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화
보복행(05)
“지금 귀하가….”
- 다친 척 안 해? 이 기회에 수하들 부려서 사형 한번 잡아보겠다는 거야?
사제 녀석은 내 전음에 바로 말을 멈추고 인상을 썼다.
“큭!”
가슴까지 부여잡는다. 내상을 참으며 어떻게 말을 꺼내 보려다가 극심한 고통에 더 참지 못하는 그런 모양새가 만들어진다.
“소방주!”
사제 녀석의 연기에 청도방 중진들이 급하게 움직여 자기 상관을 둘러싸 보호한다.
“네놈 감히 소방주를!”
누군가의 말에 청도방 무인들이 각자의 무기를 꼬나쥐고 나를 노려봤다. 여차하면 달려들 분위기.
사제가 급히 근처의 수하 한 명에게 뭐라 말을 건네자 그가 입을 열었다.
“경거망동하지 말고, 무기를 거둬라! 소방주의 명이시다!”
그 말에 청도방 무인들이 각자의 무기를 거둬들였다.
“젠장, 되는 일이 없네. 저 녀석이라면 잠시라도 잡아 둘 줄 알았는데 어제 다친 그대로였던 건가?”
귀몰색마가 아쉬운 얼굴로 투덜거렸다.
그 말에 청도방 중진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귀몰색마가 부린 수작에 넘어갈 뻔했다는 것을 깨달은 듯했다. 까닥 잘못했으면 귀몰색마를 사로잡은 초극 고수와 칼질할 뻔했다고 생각하니 안색이 굳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는 공주 부도의 치안을 책임지고 있는 청도방 사람들이오.”
청도방의 중진 중 한 명이 앞으로 나섰다. 사제가 뭔가 말을 전한 자다.
“난 모가지에 돈 걸린 놈 잡아다 먹고 사는 조가요. 그쪽도 이 색마 놈 잡으러 온 것이오?”
내 정체는 두루뭉술하게 둘러대며 물었다. 빈손으로 귀몰색마의 뒤통수를 후려치며 말이다.
“그렇소.”
“보시는 바와 같이 이 색마 놈은 내가 잡아가는 중이오.”
내가 다시 귀몰색마의 뒤통수를 후려치며 말했다. 귀몰색마가 내 손에 확실히 제압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는 공주 지부 대인의 명을 받고 귀몰색마를 잡기 위해 나섰소이다.”
초극 고수로 소문난 소방주가 내상을 입어 힘을 못 쓰는 상태. 힘으로 귀몰색마를 넘겨 받을 수 없겠다 싶으니 지부 대인을 끌어들인다. 머리 좀 돌아가는 놈이다.
“지금 내게 귀몰색마를 양도해 달라는 것이오?”
“그렇소.”
내 물음에 녀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이 녀석 목에 걸린 돈이 얼마나 되는지 알고 그러시오? 여기저기에서 내건 현상금을 다 합하면 은자 일만 냥을 훌쩍 넘을 것이오.”
- 공주 지부 대인의 따님이 놈에게 당했소.
“돈은 지부 대인께서 원하시는 만큼 내어 드릴 것이오.”
전음과 육성이 동시에 들렸다.
뭐 지부 대인 정도 되면 한 해에 여기저기서 받는 뒷돈이 은자 십만 냥은 가볍게 넘을 테니 은자 일만 냥 정도 내어 주는 것은 일도 아니긴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놈을 내어 줄 수는 없다.
“내 어지간하면 공주 지부 대인에게 돈 받고 이놈을 내어드리겠는데, 아쉽구려.”
귀몰색마를 넘기는 것은 청도방이 망하는 지름길이다. 그거 피하자고 이 짓을 하는 것 아닌가 말이다.
“진정 안 되겠소?”
“놈의 목을 원하는 지부 대인만 세 분이오. 더한 분도 계시고.”
거짓말은 아니다. 피해자 가문 중에 고관이 몇 있기는 했다. 지부 대인보다 더 고위층이 있다는 내 말에 청도방의 중진이 입을 다물었다.
“놈의 목이 잘리는 꼴을 보고 싶으면 보름 뒤에 호광의 성도인 무창(武昌)으로 오시라 지부 대인에게 전해 주시오. 그때 사람들 앞에서 놈의 목을 벨 테니.”
“알겠소.”
내 말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도 되겠소?”
“그러시오.”
그의 말에 곧 발을 옮기려는데.
- 사형, 남안부 녀석들 분위기가 심상치 않소. 아무래도 사형이 떠나면 바로 우릴 덮칠 것 같소.
사제의 전음이 날아들었다.
슬쩍 뒤를 돌아보니 남안부 흑도 녀석들이 심상치 않은 눈빛으로 청도방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소방주이자 초극 고수로 알려진 사제가 정상이 아닌 것으로 보이자, 청도방을 어떻게 해보려는 마음이 생긴 듯했다.
