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화
오리지널(08)
BZ-08과 10이 움직이고 20분 정도 지났을까.
- 오리지널이 움직입니다.
농꾼의 보고가 귀를 울린다. 오리지널이 공방을 수습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 영상 띄워.
오리지널이 수하들을 수습해서 금정산을 내려오고 있었다.
BZ-08과 10이 움직인 경로와 다르다. 아무래도 광동으로 물러나는 모양새다.
= 계속 추적 감시하고. 이쪽으로 오는 둘은?
내 말에 그들의 위치가 뜬다. 대강 사분지 일 정도까지밖에 못 왔다.
“사형의 예상보다 너무 늦는데, 혹여 이놈들 딴 수작 부리고 있는 것 아니오?”
사제도 놈들의 위치를 확인하고 하는 소리다.
아, 천강 둘의 경공만 생각했지 놈들과 함께 움직이는 초극 고수 스물을 생각하지 않았다.
“초극 고수들의 발걸음을 생각하면 다른 수작을 부릴 여유는 없을 거다.”
“이 정도 속도라면 놈들이 예까지 도착할 때쯤 해가 뜰 듯 하오만?”
= 농꾼, 해 뜨려면 얼마나 남았지?
- 5,433초 정도 남았습니다.
= 저것들 도착 예정 시간은?
- 현재 속도로 쉬지 않고 내달리면 4,300초 내외입니다.
중간에 한 번은 쉴 테니 대강 4,800초 내외. 대략 5~600초 정도 시간을 끌면 된다는 소리다.
= BZ-08과 10 저 둘 말고 나노 머신 소유자는? 아니 나노 머신 소유 보다는 통신 가능 장비를 가진 자들은?
- 금정산에서의 일을 생각하면 전원이 통신 장비가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하긴, 농꾼이 전파를 감지하기 무섭게 초극 고수들이 기어 나왔다.
감시 드론의 연락을 받기 무섭게 억누른 공력을 풀어 전투 준비를 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어쨌든 개개인 죄다에게 통신 장비가 있다면, 저것들 먼저 처리해야 한다는 소리다.
“사제, 땅이나 좀 팔까?”
한 시간 이상의 시간이 있으니 제법 긴 통로를 팔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사제와 함께 산 정상에서 내려왔다.
산 중턱에 적당한 동굴 하나를 찾아 들어간다. 그리고 거기서 동굴을 파고 들어간다.
초극 고수 둘이 작정하고 강기를 일으켜 칼질하니 암벽이고 흙벽이고 뭉텅뭉텅 잘려 나가며 길이 만들어진다.
그렇게 한참을 작업하자 원하는 통로가 만들어졌다.
= 확실하지?
- 예, 리퍼. 계산상 여기서 일 장만 더 뚫으면 동굴의 입구와 연결됩니다.
일 장 두께의 암벽이라 해봐야 강기 서린 칼질 몇 번이면 그냥 뚫린다.
“사형, 놈들이 거의 다 도착한 것 같소만?”
사제 말대로 우리가 백 장 길이의 암도를 만들 동안 BZ-08과 10, 두 천강은 수하들을 이끌고 우리가 있는 산에 닿고 있었다.
= 동굴 안에 놈들의 생체 드론이 들어오지 않은 것은 확실하지?
- 동굴 주변을 기웃거리는 개체 둘은 처리했습니다.
“놈들이 들어올 때까지 기다리자고.”
놈들도 생체 드론을 사용하기에 우리가 산 중턱의 동굴 안으로 들어간 것까지는 알 것이다.
몇 분 지나지 않아 놈들이 동굴 입구에 당도하는 것이 보였다.
동굴 안에 들어선 그들은 곧 우리가 뚫은 암도를 발견했다.
BZ-08과 10이 재빠르게 동굴 안을 훑으니 그들을 비추고 있는 영상이 지워진다.
동굴 입구에 뿌려 둔 꿈틀이들의 신호를 감지하고 제거한 것이다.
하지만 곧 암도 안으로 들어서는 그들의 영상이 보인다. 암도 안에도 꿈틀이가 있으니 당연하다.
초극 고수 둘이 단시간에 판 암도라 넓이는 기껏해야 사람 하나가 서서 움직일 정도다.
일렬로 늘어설 수밖에 없는 구조라 놈들은 전부가 들어가는 것보다 일부만 들어가는 것을 택했다.
BZ-08이 초극 고수 열을 이끌고 암도로 들어섰다. BZ-10은 남은 열과 함께 입구를 지키고 있는듯했다.
BZ-08이 앞장서 암도 안 곳곳에서 신호를 발하고 있는 꿈틀이를 제거하며 나아간다.
그렇게 그들이 열심히 판 암도의 중앙에 당도했을 무렵에 준비한 함정을 발동한다.
콰콰쾅! 콰르르릉!
금속 분말이 일으키는 분진 폭발의 충격이 암도를 뒤흔드는 순간, 사제와 나의 칼이 강기를 내뿜으며 암도의 끝 벽면을 후려쳤다.
