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화
산서행(04)
성혈문 놈들이 산동에서 잡은 응 시리즈를 분석해서 복제했을 가능성이 크다.
= 황1을 통한 정보 유출 가능성은? 정안각 인원들 프로그램 손봐야 하는 거 아냐?
- 황1에 의한 정보 유출을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황1의 기능 정지는 해킹 대책으로 인한 나노 머신의 물리적 소각으로 일어난 일입니다.
황1 체내의 나노 머신을 자폭시켰다는 말. 황1의 사냥으로 성혈문 놈들의 물리적 이득은 한 마리 분량의 매 고기뿐이라는 소리다.
= 성혈문의 생체 드론 위치 추적 가능해?
- 전파 추적으로 가능합니다.
= 추적해.
- 예, 리퍼.
잠시 후 산서성 지도가 떠오른다. 지도 위에 몇 개의 빨간 점들이 찍힌다.
전부 열다섯.
죄다 하늘을 노닐고 있는 것이 생체 드론이 확실하다.
= SS-11의 나노 머신을 죄다 활용하면 몇 마리의 생체 드론을 만들 수 있지?
- 못해도 수백입니다.
그런데 열다섯 밖에 없다? 시간 탓이다. 성혈문 놈들이 당장 구할 수 있었던 매가 그뿐이었다는 말이다.
그 말은 시간이 지날수록 놈들이 움직이는 생체 드론도 늘어난다는 소리.
성혈문을 당장 박살 내지 않으면 상당히 골치 아파질 게 뻔하다.
하지만 성혈문을 박살 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성혈문의 전력도 전력이지만, 이미 생체 드론이 열다섯이나 튀어 나온 상황이다.
우리가 접근하면 모를 리 없다.
성혈문을 어떻게 하려면 이제 생체 드론을 먼저 박살 내야 한다는 말인데….
잠깐, 그보다 전파 추적으로 생체 드론의 위치를 알 수 있다면 저 생체 드론과 통신하는 쪽의 위치도 알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 다른 전파 잡히는 것 없어?
- 계속 전파 추적을 시도하고 있지만, 저들 이외의 다른 발신체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전파 통신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생체 드론에게 명령을 내리고 있다는 소리다. 생체 드론이 보내는 정보는 라디오처럼 수신만 하고 말이다.
젠장, 전파 통신을 사용한다면 쉽게 찾는….
“각주!”
황보군의 목소리에 상념에서 깨어났다. 황1, 자신과 연결된 매와 연결이 끊어진 이유를 묻는 것이다.
“성혈문 놈들에게 당한 거다.”
“어떻게 하늘 높이 나는 매를 잡는단 말입니까?”
황1의 마지막 전송 화면을, 매들이 떼로 덤벼드는 것을 못 본 듯했다. 전송받은 데이터가 있는데 못 돌려 봤다는 것은 농꾼이 정보를 차단했다는 소린데….
= 놈들이 매를 부린다는 정보를 차단한 거냐?
- 예전 정보를 다시 살피는 것은 매의 기억을 보는 것으로 둘러댔기에 그 설정에 맞춘 겁니다.
다른 의도를 가지고 정보를 차단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럼, 대주에 놈들이 있다는 말인가?”
상 노개가 끼어들었다.
“예.”
“당장 대주로 갑시다!”
내가 대답하기 무섭게 조주선이 외쳤다. 이 양반 대주에 성혈문 놈들이 있다는 소리에 아들 피 값 받을 생각에 눈이 벌게졌다.
“할 일은 해야지요.”
당장 움직이려는 조주선을 말리며 손가락을 움직였다.
= 당장 생체 드론을 상대할 무기를 만들 수 있어? 응 시리즈에 장착할 수 있는 걸로.
지상에서 900미터 상공을 노닐고 있는 생체 드론을 공격하기에는 힘드니 같은 생체 드론에 무기를 달아 잡아야 했다.
- 마원의 자원을 활용해 당장 만들 수 있는 무기는 비산형 폭발물밖에 없습니다.
매의 운용 방법을 생각하면 폭격기처럼 주렁주렁 매달 수 없다.
많아야 한둘.
그걸로 잡아야 할 놈이 응 시리즈의 카피 판임을 고려하면 더 높이 날아올라 떨어뜨리는 것으론 안 된다.
그냥 매의 몸에 달고 상대가 바싹 붙었을 때 자폭하는 수밖에 없다.
= 지금 당장은 그거라도 있어야지. 만드는 족족 무장시켜.
- 예, 리퍼.
= 공방에서 생체 드론 잡을 무기도 만들어. 응 시리즈와 함께 생산하고.
