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화
산서행(05)
= 어디야?
내 물음에 바로 지도가 뜨며 위치가 표시된다. 대주 주도 동쪽의 산자락에 위치한 장원이다. 위치가 그러니 원래 계획대로 대주로 가면 된다.
“매들을 살피니 어떤가?”
상 노개가 물었다.
“가진 능력은 우리 매들과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매를 키울 때 쓰는 약재가 완전 다릅니다.”
틀린 말은 아니다. 기본 바탕은 같은 응 시리즈. 하지만 응 시리즈는 공방에서 생산된 나노 머신으로 만들어진 것이고, 이건 SS-11의 일부로 만들어진 것이니 말이다.
사실대로 말해 봐야 돌아올 것은 괜한 의심밖에 없기에, 그렇게 대충 둘러댄다.
“놈들의 은신처를 찾아냈습니다.”
“어디요?”
조주선이 살기로 가득 찬 눈을 번뜩이며 물었다.
“대주 쪽이니 일단 대주로 향하지요.”
다시 질주가 시작된다.
등평도수의 경공으로 물길을 넘고 계속 관도를 따라 달린다.
오십 리에 한 번씩 걸음을 멈추고 호흡을 돌리니, 삭주를 나선 지 한 시진도 되지 않아 대주 인근에 당도할 수 있었다.
***
“안의 상황은 어떤가?”
상 노개가 물었다.
“장원 안의 인원은 셋, 최하 초극 입니다.”
매를 통해 들어오는 정보를 읊어 준다.
“볼 것 있습니까? 그냥 들이치지요.”
대주에서 합류한 야검문주 노규장이 하는 소리다.
“천문위가 있을지도 모르니 신중해야 하지 않을까요?”
노규장의 아들이자 수확 대상자인 노익단의 말이다.
“지금 이 자리에 모인 전력을 봐라. 저들 중에 천문위가 있다 해도 능히 감당할 수 있다.”
그의 말대로 천문위 하나라면 감당할 만한 전력이 된다.
= 어때?
- 꿈틀이 데이터 조합 결과, 성혈문주와 황보숭은 확실히 아닙니다.
거기에 농꾼의 보장까지 있는 상황. 가만히 있을 이유가 없다.
“검야문주님 말씀대로 들이치지요.”
내 말에 일행들이 조용히 몸을 움직였다.
적지 않은 장원이지만 안의 인원은 셋뿐. 그것도 한자리에 모여 있으니 거칠 것이 없다.
담을 넘기 무섭게 놈들이 모여 있는 건물로 빠르게 달려간다.
- 리퍼, 놈들이 눈치 챘습니다.
쾅!
남궁화청이 벽을 박살내며 건물 안으로 뛰어들고, 나도 곧 그 뒤를 따랐다.
하지만 건물 안에 놈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 리퍼. 지하 통로입니다.
농꾼의 보고와 함께 바닥 중앙이 붉게 빛나니 바로 그쪽을 향해 발을 구른다.
쿵!
충격과 동시에 바닥을 덮고 있는 포석이 뒤집히며 사람 하나는 능히 삼킬 구멍이 드러났다. 수직 통로다.
꿈틀이 하나를 던져 넣으니 바로 결과가 나온다.
- 깊이 이 장. 별다른 함정은 관측되지 않습니다만, 성혈문의 행동 패턴 상 통로 붕괴를 시도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쫓아 들어가면 통로를 무너뜨릴 가능성이 큽니다.”
“그때는 각주께서 어떻게든 해주시겠지요.”
내 말에 남궁화청이 히죽 웃으며 구멍으로 몸을 던졌다. 땅속에 파묻혀도 산동 때처럼 내가 해결해줄 것이라 믿는다는 것이다.
남궁화청이 그렇게 거침없이 움직이자 바로 상 노개가 뒤따른다.
그러니 나도 따라갈 수밖에 없다.
내 뒤를 오대파의 속가 다섯이 뒤따르고 정안각의 대원 여섯이 쫓아온다.
길게 이어진 통로가 앞으로 뻗어 있었다. 그리고 앞쪽에서 느껴지는 세 개의 인기척.
일행들은 남궁화청과 상 노개를 앞세워 그 인기척을 쫓아 달렸다.
백 장 정도 내달릴 때마다 통로가 휙휙 꺾인다.
- 리퍼, 추종향으로 의심되는 물질이 검출되었습니다.
농꾼의 보고가 귀를 울렸다. 추종향을 통로 바닥에 깔아 놓은 탓에 그 위를 달리면 자연스레 묻게 된듯하다.
하지만 지금 신경 쓸 것은 그게 아니다. 추종향이야 나가서 씻어내면 그만.
앞서가는 놈들을 잡기 위해 열심히 달린다. 열 번 정도 방향을 꺾자 통로가 끝났다.
