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화
섬서행(09)
왜놈과 육가장의 두 노괴에게 각기 붙여 놓았던 응 시리즈가 짝퉁 매들을 향해 날갯짓한다.
짝퉁 매가 응 시리즈를 잡을 방법은 자폭뿐인데, 반면 응 시리즈는 매 사냥을 위한 무기가 장착되어 있다. 그러니 무기의 사정거리 안에 짝퉁 매를 끌어들이기만 하면 끝.
하지만 사정거리 안에 들이는 시간이 문제다.
정안각 인원들의 위치 정보가 짝퉁 매들을 통해 실시간으로 두 노괴에게 전달되는 중. 그러니 정안각 인원들이 두 노괴의 직접 시야에 들어가기 전에 짝퉁 매들을 처리해 정보를 끊고 피신시켜야 했다.
그런데 망할 짝퉁 매들이 응 시리즈의 추격에 그저 부지런히 거리만 벌리고 있으니….
- 반 각 안에 카피 매들을 사냥하기는 힘들 듯합니다.
= 인원 분산시켜!
쫓는 자는 둘, 도망자는 여섯이니 최소 둘은 잡힌다고 봐야 했다.
= 통신 벌레와 매 이탈 중지. 통신 벌레 전파 발신 제한하고, 매는 해당 인원과 거리를 두고 계속 주위 상황 전송해.
잠시 후 한 덩어리로 내달리던 정안각 인원들이 각기 방향으로 흩어져 내달리는 모습이 보였다.
이 자리에서 더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 육가장의 두 노괴와 정안각 인원들에게는 신경을 껐다.
= 마원은?
- 리퍼와 백 장 거리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 같이 들이칠 수 있게 준비해.
- 예, 리퍼.
전력으로 내달리는 남궁화청의 등 뒤에 업혀 분진 폭발로 열심히 가속을 돕는다,
그렇게 내달리기를 반 각.
“젠장!”
“하아!”
나와 남궁화청의 입에서 동시에 탄식이 흘러나왔다. 창 걸개가 기련신마에게 제압당한 것이다.
제압당한 창 걸개를 다섯 검객에게 던져 준 기련신마가 초극 고수 여섯에게 둘러싸인 상 노개에게 향했다.
시커먼 강기로 물든 기련신마의 양손이 움직일 때마다 누런 강기로 그려지는 구렁이가 사그라진다.
그리고 몇 초 만에 상 노개도 제압당했다.
팔다리를 뭉개고 수하들에게 던지는 꼴이 죽일 생각이 없는 듯했다.
수하들이 다시 뼈를 분지르는 꼴이 확실히 성혈의 특징, 나노 머신의 치료 기능에 대해 아는 모양새다.
“각주 어쩌실 셈이오?”
남궁화청이 물었다. 여전히 내달리는 발은 멈추지 않은 상태.
“바뀐 것은 없습니다.”
상 노개와 조유덕, 둘은 아직 죽지 않았다. 상처가 심하지만 나노 머신의 치료 기능이라면 일 각 안에 회복될 상처.
기련신마와 그 일당들이 둘의 머리를 단매에 박살내지 않는 꼴이 뻔했다. 저 둘의 나노 머신을 강탈할 속셈인 것이다.
그리고 바로 흡혈을 시작하지 않는 꼴이 저들 중에는 해킹이 가능할 정도의 나노 머신 보유자가 없다는 말이다.
“각주와 나, 우리 둘만으로 기련신마와 그 수하들을 상대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시오?”
기련신마의 일당들은 천문위 하나와 천문위를 잡아 둘 정도의 합공을 쓰는 다섯, 천문위를 앞둔 고수를 억누를 여섯이다.
“기련신마만 부각주께서 붙들어 주시면 됩니다.”
“각주의 무공이 기괴하여 다수의 초극 고수들을 상대함에 유리함은 알고 있소. 허나, 저들이 우리 생각대로 움직여 준다는 보장이 없지 않소.”
