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화
보복행(16)
잽싸게 칼을 휘둘러 내가 선 바닥에 원을 그린다. 그리고 거기에 거센 발길질.
쾅!
내 발아래가 박살난다. 당연히 내 몸은 아래 이 층으로 떨어진다.
“어딜 도망가려고!”
호통과 함께 혈주마군이 내가 만든 구멍으로 몸을 들이민다.
금속 분말 주머니를 찢으며 아래로 뛰어내리는 그를 향해 손을 휘둘렀다.
소용돌이치는 장력이 금속 분말을 휘감으며 혈주마군을 향해 날아가.
콰콰쾅!
거센 폭발을 일으켰다. 이에 힘 받을 데 없는 허공에 뜬 혈주마군의 전신이 전각 밖으로 튕겨 난다.
혈주마군을 눈앞에서 치우기 무섭게 머리 위를 향해 칼을 휘두른다. 목표는 이 층 천정의 한쪽.
쫘악!
도기에 이 층 천정이 잘려 나가고.
쿠쿠쿵!
무너져 내린다. 삼 층 바닥이기도 하니 그 위에 앉아 있던 미면나찰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지사.
“크윽!”
가부좌를 튼 채 떨어진 미면나찰이 그 충격에 핏물을 토한다. 격한 내상을 치료하기 위한 운기 도중이라 반응하지 못하고 그냥 떨어진 탓이다.
“사부님!”
아줌마 셋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이 층으로 뛰어 내려왔다.
그런 그들을 향해 금속 분말 가득 품은 소용돌이치는 장력을 날려 준다.
콰콰쾅!
연달아 일어나는 분진 폭발이 세 명의 초극 고수를 전각 밖으로 밀어냈다.
준비한 분말 주머니를 연달아 찢는다. 그리고 칼자루를 놓고 미면나찰을 향해 양손을 휘둘렀다.
내 양손의 움직임을 따라 기운이 요동치고 금속 분말을 머금은 소용돌이들이 미면나찰의 사방을 포위하듯 늘어섰다.
쾅, 콰쾅, 콰콰쾅!
아니 늘어서기 무섭게 거센 폭발을 일으켰다.
사방에서 터지는 폭발에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미면나찰의 전신이 요동쳤다.
폭발의 위치와 타이밍은 농꾼의 정교한 계산에 의한 것들. 미면나찰의 몸이 바깥으로 튕겨 나는 일 따위는 없다.
“쿠에엑, 쿠학!”
가부좌를 튼 채 사방에서 일어난 폭발의 충격에 고스란히 노출된 미면나찰인지라 시뻘건 핏물을 연신 쏟아냈다.
호신강기로 몸을 지키는 멀쩡한 초극 고수에게 분진 폭발은 그저 몸을 격하게 밀어낼 정도의 충격일 뿐이다.
하지만 심한 외상과 내상을 입고 그걸 치료하기 위해 전력으로 운기를 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초극고수가 아니라 천문위라도 목숨을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
쫘악, 촥!
다시 금속 분말이 든 주머니를 찢는다. 분진 폭발에 전각 밖으로 밀려난 초극 고수들이 돌아오기 전에 미면나찰을 끝장내야 했다.
쾅, 콰콰쾅!
다시 연이은 폭발이 전각의 이 층을 휩쓸었다. 천근추를 시전해 몸을 밀어내는 충격을 굳건하게 버틴다.
폭발의 충격이 가시기 무섭게 다시 금속 분말이 든 주머니를 찢으려는데 살벌한 기세가 날아든다.
급히 뒤로 물러나니.
콰자작!
내가 섰던 자리가 난도질 되며 무너졌다.
“독한 할망구!”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온다. 피투성이의 미면나찰이 양손을 하얗게 물들이며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주르륵. 주룩!
하체의 출혈은 멈추지 않은 상태다. 운기만 하고 있다가는 폭발의 충격에 내상이 심해질 것 같으니 나부터 처리하겠다는 속셈이다.
