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화
섬서행(16)
어쨌든 상 노개는 당장 싸울 상태가 아니니 뒷덜미를 잡고 마원이 있는 쪽으로 던진다.
마원의 방수가 상 노개를 받아들고 안장 위에 걸쳐 놓는다.
그렇게 상 노개를 뒤로 빼돌리자 왜놈, 마풍단주가 왜도를 내게 겨누고 입을 연다.
“그 사이에 흑천맹의 수뇌들까지 도륙했다? 정말 방심할 수 없는 놈이군.”
왜놈의 옷이 멀쩡했다. 상 노개와 치고받고 싸우다가 상처를 입고 그걸 나노 머신으로 치료한 게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다치지 않았다는 소리다.
천문위의 데이터를 받고 영약을 퍼먹은 것이 분명했다.
젠장, 데이터를 받아 천문위가 된 황보숭의 경우가 있는데 왜놈이 데이터를 받았을 경우를 생각 못 했다니.
하지만 쫄 것 없다. 상 노개는 조건을 맞추면 나도 이길 수 있지 않나.
우웅!
천도공을 일으키며 바로 바닥을 박찬다. 순식간에 왜놈과의 거리를 줄이며 칼을 휘두른다.
- 29
쩌저저정!
천도공으로 증폭된 힘이 온전히 실린 도격이 순식간에 벽력의 그물을 그리니, 왜놈은 이에 왜도가 아닌 맨손을 들이민다.
- 28
카앙! 카콰카쾅!
희디흰 손이 벽력의 그물을 막아선다. 아니 하얗게 빛나는 손이 그리는 궤적에 벽력의 그물이 끊기고 지워진다.
그렇다고 왜도가 놀고 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번쩍!
벽력이 지워지는 틈을 타 단호히 파고든다.
- 25
쾅!
칼을 돌려막는 즉시, 충격과 함께 몸이 뒤로 밀려난다. 왜도가 그리는 궤적은 대단한 변화는 없지만 그만큼 강하다.
솔직히 왜도의 움직임은 강한 만큼 단순해서 단독으로 움직이면 막을 필요도 없이 슬쩍 피하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하얗게 빛나는 저 손이 그 단순한 칼질을 피하지 못하게 나를 몰고 있다.
- 21
쾅, 쾅!
짧게 이어지는 왜도의 이연격.
= 도대체 무슨 무공이야?
그대로 몸을 뒤로 물리며 묻는다.
사악, 쫘악!
내가 몸을 물리기 무섭게 왜놈이 하얀 손을 휘두르며 따라붙는다.
- 19
- 마교의 소수마공(素手魔功)이랍니다.
농꾼이 답한다. 마교 무공? 절강의 놈도 그렇고 왜놈의 무공도 그렇고, 확실히 마교와 무슨 관련이 있는 모양이다.
- 17
“허, 또 괴이한 수작을!”
왜놈이 노성을 터뜨리며 물러나는 나를 쫓는다. 하지만 내 퇴보는 두 발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내 보법에 맞추어 다리의 방수를 움직인다. 그러니 나는 네 발로 보법을 밟는 셈. 두 발로 움직이는 상대를 예측하는데 익숙한 무인에게는 예측할 수 없는 움직임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상대도 나노 머신 보유자, 이 짓도 오래갈 리 없다.
SS-11이 방수의 움직임에 적응하기 전에 끝을 봐야 한다.
- 15
= 믿는다.
회피 동작은 농꾼과 방수에 맡기고 유심조를 펼친다.
육감이 공간을 휘젓는 놈의 손과 언제든지 휘둘러질 준비가 된 왜도를 잡아낸다.
그리고 머릿속에 그려지는 그림에 그대로 칼을 움직인다.
파핫!
한 번의 칼질. 그리고 돌아오는 시야에 들어오는 광경은 희디흰 맨손과 옹골차게 왜도를 쥔 손이 피를 뿜으며 그 주인과 결별하는 것이다.
젠장, 목도 같이 떨어져야 했는데, 실패다.
- 11
숫자가 사라진다. 전신의 힘이 빠진다. 단전이 텅 비어 천도공을 유지할 공력마저 남지 않은 상태다.
“크아압!”
뒤로 크게 물러난 놈이 발이 땅에 닿기 무섭게 괴성을 내지르며 바닥을 박찬다. 순식간에 나와 거리를 좁히며 발을 내뻗는다.
하지만 이미 내 몸은 그 공격의 범위 밖으로 던져지고 있다. 당연히 방수가 움직인 결과다.
“사족육비(四足六臂)의 괴물 같은 놈이!”
왜놈이 눈에 보이는 대로 지껄이며 떨어진 양 손목을 발로 걷어 올린다.
