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화
섬서행(07)
천문위가 둘. 그것도 성혈문주와 황보숭 같은 풋풋한 천문위가 아니라 흑도에서 묵을 대로 묵은 천문위 둘이다.
어째 정안각 인원들로는 살짝 불안한 느낌.
= 황학약에게 연락해.
그래서 황학약을 끌어들일 생각이다. 천강을 엿보는 무공 유심조를 전한 인연도 있으니 내가 도와달라고 하면 흔쾌히 나서 줄 것이다.
- 연락이 안 됩니다.
= 무슨 소리야? 황학약에게 통신 벌레 붙여놨잖아?
유심조 데이터를 전할 때 언제든 연락할 수 있게 황학약 체내의 나노 머신에 음파 통신 체계를 설치했었다.
- 폐관에 들어간 상태입니다. 아무래도 유심조를 통해 천강으로 가는 단서를 잡은 듯합니다.
황학약은 수련에 전념하고 있고, 체내의 나노 머신은 그런 황학약의 수련을 최우선으로 생각해 이쪽의 통신 요청을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호적 접촉을 통해 수확한 경우이기에 이쪽 마음대로 나노 머신을 통제할 수 없다.
젠장, 그렇다고 멸왜단주인 진우탁에게 같이 산서로 가자 청할 수도 없다.
어쨌든 진우탁은 멸왜단주로 절강 무림의 거두. 그런 진우탁이 산서로 행차하면 무림의 시선이 쏠릴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알 만한 사람만 아는 성혈문의 존재가 전 무림에 드러날 수 있다.
성혈문의 능력이 전 무림에 드러나면 흑도 사파의 거두들이 성혈문에게 손을 내밀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일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지게 된다.
= 개방 상 노개에게 연락해.
- 예, 리퍼.
일단 상 노개를 통해 개방의 손을 빌릴 수 있는지 알아봐야겠다.
- 자네 지금 어딘가?
눈앞에 상 노개의 영상이 떴다.
“남직례 양주입니다. 상 노개는 지금 형산에 계시군요.”
통신 벌레가 붙어 있으니 바로 그 위치를 알 수 있다.
- 남직례 양주와 호광 형산의 거리가 얼만데…. 하아, 자네 능력은 진짜 적응이 안 돼.
상 노개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잠시 짓고 말을 이었다.
- 그나저나 이렇게 연락을 했다는 것은 육가장, 강남 흑도맹의 일은 해결이 되었다는 말이겠지?
“해결된 것이 아니라 뒤로 밀렸습니다. 성혈문의 왜놈이 육가장의 두 천문위와 함께 섬서 서안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 육가장의 두 천문위라면 육진성과 육진정, 그 두 노괴를 말하는 건가?
“예. 성혈을 가진 화산 속가 하나가 벌써 희생되었고요.”
SX-23의 숙주가 화산 속가제자였다.
- 산서에서처럼 피를 모두 빨렸다는 건가?
미이라는 아직 확인 못 했지만 피를 빠는 광경까지는 목격하지 않았나.
“예, 성혈을 강탈했으니 육가의 두 천문위에게 부여할 가능성이 큽니다.”
- 육가장의 두 노괴가 성혈문도가 되어 매를 만들 수 있게 되면 보통 일이 아니야! 지금도 남직례 흑도들을 끌어안은 상태인데, 거기에 매까지 더해지면 최악의 경우 파양호 수채 놈들까지 끌어안게 될지도 모르네.
육가장이, 강남 흑도맹이 정의맹과 시비를 피하고 파양호로 세력을 확장한다? 파양호를 끌어안지 못해도 매를 활용한다면 동맹 맺기는 쉽다.
그렇게 매를 선물해 파양호 수채를 끌어들이면 동정호 수채 역시 끌어들일 수 있게 된다.
그렇게 장강 수적들과 동맹을 맺으면 장강의 물길에 닿는 흑도 세력을 모조리 끌어들이는 것은 시간문제.
젠장, 보통 큰일이 아니구나!
- 서안으로 가면 되는 건가?
상 노개가 물었다.
“예, 그런데 상 노개. 개방에서 천문위를 지원해 줄 수는 없는 겁니까?”
지금까지 불안감을 없애기 위해 천문위가 필요했다면, 이제는 놈들을 확실히 치우기 위해 천문위가 필요했다.
- 천문위를? 하긴 육가장의 두 노괴를 상대하려면 아무래도 나나 정안각만으로는 힘들지.
상 노개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한다.
- 흠, 개방의 천문위 중 지금 손이 비는 놈이….
