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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퍼 - 무공수확자-124화 (124/175)

124화

산동행(17)

“마교 놈들의 수법이 분명합니다.”

거철 승려가 환자들을 살핀 뒤 확신했다.

“어떻게 된 겁니까? 우산으로 가던 도중 마교 놈들과 우연히 맞닥트린 것입니까?”

상 노개가 물으니 황보천이 답했다.

“마교 놈들이 습격했다더군.”

마교가 황보세가의 고수들을 후려칠 이유는 분명했다. 쟁탈전의 경쟁자로 본 것이다.

황보세가의 고수들은 합공이 가능하니 말이다.

여타 군웅들보다 더 힘든 상대가 될 것이 분명하니 먼저 처리한 것이다.

“우연이 아니라면 정보가 샜다는 말입니까?”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지 않나?”

상 노개의 말에 답하는 황보천의 눈이 나를 향했다.

“처음엔 정의맹에서 흘린 것으로 생각했지. 소림 무승들과 함께 왔다기에 다시 한 번 확신했지. 고수들을 죄다 이끌고 와서 본가를 겁박할 줄 알았는데 이렇게 단출하게 찾아온 것을 보니 정의맹도 아닌듯하군.”

황보천의 말에 등골이 서늘하다.

상 노개 말을 듣기 백 번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여기에 개방 고수들과 소림 무승들을 이끌고 왔다면?

끔찍하다. 나를 잡아 죽이기로 작정한 천문위를 만났을 것이다.

생각해 보니 황보세가 측에선 쟁탈전이 터진 김에 정의맹 쪽에서 이를 이용하여 자신들을 찍어낼 계략을 꾸민 것으로 오해할 소지가 충분하다.

정의맹이 마교에게 정보를 팔아 황보세가가 약속을 못 지키게 만든다.

그 후 다시 정의맹이 소림과 개방에 의혹을 제시하고 황보세가를 겁박하는….

어쨌든 상 노개 덕분에 오해가 깊어지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래도 확인할 것은 확실히 해야지.

“가주, 그래서 우리에게 연락하지 않으신 겁니까?”

“벽력응주가 그 잘난 매를 이용해서 연락을 차단한 것이 아니라면 본가에 문제가 있다는 건데….”

내 말에 황보천이 중얼거렸다.

우리에게 전한 소식을 누군가가 중간에 끊었다는 말이다. 마교의 습격을 생각해 보면 그 누군가는 황보세가 소속일 가능성이 크다.

“한 번 뒤집어엎을 때가 되기는 했어.”

황보천의 얼굴에 스산한 살기가 서렸다.

“가주….”

“설마, 본가의 일에 끼어들겠다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지?”

황보천이 내 말을 자르며 물었다.

“이런 일은 확실히 해야 합니다. 그리고 황보세가의 일이라고 한정 지을 수 없는 일입니다.”

스산한 살기를 흘리는 천문위가 무섭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다.

해킹범으로 이어질 단서가 튀어 나올 가능성이 있는 일에 발을 뺄 수는 없다.

“산동에서 일어난 쟁탈전의 배후와 관련이 있는 일입니다. 그 배후에는 과거 멸왜단의 핵심 인사를 암살하려 했던 자가 끼어 있음이 확인되었고요.”

거짓말 따위는 없다.

제양에서 도망친 왜놈, 마풍단주는 예전에 나를 암살하려 했었다. 당시 내 위치는 멸왜단의 핵심 인사가 분명했고 말이다.

“개방과 소림도 정의맹과 뜻을 같이하는가?”

황보천이 상 노개와 거철 승려에게 물었다.

“정의맹 벽력응주가 틀린 말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개방이 황보세가의 집안 단속에 끼어드는 것도 옳은 일은 아니지요. 그러니 황보세가에서 배반자를 찾는다면 우리들에게도 심문의 기회를 주심이 어떠신지요?”

“소승도 상 시주와 같은 생각입니다.”

아나, 도움 안 되는 인간들.

하긴 황보세가 전체가 놈들과 손을 잡았다는 의혹은 날아간 상황이다. 마교 놈들에게 당한 것을 확인했으니 말이다.

“정의맹의 뜻은 변함이 없나?”

황보천이 나를 보며 묻는다.

젠장, 남궁세가처럼 가주의 묵인 하에 황보세가에 감시망을 까는 것은 실패다.

“개방과 소림의 뜻이 그러니 저도 거기에 따르지요. 다만 의심 가는 자 몇몇은 직접 살피게 해주시겠습니까?”

일단 수확부터 하자.

***

황보세가의 수확 대상자는 셋이다. 사십 대가 하나, 나머지 둘은 이십 대다.

“가주 부르셨습니까?”

황보천의 부름에 수확 대상자 셋이 동시에 왔다.

“한 명씩 차례대로 정안각주에게 진맥을 받아라.”

황보천의 말에 세 명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지만 가주의 명을 어길 수 없었다.

“한 분씩 오시지요.”

