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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퍼 - 무공수확자-91화 (91/175)

91화

장철상의 어느 날(03)

“자네, 옥안쾌도 소문 들었나?”

“거기 공주 부도의 패권을 잡은 청도방 소방주 이야기하는 거지?”

“그래.”

“들었지. 공주 부도를 노리던 진삼천의 목을 혼자 땄다며?”

“서른도 안 되는 나이에 진삼천 같은 흑도 거물의 목을 홀로 따다니 강서 흑도에 큰 별이 하나 떴어.”

“그러게, 옥안쾌도가 벤 진삼천이 어디 보통 인물인가. 호광 침수의 세 물길을 지배했고, 정도 팔파에 들어가는 형산파에 찍힌 뒤에도 목숨 부지하고 강서 땅까지 살아서 들어온 흑도의 노괴 아닌가.”

“그렇지. 흑도에서 이름난 초극 고수지. 그런데 옥안쾌도에게 목이 날아갔어. 그러니 그전에 돌던 옥안쾌도의 소문들은 죄다 헛소문이라는 거지.”

“그전에 돌던 소문? 사형을 쫓아내고 소방주 자리에 앉았다니, 그 탓에 방주인 패력도가 청도방을 떠났다니 하는 소문 말하는 건가?”

“그래. 그야말로 헛소리지. 그 나이에 초극에 오른 제자가 둘째라면 나 같아도 첫째를 밀어내고 둘째에게 후계 자리 물려주겠다.”

“그렇지. 내가 첫째 제자라도 사제가 그 정도면 조용히 자리를 넘기겠어.”

이렇게 강서 땅에 제법 나에 대한 소문이 퍼지고 있었다.

나쁜 일이 아니다. 청도방을 어떻게 해보려던 외부인들의 발길이 뚝 끊어졌으니 말이다.

그뿐이랴. 내 결정에 한두 마디씩 토를 달던 방의 중진들도 이제는 군말 없이 따라온다.

스스로 생각해도 제법 내가 잘났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사형을 생각하면 그런 생각도 잠시일 뿐이다.

나는 흑도의 노괴 한 명 간신히 상대했을 뿐이다. 그런데 사형은? 그런 노괴가 수십 명 득실거리고 있는 흑도 유일 세가, 흑도 단일 최강이라는 육가장을 후려치는 일을 주도해서 결국은 두 손 들게 만들었다.

아니 내가 진삼천을 벨 수 있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내 몸에 깃든 마귀 종자의 도움을 얻어서이다.

그저 내 능력으로 얻은 것은 절정의 무위뿐이다. 강호 무림을 통튼다면 만 단위로 굴러다닌다는 절정 무인 중 일 인. 마귀 종자를 제외한다면 그 정도밖에 안 된다.

그렇게 스스로 높아지는 콧대와 한없이 올라가려고만 하는 기분을 붙들고 현실을 보려고 노력하는 와중인데….

“소방주, 관에서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관에서?”

청도방은 공주 부도의 패자로 부도 내의 치안을 담당하면서 관과 협조를 하는 처지이기는 했다. 하지만, 그건 관아의 포쾌들과 수하들 선에서 처리될 일이지 소방주인 나를 찾을 일이 아니었다.

“무슨 일이라더냐?”

“지부 대인께서 급히 청하신다는 말밖에 없었습니다.”

“지부 대인이?”

어쨌든 나라에서 파견한 공주부의 책임자가 부른다는데 가봐야 했다.

“관청으로 간다.”

관청으로 발을 움직였다.

- 뭐 아는 거 없냐?

조용히 내 귀를 향해 전음을 날려 내 몸속의 마귀 종자에게 묻는다.

천안각을 오가는 온갖 짐승들을 부려 부도 내에 일어나는 일들을 보고 듣는 것이 내 몸속의 마귀 종자 아닌가.

순간 눈앞으로 뭔가가 떠올랐다. 크지 않은 체구지만 전신이 근육으로 잘 짜여진 사내의 벗은 몸이다.

- 야, 이건….

갑자기 나타난 사내의 나체에 짜증을 내려는데, 그 사내의 나체 너머로 보이는 것에 입을 다물었다.

또 하나의 나신이다. 침을 꿀꺽 삼키게 만드는 굴곡을 가진 여자가 나신으로 침상에 널브러져 있었다. 게다가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이다.

아는 사람의 나신을 훔쳐보는 모양새니 상당히 민망했다.

손을 움직여 광경을 눈 옆으로 밀어 버리려는데 몸 안의 마귀가 여자의 상태를 글로 표시한다.

- 죽었다고?

아니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다. 그 여자의 정체다.

- 젠장!

어디선가 본 듯했더니 공주부 지부 대인의 딸인 것이다. 그리고 지금 저 장소는 지부 대인의 저택 내원이다.