그리고 나온 것은 거대한 동공이다. 무인 수십이 격검을 벌여도 충분한 넓이의 공간.
“각주, 이거 아무래도 산동에서 봤던 그 구조 같습니다만?”
남궁화청이 동공의 끝을 가리키며 말했다. 반대쪽에 세 개의 통로가 뚫려 있었다.
이것들은 시간 있을 때 땅만 팠나? 이런 구조물을 비밀리에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텐데….
= 어느 쪽이야?
- 좌측, 하지만 중앙 통로 쪽으로 다수의 인원이 접근 중입니다.
“대기, 누가 접근 중입니다.”
지금 당장 셋을 쫓아 좌측 통로로 몰려갔다가는 중앙 통로로 나온 인원들에게 뒤를 잡힐 우려가 있었다.
통로는 좁아서 사람 둘 간신히 내달릴 폭. 그런 곳에서 싸우는 것보다 넓은 공간에서 싸우는 것이 유리하다.
일행들이 각자의 무기를 움켜쥐고 싸울 태세를 갖추자, 중앙 통로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적이다!”
“쳐!”
우리를 보기 무섭게 노성을 내지르며 스물에 달하는 인원이 달려든다.
놈들의 무기에서 넘실거리는 강기. 성혈문 놈들답게 전원 초극이다.
“끼요옷!”
“까앗!”
“오로롤!”
정안각의 인원들이 합창을 내지르며 그들을 맞이한다.
삼인 일조의 두 덩어리가 된 정안각의 여섯이 거암처럼 스물의 진격을 막아섰다.
콰카카카카쾅!
힘과 힘의 격돌.
놈들 중 셋이 호거술의 합창이 만들어내는 거력에 의해 뒤로 튕겨 났다.
“합공이다!”
“우리에게 맡겨!”
경고성과 그 뒤를 잇는 누군가의 외침에 아홉이 정안각 여섯의 머리를 타 넘었다.
그리고 남은 여덟이 셋, 다섯의 두 덩어리가 되어 정안각 여섯과 맞붙는다.
콰르릉!
그렇게 넘어온 아홉을 향해 남궁화청의 검이 섬전을 뿌리고.
콰콰쾅!
상 노개의 누런 두 손이 요동치는 구렁이를 그린다.
천문위의 고수와 천문위를 앞둔 고수의 공격에 아홉의 인영은 분분히 흩어진다.
좌측으로 물러나는 셋을 향해 오대파의 속가 다섯이 달려든다.
그리고 나도 홀로 떨어진 한 놈을 노리고 몸을 날렸다.
- SS-07의 숙주입니다.
수확 대상자, 그것도 서른 중반이나 되는 놈이다.
“어린놈이, 나를 우습게 봐?”
홀로 덮쳐드는 나를 향해 놈이 노성을 내지르며 검을 휘두른다.
쾅!
칼과 검이 부딪치며 느껴지는 충격이 가볍다.
당연하다. 천도공으로 공력을 증폭한 상태다. 거기에 천문위의 전투 감각이 내 몸을 지배하고 있다.
콰자자작!
순식간에 그려지는 벽력이 놈의 검이 그리는 모든 변화를 찍어 누른다.
캉, 카캉, 쾅!
놈이 연신 뒷걸음질 치며 죽을상을 한다.
“젠장!”
힘은 물론, 기교에서조차 밀린 놈의 입에서 다급성이 튀어 나온다. 그걸 들으며 나는 즐겁게 칼을 휘두른다.
놈은 약하지 않다. 천도공을 익히기 전이라면, 천문위의 전투 감각을 사용할 수 없었다면 방수까지 동원해 싸워야 할 상대다.
그런 상대를 가볍게 상대하고 있다는 사실이 입가에 절로 미소가 서리게 한다.
등 뒤에서 덮쳐드는 압력.
칼을 등 뒤로 돌려 휘두른다.
쾅!
격한 굉음이 공간을 울리지만, 인상을 쓰고 밀려나는 것은 습격자다.
호거술의 합창에 밀려났던 셋 중 하나.
쾅!
격한 도격으로 상대를 뒤로 밀어내며 몸을 돌린다.
쿵!
발 구름 한 번에 습격자와 나의 거리가 사라졌다. 습격자가 급히 자세를 잡고 검을 휘두르지만 내 칼은 내 의도에 어김없는 단호한 궤적을 그렸다.
“컥!”
억눌린 비명과 함께 피를 뿌리며 습격자가 허물어진다.
“네놈!”
노성과 함께 검강이 들이쳤지만, 천도공의 공력을 압도하지 못하는 위력에 천문위의 전투 감각이 주는 예측 안에서 움직이는 검이다.
단호하게 휘둘러지는 세 번의 칼질에 검강이 그리는 궤적이 형편없이 뭉개지고 네 번째 칼질에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 SS-07의 수확을 시작합니다.