콰쾅!
벽면이 터져 나가자 일단의 무인들이 보인다. BZ-10과 그가 이끄는 초극 고수 열이다.
피풍의를 벗어던진 사제의 전신이 금속으로 뒤덮인다 싶더니, 옷이 찢어지며 전신으로 도기를 내뿜는다. 아니 그 도기가 곧 유사 강기가 되고, 그 유사 강기가 바로 섬광이 되어 초극 고수들을 쓸어 간다.
“놈!”
BZ-10이 장군검을 들고 사제를 덮치려 했지만 내가 한 발 먼저 그를 덮친다.
당연히 섬광으로 전신을 물들이고, 그 섬광을 칼 하나로 몰아가며 말이다.
콰자작, 콰콰쾅!
미친 듯이 터지는 빛무리가 그를 동굴 안으로 밀어 넣는다.
동시에 움직이는 내 손이 동굴 천장을 향해 연신 장력을 토해낸다.
쿠쿠쿠쿵, 쿠르르릉!
놈들이 오기 전에 여러모로 손봐놓은 동굴 천장이라 요란하게 내려앉는다.
하지만 천강은 천강이다.
입구가 채 막히기도 전에 전신을 강기로 물들인 BZ-10이 튀어 나왔다.
머리 위로 떨어지는 돌무더기 따위는 놈의 앞을 막지 못했다. 아니 강기의 위력에 도리어 박살이 날 뿐이다.
“천문위도 되지 못한 둘로 나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느냐?”
노성과 함께 BZ-10의 장군검이 매섭게 날아든다.
오올!
어느새 급속 충전으로 배터리를 채운 사제가 다시 전신을 섬광으로 물들이며 놈을 덮쳐든다.
순식간에 섬광이 칼로 몰리며 빛무리를 뿜어내니.
콰쾅!
굉음과 함께 BZ-10의 신형이 뒤로 주르륵 밀려난다.
나는 잽싸게 방수를 뻗어 사제의 허리를 감아 하늘 위로 던졌다.
물론, 사제 녀석이 벗어 둔 피풍의도 방수로 말아 같이 던진다.
콰콰콰쾅!
그리고 BZ-10이 덮쳐들기 전에 피풍의로 추력을 뿜으며 허공으로 치솟았다.
콰르르릉, 콰쾅!
허공으로 치솟기 무섭게 벽력이 내 몸을 때리며 급속 충전이 된다.
내가 급속 충전을 하고 있을 때, 사제는 허공에서 피풍의를 걸치고 피풍의 안에 넣어 놓은 금속 분말을 털었다.
콰콰쾅, 콰쾅!
그리고 일어난 분진 폭발. 분진 폭발의 기세를 타고 사제가 나보다 먼저 튀어 나간다.
나 역시 피풍의로 추력을 토해 그 옆에 선다.
“뇌정(雷情)은 채웠나?”
배터리 채웠나 묻는다.
“진짜 재주 많은 마귀요. 벽력을 부려 뇌정을 채우다니!”
사제의 말을 들으며 손가락을 움직인다.
= 사냥 시작해!
- 예, 리퍼.
인근에 오리지널이 부리는 생체 드론들을 다 때려잡아야 했다.
뭐 미리 준비해 둔 탓에 무리는 아니다. 응 시리즈는 물론, 일대의 생체 드론들이 죄다 동원되어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생체 드론을 공격한다.
“그나저나 사형, 저놈 쫓아오는데요?”
사제 말대로 BZ-10이 쫓아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부리던 초극 고수 열 중 뒤를 쫓는 자 하나 없다.
사제에게 죄다 썰려 나간 것이다.
“이 거리 유지하면서 달려.”
사제를 방수로 감고 분진 폭발의 추력을 사용하면 천강이라도 떨쳐내는 것은 일도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멀찍이 떨궈 놓는 것보다 해가 뜰 때까지 달고 다니는 것이 나았다.
거리를 너무 많이 벌리면 나와 사제를 쫓지 않고 통로에 매몰된 BZ-08을 파낼 수 있으니 말이다.
= BZ-08이 나오려면 얼마 정도 걸리지?
- 못해도 1,800초는 걸립니다.
= 일출까지는?
- 327초 남았습니다.
= 사냥은?
- 300초 안에 끝납니다.
최상의 결과다. 사제와 한 시간 넘게 땅을 판 보람이 있었다.
= 가장 가까운 포인트는?
내 말에 지도가 눈앞으로 펼쳐지고, 몇 군데 점들이 표시된다.
= 증강현실로 확실히 표시해.
- 예, 리퍼.
대답과 동시에 몇 군데 지형에서 빛이 나기 시작했다.
그 위치를 눈여겨보면서 발을 옮긴다.
- 287, 288…
하늘의 한쪽이 서서히 밝아 오고 있었다.
아직 해가 고개를 내밀지 않았지만, 날이 밝기 시작하는 것이다.
“사형, 지원은 언제 오는 것이오?”