남자의 신상을 마귀 종자가 모른다는 것은 공주 부도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 외부인이라는 소리. 거기다가 근골에 대해 파악하지도 못하고 있다. 초극 고수라는 말이다.

자신과 방사를 나누던 상대가 죽었는데, 사내는 별 동요도 없이 옷을 입고 조용히 방을 나서고 있다.

지부 대인이 자신을 부른 이유는 뻔했다. 딸을 간살(奸殺)한 색마 놈을 잡아 달라는 부탁을 하려는 것이다.

- 놈의 행적은?

내 전음에 눈앞으로 공주 부도 곳곳의 광경들이 빠르게 흐른다. 그리고 잠시 후 녀석의 모습이 잡혔다.

부도의 서쪽 성문을 나서는 모습이다. 날이 어렴풋이 밝아오는 것이 지금 모습이 아니라 아침나절의 것이다.

녀석이 서쪽 나루터에서 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 것이 끝이다.

서쪽 나루를 이용하는 외지인들은 보통 육로로 용천으로 가는 게 아니면 호광 침주로 넘어가기 위해서가 대부분이다.

- 용천과 침주 방향으로 날짐승들을 풀어서 놈을 찾아.

마귀 종자에게 그렇게 명을 내렸다.

일단 지부 대인을 만나야 했다. 지부 대인에게 부탁을 받기 전에 녀석을 잡아 봐야 얻는 것도 없을뿐더러, 놈과 아는 사이였던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공주 부도 내에서 실질적 관의 힘은 별것 아니다. 하지만 다른 세력에게 청도방을 후려칠 명분을 줄 수 있는 것이 관이다. 괜히 관에 밉보이면 하지 않아도 될 싸움을 잔뜩 할 수 있는 것이다.

관청에 도착해서 지부 대인을 만났다.

“놈의 목을 원하오. 놈의 목을 가져온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뭐든지 하리다.”

뭐 예상했던 대로다.

죽은 딸의 시체를 한번 살핀 다음 청파루(聽把樓)로 향했다.

아직 점심나절이라 기루가 문을 열 시간은 아니지만, 나는 공주부의 패자인 청도방의 소방주다.

“루주를 보러 왔다.”

“아직 루주께서 기침하시지….”

“반 각. 그 이상은 못 기다려.”

“예, 소방주님!”

내 말 한마디에 청파루의 하인이 청파루주를 깨우기 위해 달려갔다.

그리고 반 각이 되기 전에 하인이 나를 청파루주에게 안내했다.

“청도방의 귀하신 분이 어쩐 일이신지요?”

청파루주는 나보다 몇 살 더 먹은 여자다.

“몰라서 묻나? 지부 대인 댁 하인이 아침나절에 이곳에 들린 것으로 아는데?”

개방과 더불어 중원 최대의 소식통이라 불리는 하오문의 정보 거래소랄 수 있는 곳이 청파루다.

지부 대인 댁에 그들과 통하는 사람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공주 부도 안의 일은 우리보다 더 빠르고 정확한 게 청도방이잖아요.”

청파루주가 툴툴거렸다.

“놈의 정체에 대해서 말해 봐.”

“중원 무림에 색마가 한둘인 줄 아세요?”

“초극 고수, 외견상 삼십 초반. 신장은….”

녀석에 대해 내가 본 것들을 줄줄이 늘어놓았다. 그리고 지부 대인의 딸 시체에 남은 흔적들 또한 말했다.

피해자의 몸에 남은 상처로 색마를 특정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아니 그렇게까지 알고 있으면서 뭘 더 알자고 오신 거예요?”

청파루주가 기가 찬 얼굴로 물었다.

“하오문의 정보상이나 되면서 정말 몰라서 묻나?”

“예, 예. 잘 알고 있지요.”

내 말에 청파루주가 샐쭉한 얼굴로 답했다.

놈을 잡아 족치면 복수하겠다고 나설 지인이나 배경이 있나 살피는 거다. 하오문의 정보망은 중원 전역에 퍼져 있으니 이런 일을 맡기기에 좋았다.

“은자 이백 냥이에요.”

두말없이 전표를 꺼냈다. 하오문의 정보료는 돈값을 한다. 괜히 가격을 깎았다가는 부실한 정보를 얻을 뿐이다.

“소방주가 전한 내용이 전부 맞다면 제일 유력한 작자는 귀몰색마(鬼沒色魔)겠네요.”

“귀몰색마?”

“오 년 전쯤부터 활동하기 시작한 색마예요. 주로 호광 방면에서 활동을 했는데, 장사부의 패자인 백라장(洦羅莊)이 천라지망을 펼치고도 놓쳤지요. 그다음부터 ‘귀몰색마’라 불리기 시작했어요. 말 그대로 귀신처럼 사라지는 색마라고.”