내 말에 이십 대 한 명이 다가왔다. 맥을 잡는 대신 손가락 끝을 살짝 대었다.

“공력을 조절해 호신강기를 억제해 주시겠습니까?”

내 말에 수확 대상자가 호흡을 골랐다.

호신강기가 억제되자 수확이 시작된다. 나 역시 호흡을 골라 호신강기를 억제해 그의 데이터를 받았다.

- 데이터 검색 결과 별다른 이상 없습니다.

농꾼이 그의 기억 데이터를 검색해서 놈들과의 연관성을 찾았으나 발견하지 못했다.

- 그는 아닙니다.

황보천에게 전음을 보냈다. 의심스러운 자를 살핀다고 입을 털었으니 결과를 바로 알려야 한다.

두 번째로 삼십 대가 내 앞에 앉았다.

“공력을 조절해 호신강기를 억제해 주시겠습니까?‘

내 말에 삼십 대의 수확 대상자가 호흡을 조절한다.

- SD-03의 수확을….

퍽!

가슴팍에 단검이 틀어박힌다.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내 몸은 허공을 날고 있다.

- 통증 차단, 치료 시작합니다.

농꾼이 기습에 대응, 방수를 움직여 내 몸을 던진 것이다.

황보천이 던져진 내 몸을 받아들었다.

“놈! 무슨 짓이냐!”

그리고 SD-03의 숙주, 황보숭에게 호통을 내질렀다.

“성혈문(聖血門)의 문도로 성혈을 탐하는 대적을 제거하는 일. 외인인 백부께서 신경 쓰실 일이 아닙니다.”

성혈문은 또 뭐야? 내가 거기의 대적이라고?

“성혈문? 가문을 배반하고 다른 곳에 가담한 것이냐! 그래서 가문의 정보를 마교 놈들에게 흘린 것이냐!”

“성혈문의 문도로 할 일을 한 것뿐.”

“무엇들 하느냐? 가문을 배반한 놈을 잡지 않고!”

황보천의 호통에 대기하고 있던 세가의 고수들이 황보숭을 덮쳤다.

콰콰콰콰쾅!

검강이 난무하며 뒤로 밀려나는 것은 황보숭이 아닌 세가의 초극 고수 넷이다.

“천문위? 저놈이 언제!”

푸르른 강기를 전신에 휘감은 황보숭을 보고 황보천의 눈이 커졌다.

“황보 가주, 일단 잡아 꿇리는 것이 먼접니다.”

“그렇지.”

내 말에 황보천이 나를 놓고 황보숭을 향해 몸을 날렸다.

천문위가 달려들자 황보숭이 냉큼 위로 뛰어오른다. 단번에 지붕을 뚫고 밖으로 도망갔다.

“거기 서라!”

황보천이 그 뒤를 쫓는다.

= 응3으로 추적해.

- 예, 리퍼.

몸을 일으키니 상 노개가 다가왔다.

“자네 괜찮나?”

상 노개가 내 가슴에 박힌 단검을 보고 물었다.

“다행히 심장은 피했습니다.”

단검을 뽑았다. 근육과 혈관이 끊겼지만 나노 머신이 치료를 하고 있으니 금방 복구될 상처다.

“우리도 쫓아가지요.”

상 노개와 함께 황보숭의 뒤를 쫓았다.

= 남궁화청에게 이쪽으로 합류하라고 해.

상대는 천문위, 신창양가의 셋은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 아직 부상에서 회복되지 않은 거철 승려와 소림승들을 지키게 했다.

= 성혈문이 뭐야? 놈의 기억 데이터에서 뭐 건진 거 있어?

건물의 지붕 위를 달리며 농꾼에게 묻는다.

- 호신강기를 억제하셔야 공방으로 송신된 SD-03의 데이터를 받으실 수 있습니다.

농꾼의 대답.

= 나중에.

지금은 황보숭을 잡는 것이 더 급하다.

황보숭은 부도 북쪽의 부두로 내달리고 있었다. 황보천이 그 뒤를 끈질기게 따라붙고 있지만 황보숭의 경공만큼은 황보천보다 뛰어났다.

거리가 줄기는커녕 조금씩이지만 확실히 벌어지고 있었다.

“젠장!”

황보숭의 속셈이 뻔히 보인다. 강으로 뛰어들려는 것이다.

대책 없이 나를 찌른 것이 아니라면 이미 빠져나갈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다.

준비가 되어 있다면 매를 따돌리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다.

제양에서 도망간 마풍단주가 그랬듯 수중 동굴 하나 뚫어 놓고 제 놈이 통과한 뒤 무너트리면 되는 것이다.

놈이 지하의 은신처에서 나올 때까지 매를 대기시킨다? 강변에서는 헛짓이다.

또다시 강까지 통로를 파서 물 아래로 이동하면 매가 잡아낼 방법이 없다.

젠장, 결국 놈이 강물로 뛰어드는 것을 막지 못했다.

“황보 가주 멈추십시오! 물속은 함정입니다!”

놈을 뒤쫓아 물로 뛰어들려는 황보천을 말린다.

