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화
오리지널(12)
콰콰콰쾅!
피풍의로 추력을 토해 놈을 피해 움직이지만, 놈은 강기의 날개를 피풍의처럼 움직이며 내 뒤를 따라붙는다.
강기로 만든 엔진 때문에 나보다 빠른 놈이, 농꾼이 움직이는 피풍의만큼 날개를 움직이니 내가 놈을 떨쳐낼 방도가 없다.
“젠장!”
결국은 놈이 원하는 대로 땅으로 내려설 수밖에 없다.
“무슨 짓이든 해보지?”
내 뒤를 따라 땅으로 내려선 놈이 미소를 지으며 손을 움직인다.
간단히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천문위도 아닌 천강이 펼치는 무공이다.
우웅!
영약을 씹어 삼키며 천도공을 일으킨다. 안 통할 것이 뻔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죽어 줄 수는 없다!
터져 나오는 약력이 전신을 휘감으며 도기가 되고, 도기는 곧 섬광이 되어 칼날로 내달린다.
콰콰쾅!
칼을 떠난 섬광이 힘의 폭풍이 되어 휘몰아치지만, 놈의 손이 만들어내는 궤적에 그대로 찢겨 흩어진다.
머릿속에서 위험을 외치는 천문위의 전투 감각을 따라 바닥을 굴러 몸을 피한다.
콰르르릉!
푸르른 힘의 물결이 내가 있던 공간을 휩쓴다. 아니 그에 만족하지 않고 아직 몸도 일으키지 못한 나를 향해 밀려온다.
휘익!
몸이 허공으로 던져지고.
쓰윽!
땅으로 당겨지고.
촤악!
튕기듯 세워진다.
전신 곳곳에 달린 방수의 인도가 나를 강기의 물결에서 건져냈다.
“그냥 칼만 휘두르는 게 아니라 신법에도 활용할 수 있다?”
놈의 입에 걸린 미소가 짙어졌다. 좋은 거 알아냈다는 눈이다.
이놈 내가 가진 물건들의 용도를 캐려는 건가?
나를 제압하고 농꾼을 해킹하면 샘플은 물론이고 그에 대한 모든 데이터가 들어오는데?
아, 내가 공방의 데이터를 죄다 삭제했듯 여차하면 농꾼의 데이터도 죄다 삭제할지 모른다 생각하는 건가?
“설마, 이게 다가 아니겠지? 뭐든지 해봐라.”
무슨 이유든 놈은 내게 시간을 주고 있으니 나는 그 시간을 활용한다.
= 데이터에 있는 수법인 거야?
내가 묻기 무섭게 농꾼이 답한다.
- BZ-08의 데이터에서 찾아냈습니다. 불모 당새아의 청하신수입니다.
데이터로 청하신수의 공격 흐름을 알아내 빈틈 아닌 빈틈으로 내 몸을 욱여넣은 것이다.
= BZ-08의 데이터를 적용해.
- 리퍼의 현 육체로는 무리입니다.
하긴 지금의 난 천도공을 펼쳐 내공을 뻥튀기시켜도 천문위의 전투 감각만 간신히 빌려오는 초극 나부랭이.
천강인 BZ-08의 데이터는 확실히 무리다.
= 좀 있으면 가능할 거야.
될지 안 될지 모른다.
하지만 당장 다른 방법이 없다. 그러니 천문위를 뛰어넘는 천강의 능력을, 데이터를 믿는 수밖에 없다.
영약 두 개를 입안에 털어 넣는다. 마지막 남은 개구단과 화원단이 아니라 품에 있던 태청단과 원공단이다.
우웅!
그리고 천도공을 펼친다.
천도공의 떨림에 소림의 비전 영약인 대환단과 비견되는 도가의 영단 태청단과 원공단이 쌍으로 폭발한다.
약력의 대폭발이 단전을 거쳐 전신 기맥으로 노도처럼 밀려간다.
내 몸이 경험해 보지 못한 거력의 질주. 기맥이 뭉개지는 고통에 정신이 아득해진다. 이건 천문위의 감각을 빌려도 어떻게 막아 볼 엄두도 나지 않는 힘이다.
= 빨리!
간신히 손가락을 움직여 농꾼을 재촉하니 묘한 감각이 전신을 휘감는다.
이때까지 느껴 보지 못한 감각. 그것들이 몸 안을 질주하는 거력을 어떻게든 잡아끌려 노력한다.
농꾼이 내 몸에 적용한 데이터, 천강의 감각이다.
“…….”
이를 악물고 전신을 휘감는 고통을 견디고 있자니, 천강의 데이터가, 농꾼이 돌리는 감각들이 난리 치는 기운들을 재빨리 수습한다.
그리고 거칠지만 확실한 흐름을 만들어내 몸에 적용시킨다.