하긴 남안부 놈들 입장에서는 명분도 좋다. 청도방에서 먼저 남안부를 침범했다고 우길 수 있으니 말이다.
- 이 기회에 세를 좀 늘려 보지 그래?
사제가 진짜로 다친 것도 아니니 지금 덤비면 망하는 것은 남안부 흑도가 될 가능성이 크다.
- 방의 중진들에게 뭐라 말하란 말이오? 남안부를 삼킬 생각으로 일부러 다친 척했다? 귀몰색마를 잡으려다가 무산삼도가 죽었소. 힘이 모자라 귀몰색마를 남에게 넘겨야 하는 상황에 일부러 다친 척을 했다는 소리가 되오. 나보고 소방주 하지 말라는 소리요? 잘됐네, 이번 기회에 사형이 청도방 소방주가 되는 것이 어떻소?
사제 녀석이 기회를 잡았다고 퍼붓는다.
하긴 남안부 패권을 쥐어도 맡길 사람이 없는 게 현 청도방의 상황이다. 사람 없어서 공주부 전체가 아니라 공주 부도의 패권만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데, 남안부의 패권까지 손에 넣으면 여기저기서 찔러 보려는 놈들 때문에 일만 늘 뿐.
“청도방이 공주 부도의 치안을 책임지는 곳이라 하셨소?”
“그렇소만?”
“물길이 발달한 지방을 책임지니 소유한 배가 많겠구려.”
“그렇소만?”
“배 한 척 빌릴 수 있겠소?”
내 말에 사제가 몸을 일으키며 끼어들었다.
“물론이오. 공주부로 같이 갑시다. 어차피 귀몰색마 저놈 잡으러 왔는데, 조 대협이 이미 잡았으니 우리 청도방도 여기 남안부에 있을 이유가 없소.”
나에게 그렇게 말한 사제는 주위의 수하들을 헤치고 남안부 흑도들이 있는 방향으로 나섰다.
“남안부의 동도들에게 폐를 끼쳤소. 우리 청도방이 남안부에서 해야 할 일이 해결되었으니 이만 돌아갈까 하오.”
남안부 흑도들을 향해 공수의 예를 취하는데 한쪽 손을 금속으로 코팅하며 기운을 두른다.
남안부 놈들에게 자신이 말짱하다고 시위하는 것이다. 금속 코팅하고 저렇게 기운을 두르면 강기 같아 보이니깐.
“청도방이 있어야 할 곳으로 간다는데 우리 남안부의 호한들이 무슨 할 말이 있겠소. 따로 배웅하지 않겠으니 살펴 가시오.”
남안부 흑도 인사들이 아쉬운 표정으로 우리들을 배웅했다.
남안부 놈들의 시야에서 벗어나기 무섭게 사제 녀석이 내게 고개를 숙였다.
“도와줘서 고맙소. 덕분에 괜한 싸움을 피할 수 있었소.”
“대가를 받기로 하고 한 일이오. 약속대로 나룻배나 한 척 주시오.”
그렇게 서로 모르는 척 입으로 예의를 차린다.
- 공방에서 안테나 완성되면 설치나 해.
당연히 전음으로는 사형답게 사제에게 일을 떠넘긴다.
- 안테나라면 그 쇠몽둥이 말이오? 어디다 설치하라는 것이오?
- 호광 무창.
공주부 청도방에 안테나가 설치되어 있다지만 다른 안테나들의 위치가 워낙에 멀었다.
어떻게 강서성까지는 커버가 되지만 백라장이 자리 잡은 호광성까지는 무리였다. 그러니 호광성에서 통신 벌레를 활용하려면 새로운 안테나가 최소 하나는 필요했다.
- 호광 무창에 안테나를 맡길만한 곳이 있소?
호광에 안테나를 맡길만한 인연이 있는 곳은 한 곳뿐이다.
- 호광 무창의 장군가인 조가장.
- 허, 장군가와 안면을 텄소?
- 한 다리 건너 아는 사이지.
조가장은 항주 흑도의 일곱 거물 중 하나인 단철귀수 조구흥의 본가다.
- 내일이나 모레 매를 통해 소개장을 보낼 테니. 안테나 완성되면 이틀 안에 설치해.
조구흥에게 요청하면 소개장 한 장 받는 것은 일도 아니다. 내게 빌린 매로 단단히 재미를 본 조구흥이 내 요청을 무시할 리 없으니 말이다.
- 이틀이라니 무리요. 공주 부도에서 호광 무창까지 가는데….
= 농꾼, 호광 무창까지 경로 뽑아.
사제 녀석이 주절대는 소리에 바로 농꾼을 불러 거리 계산에 들어갔다.
- 닥치고 여기 경로 보이지.
녀석의 눈앞에 농꾼이 뽑은 경로를 펼쳤다.
