥이 치솟으며 양묵현이 물 밖으로 튀어 나왔다. 바로 허공을 활공하는 나를 찾아내고는 수면을 박찼다. 풀어헤쳐 길게 늘어진 소매를 날개 삼아 내 뒤를 쫓지만 그건 그의 실수였다.

내가 날아가는 방향에서 구민신창이 미친 듯이 달려오는 중이었으니 말이다.

“타합!”

구민신창이 허공으로 튀어 오르며 양묵현을 덮쳤다.

허공에서 강기로 물든 두 천문위가 부딪쳤다.

“놈의 늘어진 소매부터 날려요!”

내가 거리를 벌리며 외쳤다.

양묵현이 구민신창을 떨쳐내고 다시 나를 쫓으면 곤란해지니 내 흉내를 내지 못하게 하는 것이 급선무다.

두 인영이 수면 위로 내려섰다. 양묵현은 어떻게든 구민신창을 떨쳐내려 했지만, 늙은 천문위는 아들의 원수를 놓아 줄 생각이 없는 듯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하지만 뭍이 아닌 수면 위다. 수공에 능한 양묵현은 바로 수면 아래로 숨어들어 구민신창의 맹공을 피했다.

- 양묵현 이쪽으로 접근합니다.

농꾼이 바로 양묵현의 동향을 파악했다.

“진우탁 쪽은?”

- 초극 고수 아홉, 모두 정리됐습니다.

여기서 내가 수면을 박차고 허공을 날아 구민신창 쪽으로 도망가면 양묵현은 진우탁 쪽으로 갔다가 상황을 파악하고 바로 몸을 뺄 가능성이 컸다.

어쨌든 나는 양유경을 죽였다. 아비인 양묵현이 내게 원한을 가질 게 당연했다.

여기서 양묵현을 놓친다면 내 목숨을 노리는 천문위를 달고 살아야 했다. 천문위와 초극 고수를 구분할 방법이 없는 한, 근처에 못 보던 초극 고수가 지나갈 때마다 불안에 떨며 살아야 한다. 그렇게 살 수 없었다.

“그쪽으로 몰고 갈 거니 아직 싸움 안 끝난 척 하라고 연락해.”

- 예, 리퍼!

연락을 받았는지 물기둥이 치솟기 시작한 영상이 잠시 눈앞에 떴다가 사라졌다.

“조심하게! 놈이 그쪽으로 갔을 수도 있어!”

구민신창이 이쪽으로 달려오며 소리를 내질렀다. 저런 소리를 들었는데 가만히 있을 수 없다.

피풍의를 펼치고 진우탁과 황학약이 있는 쪽을 향해 내달렸다.

양묵현이 물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물속에서 쫓아오는 것보다 물 밖에서 쫓는 것이 빠른 탓도 있지만 아무래도 나를 물속으로 몰고 싶은 것이다. 물 밖에는 구민신창이 있으니 말이다.

= 구민신창에게는 너무 빨리 따라붙지 말고 지금 속도 절반으로 따라오라고 연락해.

- 예, 리퍼.

양묵현이 달려드는 모양새에 나는 급히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 물속에서는 저 녀석보다 확실히 빠르지?

- 믿고 맡기십시오, 리퍼.

피풍의가 내 몸을 감싸며 순식간에 변형을 마쳤다.

내 사지도 놀릴 수 있는 형태이기에 과감히 사지를 휘저었다.

사지가 물을 밀어내고 거기에 피풍의가 반응해서 움직이니 내 몸이 작살처럼 쏘아져 나아간다.

- 리퍼께서는 그저 힘껏 움직이시지요. 제가 알아서 십 장 거리 유지하겠습니다.

농꾼 녀석의 수작질에 내 몸은 빨라지기도 하고 느려지기도 하면서 양묵현의 코앞에서 내달렸다.

일단 양묵현은 나를 잡아야 했다. 그래야 두 천문위를 구민신창으로부터 떼어 놓을 수 있으니 말이다.

농꾼이 알아서 조절한다지만 나는 천문위가 등 뒤에 바싹 붙은 상태. 전력을 다해 사지를 놀릴 수밖에 없다.

그렇게 열심히 장강을 거슬러가고 있자니 물의 흐름이 갑자기 거세진다.

진우탁과 황학약이 만들어 내는 가짜 격전지에 도달한 것이다.

= 물 밖으로!

내가 사지를 힘차게 떨치자 피풍의가 그 방향성을 수정, 내 몸을 물 밖으로 쏘아냈다.

내가 허공으로 치솟자 그 뒤를 따라 양묵현이 물 밖으로 튀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

“지금!”

내가 오른손으로 칼을 뽑아 들고 외침에 왼손에 만들어진 스피커가 우렁찬 기합을 토해냈다.

끼요옷!

한순간 호거술로 강화된 도강이 벼락의 그물을 그렸다.

양묵현을 덮치는 거냐고? 초극 나부랭이 주제에 천문위에게 덤비면 안 되지. 그냥 내 몸을 보호하는 거다!

쾅, 콰쾅!

굉음과 함께 나와 양묵현의 사이를 가로막듯 물기둥이 치솟았다. 그리고 그 물기둥 안에서 진우탁과 황학약, 절강이 자랑하는 천문위 둘이 튀어 나왔다.

콰콰쾅! 카캉!

허공에서 두 자루의 창과 한 자루의 칼이 만들어 내는 섬광이 매섭게 빗발쳤다.

강기의 파편이 난무하며 내가 만든 벼락의 그물을 후려쳤다.

그럴 때마다 내 몸은 뒤로 멀찍이 밀려났다.

양묵현이 물속으로 몸을 숨겼지만 절강의 두 천문위는 수군 출신 양묵현이 제대로 가르친 양유경의 수공 데이터를 계승한 몸.

바로 그 뒤를 쫓아간다.

콰쾅, 쾅!

사정없이 물기둥이 치솟기를 반 시진. 장강의 물길 위로 피가 번지며 양묵현의 몸이 힘없이 떠올랐다.

- NZ-03의 수확이 시작됩니다.

양묵현이 죽은 것이다.

= 놔두면 되살아나겠지?

- 예.

양유경에게 했듯이 내가중수법으로 머리를 후려쳤다.

신창양가를 뒤집어엎은 범인은 그렇게 끝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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