빈손에 칼자루가 들어왔다. 농꾼이 방수를 움직여 칼을 쥐여 준 것이다.
칼자루를 움켜쥐며 손가락을 움직인다.
= 주머니들, 언제든지 찢을 수 있게 준비해.
- 예, 리퍼.
금속 분말 주머니를 찢는 일은 온전히 농꾼에게 맡기고 칼날에 강기를 일으킨다.
순간, 미면나찰이 나를 보며 웃었다. 뻘건 피로 물든 입술이 슬며시 열리며 보이는 것은 피범벅 된 이빨이다. 저기에 깨물리면 피투성이가….
- 리퍼!
머리를 두드리는 호통과 함께 몸이 뒤로 던져진다. 방수가 움직인 것이다.
쫘자작!
내가 서 있던 공간을 순식간에 하얀 참격이 휩쓸었다. 볼 것도 없다. 미면나찰의 백강참조다.
바닥에 내려서는 순간 뒷골이 서늘해진다.
천문위의 무위에, 미면나찰의 명성에 어울리지 않은 뻔한 공격이다. 초극의 무위를 지닌 자라면 어렵지 않게 피할 수 있는 공격. 그런데 나는 저 뻔한 공격에 반응하지 못했다. 농꾼이 끼어들지 않았으면 꼼짝없이 조각났을 상황.
=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손가락을 움직여 농꾼에게 묻는다. 색공에 대비해 증강현실로 시각을 조작한 상황이다. 그런데 미면나찰의 색공에 현혹된 모양새 아닌가.
- 현혹의 주가 시각이 아니라 고주파를 이용한 음공으로 파악됩니다. 불문의 사자후에 노출됐을 때와 유사한 생리 반응이 나타났습니다.
= 대처 가능해?
- 가능합니다.
미면나찰의 입꼬리가 다시 밀려 올라간다.
“아~!”
이번에는 육성까지 내뱉는다. 야동에서 나올듯한 그런 신음. 남자의 본능이 꿈틀거리려는 찰나.
우웅!
귀를 울리는 이명이 그 소리를 지우며 남자의 본능을 누른다. 농꾼 녀석이 미면나찰의 색공에 대처를 하는 것이다.
= 끌어들인다. 방금 내가 당했을 때의 반응 재개.
농꾼에게 안면근육과 눈동자의 조작을 맡기며 전신의 근육을 이완시킨다.
귀의 이명이 사라지기 무섭게 미면나찰이 움직인다. 매혹적인 얼굴로 다가와 거침없이 살수를 펼친다.
가볍게 한 발 물러난다.
쫘자작!
백강참조가 만들어내는 하얀 강기가 공간을 휩쓴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시퍼런 도강이 벽력의 폭풍이 되어 휘몰아쳤다.
끼요올~!
쩌저저저정!
하지만 상대는 천문위. 호거술이 가미된 내 공격을 모조리 양손으로 받아냈다.
칼날을 후려치는 백강참조의 위력은 내 몸을 들썩일 정도. 하지만 꾹 참고 계속 칼을 휘두른다.
내가 받는 충격만큼 미면나찰도 충격을 받을 터.
내상 좀 입어도 농꾼이 실시간으로 치료하는 게 내 몸뚱이다.
하지만 미면나찰은 극심한 내외상을 입은 상태라 당장 치료하지 않으면 목숨이 위험한 상태.
거기에 충격이 거듭되니 칼날을 막아내는 백강참조의 위력이 약해지는 것이 느껴진다.
이 상태로라면 내 칼날이 미면나찰의 모가지를 따는 것은 시간문제다.
- 리퍼!
“찢어!”
농꾼의 경고에 내가 바로 소리치며 크게 칼을 휘둘렀다.
쾅!
격한 칼질. 미면나찰이 뒤로 밀려나는 동시에 내 등 뒤로 허연 가루가 터진다.
