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6화
소방서의 일반적인 편제는 화재 진압대, 구급대, 구조대로 나뉘어 있다.
화재 진압대는 이름 그대로 화재를 진압하는 이들이다.
펌프차와 소방전을 이용해 불을 끄는 것이 주된 임무였으며, 소방관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의 주인이 바로 그들이었다.
구급대는 응급처치 및 후송을 담당하는 이들이다.
부상이나 질병 등의 신고를 받고 출동하여 환자를 병원으로 이송하는 임무가 주이고, 재난 현장에서는 구조대가 구조한 구조자들을 후송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구조대.
이 역시 문자가 의미하는 그대로였다.
화재나 붕괴 등의 재난 현장에 출동해, 스스로의 힘으로는 탈출할 수 없는 요구조자들을 구조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일반인보다 월등한 체력과 근력을 요구하는 탓에, 웬만한 이들은 지원조차 할 수 없는 곳이었다.
그리고 수혁은 그런 구조대의 일원이었다.
숨 막히는 침묵이 수혁의 어깨를 내리누르고 있었다.
수혁은 열중쉬어 자세로 미동도 하지 않고 서서, 마른침을 삼켰다.
“그러니까……. 비번이라 놀러 나갔다가 우연히 구조했다?”
“예, 그렇습니다.”
수혁의 대답에 질문한 신일 소방서 구조대의 대장 고한선은 골치가 아픈지 미간을 찌푸렸다.
이제 갓 배치를 받은 신입이 이틀 연속으로 인명을 구조했다는 것은 칭찬을 받아 마땅한 일이었다.
배치 첫날엔 사수였던 박상태와 뭔가 트러블이 있었던 것처럼 보였지만, 당사자인 박상태가 문제 삼지 않았으니 그냥 넘어갔다.
문제는 어제의 일.
구조를 성공했으니 잘했다?
그렇게 설렁설렁 넘어가기에는 수혁이 저지른 일이 너무도 심각했다.
“이거 너 확실해?”
고한선은 책상 위에 있던 노트북을 돌려 수혁에게 보여주었다.
노트북의 모니터 안에는 어제의 화재 현장을 찍은 동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구경하던 사람 중 한 명이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것 같았다.
화질은 그리 좋지 못했지만, 상황을 파악하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게…….”
수혁은 슬쩍 눈동자를 돌려 노트북을 외면했다.
“말해봐. 지금 여기 이 높은 곳에서 요구조자 안고 뛰어내리고 있는 저 미친놈이 너냐고.”
착각이었을까?
수혁의 귀에 아드득-! 하며 이가 갈리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왠지 모를 서늘한 기운까지 느껴지는 것 같아 수혁은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대답 안 해? 여기 소방 호스 들고 설치는 이 미친 스파이더맨이 너냐고 묻잖아, 지금!”
콰앙-!
결국, 화를 참지 못한 고한선이 책상을 내려치며 소리쳤다.
흠칫- 놀란 수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이제야 생각났다.
예전 자신이 속해 있던 구조대의 대장, 고한선은 소방관이 아니었다.
아니, 직업은 소방관이 맞았지만, 수혁은 그를 소방관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겉으론 화통하고 깨어 있는 척하지만, 그 내면은 윗사람에게 까이는 것이 두려워 아랫사람을 쥐 잡듯 잡는 소인배였다.
소방관이라는 이름보단 공무원이라는 이름이 훨씬 더 잘 어울리는 사람.
그것이 기억나자 수혁은 고한선이 왜 이렇게 화를 내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거기에 명색이 구조대원이라는 놈이 1대 애들한테 구조 당해서 돌아와?”
고한선은 자신이 은근히 견제하고 있던 구조 1대에게 수혁이 구조되었다는 사실에 열이 받은 것이다.
물론 이유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지금 언론에서 네가 한 행동을 뭐라고 하는지 알고는 있냐?”
“잘 모르겠습니다.”
“살인 미수란다, 살인 미수! 덕분에 나는 윗분들한테 된통 깨졌고!”
고한선의 말에 수혁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구조 방법이 다소 과격하고 규정에 맞지 않았다는 것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방법이 아니었다면, 요구조자와 자신은 그 자리에서 그대로 통구이가 되었을 것이 뻔했다.
그런데 살인 미수라니…….
그럼 그냥 그곳에서 죽었어야 한단 말인가?
“이 일은 조용히 넘어가지 않을 테니, 책임 소재는 확실히 하자. 문제가 생기면 네가 모두 책임져.”