중원 천지 안 끼는 곳이 없는 개방이다. 그런 탓에 천문위 전력도 여타 다른 세력처럼 총타에서 무게를 잡고 있기보다는 싸돌아다니며 뭔가를 하기 일쑤다.
- 마침 호광에 유덕이 놈이 있으니 녀석을 끌고 가지.
“개방 십대 고수인 창걸개 조유덕, 조 선배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수확 대상자라 개방도들 수확할 때 한 번 본 적 있는 천문위다.
- 조 선배는 무슨, 조 걸개지.
내 말에 상 노개가 한 마디 했다. 상 노개의 사질뻘이라 했던가?
- 뭐 지금 하는 일이 있기는 한데, 그 녀석 대신 초극 몇 밀어 넣으면 빼내 올 수 있을 것 같아.
“그럼, 부탁드리지요.”
- 산서에서 보세.
“아.”
통신을 끊기 전에 갑자기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혹시 영약을 구할 수 있습니까?
- 영약?
내 말에 상 노개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소환단급이면 됩니다.“
- 소환단급이면 도가의 소청단이나 본방의 개구단(皆救團) 정도면 되겠군. 얼마나 필요한가?
내 말에 잠시 머리를 굴린 상 노개가 물었다.
”가능한 한 많이 필요합니다.“
묻기 무섭게 답했다.
- 이번 일에 필요한 건가?
”예.“
내 급한 반응에 상 노개가 묻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 서안으로 향하는 경로를 잡을 때 개봉 총타를 거치도록 잡게. 개구단 스물 정도는 자네가 개봉에서 받을 수 있도록 조치하지.
스물이면 충분하려나?
”영약의 대가로….“
- 내가 알아서 하지.
상 노개가 내 말을 끊으며 말을 이었다.
- 산서에서 자네가 내어 준 영약 덕에 살아남은 나 아닌가. 그 약효가 아직 내 몸에 남아 있는데 내가 자네에게 약값을 달라 할 수 없지. 서안으로 갈 때 내가 영약을 몇 개 더 챙겨 갈 테니 그것까지 해서 자네가 내어 준 영약과 갈음하지.
마*카*투 델타 값으로 다수의 영약을 챙기게 됐다. 역시 개방 고위층쯤 되면 돈이 없는 게 아니라니깐.
“감사합니다.”
- 감사를 표할 쪽은 나지. 서안에서 보세. 유덕이 끌고 가려면 사나흘 걸릴 걸세.
“예.”
상 노개와 통신을 끝냈다.
서안까지 삼천 리. 지치지 않는 정안각의 말들이라도 이틀은 달려야 한다.
이미 수확 대상자 하나를 사냥한 놈들이다. 수확 대상자의 특징을 아는 놈들이니 이틀이면 수확 대상자를 하나 더 찾아내 사냥하고 몸을 숨길지도 모른다.
= 응3, 4, 5를 서안으로 보내서 놈들을 찾아.
- 예, 리퍼.
그래서 응 시리즈 셋을 미리 서안으로 보낸다.
놈들이 응 시리즈의 존재를 눈치 채고 짝퉁 매를 만들어 잡으려 해도 매 사냥을 위한 무기를 장비한 세 마리라 알아서 대응할 수 있다.
양주부에서 북상해, 봉양부를 지나 하남성으로 들어선다. 하남에서는 황하의 물길을 따라 달리는 길을 택했다.
개방 총타에 들리기 위해 개봉으로 향하는데, 개봉 십 리쯤 전에 한 떼의 거지들이 관도 좌우로 늘어서 있는 것이 보였다.
딱 봐도 무공을 익힌 거지들, 개방도들이다. 그들은 우리를 보기 무섭게 관도를 막아섰다.
말의 속도를 늦출 수밖에 없다.
“정의맹의 정안각 분들이오?”
우리가 가까이 오자 개방도 중 한 명이 물었다.
“정안각을 맡은 이도연입니다.”
내 말에 개방도가 나를 빠르게 훑었다.
“벽력응주 본인이 맞구려. 상 노개께서 전하라 한 물건이 있소.”
개방도가 호리병 하나를 건넸다. 호리병 마개를 열어 보니 엄지손가락 한 마디만한 단약들이 그득했다. 개방의 영약 개구단이다. 그런데 스물보다 좀 더 많다.
“상 노개와 함께 위험한 놈들을 상대한다는 말을 듣고 총타에서 몇 개 더 넣었소.”
내 표정을 읽은 듯 개방도가 개구단이 많은 이유를 설명한다.
“총타에 감사 인사라도….”