머리 위로 휘둘러지는 손을 따라 일어난 기막의 소용돌이가 가루를 삼키니 방수가 불꽃을 튀긴다.
콰콰쾅!
격한 폭발은 내 등 뒤를 노리던 혈주마군의 앞길을 막아섬과 동시에 내 몸을 앞으로 밀어낸다.
폭발의 기세를 타고 그대로 미면나찰을 덮친다.
끼요올!
쩌저저저정!
망할 할망구, 내 공격을 죄다 막아낸다. 다 죽어가는 몸이라도 천문위는 천문위라 그건가!
“타아합!”
등 뒤에서 기합이 터지며 살벌한 기세가 덮쳐든다.
바로 바닥을 구르니 내가 섰던 자리를 시뻘건 뭔가가 휘익 하고 훑고 지나간다.
혈주마군의 공격이다. 천근추를 펼쳐서 분진 폭발에 밀려나지 않은 듯했다.
“사부님!”
“죽어!”
돌아온 것은 혈주마군만이 아니다. 미면나찰의 제자 년들도 돌아왔다.
순수 무공으로는 한 명 상대하기 힘든 아줌마가 셋이나 달려든다. 하지만 다행히도 여기는 이 층이다.
촤라락!
쾅!
칼질에 뒤이은 발길질로 바닥을 박살내며 내 몸이 일 층으로 떨어졌다.
“사부님을 밖으로 모셔!”
아줌마 중 하나가 외쳤다. 나름 머리가 있는 것들이라 한 번 당한 수법에 두 번 당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냥 놔둘 수 없다. 재빨리 칼을 휘둘렀다.
쩌저저정!
벼락의 폭풍이 일 층 천정을, 이 층 바닥을 향해 휘몰아친다. 동시에 내 전신에서 하얀 가루들이 뿜어져 나왔다.
우르르릉!
일 층 천정이, 이 층 바닥이 무너져 내린다. 칼자루를 방수에게 넘기고 양손을 바삐 움직인다. 양손이 만들어내는 기막의 소용돌이가 가루들을 빨아들이며 허공에 떠 있는 인영들을 향해 날아갔다.
쾅, 콰콰쾅, 콰쾅!
연신 일어나는 분진 폭발이 다섯의 인영들을 밀어버린다. 당연히 방향은 제각기.
- 9시 방향.
농꾼 녀석의 인도를 따라 발을 움직인다. 전각을 벗어나자 피투성이의 인영이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키는 것이 보였다. 미면나찰이다.
“맹주!”
“맹주님을 지켜라!”
여기는 적진의 한복판. 다른 떨거지들이 있는 것은 당연지사.
인의 장막이 미면나찰을 둘러싼다. 그리고 그중 다섯이 나를 향해 움직인다.
- 다섯, 전원 초극.
말 안 해도 그 정도는 안다고.
= 방수 방어 모드.
공력을 거둬들여 강기를 도기로 바꾼다. 그리고 호거술.
오올!
도기를 강화하며 늙다리 다섯 사이로 그대로 달려든다.
캉!
칼과 칼이 부딪친다. 다섯 명의 늙다리들이 내려치는 공격을 방수가 쥔 소도 두 자루와 내가 쥔 칼 한 자루로 막아낸다.
캉, 카캉, 카카캉!
세 자루의 칼로 다섯 늙다리의 협공으로부터 전신을 지킨다.
그렇게 몇 초가 흐른 뒤 칼을 쥐지 않은 내 왼손이 움직인다.
소매에서 흘러내리는 하얀 가루가 바로 손안에서 소용돌이치는 기막으로 빨려 들어가고 늙다리들 사이에서 폭발한다.
쾅! 콰쾅!
세 번의 폭발. 재빨리 움직이던 네 명의 늙다리가 밀려난다.
반사적으로 천근추를 펼쳐 자리를 지킨 늙다리를 향해 내 칼과 방수의 칼날이 번뜩인다.
카카카캉!
몇 번의 공격을 막았지만 그뿐.