= 죽지는 않았지?
- 예, 리퍼. SS-07의 치료 기능이 활성화 된 상태입니다.
놈을 살려 두는 이유는 써먹을 때가 있어서다.
성혈문의 성혈은 나노 머신을 이야기하는 것. 고로 포섭된 수확 대상자는 성혈문에서 낮은 지위는 아닐 터.
SS-07을 해킹해서 추적 감시 프로그램을 깔고 놓치는 척 놓아 주면 간첩 아닌 간첩으로 써먹을 수 있을 듯해서다.
= 수확 데이터는 공방에서 처리해.
- 리퍼, 지금 위치가 지하인지라 공방에서 데이터를 수신하기 어렵습니다.
싸움터 한복판에서 호신강기를 해제할 수는 없다.
주위를 훑어보니 다행스레 놈들이 나를 신경 쓸 여지가 없어 보인다.
정안각의 여섯은 호거술의 합창으로 여덟을 몰아붙이고 있었고, 오대파의 속가 다섯도 수확 대상자가 둘이나 있는 탓에 셋을 상대로 밀리지 않는다.
거기에 남궁화청과 상 노개 쪽은 이미 셋을 쓰러트리고 남은 넷을 정리하고 있는 분위기.
그래서 쓰러진 녀석을 끌고 동공의 격전장에서 슬그머니 멀어져서 호흡을 골랐다.
“흐으, 하.”
호신강기가 억제되니 데이터가 밀려든다. 농꾼이 대강 기억 데이터를 훑었을 시간을 가늠해 손가락을 움직인다.
= 뭐 건진 게 있어?
- 리퍼. 이들은 성혈문도가 아닙니다! 녹림도입니다!
“뭐?”
- 성혈문으로 전향한 자가 아닙니다. 총채주를 습격한 암살자를 쫓아 동공에 들어선 자들입니다.
“젠장!”
성혈문의 수작에 당한 것이다.
녹림도들이 다짜고짜 덤빈 이유도 뻔하다. 암살자의 은신처로 알고 들이닥쳤는데 만만치 않아 보이는 고수 십수 명이 싸울 준비를 하고 있으니 함정으로 볼 수밖에 없다.
= 죽은 사람은?
- 아직은 없습니다.
치료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 사람이 몇 있지만, 당장 죽은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수습해 볼 수 있다.
“죽이지 말고 제압해요!”
동공이 울리라 목청을 돋우며 몸을 날렸다. 오대파 속가 다섯과 녹림 셋의 격전장에 도착하기 무섭게 양손을 휘두른다.
콰자작, 파작!
검게 물든 양손에서 쏟아진 전격이 녹림도 셋을 휩쓸었다.
“타합!”
조주선이 허물어지는 그들을 향해 검을 휘두르니 냅다 비수를 던질 수밖에 없다.
카캉!
내가 던진 비수를 쳐낸 조주선이 살기 어린 눈으로 나를 노려본다.
“정안각주, 이건 무슨 짓이오?”
여차하면 나에게도 검을 휘두르겠다는 표정. 아니 조주선 뿐만이 아니다. 다른 넷도 같은 표정이다.
하긴 조율후는 조주선의 아들이자 다른 넷의 사질이요 사형제니 그 원한을 갚으려는 것은 이해가 간다.
“이 자들 성혈문이 아닙니다! 녹림도입니다.”
“이들이 녹림도인 것은 알고 있었네.”
“하아.”
오대파 속가나 태행산 녹림이나 같은 산서에서 부대끼고 있는 사람들이니 얼굴 아는 것은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
그래도 알아봤으면 다짜고짜 무기를 휘두를 게 아니라 무슨 말이라도 좀 했어야지!
“녹림이 성혈문과 손을 잡은 것이 아니라면 왜 이곳에 있는 건가?”
“총채주 암살 시도 때문인 것이 뻔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조주선을 비롯한 오대파의 다섯을 진정시키고 다른 싸움판을 향해 발을 옮겼다.
상 노개와 남궁화청이 살수를 배제한 탓에 간신히 버티고 있던 넷이다.
콰자작, 파작!
배후에서 쏟아진 내 전격에 쓰러질 수밖에 없다.
셋과 다섯이 합공으로 뭉쳐 정안각 셋, 셋 여섯의 합창을 버티고 있던 자들도 마찬가지.
나는 물론이오, 남궁화청과 상 노개까지 끼어드니 버틸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게 녹림도들을 전원 제압하기 무섭게 상처를 입은 자들을 치료했다.
그렇게 한참 치료를 하고 있으니 SS-07의 숙주, 투두투검(偸頭鬪劍)이 정신을 차렸다.
“가증스러운 것들 도대체 뭘 하려는 수작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