그렇게 대강 생체 드론에 대한 대비를 마련하고 눈앞의 수확 대상자를 상대한다.
“구 소협, 호신 강기를 억제해 주시겠소?”
내 말에 구전중이 나를 멀뚱히 쳐다본다. 뭐 사정을 모르니 당연한 반응이다.
“오 사제.”
“셋째야, 바쁜 분들이다. 이 각주께서 시키는 대로 하거라.”
조주선이 부른 이유가 뻔하기에 오륙천은 바로 제자에게 협조를 명했다.
“예. 사부님.”
구전중이 그렇게 대답한 뒤 호흡을 조절했다. 나도 그에 맞춰 호신 강기를 억제했다.
- SS-15의 수확이 시작됩니다.
구전중의 데이터를 받기 무섭게 자동 수확 프로그램과 해킹, 강탈에 대응하는 프로그램을 인스톨 했다.
“끝났습니다.”
“그럼, 바로 움직입시다!”
조주선이 재촉한다.
“조 사형, 같이 가십시다. 셋째도 따라와라.”
오륙천이 구전중과 함께 일행에 합류할 뜻을 밝혔다. 초극 고수가 득실거리는 성혈문이 구전중을 노리는 상황이니 흔주 풍검문에 그냥 있기보다는 성혈문을 쫓는 우리와 동행하는 것이 안전하다 여긴 것이다.
“경공으로 내달리세.”
상 노개의 말이다. 일반적인 말이라면 오십 리마다 있는 역참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말을 갈아타고 달려도 이백리 길을 가는데 두 시진은 걸린다.
하지만 초극 고수가 경공으로 내달리면 한 시진이면 충분했다.
= 백 장 거리를 두고 마원 따라붙게 해.
마원이 없으면 천문위 상대로 버티기 힘드니 당연하다.
= 생체 드론 잡을 무기 만들어 매들 무장시키는 것도 잊지 말고.
- 예, 리퍼.
열둘이 된 일행이 대주를 향해 내달렸다.
오십 리 정도 내달렸을까?
- 리퍼, 생체 드론 열다섯 접근 중입니다.
농꾼의 보고와 동시에 뜨는 화면. 푸른 하늘 너머에서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날짐승의 무리가 보였다.
= 무장 끝난 매는?
- 다섯입니다.
= 무장 끝난 매와 정안각 인원의 연결을 끊고 죄다 들이밀어. 저것들이 덮치면 터트리고.
내 명에 다섯 마리의 매가 움직인다. 서로 간의 거리를 전후좌우 수십 장씩 벌려 넓게 퍼져 날아간다.
성혈문이 부리는 매들이 덮치기 좋은 모양새다. 아니 덮치라고 유혹하는 것이다.
황1을 덮치듯 떼거리로 덮치면 한방에 놈들을 정리할 수도 있다. 다섯 밀어 넣어 열다섯 날려 버리면 남는 장사다….
그런데, 놈들은 한 마리에 둘 셋씩 달려들지 않았다. 한 마리에 하나씩 달려든다.
저것들 설마?
오 대 오, 매와 매들이 허공에서 서로 얽히는 순간.
파팡! 파파팡!
굉음과 함께 깃털과 육편이 흩날리며 매들의 형체가 사라졌다.
= 농꾼, 네가 터트린 거냐?
- 아닙니다. 저쪽도 준비한 듯합니다.
혹시나 해서 물었는데 역시나다. 저쪽도 내 매를 치우기 위해 폭탄을 준비한 것이다.
아직 무장 안 된 여섯 마리를 향해 놈들 여섯 마리가 날아든다.
= 당장 대피시켜!
내 명에 매들이 화급히 흩어진다. 평범한 매들은 할 수 없는 기동으로 하늘을 수놓지만 응 시리즈나 저놈들이나 바탕이 같다. 이쪽이 할 수 있는 것을 저쪽이 못할 리 없다는 말.
바로 한 마리씩 따라붙는다.
- 떼어 놓기 힘듭니다.
젠장, 욕 나온다.
- 리퍼, 적들이 협공하려고 합니다.
우리 쪽 매는 여섯뿐이지만 저쪽은 여섯이 다가 아니다. 공격에 가담하지 않던 넷 중 셋이 움직인다.
뒤따르는 놈 하나 떨치기 힘든 상황에 다른 놈이 끼어들면 따라 잡히고 폭사할 수밖에 없다.
= 다른 전파는?
- 여전히 없습니다.
내 물음에 농꾼이 급히 대답했다.
저 협공은 성혈문의 누가 이 상황을 보고 통신으로 명령을 내린 것이 아닌 인공지능 자체의 판단이라는 소리.
