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퍼 - 무공수확자-90화 (90/175)

90화

절강행(69) 合 장인규의 나날(03)

여주 부도는 남궁세가의 앞마당. 남궁산천이 폭죽을 하나 쏘아 올리자 반 각도 되지 않아 남궁세가의 정예들이 달려왔다.

그들은 박살 난 객잔에 보상을 하고, 잡아 놓은 마교 놈들을 압송해 갔다.

“이 대주, 가주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세가로 먼저 갔던 남궁호천이었다.

“마교 놈들의 협력자들은 어떻게 처리했습니까?”

같이 남궁세가로 가며 물었다.

“이번 일로 드러난 놈들은 모조리 잡아들였습니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놈들이 더 있을 수도 있지만, 그건 남궁세가에서 알아서 할 일이다.

“놈들이 혈고를 지니고 있었습니까?”

놈들이 혈고를 지닌 채로 잡혔다면 청심단을 쉽게 얻을 기회가 날아간다.

“샅샅이 뒤졌지만 혈고를 가진 자는 없었습니다.”

남궁호천의 대답에 절로 나오려는 웃음을 꾹 참는다.

“이미 사용한 듯하군요.”

그래야 한다.

“놈들을 심문해서 혈고를 넣은 청심단을 찾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마교 놈들은 독한 놈들입니다. 그놈들이 사실을 말한다는 보장이 없지요.”

그렇지. 좋은 판단이다. 이 몸이라는 확실한 방법이 있는데, 적의 말을 믿을 필요 없지.

남궁세가 장원은 부도의 성벽 안이 아니라 성벽 밖에 존재했다.

아직 해가 뜨려면 한참 남은 시각이지만 부도의 동쪽 성문은 사람이 통과할 정도로 슬쩍 열려 있었다.

들어갈 때는 비밀리에 들어왔지만, 나올 때는 성문으로 나왔다. 여주 부도에서 나와 동쪽으로 강 하나를 넘으면 그곳이 바로 남궁세가다.

소호(巢湖)로 흘러 들어가는 강줄기 두 개가 동과 서에서 흐르고, 북으로는 종산(宗山)이 펼쳐져 있고, 남으로는 소호가 자리 잡고 있다.

물과 산으로 사방을 둘러싼 평원, 여주 부도가 몽땅 들어선다 해도 남을 듯한 땅에 사합원들이 잔뜩 들어서 있었다.

그리고 그런 사합원들을 거느리듯 호수의 가장자리에 우뚝 솟은 장원 하나. 그곳이 무림에서 말하는 남궁세가였다.

장원 안으로 들어가 안내 받은 곳은 객청이었다. 남궁가의 숙질 셋과 헤어져 잠시 홀로 앉아 있자니 정정해 보이는 노인 한 명이 들어섰다.

“자네가 벽력응주인가?”

남궁세가의 당대 가주인 남궁벽이다. 나이는 예순둘. 마음먹은 대로 검이 따른다 하여 ‘천검(擅劍)’이라 칭해지는 검의 고수다.

신창양가의 가주가 그렇듯 그 또한 천문위의 고수다.

“무림 말학 이도연이 강호에 이름 높은 천검을 뵙습니다.”

“가문에 숨어들어온 놈들을 찾아내고 잡아내는 솜씨를 보니 절강의 동도들이 자네를 왜 아끼는지 알 수 있더군.”

남궁 가주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본가의 청심단에 생긴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들었네만?”

사로잡은 놈들에게서 혈고를 찾지 못했으니 이미 사용했을 가능성이 컸다.

“제 무공의 시작이 의도(醫道)에서 비롯되었는지라….”

농꾼의 탐지 능력이라면 단약에 숨은 기생충 하나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합당한 대가를 치르겠네.”

“무엇을 주시렵니까?”

“청심단에 생긴 문제니 청심단으로 해결하고 싶네.”

남궁 가주의 말에 내심 미소를 지었다.

“문제가 되는 청심단의 수량이 어느 정도입니까?”

소량이면 얼마 뜯어내지 못하니 확실한 수량을 파악해야 했다.