잘린 손을 각기 반대쪽 겨드랑이에 끼고 잘린 단면을 갖다 붙여 팔짱 낀 듯한 자세가 된다.
나도 그 틈에 개구단을 씹어 먹고 천도공을 펼쳐 약 기운으로 비어 버린 단전을 채웠다.
“하압!”
왜놈을 향해 달려들며 벼락의 그물을 그린다.
쩌저저정!
녀석이 팔짱 낀 듯한 자세를 유지하며 발을 놀려 내 공격을 열심히 피한다.
칼 하나로 안 되면 여럿을 동원하면 그만이다.
오올!
내 손에 칼이 빛난다. 동시에 등판에서 네 개의 광원이 더해져 뻗어 나온다.
그렇게 빛나는 다섯 자루의 칼이 협공을 펼치자 양팔이 봉인된 왜놈의 발은 순식간에 잘려 나갔다.
도망갈 발마저 잃은 왜놈은 다섯 개의 칼날에 의해 바로 전신이 해체되니.
- SS-11의 수확을 시작합니다.
= 수거나 해.
나뒹구는 왜놈의 머리를 밟아 내가중수법으로 뇌를 곤죽으로 만들었다.
- 예, 리퍼.
농꾼의 대답을 들으며 흑천맹의 인원들을 살핀다.
싸움이 알아서 끝나기를 기다리는 건가?
그들 눈앞에서 스물 이상의 초극을 썰어 버린 나에게 덤빌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흑천맹의 모든 이권을 버리고 도망갈 생각도 없는 것 같다. 어쨌든 자기들 앞마당이라 그거다.
뭐 나로서는 저들이 도망가지 않는 것이 좋다. 왜놈이 저들 눈에 차광 필터 생성을 위해 주입한 미량의 SS-11을 회수해야 하니 말이다.
어쨌든 이제 기련신마와 육진성만 남았다. 남궁화청과 조유덕이 당장은 대등한 싸움을 벌이고 있지만, 기련신마와 육진성 둘 다 산전수전 다 겪은 노회한 천문위들이다. 싸움이 길어지면 무슨 꼼수를 쓸지 모른다.
개구단 세 알을 입에 머금고 네 명의 천문위가 어우러지는 공간으로 향한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격전장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발을 멈춘다.
= 부탁한다.
- 예, 리퍼.
몇 초간의 회피를 농꾼에게 맡기고 천도공을 일으켜 바로 유심조와 연계한다.
천문위의 감각을 적용하자 벼려진 육감이 어우러지는 네 명의 천문위를 구분한다.
다들 익힌 무공이 다르고, 쓰는 무기가 다르기에 구분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첫 목표는 시커먼 강기를 전신에 휘감은 기련신마다.
몇 번 유심조를 막아낸 상대라 욕심은 부리지 않는다. 그저 다리 하나 잘라 먹을 생각으로 칼 놀림을 마음에 새긴다.
“타합!”
내 입에서 터진 기합과 동시에.
콰콰콰쾅!
남궁화청과 조유덕의 강격이 각자의 상대를 향해 쏟아졌다. 그리고 나는 기련신마를 향해 발을 굴렸다.
캉!
“크흑!”
와! 이 인간 감 좋은 거 보소, 이걸 막아?
방수에 의해 허공 높이 던져진 상태로 개구단을 하나 씹어 삼킨다.
우웅!
약력이 터지며 전신 공력을 채운다. 그걸 또 증폭시켜서 유심조를 다시 펼치니 농꾼이 피풍의를 펼쳤다.
유심조를 쓰기 위한 3초는 허공에서 벌어 주겠다는 말이다.
농꾼을 믿고 기련신마에 집중한다. 이번에는 머리를 노린다.
피풍의가 접히며 그대로 떨어져 내린다.
캉!
또 막혔다. 같은 천문위인 육진정은 한 방에 죽었는데?
물론, 육진정은 조유덕과 남궁화청 둘을 상대하느라 나에게 신경 쓸 여유 따위 전혀 없었지만 말이다.
다시 거리를 벌리며 개구단을 씹어 먹고 공력을 채우는데….
우웅!
순식간에 단전을 꽉 채우다 못해 공력이 넘친다.
씨발!
한 알 삼킬 개구단을 열 받아서 두 알 삼킨 것이다.
이 방법을 알아냈을 때 두 알 먹고 약력을 터트렸다가 죽을 뻔했다. 바로 단전의 스피커를….
우웅!
아니 약력이 공력으로 화해 천도공으로 증폭이 되었는데도 전신 기맥이 뻐근한 정도지 죽을 정도로 고통스럽지 않다.
이 짓거리를 하도 해서 익숙해진 건가? 어쨌든 평소보다 더한 힘으로 유심조를 펼친다.