- 대강 천삼백에서 사백 리쯤 나오는군. 이거 따라 피풍의 펴고 내달리면 하루도 안 걸려.
- 하아. 너무하시오. 사형.
- 중간에 괜한 일 저지를 생각 말고. 안테나 설치하는 대로 빠져.
- 알았소.
그렇게 사제와 헤어졌다.
청도방에서 얻은 나룻배에 귀몰색마를 태우고 강을 따라 배를 몬다.
구불구불한 물길이라 공주에서 파양호까지 가는데 이천 리였다.
보통의 사공이라면 못해도 열흘은 걸릴 거리지만 초극 고수의 몸으로 열심히 노질하니 닷새 만에 파양호에 닿았다.
“절강 남직례에 이어 강서 호광 전역에서 통신 벌레의 운용이 가능해졌습니다.”
파양호에 닿으니 노질을 하던 귀몰색마의 입에서 농꾼의 보고가 흘러나왔다.
항주의 조구흥에게 연락해 조가장에 안테나를 설치할 수 있게 장문의 편지를 쓰게 했다. 그리고 사제에게 그걸 쥐여 줬더니 열심히 내달려 호광 무창 조가장에 안테나를 설치한 것이다.
“사제가 조가장에서 신분 드러낸 건 아니겠지?”
혹시나 싶어 묻는다.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마*카*원 베타의 지원 아래 역용까지 했습니다. 그러니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래. 그나저나 백라장 쪽은 어때. 움직임이 있어?”
“별다른 움직임이 없습니다.”
응4에 이어 서생원 시리즈까지 투입된 상태다.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면 아직 연락을 받지 못했다는 소리다.
“하오문 새끼들 너무 느린 거 아냐? 어쨌든 백라장의 모든 인원에 통신 벌레 붙여서 행적 파악해.”
“예, 리퍼.”
노질은 귀몰색마의 몸뚱이에 맡기고 형산파의 데이터를 살폈다.
어쨌든 형산 속가인 백라장의 초극 고수들을 상대해야 하는 일정이다. 그러니 그들의 습관이나 약점을 알아 두려는 것이다.
귀몰색마는 백라장의 소장주. 백라장의 초극 고수들과 비무를 했을 것이 뻔했다.
데이터를 검색해서 백라장 인물들과의 비무를 살폈다. 몇 년 전의 데이터는 있어도 최근의 비무 데이터는 없었다.
뭐 녀석의 실력을 생각하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어지간한 초극 실력으로는 이 녀석을 이길 수 없을 테니 말이다.
그냥 이 녀석 데이터를 한번 적용시켜 볼까? 어쨌든 나보다는 고수 아닌가.
“하아, 후!”
귀원공을 일으켜 귀몰색마의 데이터를 몸에 적용하는데 뭔가 이상했다. 내공의 흐름이 내가 아는 형산파의 그것과 달랐다.
놈이 절정일 때의 데이터를 돌려보았다. 초극이 되기 전의 흐름과 되고 나서의 흐름이 너무 동떨어져 있었다.
“이거 내공이 이상한데?”
“무슨 말씀입니까?”
“진짜 색공이라도 익힌 건가? 데이터 뒤져서 이 녀석이 익힌 무공 이름 다 꺼내.”
내 말에 농꾼이 놈의 데이터를 검색한다. 그리고 잠시 뒤 결과물들을 주르륵 띄운다.
“회천대양신공(會川大洋神功)? 이거 형산파 무공 맞아?”
“데이터에 등록된 형산파 무공이 아닙니다.”
농꾼도 모르는 무공이다.
“이거 수행 데이터 찾아서 활성화 시켜 봐.”
녀석의 수행 데이터를 활성화시켜 보니 역시나 흡정(吸精)을 통해 내공을 쌓는 색공이었다.
“이 새끼 데이터 못 쓰겠는데?”
내공을 속성하기 좋은 방법이기는 하지만, 사람의 성욕을 과도하게 자극하는 내공이었다. 그뿐만 아니다. 과도한 흡정으로 상대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
“이 새끼 데이터 연구소에 전송했어?”
“예. 리퍼. 수확 즉시 전송했습니다.”
“연구소에 데이터 폐기 요청해. 이거 까닥하면 21세기에 강간살인마를 양성할 수도 있겠어.”
“바로 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새끼 기억 검색해서 어떤 경로로 색공을 얻었는지 알아내.”
바로 검색 결과가 나왔다.
“비급?”
육 년 전쯤 우연히 손에 넣은 비급이 회천대양신공이었다.
“형산파의 속가라는 놈이 뭐가 아쉬워서 이딴 색공을 익혀! 망할 빡대가리 새끼!”
입에서 욕이 튀어 나왔다.
나보다 적당히 강한 놈이라 내 몸에 적용시켜 수련에 써먹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꽝도 이런 꽝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