“백이네.”

다행히 내가 필요한 양은 뜯어 낼 수 있을 정도다.

“이 할은 주셔야겠습니다.”

스무 개를 부르자.

“흠.”

내 말에 살짝 고민을 하는 남궁 가주다. 이런 쪼잔한 사람을 봤나? 내가 아니면 죄다 내다 버릴 판이잖아. 나한테 스무 개를 주면 팔십 개를 건지는데 무슨 고민을 하는 거야!

“나는 합당한 대가를 치른다 했네. 내 봤을 때는 절반 정도가 합당하다 생각하네.”

이 할의 절반 열 개를 준다는 소린가? 열 개로는 택도 없다.

내 인상이 슬쩍 구겨지려는 찰나에 남궁 가주가 말을 이었다.

“뭐, 그렇게까지 필요 없으면 서른 개는 우리에게 팔아도 좋네.”

열 개 준다면서 서른 개를 팔아도 좋다고? 허, 내가 제시한 이 할의 절반이 아니라 전부의 절반을 준다는 소리였어?

과연 오대세가의 일좌! 손이 크다.

“그리고 가문을 감시하는 일 말일세.”

이어지는 말은 감시망 이야기다.

“수고스럽겠지만 계속 유지해 줄 수는 없겠나?”

이번 일로 내가 깐 감시망의 유용성을 실감한 것이다. 물론, 그러라고 한 짓이긴 하다. 어쨌든 의도대로 일이 술술 풀리니 기분이 좋았다.

“남궁세가에 펼친 감시망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일단 남궁세가에 안테나 하나 박아야지.

“그중 제일 중요한 것이 시설물입니다.”

“그거야 자네가 방법만 알려 주면 본가에서 만들면 되는 일.”

“만드는 방법은 비전이라 알려 드릴 수 없습니다. 완성물을 가져와 드릴 테니 설치를 하시지요.”

“그러지.”

“그리고 매와 감각을 공유하는 일은 자질이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자네가 주는 약을 먹으면 가능한 일 아닌가?”

내 말에 남궁 가주가 물었다. 말하는 모양새를 보니 남궁호천에게 뭔가 들은 모양이다.

“약만으로는 안 됩니다. 애초에 그 셋이 가능한 이유도 매를 통해 미리 그 자질을 살펴, 될 만한 사람들로 불렀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어차피 한 달 뒤에 약을 재복용해야 하니 다른 사람으로 시험해 보셔도 무방합니다.”

“그럼, 본가의 감시망은 그 셋만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말이군.”

남궁호천이 무슨 소리를 했는지 대충이나마 알겠다. 살펴야 할 곳이 많으니 가능하면 사람 많이 쓰자는 소리를 한 모양이다.

“그렇지요.”

“어쩔 수 없군. 그런데 본가를 살피는 매는 항주 흑도의 경우처럼 활용할 수 없는 건가?”

항주 흑도가 내가 빌려 준 매로 육가장을 신나게 후려친 이야기도 어디서 들은 모양이다.

뭐 남궁세가 정도 되는 세력이 그만한 정보력이 없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긴 하다. 처음에는 믿지 못하고 한옆으로 밀어놓았다가 이번 일로 내가 부리는 매들이라면 가능한 일이란 걸 실감했겠지.

“항주 흑도의 이야기를 들으셨다면 아실 텐데요? 항주 흑도의 매는 지금 남궁가를 살피는 매처럼 여러 곳을 동시에 보고 들을 수 없다는 것을.”

“매의 종류가 다르다는 건가?”

남궁세가를 살피는 건 매도 아니거든.

“능력이 다른 것이지요.”

“그렇군.”

내 대답에 뭔가 아쉬운 표정을 짓는 남궁 가주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다. 매의 주인인 내가 안 된다는데.

“약값은 어떻게 받기를 원하나?”

항주 흑도가 내게 매달 거금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도 아는 듯하다.

“흠.”

잠시 머리를 굴려 본다. 원래는 한 달에 청심단 세 개를 뜯어내려 했다. 그런데 쉰 개나 되는 청심단이 들어왔으니 그럴 필요가….