차갑다 못해 싸늘하게 말을 내뱉은 고한선은 수혁이 꼴도 보기 싫은지 꺼지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수혁은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이고는 밖으로 나왔다.
“아, 젠장.”
기분이 더러웠다.
애초부터 구조를 성공한 것에 대한 칭찬을 들을 것이라고는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위험성이 극도로 높은 방법으로 구조를 했기에 당연히 질책이 있을 것이라 예상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 때문이라면 수혁은 얼마든지 감수할 생각이었다.
운이 좋았기에 망정이지, 자칫 잘못했으면 골로 가버릴 수도 있었으니까.
그런데 자신이 혼난 이유가 고작 책임 소재 때문이라니!
몸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감내하며, 목숨을 걸고 사람을 구했다는 보람과 희열은 언제 그랬냐는 듯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몸은 좀 어떠냐?”
수혁이 문밖으로 나오자, 기다렸다는 듯 박상태가 다가오며 물었다.
혹여나 고한선이 들을까 그의 목소리는 조심스러웠다.
그렇지 않아도 조그마한 박상태가 몸을 움츠린 모습을 보고 생쥐가 떠오른 수혁이 피식-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뭐, 생각보단 훨씬 괜찮네요.”
수혁이 어깨를 빙글 돌리며 대답했다.
하지만 박상태는 미심쩍다는 기색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어제까지만 해도 수혁은 온몸에 깨진 유리 조각을 박아 넣고, 가볍지 않은 화상과 근육까지 심각하게 상한 상태로 병원에 실려 갔기 때문이었다.
특히 호스를 잡고 있던 팔은 어깨뼈가 탈구되었을 정도로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고 들었는데…….
하루 만에 괜찮아졌다고?
의심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정말이라니까요. 저도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는데, 말끔하게 다 나았어요. 이래서 나이가 깡패라나 봐요.”
수혁의 말은 사실이었다.
한동안 병원 신세를 져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는데, 어찌 된 일인지 한숨 자고 일어났더니 멀쩡해진 것이다.
물론 완벽하게 치료가 된 것은 아니라 아주 작은 생채기 정도는 남아 있었지만, 전날의 상태를 생각해 보면 완쾌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짐작이 되는 바가 없진 않았다.
레벨 업을 하며 상승한 신체 능력 덕분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것은 짐작일 뿐, 확실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다행인데……. 일단 자리 좀 옮기자.”
고한선의 방 앞에서 대화를 나누기가 부담스러웠던 박상태가 수혁의 팔을 잡아 이끌고 휴게실로 자리를 이동했다.
박상태의 손에 잡혀 걸음을 옮기던 수혁의 얼굴에 착잡한 시선이 떠올랐다.
‘내가 그렇게 잘못을 한 건가?’
물론 잘한 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식으로 욕을 먹을 정도도 아니었다.
“너 인마. 어쩌자고 그딴 짓을 했어?”
“뭐가요?”
박상태의 말에 수혁이 반사적으로 퉁명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이내 후회했다.
박상태는 말투와는 다르게 수혁을 걱정하고 있는 표정이었던 것이다.
“몰라서 물어? 첫날에도 그러더니……. 그렇게 규정, 매뉴얼 무시하고 사람 구하면 위에서 ‘옳지, 잘한다!’ 이럴 줄 알았냐?
“어쨌든 구하지 않았습니까?”
“방법이 잘못됐다 이거야, 방법이.”
살짝 짜증이 치솟아 오르긴 했지만, 박상태의 잔소리는 고한선과 다르게 수혁을 걱정해서 하는 말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반발하지는 않았다.
“정말 그 방법밖에 없었냐?”
“동영상 보셨어요?”
“그래, 봤으니까 하는 말이다.”
박상태는 동영상을 보고는 기절초풍할 뻔했다.
언젠가 사고를 쳐도 단단히 칠 놈이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그날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이야!
한 손엔 호스를, 다른 한 손엔 요구조자를 붙잡은 채로 17층에서 뛰어내리다니!
제정신을 가진 구조대원이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짓이었다.
아니, 하지 못했다.
단단히 미친놈이 아니고서야 수혁과 같은 방법으로 구조를 할 리가 없었다.
“그 방법 외에는 다른 게 없었다니까요.”
“밑으로 뛰어내리는 게 최선이었다?”
“확신하는데, 만약 그 자리에서 5초만 더 지체했으면, 형하고 이런 대화를 나누는 건 몇십 년 뒤에나 가능했을 겁니다.”
“몇십 년 뒤?”
“저승에서요.”
수혁의 표정은 진지했다.