쫘악!
방수의 소도에 옆구리와 목을 찔려 허물어진다.
“팔이 몇 개야?”
“삼두육비(參頭六臂)의 괴물도 아닐진데!”
늙다리들의 경악성 따위는 알 바 없다.
= 배터리?
- 섬광격 단독 3초 가능합니다.
= 신호하면 세 자루 동시에!
바로 미면나찰을 향해 내달린다.
“막아!”
“놈을 죽여!”
늙다리들의 호통에 흑천맹의 무인들이 나를 막기 위해 움직인다.
하지만 절정과 일류 나부랭이들로 방수까지 꺼내 든 나를 막기에는 무리다.
오올!
호거술이 만들어내는 가짜 강기를 앞세운 세 자루 칼이 번뜩일 때마다 썰려 나가는 것이 그들의 운명.
그렇게 피를 뿌리며 미면나찰을 향해 달려가자 몇 놈이 미면나찰을 둘러업는다.
“투척!”
내가 허공으로 뛰어오르며 외치자 놀고 있던 방수들이 움직인다.
핑, 피피피핑!
내 전신 곳곳에서 빛줄기들이 뻗어 나간다.
“크아악!”
“아악!”
미면나찰의 주위에 있던 녀석들이 방수가 던진 비수에 맞고 허물어진다.
떨어져 내리는 나를 향해 검기와 도기가 날아들지만 방수가 쥔 소도가 뿌리는 가짜 강기의 궤적에 죄다 막히고 썰린다.
“이놈!”
초극 고수로 보이는 늙다리 하나가 앞을 막는다. 몇 초의 시간이 있으면 세 자루 칼로 썰어 버릴 수 있지만, 그 잠시의 시간도 아까운 게 작금의 현실.
스쳐 지나간다. 물론 그냥 지나가면 붙들릴 가능성이 크니.
쾅, 콰콰쾅!
분진 폭발을 일으켜 늙다리는 뒤로 밀어내고 나는 폭발을 추진력 삼아 앞으로 내달린다.
타다닥!
열심히 내달리는 내 전면에서 미면나찰이 힘겹게 몸을 일으키는 것이 보였다.
“지금!”
두 걸음 움직일 때 호거술이 꺼진다. 세 걸음째 도기에 전압이 걸린다. 그리고 네 걸음째 미면나찰이 내 칼의 사정거리에 들어오고.
오올~!
어둠을 불사르는 백색의 광휘가 흑천맹의 중심에서 터져 나갔다.
방수가 휘두르는 한 쌍의 소도가 섬광격의 힘을 앞세워 미면나찰의 백강참조를 감당할 때 내 칼이 그녀의 허리를 파고들었다.
멀쩡한 천문위에게는 씨알도 안 먹힐 수작. 하지만 미면나찰 할망구는 제대로 된 보법도 신법도 펼칠 수 없는 상태였기에 그대로 동강 날 수밖에 없다.
내친김에 칼을 한 번 더 휘둘러 동강 난 상체에서 머리를 떼어냈다.
“다 털어 넣어!”
확인 사살이 끝나기 무섭게 내뱉은 내 외침에 준비한 모든 금속 분말이 흘러나왔다.
우웅!
칼을 집어넣고 양손을 움직여 커다란 기막의 소용돌이를 만든다. 소용돌이가 모든 금속 분말을 삼키는 순간,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쾅, 콰콰콰쾅!
천지를 뒤흔드는 굉음. 호신강기로 강화한 내 몸을 폭발의 충격이 정면으로 후려친다.
힘 받을 때 없는 허공이니 내 몸이 하늘을 향해 밀려나는 것은 당연지사.
- 피풍의 펼칩니다.
거기에 피풍의까지 활짝 펼치니, 내 전신은 거의 하늘을 향해 내동댕이쳐지는 수준이다.
순식간에 수십 장을 떠오른다. 그리고 급격한 추락 대신 부도 성벽을 향한 활공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