스롸롸롸락!
발이 땅 위를 흐르니 몸이 놈을 향해 미끄러진다.
그리고 내밀어지는 내 양손 끝에 놈과 같은 힘의 물결이 출렁거린다.
그런 내 공격에 놈이 손을 내밀어 맞받는다.
콰콰콰쾅!
힘의 물결과 힘의 물결이 만나 격한 소용돌이를 이룬다.
놈의 발이 거칠게 휘도는 힘의 소용돌이를 따라 움직인다.
천강의 감각이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고 외치며 자연스레 내 발을 움직인다.
그렇게 발이 움직이는 와중에도 놈의 손은 거칠게 휘도는 힘의 소용돌이를 넘나들며 내 몸을 후리려 든다.
그 공격에 감각이 이끄는 대로 양손을 움직인다. 내 한 손의 움직임에 힘의 소용돌이가 요동치며 놈의 공격을 비틀고 튕겨낸다.
동시에 다른 손이 소용돌이를 피해 놈을 후려 팬다.
하지만 소용돌이를 움직이는 것은 놈도 마찬가지. 내 공격도 놈의 공격과 마찬가지로 궤도가 비틀리고 튕겨난다.
순식간에 펼쳐지는 공방이 이어진다. 놈과 나의 움직임은 쌍둥이를 보는 듯 똑 닮아 있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내 몸을 움직이는 것은 BZ-08의 데이터. 하지만 BZ-08을 천강으로 인도한 것은 먼저 천강에 오른 놈이 넘긴 데이터. 그러니 놈과 나의 움직임은 닮을 수밖에 없다.
놈과 나의 공방이 시작된 지 반 각이 넘었다. 그런데 아직 약발이 끊이지 않는다.
태청단과 원공단의 약발이 대단한 것인지, 천강인 BZ-08의 데이터가 대단한 것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대로는 내가 진다는 거다.
천강의 데이터로, 전투 감각으로 아무리 놈을 몰아쳐도 놈은 시종일관 여유를 잃지 않고 있다.
“이제 다른 수가 없는 건가?”
놈의 입에서 심드렁한 말이 흘러나옴과 동시에 그의 손이 번뜩였다.
그 움직임에 맞춰 손을 움직이지만, 내 손은 허공을 가른다.
쾅!
- 8번 방수, 파손.
허벅지를 덮치는 충격과 동시에 농꾼의 보고가 귀를 때렸다.
콰득!
이번에는 양쪽 손목이 아린다.
- 6번, 7번 방수, 파손.
놈의 양손이 크게 홰를 치듯 움직이고.
콰자자작!
등판에 충격이 달린다. 피풍의가 뜯겨 나갔다.
그렇게 놈의 공격을 막지 못할 때마다 몸에 달린 방수가 박살나고 있었다.
그렇게 나를 보조해 주던 장비들이 모조리 뜯겨 나가고 박살났다.
“진짜 없는 모양이군.”
놈이 다시 심드렁한 목소리로 말하며 손을 움직였다.
쾅, 콰쾅! 콰콰쾅!
굉음과 함께 그와 나 사이에서 존재하던 소용돌이가 흩어지며 힘의 물결로 변해 쏟아진다.
콰쿠콰콰콰!
그 힘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전력을 다해 움직인다.
손과 발이 바삐 움직이며 만들어내는 흐름으로 덮쳐드는 힘의 물결을 헤집고 갈라서 좌우로 젖히고 흘린다.
그렇게 상당수의 힘을 흘려내지만, 몸이 절로 밀려나는 것은 막을 수 없다.
내가 그렇게 뒤로 밀려나자 놈은 여유롭게 자신의 검을 뽑았다.
BZ-08을 포함한 넷의 천강과 달리 장군검이 아니라 날렵한 장검이다.
- 불모의 월하검입니다.
BZ-08이나 10은 청하신수와 달리 오리지널에게 월하검을 전해 받지는 못했다. 그래서 월하검 자체에 대한 데이터는 없는 상태. 하지만 오리지널이 쓰는 월하검을 상대해 본 데이터는 있었다.
세세한 무공 데이터가 있는 청하신수를 막지 못했는데, 무공 데이터가 없는 월하검을 막아야 하는 상황이니 인상이 절로 구겨진다.
“마지막으로 제안하지.”
놈이 검을 내게 겨누며 말을 잇는다.
“당장 BZ-08과 10을 가져오고 공방에서 만든 모든 제작물의 제어권을 넘긴다면 목숨을 살려 주고, 강서를 네 영역으로 인정해 주지.”
어째 놈이 BZ-08과 10에 집착하는 느낌이 있다.
이유가 뭐지? 나노 머신 자체는 아니다. 놈의 해킹 실력이라면 다른 수확 대상자의 나노 머신을 충분히 강탈할 수 있으니 말이다.