남궁화청의 걱정은 뻔하다. 기련신마가 나를 상대하고 합공을 쓰는 다섯, 여섯이 자신에게 들러붙는 경우를 생각하는 것이다.
“부각주께서는 기련신마를 상대하는 것만 생각하시면 됩니다.”
“믿겠소!”
남궁화청의 내딛는 발걸음에 힘이 더해진다.
= 매 사냥은?
- 한 마리 성공했습니다.
육가장의 노괴들에게 붙은 매는 두 마리다. 한 마리가 남았다는 말.
= 피해는?
- 양연곤과 호장우가 잡혔습니다.
젠장, 최악의 경우다. 잡혀도 어떻게 그렇게 잡혀!
둘은 정안각 합공의 중추들. 남은 넷으로 합공을 펼치기 어렵다.
- 육가장의 둘은 그 둘을 사로잡고 추적을 포기, 이쪽으로 이동 중입니다.
= 조우까지 얼마나 걸려?
- 기련신마 일당과는 450초 내외, 육가장의 둘과는 1,800초 내외입니다.
회복에 대강 900초쯤 걸릴 테니 450초, 반 각 안에 상 노개와 조유덕을 빼돌리지 못하면 내빼야 한다는 말이다.
“양연곤과 호장우가 붙잡혔습니다.”
“하필이면, 그 둘을!”
남궁화청이 인상을 쓴다.
“그리고 두 노괴가 이쪽으로 달려오는 중입니다.”
“하아.”
“그러니, 반 각 안에 개방의 두 사람을 구해서 빠져나가야 합니다.”
천문위 셋을 상대해야 하는 뭐 같은 경우는 피해야 했다.
= 기련신마 일당과의 거리 카운트 부탁해.
내 명에 눈앞으로 거리 표시가 떠오른다. 초당 백이 넘는 숫자가 팍팍 깎여 나간다.
응 시리즈의 시야로 기련신마 일당들의 움직임을 살핀다. 그들은 사로잡은 개방 고수 둘을 동굴 안으로 밀어 넣었다. 상 노개가 파묻혀 있던 동굴이다.
여섯 초극 중 둘이 둘과 함께 동굴 안으로 들어가고, 남은 넷이 동굴 앞을 지킨다.
기련신마와 오십 대 다섯은 동굴 근처에서 자리를 잡고 앉는다.
꼴을 보니 육가장의 노괴들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모양.
상황이 아주 유리하게 변했다.
“부각주, 바로 동굴로 들어가 두 사람부터 확보하지요.”
시야를 공유하며 계획이 변경됨을 알렸다.
= 마원은 대기시켜. 빠져나올 때 쓴다.
- 예, 리퍼.
“그러지요. 동굴 입구를 무너뜨리고 땅을 파는 것도 괜찮을 듯합니다.”
남궁화청이 히죽 웃는다.
거리는 3km 남짓. 이십 몇 초 뒤면 도착이다. 품에서 개구단을 꺼내 세 알을 입에 머금는다.
거리가 1,000m가 되는 순간.
우웅!
단전에 스피커를 켜고 천문위의 감각을 적용한다.
500m.
황학약의 데이터에 의거한 개량 유심조를 발휘. 그 부담이 전신을 휘감는 와중에도 날카롭게 벼린 감각으로 놈들을 잡아낸다.
등에 업힌 내가 무슨 짓을 하든 남궁화청은 달리기를 멈추지 않는다. 놈들과의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진다.
우리가 달려드는 것을 놈들이 눈치 채고 움직인다. 동굴 앞으로 놈들이 뭉친다.
마음속으로 하나의 궤적을 그린다. 기련신마를 베어내는 궤적을 그린다. 중간에 세 놈을 지나 기련신마에 닿는 궤적. 그렇게 궤적이 완성되는 순간, 황학약의 감각이 외쳤다.
이건 실패라고, 성공하지 못할뿐더러 내가 남궁화청의 등에서 굴러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바로 궤적을 바꾼다. 놈들을 죽이기보다는 전원을 밀어내는 궤적.