“그럴 것 없소이다. 상당히 바쁘지 않소. 우리가 여기 괜히 나와 있었겠소.”
급박한 내 사정을 헤아려 나와 있는 것이다. 개방 총타에 들렀다가는 시간을 잡아먹을 가능성이 크니 말이다.
“개방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빨리 가보시오.”
그렇게 개봉을 지나쳤다.
- 리퍼, 셋을 찾았습니다.
개봉을 지나 관도를 달리고 있자니 농꾼의 말과 함께 놈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제법 커다란 장원으로 스며드는 것이 아무래도 다음 희생양을 찾은 듯했다.
= 저긴 어디지?
- 장안표국입니다.
= 장안표국?
어디서 들어본 듯한 표국인데?
- SX-19 숙주의 집안입니다.
SX-19 숙주라면 화산의 철매화다. 미면나찰을 처리하기 위해 잠복할 때 우연히 부딪쳐 수확한 상대다.
= 놈들이 노리는 게 SX-19란 소리군.
- SX-17도 같이 있습니다.
SX-17 숙주는 공동의 팔마검객, 아니 공동 파문제자 주취검이다.
= 둘에게 연락할 수 있지?
- 예, 리퍼.
적대적 수확이라 자동 수확 프로그램을 설치하기 위해 농꾼이 해킹했던 상대다. 황학약의 경우처럼 이쪽의 통신을 거부할 수 없다.
거기에 그 정보가 숙주의 생명과 관련된 일이다. 적극 협조할 수밖에 없다.
= 당장 도망치라 해!
농꾼이 SX-17과 19에게 전한 정보가 직감의 형태로 숙주를 후려치니 두 명이 바로 반응했다.
거처를 뛰쳐나와 농꾼이 인도하는 대로 조용히 몸을 피한다.
둘이 조용히 장안표국을 벗어날 때쯤 세 명이 철매화의 거처에 스며들었다.
허탕을 치고 나온 셋은 이번에는 주취검의 처소로 들어선다. 당연히 허탕을 치고 나왔다.
그리고 마풍단주를 비롯한 셋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러고는 급박하게 몸을 움직인다. 상공의 응 시리즈들을 눈치 챈 것이다.
= 저 녀석들 어떻게 알아챈 거야?
저들은 천문위와 초극 고수로 호신강기가 몸을 뒤덮고 있다.
응 시리즈 셋이 전파 신호를 발하고 있다 해도 호신강기에 차단당해 체내의 나노 머신이 전파 신호를 알아챌 수 없어야 하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말이다.
= 짝퉁 매가 있는 것도 아닌데?
- 이번 육가장 사태로 꿈틀이, 통신 벌레, 서생원 시리즈의 샘플이 놈들에게 넘어갔을 가능성이 큽니다. 아무래도 서생원 시리즈를 만들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 서생원 시리즈를 만들었다면 전파 신호가…. 전파 발신을 안 하고 수신 기능만 켜놓은 거군.
짝퉁 서생원이 전파 신호를 잡으면 통신으로 알리는 것이 아니라, 그냥 몸짓으로 알리게 하면 되는 것이다.
= 응 시리즈 하나씩 붙여서 놈들 계속 추적해.
- 예, 리퍼.
= 근데 놈들이 서생원 시리즈를 안테나 대용으로 쓴다면 철매화와 주취검, 그들을 추적할 수 있지 않나?
철매화와 주취검에 통신 벌레가 붙어 있으니 통신 벌레의 전파를 추적할 수도 있는 것이다.
- 가능합니다.
= 그럼, 철매화와 주취검을 서안에서 빼내 화산 본산으로 보내.
세 놈이 둘을 추적한다면 화산 본산의 힘을 이용해 저 셋을 정리할 수도 있는 것이다.
아니 헛된 생각이다. 왜놈은 내 손에서 몇 번이고 빠져나갈 정도로 영악한 놈이고, 육가장의 둘은 흑도에서 평생을 굴러먹은 노괴들.
이런 뻔한 수에 걸려들지 않을 터. 그냥 철매화와 주취검을 피난시킨 거로 만족해야지.
그런데 화산 본산이 공동 파문제자를 화산에 들일 것인가 그것도 문제다.
주취검이 화산 본산에 들어가지 못할 가능성에 저 셋이 그를 쫓을 수도 있다. 그렇게 된다면 내가 그걸 활용할 수도 있는데….
뭐, 그건 왜놈과 두 노괴의 반응을 보고 결정하면 되는 일.
남은 천오백 리 길이나 열심히 달려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