무공 데이터도 아니다. BZ-08과 10의 무공 근원은 바로 저놈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BZ-08과 10, 그 둘만이 가진 데이터, 그 둘을 품었던 숙주의 기억 데이터밖에 없는데….
“그 둘을 살려낼 생각인가?”
내 기억을 품은 농꾼이 갓 태어난 이도연의 육체로 들어와 박경표의 인격을 이었듯 BZ-08과 10을 쓴다면, 그 둘 숙주의 기억을 잇는 자들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외형? 나노 머신 이용해서 뜯어고치면 그만이다.
내 말에 놈의 안면이 꿈틀거린다. 제대로 찍었군.
“아니, 그 둘만이 아니라 넷 모두를 살려낼 생각이군.”
“대답은?”
내 말에 놈이 물었다.
들어줄 수 없는 조건이다. 하지만 당장 들어줄 수 없단 대답을 하면 저놈의 검이 내 목을 칠 것이다.
저놈이 저딴 소리를 하는 이유도 뻔하다. 공방을 잃고 생체 드론과 통신 벌레의 제어권을 잃은 나 따위는 언제든지 죽일 수 있다는 확신이 있는 거다.
아직 천강의 감각이 유지되고 있다. 그 말은 아직 태청단과 원공단의 약발이 끊이지 않았다는 것.
마지막으로 시도해 볼 만한 방법이 하나 남았다는 소리다.
“좋아. 동료에게 연락하지.”
상대가 오리지널만 아니라면 다른 몸으로 부활을 꿈꿀 수도 있지만, 뒈진 천강들을 살릴 생각을 하는 놈이다.
내가 같은 방법으로 부활할 가능성도 충분히 알고 있다는 소리.
내가 죽기 무섭게 농꾼을 해킹해 그 가능성을 차단….
설마, 저 새끼 그런 건가?
내가 다시 살아남을 가능성을 생각하게 만드는 게 목적?
내가 자포자기해 내 기억 데이터를 날려 버리는 것을 방지하려는 수작?
그래야 나를 죽인 후 농꾼을 해킹해 내 기억을 읽을 수 있으니깐.
공방에서 여러 가지를 만들어낸 현대인의 발상을 노리는 거다. 그리고 연구소와의 정확한 관계도!
내 기억 데이터가 있으면 나인척하며 연구소와 접촉할 수 있으니 말이다.
= 사제에게 통신 벌레 제어권을 넘긴다. 열선의 사용 방법과 관련된 모든 걸 전해. 수확에 대한 데이터도 전하고, 수확 관련 데이터는 내가 죽은 다음에 열리도록 세팅해. 그리고 내가 죽고 해킹 시도 들어오면 내 기억 데이터를 비롯해서 농꾼 너의 모든 데이터 소거해.
- 리퍼, 어쩌실 생각으로 그러시는 겁니까?
대답 대신 농꾼이 묻는다.
= 뭘, 어째. 발악 한번 해보려는 거지. 어쨌든 내가 실패해서 죽으면 시킨 대로 해라.
- 예, 리퍼. 마*카*투 베타에게 데이터 송신을 시작하겠습니다. 호신강기를 해제해 주시겠습니까?
= 호신강기 해제 안 하고 어떻게 안 되냐?
지금 내 상태는 천강의 데이터로 일련의 흐름을 만들어내 허공에 날아가 버릴 태청단과 원공단의 약발을 붙잡아 두고 있는 상태로 짐작된다.
호신강기를 해제하기 위해 공력을 억제하면 흐름이 깨지고 약발이 날아갈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약발이 날아가 버리면 다시 천강 흉내를 내지 못한다.
내게 남은 것은 원공단과 태청단이 아닌, 개구단과 화원단 하나씩이니 말이다.
- 데이터 용량이 커서 호신강기를 해제하지 않으면 무리입니다만?
= 그건 그럼, 실패해서 죽겠다 싶으면 보내. 내 의지와 상관없이 호신강기가 해제되면 보내면 되겠네.
- 예, 리퍼.
“연락은 하는 건가? 별다른 전파 신호가 안 잡히는데?”
놈이 눈을 번뜩이며 묻는다.
“음파 통신으로 보냈다. 한 시진 정도 기다려.”
“한 시진? 네 동료가 여기서 떠난 게 이 각도 되지 않았는데?”
내 말에 놈이 인상을 쓴다.
“기다리기 싫으면 그냥 끝을 보던가!”
내가 다시 싸울 태세를 취하자 놈이 고개를 흔들었다.
“기다리지.”
자, 그럼 나는 최후의 방법을 시도해 볼까!
= 무당 장문인이 불러 준 유심조의 운기법. 그 구결을 불러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