왠지 지금 상태면 저 망할 기련신마의 멱을 딸 수 있는 느낌?
파핫!
“크아악!”
고통에 찬 노성이 들려온다. 기련신마의 멱을 따지는 못했지만, 다리 하나는 잘라냈다.
그 덕에 육진성과 보조를 맞추지 못한 기련신마가 홀로 떨어져 나갔고, 그를 향해 남궁화청이 벽력의 회오리가 되어 덮쳐들었다.
콰콰콰콰쾅!
네 천문위의 이대이 격전이 일대일의 전장 두 곳으로 변해 버렸다.
“약발인가?”
어쨌든 효과가 좋으니 다시 개구단 두 개를 삼킨다.
“흑도 제일 세가의 당대 가주께서 어딜 가시려고!”
조유덕의 호통, 기련신마가 다리 한 짝을 잃자 육진성이 내뺀 것이다.
“쫓지 마시고, 기련신마부터 마무리를!”
조유덕 홀로 쫓아갔다가 되레 당할 수 있으니 일단 조유덕을 잡았다.
= 응5로 추적하고, 꿈틀이, 통신 벌레 붙일 수 있는 건 다 붙여!
- 예, 리퍼.
당연히 추적을 위한 준비는 해둔다.
육진성이 도망가고 조유덕이 가세하자 한쪽 발로 도망도 가지 못하는 기련신마는 두 명의 천문위 사이에서 열심히 맞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다. 개구단 두 개를 삼키고 펼친 유심조가 그의 목을 쳤으니….
“빨리 쫓지 않아도 되나?”
조유덕이 물었다.
“구할 사람은 구해야지요.”
무너진 전각 안에 아직 두 사람이 깔려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저쪽에서 우리 눈치를 보고 있는 흑천맹의 초극 고수들 몸에서 SS-11을 수거해야 했다.
“호신강기를 해제해.”
흑천맹 초극 고수들에게 내 요구 사항을 전했다.
“무슨….”
뭐라 말이 나오려고 했지만 바로 그들 입을 막았다.
“우리가 빨리 떠나기를 바란다면 잠시 호신강기를 해제하라고,”
수십 명이 한 마디씩만 떠들어도 수십 마디다. 그걸 들어주고 있을 시간 없다.
“우리가 당신들을 어찌 믿고 무방비 상태가 되란 말이오?”
“싫으면 싸우던가?”
우웅!
천도공을 일으키며 물었다.
마원의 도움을 얻었다지만 내가 오늘 흑천맹 총타에서 죽인 고수가 스물이 넘는다. 그중 대다수가 초극이고 천문위도 있다. 거기에 내 뒤에는 멀쩡한 천문위의 고수 둘이 전각의 잔해를 파내고 있었다.
“저기에서 사람 구하기 전에 결정해.”
보통 건물 잔해에 깔린 사람을 구하는 데는 몇 날 며칠이 걸렸지만 농꾼의 인도를 받아 움직이는 천문위 둘에게는 일 각도 안 걸릴 일이다.
남궁화청과 조유덕이 반 각 만에 건물 잔해를 치우고 호장우와 양연곤을 구하자, 싸울 마음이 없어진 흑천맹 초극들이 택할 선택은 뻔했다.
호장우와 양연곤을 꺼낼 동안 상 노개는 치료가 끝나 정신을 차렸고, 두 사람도 이내 치료가 끝나 정신을 차렸다.
“각주, 정안각의 다른 인원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양연곤이 물었다. 자신의 혈족들이 보이지 않자 하는 소리다. 그러고 보니 그들을 잊고 있었다.
= 잘 있지?
- 잘 숨어 있습니다.
내가 처음 찍어 준 산중에 꼭꼭 숨어 있는 모양이다.
“전부 무사하니 걱정할 필요 없다.”
= 육진성은?
지도가 뜨고 그의 위치가 표시된다.
- 임동현(臨潼縣) 인근을 달리고 있습니다.
대강 서안 부도 동쪽으로 백 리 정도 되는 곳이다.
= 정안각 인원들 불러들여.
- 예, 리퍼.
“잠시 뒤에 정안각 인원들이 이쪽으로 올 테니, 둘은 정안각 인원들과 합류해서 따라오도록. 우리는 먼저 움직이지요.”
호장우와 양연곤을 서안 부도에 남겨 두고 상 노개, 조유덕, 남궁화청과 함께 육진성을 쫓는다.
“상 노개와 창걸개께서는 제 말을 함께 타고 오시지요.”
마원이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광경을 봤던 두 사람인지라 군말 없이 따랐다.
그리고 남궁화청은 내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아도 알아서 등을 내놓았다.
“가지요!”
두 사람을 등에 업은 마원과 남궁화청의 등에 업힌 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피풍의를 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