남궁화청이 나를 업은 채로 그들을 덮쳐 간다.
콰르르릉!
십삼섬전뢰의 강기가 뿌려진다.
콰콰콰쾅!
그들이 강기를 막아내는 순간. 내 마음속에 그려진 궤적이 현실이 되어 그들을 덮쳐 갔다.
카카카카카카캉!
굉음과 함께 그들이 사방으로 튕겨 나고, 우리 둘은 그들을 뚫고 동굴 안으로 도착했다.
유심조의 탈력감이 전신을 덮치는 순간, 입안의 개구단 하나를 씹어 삼킨다.
우웅!
스피커의 공명음이 뱃속으로 들어가는 개구단을 두드리니, 개방 비전 영약의 기운이 이에 공명하여 터져 나온다.
터져 나온 기운이 천도공의 울림을 타고 힘 빠진 사지백해로 재빠르게 스며들고, 남궁화청의 등에서 내려온 나는 언제 힘이 빠졌냐는 듯 두 발로 굳건히 동굴 안에 선다.
콰콰쾅!
도강으로 동굴 입구를 후려쳐 무너뜨린다. 그리고 뒤로 돌아 동굴 안의 상황을 확인하는데….
조유덕을 확보한 남궁화청과 상 노개를 앞세워 대치하고 있는 인영 셋이 보였다.
대치?
상대는 셋, 합공 가능한 둘에 하나다. 그 정도면 단숨에 제압하지 못해도 몰아붙여서 상 노개까지 확보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상 노개의 목을 움켜쥐고 있는 게 초극 여섯 중 하나도 아니요, 오십 대 다섯 중 하나도 아니다.
씨발! 기련신마다.
유심조에 밀려 우리랑 같이 동굴 안으로 굴러들어온 놈이 하나 있었는데, 하필 그놈이 기련신마냐고!
“나는 됐으니 유덕이….”
빠각!
상 노개가 입을 열자 기련신마가 목을 부러트려 그 입을 닫게 했다.
“네놈들은 누군데, 본좌와 개방의 일에 끼어드느냐?”
기련신마가 눈을 부라리며 외쳤다. 동굴 안이 쩡쩡 울리는 것이 입구가 무너져 막혔다 해도 밖에서 들릴 목청이다.
남궁화청은 검을 굳게 잡고 기련신마를 견제하는 데 여념이 없기에 내가 대신 나선다.
“성혈문 놈들과 손을 잡았으면서 뭘 모른 척하시나?”
나도 목청을 힘껏 돋워 대꾸해 준다.
성혈에 대해 모른다면 목뼈가 부러져서 무력화된 상대를 저렇게 계속 잡고 있을 리 없지 않은가.
이렇게 되면 상 노개는 다음을 노릴 수밖에 없다. 아니 다음이 있을까?
육가장의 두 노괴 중 하나는 분명 SX-23을 품었다. 시간이 충분하다면 나노 머신 강탈을 위한 흡혈을 할 게 뻔하다.
마*카*투 델타는 물론, 호장우와 양연곤의 나노 머신까지 이미 흡혈 해킹에 대한 조처가 된 개체. 나노 머신 강탈도 안 되는 개체를 살려 둘 가능성은 낮다.
젠장, 그렇다면 멀찍이 물러나는 게 아니라 주위를 맴돌며 신경을 긁는 수밖에 없다. 나노 머신을 강탈하기 위한 흡혈 시간을 주지 않는 수밖에.
하지만 그것도 여기서 조유덕을 무사히 빼냈을 때 이야기다. 일단 조유덕을 빼내는 데 집중한다.
“빠져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고작 둘이서?”
기련신마가 다시 목청을 돋워 말했다. 딱 봐도 자신에게 시선을 집중시켜서 시간을 끌려는 수작이다.
= 바깥 상황은?
- 무너진 동굴 입구 앞에 아홉이 포진한 상태입니다.