아니 나중에 또 영약이 필요해질지 모르는 일 아닌가.

“청심단 세 개 가격으로 하지요. 별말이 없으면 은자로 주시고, 청심단이 필요하면 청심단으로 받아가겠습니다.”

“청심단 하나에 은자 일천 냥 정도로 잡지. 소림이 소환단을 그 정도 가격으로 속가에 푼다 들었네.”

“그렇게 하지요.”

그렇게 매달 은자 삼천 냥의 고정 수익이 추가됐다. 항주 흑도가 내게 매달 은자 일만 냥을 보내지만, 공수 양면에 쓸 수 있는 응 시리즈와 특정 지역 감시에만 쓸 수 있는 서생원 시리즈의 성능을 생각하면 적절한 가격이었다.

“그럼 약당으로 가서 청심단을 살펴보세.”

남궁 가주가 앞장섰다. 청심단에 숨어 있는 혈고를 찾으러 가는 것이다.

약당에 도착하니 가로세로 두 자 정도 되는 판에 백 개의 단약들이 종횡으로 열을 맞춰 정렬되어 있었다.

“청심단입니까?”

“그렇네.”

내 물음에 남궁 가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시작하지요.”

정렬된 단약 위로 양손을 휘저으며 뭔가를 느끼는 척한다. 동시에 손가락을 까닥여 명령을 내리니.

= 농꾼, 죄다 스캔해서 이상한 것 섞인 개체를 찾아.

- 예, 리퍼.

21세기 과학의 집대성인 농꾼이 기능을 발휘했다. 내가 손을 대여섯 번 더 휘젓자 결과가 나왔다.

정렬된 단약 중 세 번째 열의 두 번째 단약이 붉은빛으로 물들었다.

= 두 개 있어야 하는 거 아냐?

예비로 하나 더 있는 것을 나에게 먹여야 한다는 소리를 들은 기억이 났기에 농꾼에게 물었다.

- 이상 있는 단약은 저것 하나뿐입니다.

농꾼의 대답. 일단 문제의 단약을 집어 들었다.

“이겁니다.”

남궁 가주에게 단약을 건네줬다.

“확인해 보도록.”

남궁 가주가 단약을 약당의 인원에게 건넸다.

탁자 위에 종이를 한 장 깔고는 그 위에 단약을 놓고 바늘 같은 것으로 천천히 단약을 찌르고 헤집었다. 그리고 그렇게 헤집어지는 단약 안에서 좁쌀만 한 하얀 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약당의 인원이 그것을 잠시 살피더니 입을 열었다.

“고의 일종이 확실합니다.”

= 찾을 수 있겠어?

농꾼 녀석에게 물었다. 예비로 하나 더 있다는 혈고가 보이지 않으니 볼일 보고 안 닦은 기분이었다.

- 해당 개체의 정보가 부족합니다. 정밀 분석이 필요합니다.

= 삼키라는 말이야?

- 예, 리퍼.

“하아!”

한숨이 절로 나온다.

= 문제없겠지?

- 예, 리퍼.

“확인은 끝났습니까?”

“물론이네.”

내 물음에 남궁 가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나는 탁자 위의 혈고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으로 슬쩍 찍어 그대로 입으로 가져갔다.

“자네 지금 뭘 하려는가!”

내 행동에 남궁 가주가 기겁을 했다.

“혈고는 둘이라 들었습니다. 나머지 하나를 찾아야지요.”

혈고를 입에 머금기 무섭게 눈앞으로 온갖 그래프들의 향연이 펼쳐졌다.

내 입안에 득실거리는 나노 머신들이 혈고에 대해 갖은 짓거리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짓에 대한 반응들이 차곡차곡 데이터가 되어 쌓였다.

혈고가 내 입안으로 들어온 지 한 시진이 흘렀다.

- 혈고를 찾아낼 방법을 찾았습니다.

농꾼의 보고가 올라왔다.

= 이제 이거 뱉어도 되는 거냐?