자신의 선택에 일말의 의심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 모습에 박상태는 끄응- 하며 신음했다.
수혁의 동영상을 보고 경악을 하긴 했지만, 당시 상황을 생각해 보면 자신 역시 별다른 방도가 없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박상태는 두통이 오는지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
사수로써 혼을 내고 행동을 교정해야 한다는 책임감과 수혁의 구조 방법이 유일한 길이었다는 생각 사이에서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결국 박상태는 수혁의 어깨를 두드리는 것으로 대화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둘 중 어떤 행동을 한다 해도 후회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저 앞으로는 조심하라는 말밖에는 하지 못하는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아, 맞다. 그리고 너.”
“예?”
“전에도 그러더니, 누가 형이라고 부르래? 인마, 너랑 내가 짬밥 차이가 얼마나 나는 줄 알아? 감히 하늘 같은 선배한테 형이라고…….”
“아, 그런 사소한 건 좀 넘어가요.”
수혁은 귀를 막고 눈을 감고는 박상태의 말을 씹어버렸다.
팍- 하고 얼굴을 일그러트린 박상태가 수혁에게 다시 한소리를 하려고 할 때였다.
요란한 벨소리와 함께 스피커에서 긴박한 음성이 터져 나왔다.
[구조 출동, 구조 출동.]
장난치던 수혁과 박상태는 흠칫 놀라 서로의 얼굴을 잠시 쳐다보고는, 누가 먼저라고 할 새도 없이 곧장 달렸다.
경보가 울린 지 20초도 채 되지 않아 두 사람은 구조 차량에 몸을 실었다.
차량 안에는 이미 구조 3팀의 대원 두 명이 착석한 채 둘을 기다리고 있었다.
수혁이 재빠르게 남은 좌석에 착석하자 앞 좌석에 앉은 박상태가 출동을 명령했다.
시끄러운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하며 구조 차량이 움직였고, 그 뒤를 이어 구급차와 장비 차량이 빠르게 소방서를 벗어났다.
“상황 부탁드립니다.”
앞쪽에 앉은 박상태가 무전기를 들었다.
[신일동 XX 할인마트 지하주차장에서 급발진 사고입니다. 요구조자는 한 명. 운전자는 의식을 잃은 상태로 마트 측의 차량을 통해 이미 병원으로 옮겨졌고, 다른 한 명은 차량과 벽 사이에 끼어 있는 상태라고 합니다. 사십대 중반의 여성으로 출혈이 심하다고 하니 서둘러 주시기 바랍니다.]
“의식은 어떻습니까?”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의식의 상태는 훨씬 중요했다.
괜히 구급대원들이 의식을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이 아니었다.
[의식불명 상태입니다. 정확한 건 현장에 가보셔야 알 것 같습니다.]
상황실에서 현장의 모든 정보를 파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신고자가 정확한 상황을 완벽하게 전달하는 일은 드물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흥분 때문이든, 두려움 때문이든 말이다.
덕분에 상황실에선 최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기 위해 노력하지만, 여전히 어렵긴 마찬가지였다.
“다들 들었지? 도착하면 신입이랑 정우는 스프레다(유압 스프레다:유압을 이용하여 인력으로는 불가능한 공간 확보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장비)랑 커터 챙기고, 재현이는 요구조자한테 붙어.”
“알겠습니다.”
출동한 구조대원은 네 명.
3팀의 인원은 팀장인 박상태를 포함해 모두 여섯 명이었지만, 하나의 사건에 모두가 출동하는 것은 인력 낭비에 가까웠기에 네 명만 출동한 것이다.
대장인 고한선과 나머지 한 명은 혹여 있을지도 모르는 다른 상황에 대기 중이었다.
물론 고한선이 직접 출동하는 일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긴 했지만…….
수혁은 눈을 감고 기억을 더듬었다.
이번 출동을 떠올려 보려고 해봤지만, 생각나는 것은 전혀 없었다.
일일이 기억하기엔 너무 사소한 현장이었거나, 아무런 희생자도 없이 잘 마무리되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조금은 마음이 편해진 수혁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눈을 떴을 때였다.
예의 그 퀘스트가 나타나며 수혁의 시야를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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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 : 요구조자들을 모두 구조하라.
*내용 : 지하 주차장에서 일어난 급발진 사고로 부상을 입고 구조를 기다리는 이들이 있다. 구조의 난이도는 높지 않지만, 시간이 촉박하다. 구조대의 도움을 기다리는 이들을 제시간 내에 모두 구조하라!
*보상 : 경험치, 스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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