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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퍼 - 무공수확자-117화 (117/175)

117화

산동행(10)

= 파악된 인원은?

- 우산에 열둘, 장보도를 쫓던 자가 셋, 응5가 추적 중인 하나. 그렇게 초극 열여섯입니다.

농꾼의 대답과 함께 산동 지도가 뜨면서 그들의 위치가 표시되었다. 셋은 여전히 군웅의 움직임을 따라 움직이고 있었고, 하나는 신창양가의 셋을 달고 청주 쪽으로 향하는 관도 위를 달리고 있었다.

당장은 더 나올 것도 없어 보이니, 이쯤에서 이번 일을 마무리하는 것이 좋을 듯했다.

= 양연곤에게 놈들의 거점을 알아냈으니 추적을 멈추고 청주 부도에서 대기하라고 전해.

- 예, 리퍼.

“소림의 협력을 구해야겠습니다.”

장보도로 인한 쟁탈전은 끝났지만, 일시적 조치일 뿐이다.

장보도를 그대로 복사해 뿌린 탓에 누구나 놈들이 파묻어 놓은 것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아무것도 없다면 다행이지만, 뭔가가 튀어나온다면 그걸 두고 다시 쟁탈전이 벌어질 것은 뻔한 일이다.

개방과 정의맹, 황보세가와 진주언가가 힘을 합해 놈들을 때려잡는다고 해도 쟁탈전이 멈춘다는 보장이 없다.

그러니 놈들을 해결하는 동시에 놈들이 파묻어 놓았을 뭔가를 없애야 했다. 이런 일에 가장 적합한 세력이 바로 소림이다.

“쉽지 않을 텐데?”

“중원 천지에 쉬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남궁화청의 말에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전 한 발 먼저 움직일 테니, 남궁 대협께서 상 노개와 두 분을 소림 쪽으로 모셔와 주시겠습니까?”

응 시리즈의 지원을 받는 남궁화청이니 그들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명을 따르지.”

남궁화청이 움직였다.

= 소림 무승들에게 안내해.

남궁화청이 사라지기 무섭게 농꾼에게 명했다.

- 예, 리퍼.

눈앞으로 화살표가 펼쳐졌다. 농꾼의 안내를 따라 움직이니 일각도 되지 않아 야산의 중턱에 앉아 있는 소림 무승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개방의 뒤통수를 치는 척할 때 본 넷만이 아니다. 그들보다 좀 어려보이는 무승들이 열여덟이나 된다.

그중 셋이 초극이니 이번 일에 나선 소림 무승 중 초극은 일곱이라는 소리다.

= 주위에 다른 인적은?

- 없습니다.

이야기를 엿들을 만한 자들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는 기척을 드러냈다. 괜한 오해를 피하자는 짓이다. 누구라도 눈치 챌 수 있도록 발걸음 소리를 내며 그들 앞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정의맹 정안각주인 이도연이 소림의 고승들을 뵙습니다.”

그리고 손바닥과 주먹을 맞대는 공수의 예로 정중히 인사를 한다.

“장보도를 놓고 한 번 본 적이 있던 시주구려. 소림의 거철(拒轍)이오.”

소림 무승들의 수좌인 거철 승려가 내 인사를 받은 뒤 말을 이었다.

“무슨 연유로 이렇게 찾아오신 게요?”

“당연히 장보도 문제지요.”

“그 문제라면 할 말은 없소. 돌아가시오.”

축객령 따위는 무시하고 입을 연다.

“복사된 장보도를 뿌린 쪽은 개방입니다.”

내 말에 거철 승려의 눈이 커졌다. 소림 무승들의 기세가 사납게 일어났다. 여차하면 때려잡겠다는 기세다.

“개방과 소림을 이간질하겠다는 수작인가?”

거철 승려가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말에서 존대가 사라졌다.

“그리고 장보도를 찍어내기 위해 목판을 깎은 것은 본인이지요.”

괜한 충돌 일어나기 전에 재빨리 입을 열었다.

“무의미한 쟁탈전을 멈추고자….”

“잡아 꿇려라!”

거철 승려의 명이 내 말을 끊었다. 동시에 소림 무승들이 움직인다. 열여덟 무승이 내 주위를 둘러싼다.

소림의 십팔나한진이다.

“저는 소림과 싸우고자 온 것….”

“타합!”

기합성이 내 말을 끊었다. 그리고 덮쳐드는 열여덟 개의 목봉.

뭐 이런 벽창호들이 다 있어!

칼을 뽑아 튕겨 낸다.

카카캉!

열여덟 목봉에 실린 힘은 절정의 공력으로 만들 수 없는 묵직함이 담겨 있었다. 초식과 무기의 연계인 협공만이 아니라 공력이, 기세가 얽혀드는 합공까지 가미되어 있다.

카콰쾅!

그 중 초극 셋이 휘두르는 목봉은 더 강렬하다. 하지만 내가 힘에서 밀릴 이유가 없다.