- 예, 리퍼 뜻대로 하시지요.

탁자 위에 놓인 노는 종이 한 장을 빼서 거기에 나노 머신들에게 만신창이가 된 혈고의 잔해를 뱉어냈다.

= 어떻게 움직이면 되지.

- 장원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분비물을 뱉어 내면 됩니다.

간단한 말과 함께 거기에 대한 이론이 자르륵 뜬다. 대충 훑어보니 페르몬을 합성해 가사 상태에 빠져 있을 혈고를 깨우는 방식이다. 그렇게 깨어난 혈고가 내뿜는 페르몬을 추적하겠다는 계획.

나보고 남궁세가 곳곳을 돌아다니며 침을 뱉고 다니라는 소리인지라….

“차를 준비해 주시겠습니까? 좀 많이.”

보기 안 좋은 행동을 좀 순화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찻주전자를 든 인원을 뒤에 달고 장원 곳곳을 돌아다닌다.

농꾼이 가리키는 곳곳에서 찻물을 들이키고 입안에 생성된 페르몬과 뒤섞어 뱉어 냈다.

그렇게 장원을 절반쯤 돌아다녔을까?

- 리퍼, 찾았습니다.

농꾼 녀석이 깨어난 혈고가 내뿜는 페르몬 냄새를 찾아냈다.

눈앞으로 뜨는 영상은 오십 대로 보이는 중늙은이다. 꿈틀이가 붙지 않은 것을 보니 초극은 아닌 모양인데?

= 중독된 상태냐? 아니면….

- 그냥 혈고를 소지하고 있는 자입니다.

영상이 초음파 스캔 영상으로 바뀌면서 그의 품 안에 들어 있는 작은 병의 형상을 보여 준다. 저 안에 혈고가 있다는 말이다.

“그 세 사람을 불러 주시겠습니까?”

멸왜단에서 같이 온 남궁가의 세숙질을 불러 달라 했다.

“그들은 왜?”

남궁 가주가 물었다.

“혈고를 찾았습니다. 하지만 세가 내의 일인데, 제가 직접 나서는 것은 보기 안 좋지 않습니까?”

남궁세가의 일이니 남궁세가 사람들이 처리하는 것이 순리다. 뭐, 솔직히 귀찮아서 그렇지만 말이다.

세 숙질이 오기 무섭게 중늙은이에 대한 정보를 공유했다. 남궁세가에서 작정하고 키운 초극 셋이 기껏해야 절정인 중늙은이 하나 잡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그렇게 혈고를 찾는 일이 끝났다.

장인규의 나날(03)

“하하!”

웃음밖에 안 나온다.

“하하!”

나만 웃고 있는 게 아니다. 우리 팀 금강동인의 모두가 웃고 있다.

“씨발, 세상 뭣 같네.”

“와, 제일 메이저한 소림 무공이 이딴 대접을 받을 줄이야.”

“신창양가 쪽은 그렇다 쳐. 군부대에 그쪽 계열 좀 있으니깐. 그런데, 남궁세가는 도대체 뭐야?”

“그거 체질 가려서 국내에 익힌 사람 열도 안 되잖아?”

“신창양가 말고는 죄다 체질 가리는 쪽이라 세가 쪽은 죄다 수출용으로 알고 있는데?”

“와, 국내도 제대로 안 챙기면서 수출부터 하겠다. 씨바, 팀장 이거 그냥 보고 있을 거야?”

해남파, 보타산, 태산파에 이어 수확된 무공이 신창양가와 남궁세가 무공이다.

제일 많은 사용자를 지닌 소림 무공의 업데이트 대신 이딴 것들이 줄줄이 업데이트 되고 있으니 소림 무공을 익힌 헌터로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소림 계열 팀들 전화번호 죄다 뽑아.”

나노 머신이 맹렬하게 움직이며 수백 개의 전화번호가 눈앞에 나열되었다.

“영상 메시지.”

씨바 이렇게 무시당하고 살 수는 없다. 메이저의 힘을! 머릿수의 힘을 보여주마!

“궐기하라, 동도들이여!”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