청파루주가 작은 책자 하나를 건넸다. 대다수가 귀몰색마의 피해자에 관한 내용과 그 목에 현상금을 건 가문의 목록이다.

정작 내가 원한 사문이나 지인에 대한 정보는 없었다. 그래도 헛돈 날린 것은 아니다. 여기에 적힌 귀몰색마의 현상금만 받아내도 은자 수만 냥은 될듯했다. 게다가 청파루에 들린 가장 큰 목적은 이미 달성했다.

하오문을 통해 범인을 특정했다는 핑계를 말이다.

하오문에서 정보를 얻고 난 다음 청도방으로 돌아와 추적대를 조직했다.

“무산삼도(武山三刀)를 불러라!”

무산삼도는 청도방의 중진 중 가장 협공에 능한 자들로 공주부 신풍현 남부에 있는 무산에서 결의(結義)한 의형제들이었다.

그렇게 날짐승들이 녀석을 찾아내기를 기다렸다.

두 시진 뒤.

마귀 종자가 부리는 날짐승의 눈에 녀석의 모습이 포착되었다.

- 얼굴이 다른데?

부도를 빠져나갈 때 본 얼굴이 아니기에 하는 말이다. 그러자 곧 부도를 빠져나갈 때의 광경이 떠올랐다.

얼굴은 다르지만, 체격과 옷차림이 같았다. 그리고 녀석이 차고 있는 검도 똑같은 것이다.

그리고 떠오르는 문자. 향(香). 그러고 보니 지부 대인의 딸 방에서 나던 향기가 좀 특이하기는 했다.

- 역용을 했거나 하고 있었다는 말이군.

내 말에 지도가 떠오르며 놈의 위치가 표시되었다.

놈이 움직이고 있는 길은 호광 침주로 빠지는 길. 무산삼도를 이끌고 추적을 시작했다.

“흉수가 침주 계양으로 가는 관도로 움직이고 있다면 남안부 쪽에 협조를 구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무산삼도 중 첫째의 말에 바로 고개를 흔들었다.

“불가. 남안부 흑도가 사정을 알면 우리와 경쟁하려 할지도 모른다.”

남안부 흑도가 귀몰색마를 잡아 지부 대인에게 바치면 청도방의 입장이 난처해진다.

남안부 흑도가 지부 대인에게 원할 것은 뻔하다. 공주 부도에서, 청도방에서 틀어막고 있는 물길을 터주기를 바랄 터.

딸의 복수에 눈이 돌아간 지부 대인이 앞뒤 생각 없이 덜컥 승낙해 버리면 청도방의 통행료 수입이, 쏠쏠한 돈줄이 하나 날아가는 것이다.

이걸 빌미로 남안부의 흑도를 날려 버린다? 그건 공주부 지부 대인의 체면을 무시하는 일이 되고, 척을 지겠다는 소리가 된다.

뭐 그럴 가능성이 얼마나 되겠냐마는 괜한 일 생길 가능성을 괜히 만들 필요 없었다.

그렇게 수하 놈의 입을 닥치게 만들고 열심히 발을 놀렸다.

해 떨어질 때쯤 되어서야 간신히 놈의 뒤통수가 시야에 들어왔다.

“내가 앞을 막을 테니, 너희들은 관도의 뒤를 막아.”

무산삼도에게 그렇게 이른 다음, 피풍의를 펼쳐 의익행(衣翼行)의 경공으로 내달렸다.

거리가 줄어들자 귀몰색마가 뒤로 돌아보았다. 보는 눈이라고는 동행한 무산삼도 밖에 없다. 그러니 단번에 끝낸다.

바닥을 박차 몸을 띄워 그의 머리 위를 훌쩍 하고 뛰어넘으며 양손을 아래로 떨쳤다.

번쩍! 콰콰쾅!

굉음과 함께 땅이 터지며 흙이 튀었다.

“이걸 피해?”

어이가 없다. 마귀 종자가 부리는 벽력은 그야말로 번개 같은 속도인데?

“웬 놈이기에 사람에게 다짜고짜 살수를 쓰느냐?”

앞을 막아선 나를 보며 귀몰색마가 검을 빼들었다.

“우리 청도방이 만만해 보여서 공주 부도에서 그 짓거리를 벌인 것이냐? 귀몰색마.”

내 말에 귀몰색마의 얼굴이 굳어졌다.

“얼굴이 다를 텐데, 어떻게 알아봤지?”

부정 한 번 하지 않는다. 그만큼 무력에 자신이 있다는 말이겠지.

“닥치고 목이나 내밀어라!”

칼을 뽑으며 도기에 벽력을 더하니 도기가 강렬한 빛을 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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