“곧이다. 내가 신호하면 놈에게 한 방 먹이는 거다.”
“알겠소.”
내 말에 사제가 고개를 끄덕이며 발걸음에 더욱더 힘을 준다.
- 사냥이 완료되었습니다.
= 확실해?
- 전파가 감지되지 않는 의심 개체까지 처리했습니다.
이제 해가 뜨기만 하면 된다. 바로 포인트를 찾는다.
20초 거리에 빛을 내는 지형이, 농꾼이 뽑은 포인트가 보인다.
= 증강현실, 포인트 공유.
사제와 바로 증강현실을 공유한다.
“저쪽으로!”
사제와 함께 방향을 튼다.
그곳에 닿기 무섭게 해가 고개를 내민다.
- 해당 포인트에 벌레들 배치 완료되었습니다.
“지금!”
사제에게 신호하며 개구단과 화원단을 삼킨다.
우웅!
천도공이 터트린 약력이 사지백해를 내달리고 유사 기맥까지 뻗쳐 가니, 전신에서 치솟는 도기가 전력을 먹고 호거술을 거쳐 섬광이 된다.
칼날에 섬광을 몰아넣은 나와 사제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놈을 덮쳐든다.
쿠콰쾅, 콰쾅!
천문위의 감각과 나노 머신의 소통이 이루어진 완벽한 협공이다.
하지만 상대는 천강.
사제와 나의 협공을 이를 악물고 받아냈다.
그리고 뒤로 밀려난 BZ-10이 균형을 잡기 무섭게 내 손가락이 움직인다.
= 살(殺)!
콰자자작, 파학!
BZ-10의 머리에 불이 붙는다 싶더니 순식간에 터져 나갔다.
“뭐, 뭐야!”
사제가 기겁하며 외친다.
자신과 나의 합격을 상대가 온전히 막아낸 것을 천문위의 전투 감각으로 분명히 느꼈다.
“지원은 언제 오는 거야!” 하면서 도망갈 준비를 하는데, 아무런 이유도 없이 상대의 머리가 그냥 날아가 버렸다. 그러니 놀랄 수밖에.
“내 든든한 지원이 온다고 하지 않았나.”
그렇게 대답하며 널브러진 시체를 향해 다가섰다. 아무리 나노 머신의 치료 기능이 대단하다 해도 뇌가 날아간 상대를 되살릴 수는 없다.
“해야 할 일이 있으니 사제는 호법을 부탁하네.”
“사형은 이 작자의 머리가 날아갈 것을 알고 있었구려.”
“그래.”
“무슨 방법으로 천강의 머리를 날렸는지 말도 안 해 줄 셈이요?”
“지금 말고 나중에. 일 다 끝나면 말해 줄 테니, 호법이나 서.”
“아, 진짜.”
사제의 툴툴거림을 들으며 공력을 억제해 호신강기를 해제한다.
- BZ-10의 해킹을 시작합니다.
회수 코드도 통하지 않는 개체들인지라 해킹을 할 수밖에 없다.
눈앞으로 열심히 문자열이 흐른 지 일 각쯤 지나자 농꾼의 보고가 귀를 울린다.
- BZ-10의 수확을 시작합니다.
문자열이 흐르는 것을 한 번 더 본 다음 손가락을 움직인다.
= BZ-10이 우리 마지막 공격을 파악했어?
-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계속 써먹을 수 있다는 말이다.
= 다음을 준비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 현재 동원된 벌레들로는 세 번 공격이 가능합니다. 해당 포인트 벌레 배치에 20초가 소모되고, 모든 공격이 끝난 다음 다시 렌즈를 준비하는 데는 150초가 걸립니다.
“이제 파묻힌 놈을 잡으러 가자고.”
놈이 흙더미를 뚫고 기어 나오려면 아직 10분은 남았다.
사제와 함께 함정을 팠던 동굴 앞까지 달려갔다.
= 이쪽을 공격 포인트로 잡을 수 있어?
내가 동굴 쪽을 가리키며 물었다.
- 가능합니다. 배치합니까?
바로 나오는 농꾼의 대답.
= 그래.
그렇게 준비가 끝나고 몇 분 정도 지나자, 내 장력에 무너져 내려 막힌 동굴 입구의 돌무더기들이 들썩인다.
- 나온다. 준비해.
사제에게 전음을 날리며 개구단과 화원단을 쌍으로 입에 넣는다.
콰쾅!
굉음과 함께 동굴 입구의 돌무더기들이 날아가며 하나의 인영이 튀어나왔다.
장군검을 앞세우고 무지막지한 기세와 함께 튀어 나오는 것이 BZ-08이 분명하다.
전신 섬광을 몰아넣은 칼이 놈을 향해 휘둘러진다.
콰자작, 콰콰쾅!
나와 사제의 협공에 인영은 그야말로 피와 살이 되어 흩뿌려졌다.
이걸 못 막고 죽어?
천강이, BZ-08이 아니다?
분명 놈이 쓰던 장군검을 들고 천강의 기세를 뿌렸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