황보천은 나노 머신 소유자가 아니다.

수중 동굴 같은 곳으로 들어갔다가 놈이 동굴을 무너트리기라도 한다면?

아무리 천문위라도 숨을 쉬어야 산다. 수중 동굴에서 양쪽이 막혀 버리면 막힌 동굴을 뚫고 나오기 전에 호흡 곤란으로 죽을 수밖에 없다.

다행히 황보천은 내 고함을 듣고 발을 멈췄다.

“천문위가 된 녀석이 뭐가 아쉬워 가문을 배반한단 말인가! 그 실력을 드러내면 가문을 이을 수도 있는데!”

강변에서 황보천이 분통을 터트리고 있었다.

“진정하시지요!”

“하아, 후!”

내 말에 황보천이 천천히 숨을 골랐다. 그러고는 언제 흥분했냐는 듯 차분한 눈이 되었다.

“정의맹 가입 조건이 뭔가?”

“예?”

“본가도 정의맹에 가입하겠다는 말이네. 그러니 상부에 연락해서 조건을 받아오게.”

한 달에 영약 세 개. 아니 수확 대상자 한 명이 돌아섰으니 황보세가에서는 두 개인가?

어쨌든 영약 공급처가 늘어나는 일이니 내게 나쁠 것이 없다.

***

우리 일행은 황보세가에서 거처를 얻었다.

황보세가의 정의맹 가입을 타진하는 서신을 응3을 통해 보내고 회신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 황보숭의 기억 데이터에서 기괴한 내용을 찾았다고?

- 예, 리퍼. 이건 아무래도 직접 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시기는 이 개월 전입니다.

농꾼의 말과 함께 눈앞으로 영상이 떠오른다.

“천문위의 고수께서 다짜고짜 이 무슨 짓이요!”

황보숭이 치를 떨며 외쳤다.

가문의 일을 처리하고 한적한 곳에서 홀로 사색을 즐기는데 난데없이 전신을 흑의로 감싼 인간이 나타나 공격을 펼쳤다.

그런데 그 무위가 천문위. 당할 수가 없어 순식간에 피투성이가 되었다.

“내가 잘못 본 게 아니었군.”

흑의인이 기뻐하고 있다.

“또 한 명, 성혈의 혈족을 찾았구나!”

“성혈의 혈족이라니. 잘못 보신 거요. 본인은 황보세가의….”

“알고 있을 텐데? 자신의 몸이 다른 자들과 다르다는 것을!”

흑의인의 말에 황보숭은 입을 다물었다.

“내게 입은 상처도 벌써 낫고 있지 않느냐?”

“이건 그냥 내 체질이오.”

“그게 성혈의 혈족이라는 증거다!”

= 수확 대상자를, 꼬드기는 놈들이 있다?

나노 머신의 효과를 성혈이라는, 특별한 피를 가진 자만의 특성으로 사기 치는 모양새 아닌가.

- 중요한 것은 이 부분입니다.

농꾼이 화면을 빨리 돌렸다.

황보숭은 흑의인과 함께 동굴 안을 걷고 있었다.

“이곳에서 성혈을 완전히 깨울 수 있단 말입니까?”

“그렇다.”

쇠사슬이 가득한 동굴이었다.

중앙에 대나무로 된 받침대가 사방으로 서 있고 그 위로 쇠사슬들이 정렬되어 있다.

그리고 그 쇠사슬의 한쪽은 죄다 동굴의 벽면을 향해 사방으로 뻗어 있는 형국이다.

황보숭이 옷을 죄다 벗고 동굴 중앙에 서자 흑의인이 굵직한 대침을 그의 몸에 꽂는다.

그리고 그 대침과 쇠사슬이 연결되니….

도대체 ‘저건 뭐 하는 지랄들인지?’ 하는 생각밖에 안 든다.

“성혈을 해방시키려면 공력을 억제해서 호신강기를 거둬라.”

= 저 때 수확됐어야 하는 거 아냐?

- 전파가 통하지 않는 지하 동굴입니다.

농꾼의 대답에 입 닥치고 화면에 집중한다.

콰자자작!

쇠사슬에 갑자기 스파크가 튄다. 저거 전류가 흐른다는 말인데?

“천지간에 가장 강한 기운이 벼락이다. 벼락의 힘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대로 받아들여라!”

밖에 피뢰침 같은 것을 세워서 벼락을 끌고 왔다는 소린데?

콰자작, 파작!

쇠사슬을 타고 대침까지 이어진 벼락의 힘에 황보숭의 전신이 팔딱거린다.

“호신강기에 의지하지 말고 공력을 억제해!”

흑의인의 말을 듣고 자연스레 일어나는 호신강기를 억제하니….

갑자기 시야가 환해지더니 잠시 후 그의 눈앞으로 알 수 없는 뭔가들이 막 흘러내린다.

“야, 저거 나노 머신의 자체 인터페이스잖아? 저게 왜 숙주 눈앞에서 튀어나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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