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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퍼 - 무공수확자-132화 (132/175)

132화

대비행(07)

“그런데, 그 명단을 넘기면 뭘 어떻게 하시려고 달라 하시는 겁니까?”

“명단을 살펴보고 해당 인원이 속해 있는 문파에 연락해야지.”

내 물음에 상 노개가 답했다.

“그 뒤에는요?”

“그들이 성혈문과 관련이 있는지 알아내야지.”

“어떻게요?”

“몰라서 묻나?”

상 노개가 인상을 구기며 물었다. 감시를 통해 뭔가 빌미를 잡고, 고문을 통해 원하는 내용을 알아낸다. 그것이 이 시대의 일반적인 간자 색출 방법이다.

수확 대상자 중에 진짜 성혈문도가 있다 해도 체내의 나노 머신을 통제할 수 있는 그들에게 고문 따위 통할 리 없다.

뇌만 온전하면 어지간한 상처는 나노 머신으로 치료할 수 있고, 여차하면 신체의 통각을 차단할 수도 있다. 거기에 나노 머신을 활용하면 죽은 척, 아니 죽어서 빠져나와 다시 살아나는 것도 가능하다.

명단이 공개되어 상 노개의 말대로 일이 진행되면, 성혈문도를 잡지 못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성혈문과 상관없는 수확 대상자들의 원망만 살 뿐이다.

그 원망이 누구에게로 향할까?

명단을 토해낸 나에게 향할 것이 뻔하다. 그렇게 되면 호의적 수확은 물 건너가고 피의 길을 걸어야 한다.

“성혈문도들을 가려낼 명확한 방법이 없다면, 명단을 드릴 수 없습니다.”

“뭐라?”

“제가 가진 명단에 있는 자들 중 초극이 아닌 자는 없습니다.”

내 말에 상 노개의 눈이 커졌다. 초극 고수라면 어느 문파든 핵심 인사라 할 수 있다.

“절강 지역을 예로 들어 볼까요? 여기 계신 진 단주님도 제가 가진 명단에 있습니다.”

“나도 포함되어 있다? 그 명단이란 게 예전 자네가 내게 준 그 명단을 말하는 건가?”

내 말에 진우탁이 물었다.

“단주님에게 넘긴 것은 절강 지방의 명단이지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면담 주선을 위해 절강 수확 대상자들의 명단을 넘겼지 않았던가.

상 노개가 진우탁을 바라보았다. 내 말이 진실이냐고 묻는 눈초리.

“제가 본 명단은 절강의 유력 인사들로 초극이 다섯, 천문위가 셋이었습니다.”

“하아!”

진우탁의 대답에 상 노개가 한숨을 내쉬었다.

“명단을 공개하는 것은 괜한 분란을 만드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공개된 명단이 성혈문의 손에 들어간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상 노개의 짐작대로 그중에 성혈문이 말하는 성혈을 가진 자가 있다면 괜히 놈들의 전력을 늘려 주는 꼴이 됩니다.”

속한 세력에서 홀대받고 있을 때 성혈문이 손을 내민다면 어떻게 될까? 평소보다 더 쉽게 성혈문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높다.

“크흠.”

내 말에 상 노개는 잠시 고민을 하더니 말을 이었다.

“하나만 묻겠네.”

“예.”

“자네가 가진 명단에 혹시 개방의 인원이 있나?”

= 농꾼, 개방의 수확 대상자 명단 띄워.

- 예, 리퍼.

농꾼의 대답과 동시에 개방에 속한 수확 대상자들의 프로필이 눈앞으로 펼쳐진다.

중원 전역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개방인지라 수확 대상자도 많다. 열다섯이나 되다니!

“흠.”

잠시 머릿속의 명단을 떠올리는척하다가 입을 연다.

“열이 넘는군요.”

“큭!”

상 노개가 이를 물었다.

황보숭의 경우를 본 상 노개다. 일반 방파도 아닌 혈족으로 이루어진 세가의 핵심 인사가 배신하는 것을 두 눈으로 직접 봤으니 불안할 수밖에 없다.

“정안각의 준비가 끝나면 제가 그들을 살펴볼 생각입니다.”

“그 말은, 자네는 놈들을 구분할 수 있단 말인가?”

내 말에 상 노개가 바로 묻는다.

“제가 황보숭에게 읽어낸 내기의 독특한 흐름이 성혈문의 특징이라면요.”

“자네가 내기를 읽는 방법을 전수한다면….”

“사문의 비전입니다. 공개할 수도 없고, 설사 공개한다 하더라도 자질이 없으면 입문조차 할 수 없는 기예입니다. 자질이 있어도 십수  년은 족히 걸리고요.”

강호의 평화를 위해 문파의 비전을 공개하라는 소리를 할 수도 있기에 아예 여지를 주지 않는다.