약발로 키운 근력과 배 이상 무거운 체중은 내 칼에 실리는 힘을 몇 배로 뻥튀기한다.

힘과 속도로 나를 때리고 후리려 드는 목봉의 파도를 헤쳐 나간다.

“젠장!”

그것도 잠시다. 한두 개가 아닌 열여덟 목봉들이 교차되고 얽혀들며 공간을 먼저 점한다.

칼이 아니라 팔과 다리가 움직이는 경로에 목봉을 찔러 넣으니 내 행동에 제약이 생길 수밖에 없다.

소림 십팔나한진이 괜히 협공의 최고봉 소리 듣는 것이 아니다.

어쨌든 지금처럼 방어만 하다가는 얼마 못 간다.

당장 쓸 만한 방법은 여럿 있지만, 그중 가장 덜 위험한 방법을 택했다.

오올!

왼손에서 만들어진 스피커가 울부짖으니 내 칼에서 시야를 탈백시키는 섬광이 터졌다.

순식간에 열여덟 무승이 자신의 두 눈을 보호하며 뒤로 물러났다.

“하앗!”

기합성이 터지며 섬광격이 뿌리는 광휘를 뚫고 한 명의 민머리가 덮쳐든다. 누렇게 빛나는 쌍장을 앞세운 거철 승려다.

쾅!

섬광격이 유지되는 칼로 거철 승려의 대력금강장(大力金剛掌)을 받아낸다.

거센 충격이 몸을 흔들지만 뛰어난 근력과 남들보다 배로 무거운 체중이 충격을 손쉽게 털어낸다.

“흠.”

뒤로 물러난 거철 승려가 섬광격의 광휘에 노출되어 붉게 충혈된 두 눈을 끔뻑이며 나를 노려본다.

맨눈으로 섬광격의 광휘에 당하고도 눈을 감지 않다니 대단한 의지다. 거기다가 나를 겨눈 양손의 누런 불광이 점점 짙어지고 있다. 방금 날린 대력금강장이 그의 전력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저는 대화를 원합니다. 대사께서는 피를 보기 원하십니까?”

“소림은 위협에 굴하지 않는다.”

젠장, 진짜 벽창호네.

“그럼, 그냥 듣기나 하세요.”

이번 쟁탈전에 개방과 정의맹이 손잡고 해온 일들을 쭈욱 말했다. 당연히 장보도가 누군가의 음모라는 사실도 알렸다.

거기에 황보세가와 진주언가까지 손잡은 사실과 쟁탈전을 일시적으로 멈출 목적으로 장보도를 복사한 사실까지 이야기했다.

“소림에 딱히 다른 걸 원하는 게 아닙니다. 이번 일을 꾸민 자들을 잡는 데 힘을 보태 달라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평소 하듯이 하시라는 겁니다.”

“평소 하던 것?”

“놈들이 파묻은 뭔가를 찾아내 군웅 앞에서 태워 달라는 것이죠.”

정의맹이나 개방, 다른 세력이 그 짓을 한다면 무슨 꿍꿍이가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소림이 한다면? 늘 하던 짓인지라 군웅들은 ‘소림이 소림 했네!’라고 투덜거리며 흩어질 것이다.

“그런 일이라면 굳이 찾아올 필요 없지 않나?”

거철 승려가 퉁명스럽게 물었다. 소림은 그저 하던 대로 하면 되는 일인데, 왜 찾아와 난리를 떠느냐는 말이다.

“장보도의 내용은 해석하셨는지요?”

“…….”

내 말에 거철 승려가 입을 다물었다. 당연했다. 장보도의 해석은 농꾼도 못한 것이다.

장보도를 살핀 개방의 의견으로는 산동 각지의 전설과 설화에 해박해야 풀 수 있다나?

농꾼이 21세기 인터넷에 연결되어 있다면 산동의 설화나 전설에 대해 검색해 쉽게 풀었을 일이다.

하지만 그게 안 되니 개방에 맡길 수밖에 없다.

“피 좀 그만 보자고 하는 일입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빨리 찾아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개방에서 그냥 정보를 넘기면 받으셨습니까? 개방에 다른 꿍꿍이가 있다고 생각하셨겠지요.”

주위를 둘러보니 무승들의 눈에 초점이 돌아오고 있었다. 섬광격의 타격에서 어느 정도 회복되었다는 방증.

“잠시 뒤, 개방의 상 노개를 비롯해 진주언가와 황보세가의 사람이 찾아올 겁니다. 제 말의 진위는 그들을 통해 확인하시지요.”

말을 마치기 무섭게 자리를 떴다.

산중의 한적한 곳에 앉아 시간을 뭉개고 있으니 남궁화청이 상 노개를 비롯한 사람들을 데리고 찾아왔다.

“소림은 어떻게 한답니까?”

소림 쪽에 먼저 들린 것을 응 시리즈로 확인했기에 묻는 말이다.