대답과 동시에 화면이 뜬다. 다섯이 막힌 동굴과 거리를 두고 있다. 동굴이 뚫리면 바로 뛰어들 자세다.
그리고 넷은 무너진 동굴 앞에서 바위 무더기를 살피며 서로 대화를 나누는 듯하다.
대화 내용은 들리지 않는다. 안에 있는 우리를 의식한 듯 전음으로 대화하는 듯하다.
하지만 분위기가 뻔하다. 동굴 안의 상황이나 적아의 위치는 기련신마와 나의 힘껏 돋은 목청으로 파악했을 터.
저 넷이 바위를 한 번에 날리면 우리 앞의 기련신마가 호응하고 뒤의 다섯이 달려들어 앞뒤로 두들기겠다는 속셈.
그대로 당해 줄 수는 없지. 아니 어찌 보면 우리에게 기회일지도.
일단 조유덕부터 챙긴다. 조유덕을 둘러업는다.
- 기련신마만 맡으시면 됩니다. 뒤에서 뭔 일이 일어나도 기련신마만 붙들어 주세요.
- 알겠네.
내 전음에 남궁화청이 답했다.
= 마원 준비해.
- 예, 리퍼.
우웅!
준비를 마치기 무섭게 일으킨 천도공을 따라 자연스레 연계된 개량 유심조의 효능이 내 몸을 휘감는다.
내 마음속으로 하나의 궤적을 확고히 그리니, 동굴 밖 네 명이 몸을 움직이는 것이 동굴 너머로 느껴진다.
쾅, 콰콰쾅!
굉음과 함께 막힌 동굴 입구가 터져 나간다.
= 지금!
내 명과 동시에 다섯의 힘을 휘감은 인영 하나가 뛰어든다.
그 하나를 향해 유심조가 온전히 발휘되니!
촤악!
사람 몸뚱이 하나가 바로 상하로 분리된다.
쾅, 콰쾅, 콰콰쾅!
동시에 좁은 동굴 속에서 굉음이 연달아 터지며 강기의 폭풍이 휘몰아친다.
남궁화천과 기련신마, 젊고 늙은 천문위 둘이 격돌한 것이다.
우웅!
천도공의 공능으로 개구단의 기운을 본신 공력 대용으로 사용한다. 그런 나를 향해 동굴을 터트렸던 넷이 이인일 조의 두 개 조가 되어 덮쳐든다.
오올!
내 손의 한 자루와 방수가 쥔 네 자루, 다섯 자루의 칼날이 섬광격의 광채를 뿜으며 그들 넷을 맞이한다.
쾅, 콰쾅, 콰콰쾅!
왜놈이 놈들의 눈에 무슨 수작을 부렸는지 놈들은 섬광격의 광휘에 두 눈 멀쩡히 뜨고 대응했다.
하지만 그뿐.
콰자작, 쫘자작!
뒤에서 덮쳐드는 압도적 전격에 사시나무 떨듯 전신을 떨며 허물어졌다.
대기하고 있던 마원이 뒤를 친 것이다.
다섯의 공력을 휘감은 하나가 유심조의 공격에 바로 두 동강난 이유가 그것이다.
하나에게 공력을 몰아주기 여념 없던 넷의 뒤통수를 마원이 전격으로 지져 버린 탓이다.
“노옴!”
콰콰쾅!
노성의 주인은 기련신마. 그리고 굉음과 함께 내 옆으로 튕겨 나는 것은 남궁화청이다.
딱 봐도 인사불성 상태. 발로 냅다 남궁화청을 걷어 올려 마원에 올린다.
힐끗 고개를 돌리니 기련신마와 이인일 조의 초극 둘도 남궁화청을 단번에 정리하기 위해 제법 무리를 했는지 숨을 고르고 있다.
마원이 있다 해도 홀로 천문위를 상대하는 것은 미친 짓. 기련신마가 덤벼들기 전에 동굴 천장을 향해 칼을 뿌린다.
콰콰콰쾅!
무너지는 동굴을 뒤로 하며.
“달려!”
마원과 냅다 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