“어차피 핵심은 자네 아닌가. 굳이 정안각의 준비가 끝날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있나?”

“그건 정의맹에서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상 노개의 말에 멸왜단주 진우탁이 바로 고개를 흔들었다.

“산동에서 드러난 성혈문의 전력은 어지간한 무림 세가 못지않았습니다. 드러나지 않은 전력이 얼마인지도 모르지요. 그런 놈들이 정안각주를 노리는 상황인데, 아무런 대비 없이 정안각주를 외부로 내돌리란 말입니까?”

멸왜단주 진우탁이 어림 반 푼어치도 없다는 듯 말했다.

“개방의 고수들을 동원해서 벽력응주의 호위를 책임지겠네.”

“어느 정도의 고수를 동원할 수 있습니까? 드러난 성혈문의 전력에 비견되는 전력을, 천문위를 준비할 수 있습니까?”

“천문위는 무리네. 하지만 내가 직접….”

“정의맹에서는 천문위를 준비 중입니다.”

진우탁이 남궁화청과 내 거래를 알고 있는 것은 물론, 며칠 전에 남궁화청이 천문위에 오른 사실을 알고 있기에 할 수 있는 말이다.

“큼, 정안각의 준비는 언제쯤 끝나는 것인가?”

상 노개가 말을 돌렸다.

“한 달 정도 걸릴 듯합니다.”

“개방부터 들러 줄 수 있나?”

내 대답에 상 노개가 물었다.

원래 개방부터 들릴 생각이었으니 거부할 이유가 없다.

“이변이 없으면 그렇게 하지요.”

미리 명단을 넘겨서 개방의 수확 대상자들을 모아 놓게 할까도 싶었지만, 그들 중에 성혈문의 꼬임에 넘어간 작자라도 있으면 골치 아프다. 놈들에게 수확 대상자들을 몰아주는 짓밖에 되지 않으니 말이다.

“그리고, 진 단주님.”

“왜?”

“남는 시간이 있다면 정안각의 준비에 손을 좀 빌려 주시지요.”

내 부탁에 진우탁은 군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상 노개의 눈이 있는 탓에 평소처럼 틱틱거리며 흥정을 할 수 없는 것이다.

볼일 다 본 상 노개는 멸왜단 총타를 떠났다.

그렇게 진우탁을 훈련에 밀어 넣자 정안각 대원들은 갓 천문위가 된 남궁화청을 중심으로 능숙한 천문위를 상대하는 훈련이 가능해졌다.

천문위 둘과 초극 고수 일곱을 함께 뒹굴게 만든 나는 홀로 증강 현실 속에서 칼을 휘둘렀다.

그렇게 보름이 흘렀을까?

- 리퍼, 급보입니다.

증강 현실의 대련 상대가 사라지며 농꾼의 목소리가 귀를 울린다.

“뭔데?”

- SS-11의 수확이 시작됩니다.

산서행(01)

“SS-11? SS면 산서 방면에 뿌려진 나노 머신이잖아?”

뜬금없이 수확된다는 것은 산서에 있던 수확 대상자에게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다.

재빨리 호흡을 조절해 호신 강기를 억제한다.

“공방 서버에 전송된 SS-11의 데이터를 이쪽으로 돌리고, 숙주의 프로필 띄워.”

- 예, 리퍼.

대답과 동시에 눈앞에 20대 중반 청년의 얼굴이 뜨고 그의 인적 사항이 주르륵 나열된다.

“산서 오대파의 고수군.”

수확이 시작됐다는 건 호신강기가 해제됐다는 소리. 어지간한 상처론 초극 고수의 호신 강기가 해제되지 않으니 SS-11을 품은 수확 대상자는 위중한 상태라는 말이 된다.

- 리퍼. SS-11이 숙주의 치료를 포기했습니다.

나노 머신이 숙주의 생명을 포기했다는 것은 재생 불가 상태, 뇌가 날아갔다는 소리다.

나노 머신의 치료 능력에 대해 알고 있는 작자가 손을 썼을 가능성이 크다는 말.

“기억 데이터 훑어서 무슨 일인지 파악해.”

- 예, 리퍼.

잠시 후 답이 나왔다.

전신을 흑의로 감싼 사내. 얼굴을 알 수 없지만 익숙한 체형이다.

- 황보숭의 데이터에 있던 성혈문주와 체형이 일치합니다.

산동에서 일을 벌였던 놈들이 산서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회유를 시도했다가 먹히지 않자 살해한 건가?”

- 회유를 시도한 기록은 없습니다.

“뭐?”

- 기억 데이터에 따르면 그가 수확 대상자임을 확인하기 무섭게 살수를 펼쳤습니다.

“수확 대상자들을 성혈 운운하며 꼬드겨 세력 불리려는 짓을 안 했다고?”