“허, 사람 말이라고는 귓등으로 들은 척도 않는 그 벽창호를 어떻게 구워삶았나?”

상 노개가 탄성을 터트렸다.

“들어준답니까?”

“개방에서 정보를 넘기면 하던 대로 하겠다더군.”

“잘됐군요.”

“그나저나 이렇게 급하게 우리를 찾았다는 것은 뭔가 진척이 있다는 말이겠지?”

상 노개가 물었다.

“놈들의 꼬리를 잡았습니다.”

“거점이라도 찾은 건가?”

“예, 청주 부도 서쪽의 우산에 초극 열둘이 몰려 있더군요.”

“우산의 놈들은 우리 황보세가에 맡겨 주겠나?”

내 대답에 황보선이 나섰다.

일이 이대로 마무리된다면 개방과 정의맹에 비해 황보세가가 한 일이 없게 된다. 황보세가의 세력권인 산동 내에서 일어난 일인데 말이다.

“그게 좋겠군.”

“산동의 일 아닌가?”

내가 답을 하기 전에 상 노개와 언외운이 먼저 답했다.

- 산동의 일이니 황보세가가 마무리하는 것이 아무래도 보기 좋지 않겠나?

상 노개의 전음에.

- 황보가의 체면을 한 번 봐주게.

언외운의 전음까지 있다.

뭐 황보세가가 마무리를 한다 해도 내가 한 일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거기에 황보세가에도 수확 대상자가 있다.

“그렇게 하지요.”

수확을 원활하게 만들 명분은 이미 다 챙긴 상황. 귀찮게 청주까지 갈 필요 없지 않은가.

“청주 부도에 일행이 가 있습니다. 그쪽에서 놈들의 거점을 정확히 알려 줄 겁니다.”

황보세가에서 알아서 할 일이지만 혹시라도 도망치는 자가 나올 수 있다.

= 양연곤에게 놈들 거점 알려 주고 황보세가와 접촉하라고 전해.

그러니 응 시리즈와 소통할 수 있는 양연곤을 붙여 줬다.

“아, 임청 주도 관아에서 혈란을 일으킨 자도 있으니 우산의 놈들은 열셋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우산의 놈들은 황보세가에 맡겨 버리고 장보도의 소식을 흘리던 셋은 개방과 우리가 잡기로 했다.

***

놈들이 머무는 객잔 주위를 개방의 정예들이 조용히 에워쌌다.

상 노개와 남궁화청이 놈들을 잡기 위해 객잔 안으로 들어섰다.

나는 개방의 정예들과 함께 객잔 밖에서 느긋하게 기다렸다.

수년 안에 천문위에 이를 것이 분명한 고수와 그에 비견되는 고수가 같이 갔으니 걱정할 필요가….

콰앙!

천지를 뒤흔드는 굉음이 내 귓방망이를 후려쳤다.

“뭐야?”

쾅, 콰쾅!

연이어 터지는 굉음이 내 당혹성을 덮었다. 그 진원지는 두 사람이 막 들어간 객잔이었다. 객잔은 순식간에 박살 나 허물어졌다.

“이게 무슨 일이야!”

- 화기, 화약이 감지되었습니다.

내 외침에 농꾼이 답했다. 그 말대로 암모니아 냄새가 코에 걸렸다.

그리고 느껴지는 살기.

- 리퍼.

경고성과 동시에 바로 바닥을 구른다.

쾅! 파파파팍!

굉음과 함께 내가 기대고 섰던 벽면이 순식간에 구멍투성이로 변했다.

- 리퍼, 적이 도망칩니다.

농꾼의 말에 고개를 돌리니 폐허 속에서 세 개의 인영이 튀어 나와 내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막아!”

누군가의 외침에 개방 정예들이 그 앞을 막아섰다.

끼요옷!

익숙한 기합성과 함께 살벌한 궤적이 앞을 막는 개방 정예들을 단번에 쓸어버린다.

“거기 서!”

피풍의를 펼치면서 놈들의 뒤를 쫓는다.

선두로 달리던 놈이 뒤로 힐끗 돌아다본다. 어디서 본 듯한 눈초리.

치이익!

뭔가 타는 소리와 함께 놈의 손에서 떨어진 것이 바닥을 구른다.

딱 봐도 폭탄. 거기다 심지가 거의 없는 것이 세 개.

젠장!

피풍의로 전신을 감싼다.

쾅, 콰콰쾅!

굉음과 함께 거센 충격이 내 전신을 두드렸다. 하지만 이미 방비하고 있었기에 꼴사납게 땅바닥을 구르지 않았다.

피풍의를 다시 펼치며 내달리는 놈들의 뒤를 쫓는다.

“야, 저놈이 왜 살아 있어?”

나와 눈이 마주친 놈. 얼굴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호장우에게 뒤처리를 맡겼던 왜놈.

마풍단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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