그렇다면 방법이 없지 않다.
= 내려 보내.
= 예?
= 내 쪽으로 유인하라고. 내가 때려잡는다.
- 예, 리퍼.
때마침 물길이 앞을 막는다. 북에서 흘러내리는 물길이 서에서 흘러내리는 물길을 만나 동으로 꺾이는 부분이다.
“정지. 여기서 잠시 숨을 돌리지요.”
내가 발을 멈춰 서자 일행들도 나를 따라 멈춰 선다.
“백 리도 내달리지 않았고, 이 정도 물길이야 등평도수로 건너면 되는데 왜 멈추는가?”
상 노개가 물었다.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요.”
그렇게 대답하며 양손 가득 비수를 움켜쥔다.
- 급강하합니다.
농꾼의 보고에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니 날개를 접고 떨어져 내리는 매들이 보였다.
“저건?”
“매?”
“왜?”
내 시선을 따라 고개를 든 일행이 급강하하는 매들을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 적아 구분해.
- 적적아청(敵赤我靑).
농꾼의 대답과 동시에 먼저 떨어져 내리는 여섯이 청광으로 물들었다. 뒤쫓아 떨어지는 아홉은 붉은색.
청광으로 물든 매들이 날개를 펼치며 내 주위로 내려서는 순간, 내 양손이 움직였다.
내 손을 떠난 여섯 개의 비수가 빛살이 되어 매를 꿰뚫는다.
하나에 하나씩. 여섯 마리의 매가 비수에 꿰뚫려 사라지자 남은 세 마리가 날개를 펴며 각기 방향을 틀어 도망가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콰자자작!
푸른 뇌전이 공간을 가르며 그대로 세 마리 매를 후려쳤다.
= 응2, 응3으로 저거 잡고! 남은 넷은 감시 고도로 돌려!
내 명에 바닥에 내려선 매들이 재빨리 다시 하늘로 난다.
- 자폭할 가능성이 높습니다만?
= 이쪽 상황 생중계 당하는 것보다 그냥 매 두 마리 잃는 게 나아.
어차피 응 시리즈는 공방에서 보충할 수 있는 소모품이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
“각주, 왜 갑자기 매들을 죽인 거요?”
상 노개와 남궁화청이 물었다. 이들 눈에는 내가 멀쩡한 매들을 불러들여 때려죽인 거로 보인 것이다.
“내가 죽인 매와 저기 도망가는 한 마리는 성혈문 놈들이 부리는 매입니다.”
“도망가는 매가 어디 있다는 건가? 안 보이는데?”
상 노개가 내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기다가 인상을 쓴다. 성혈문의 남은 매는 응 시리즈의 보호색 기능도 카피했기에 맨눈으로 찾기 힘든 것이다.
“저기 있군요.”
“허, 빨리 도망가네?”
“쫓아가는 것이 우리 쪽 매지요?”
정안각 인원들은 체내 나노 머신을 통해 증강현실이 제공되니 그들 눈에는 훤하게 보인다.
“성혈문에서도 매를 부린다는 말인가? 자네처럼?”
상 노개가 기겁한 얼굴로 물었다.
“사문의 비전이 유출된 것인지 알아봐야지요.”
그렇게 대답하며 전격에 구워진 매와 비수에 맞아서 떨어진 매들을 수거한다.
= 정보 뽑아낼 수 있냐?
- 시도해 보겠습니다.
호신강기를 해제하기 위해 호흡을 고르는데….
- 호신강기를 해제하시는 것보다 매의 사체를 둘러싸기를 권장합니다.
농꾼의 말과 함께 손이 검게 물든다. 그리고 내가 움켜쥔 매의 시체도 검게 물든다.
금속 이온을 매의 시체로 밀어 넣는 것이다.
죽은 매와 내 몸이 하나로 연결되며 눈앞으로 문자열들이 어지럽게 흐른다.
- 산동에서 사라진 응 시리즈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개체들입니다.
= 성혈문주의 정보는?
- 이 개체의 데이터에서는 딱히 없습니다.
= 견본이 들어왔으니 이제 놈들 통신을 훔칠 수 있겠지?
- 그쪽에서 통신 코드를 바꾸지 않으면 가능합니다만, 큰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나노 머신의 인공지능이 통신 코드를 바꿀 것이 뻔하다는 말. 그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 혹시 모르니 해봐.
그렇게 말하며 죽은 매들을 하나하나 손에 쥐어 농꾼이 데이터를 훑게 한다.
- 매들의 경로를 역추적해 놈들의 은신처를 찾았습니다.
그래, 뭐라도 하나 걸린다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