- 기억 데이터에 그런 내용은 없습니다.

수확 대상자를 그냥 죽여서 이들에게 무슨 이득이 있다고?

“해당 부분 영상으로 띄워.”

- 예, 리퍼.

크게 찢긴 팔의 상처가 급속도로 아물어 들고 있었다.

“역시 성혈의 소유자였어.”

전신을 흑의로 감싼 자, 성혈문주가 상대의 팔이 치유되는 광경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덮쳐드는 손이 모든 것을 뒤덮는다.

“진짜 그냥 확인하기 무섭게 죽인 거잖아.”

이유를 모르겠다.

“젠장, 무슨 수작인지 모르지만 원활한 수확을 위해서 내가 해야 할 일은 뻔하네.”

산서로 가서 성혈문 놈들을 잡아야 했다.

“사망 위치 알 수 있어?”

- 기억 데이터 상으로는 산서 태원 부도 서쪽의 대령산(大嶺山)입니다.

“지금 SS-11의 일부를 움직여서 성혈문주에 꼬리를 달 수는 없어?”

성혈문주의 위치를 추적할 수 있다면 일은 쉬워진다.

진우탁이나 황학약을 내가 달고 다닐 수는 없지만, 성혈문주의 위치를 알게 되면 그 둘에게 성혈문주를 죽여 달라 부탁할 수는 있으니 말이다.

성혈문주가 얼마나 강한지 모르지만, 수확 대상자인데다가 능숙한 천문위 둘을 상대로 이길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 접촉이 끊겼습니다. 숙주 사망으로 인한 새 숙주 탐색 및 이동 모드로 들어간 듯합니다.

안 된다는 말을 참 길게도 한다.

“산서로 최단 거리….”

잠시 말을 멈춘다.

혼자서 훌쩍 갈 일이 아니다. 정안각 인원들과 같이 움직여야 했다.

“일반 기마로 최대한 빨리 움직일 수 있는 경로를 짜.”

농꾼에게 그렇게 명을 내린 뒤 연공실 밖으로 나왔다.

= 진우탁의 위치는?

먼저 멸왜단주를 만나야 했다.

- 현재 단주 집무실에 있습니다.

정안각 대원들 좀 맡아 달라 했더니 농땡이인가 싶었지만 그러려니 했다. 솔직히 멸왜단주로 할 일이 많은 사람 아닌가.

멸왜단주 집무실로 향한다.

“단주, 정안각주입니다.”

“들어오게.”

내 말에 바로 답이 들려 왔다. 집무실로 들어섰다.

“정안각의 훈련은 반 시진 뒤에 잡혀 있네만?”

내 잔소리를 예상하고 바로 변명을 한다.

“단주가 보시기에 정안각의 전력은 어느 정도입니까? 천문위를 상대할 만합니까?”

“천문위를 중앙에 묶고 남궁화청과 합공을 쓰는 여섯이 협공하면 반 시진 안에 승.”

현실적으로 천문위를 묶어 두기 어려우니 쫓아낼 정도는 된다는 소리다.

“부각주 단독으로 천문위를 상대한다면요?”

“남궁화청 단독이라면 한 시진 정도 버틸 걸세.”

같은 천문위라도 갓 천문위에 오른 남궁화청이라 능숙한 천문위를 이기는 것은 무리다.

“합공을 쓰는 여섯은 이 각 정도 견딜 걸세.”

이것도 남궁화청과 진우탁이 열과 성을 다해 굴려서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화인천은 아무래도 뇌응대에 복귀시켜야 할 것 같던데? 실력만 보자면 신창양가의 애송이 개개인보다 뛰어나지만 합공에 끼지 못하니 성혈문과 부딪쳤을 때 도움이 되기 힘들 듯하더군.”

훈련할 때도 화인천은 남궁화청에게 보호받는 역 아니면 음공으로 호거술의 합창을 깨는 정도를 맡았던 것이 다였으니, 진우탁의 입에서 원대 복귀 소리가 나올만하다.

“단주께서 그리 생각하신다면 그렇게 하지요.”

고개를 끄덕인 후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개방에 연락하실 수 있습니까?”

“어렵지 않네. 그런데 상 선배와 약조한 기간은 한 달 아니었나? 아직 좀 남은 것으로 아는데?”

“상 노개와의 약속 때문이 아닙니다.”

내 말에 진우탁이 눈살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놈들의 종적이 드러났다는 소리군.”

“예.”

“어딘가?”

내가 짧게 답하니 진우탁도 짧게 묻는다.

“산서 태원 쪽입니다.”

“산서? 쳇, 가까우면 같이 가볼까 했는데 안 되겠군. 너무 멀어.”

내 대답에 아쉬운 표정을 짓는다.

“개방에 연통하면 상 노개도 나설 것이니 큰 걱정은 마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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