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7화
“도착했습니다!”
“서둘러!”
구조차가 도착하자 구조대원들은 기다렸다는 듯, 순식간에 밖을 향해 튀어나갔다.
“여깁니다! 여기요!”
커다란 목소리가 지하주차장 안을 크게 울렸다.
어찌나 당황했는지, 마치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수혁은 그쪽을 쳐다보는 대신 박상태의 명령대로 장비를 챙기기 위해 구조차의 뒤쪽으로 향했다.
“넌 빠져.”
수혁이 박상태의 명령대로 장비를 꺼내려는데, 뒤쪽에서 거친 음성이 들려왔다.
같이 장비를 챙기러 온 박정우였다.
“……예?”
수혁이 박정우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묻자, 그는 귀찮다는 듯 수혁의 어깨를 잡고 밀쳐 냈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넌 빠지라고, 이 꼴통 새끼야.”
박정우가 수혁을 잡아먹을 듯 노려봤다.
“규정, 룰 무시하고 지 꼴리는 대로 움직이는 놈. 그런 놈은 우리 구조대에 필요 없어. 그러니까 꺼져.”
박정우는 수혁의 바로 위 선배였다.
인력보충이 제대로 이루어지질 않아 한참 동안 막내 생활하다가, 얼마 전에야 그토록 기다리던 후배가 들어왔다.
그런데 그 후배라는 놈이 첫날부터 지시 불이행에 자기 잘난 맛에 사는 꼴통이라니!
차라리 다시 막내 생활을 하고 말지, 수혁과 같은 놈하고는 같이 일하고 싶지 않았다.
박정우는 수혁을 쏘아보고는 그대로 혼자 장비를 챙겨 현장으로 달려갔다.
수혁은 그런 박정우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자신의 행동이 생각보다 더 큰 파장을 일으킨 것 같았다.
전생에서는 그토록 순하고 잘 챙겨주었던 박정우가 저런 소리를 면전에서 할 정도였으니…….
하지만 아쉬울망정, 후회하는 것은 아니었다.
수혁 역시 자신의 행동에 한 점의 부끄러움도 느끼지 않았으니 말이다.
‘이번 생에서는 단 한 명의 목숨도 놓치지 않겠다.’
그 대가로 세상 모든 사람에게 손가락질을 받고 비난을 사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다시 한 번 다짐한 수혁이 천천히, 하지만 당당하게 현장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현장은 시끌벅적했다.
대형 마트의 지하 주차장이라, 사고 현장을 구경하고 있는 사람들의 수가 꽤 많았던 것이다.
지하의 특성상 소리가 크게 울리는 탓에 더욱 시끄럽게 느껴졌다.
“절단기! 절단기 가져와!”
박상태의 다급한 명령에 박정우가 재빨리 유압 커터를 넘겨주었다.
차와 벽 사이에 끼어 있는 중년 여성은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상황실의 전달대로 운전자는 이미 병원으로 옮겨졌는지, 차량 내부에는 아무도 없었다.
“비켜!”
박상태는 주위를 향해 소리치며 요구조자를 짓누르고 있는 보닛에 절단기를 끼우곤 곧바로 작동시켰다.
와자작-!
단단한 철판이 마치 종잇장처럼 찢겨 나가기 시작했다.
터엉-!
잘린 철판이 땅에 떨어지며 지하 주차장을 크게 울렸다.
“좋아, 공간 생겼다. 스프레다 끼워.”
충격에 일그러져 스프레다를 끼워 넣을 공간과 시야를 방해하던 보닛이 사라지자, 박상태는 곧바로 다음 지시를 내렸다.
박정우와 이재한이 스프레다를 들어 벽과 범퍼 사이에 끼워 넣었다.
장비를 가동하자 요구조자의 다리를 압박하고 있던 차체가 찌그러지며 벌어지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아직 다리가 빠지기엔 틈이 너무 좁았다.
수혁은 가만히 뒤쪽에 서서 그들이 구조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수밖에 없었다.
빠른 움직임을 요하긴 했지만, 그리 어려운 현장은 아니었다.
때문에 수혁은 구조에 참가할 틈을 찾지 못했다.
게다가 조금이라도 나서려는 모습이 보이면 박정우가 앞을 은근슬쩍 막아서는 바람에 더욱 그랬다.
대놓고 움직이는 것이 아니어서 박상태가 눈치채지 못할 정도였다.
“쯧.”
수혁은 그것을 알아차렸지만 따로 대응하지는 않았다.
굳이 자신이 나서지 않아도 구조는 순조로웠고, 괜히 그것에 반발했다가는 서로 사이만 더욱 틀어질 것 같았기에 참은 것이다.
지금은 천덕꾸러기 취급하고 있었지만, 전생에서는 그 누구보다 자신을 챙기고 보살펴 주었던 사람이다.
수혁에게 있어선 최고의 선배였고, 형이었으며, 동료였으니.
그런 사람과 척을 지고 싶지 않았다.
수혁은 뒤에서 가만히 구경만 하느니, 후송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 구급대원들을 돕는 것을 선택했다.
구조가 완료되는데 걸린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박상태가 워낙 베테랑이기도 했고, 현장이 그리 어렵진 않았던 덕분이었다.
요구조자가 의식을 잃은 상태인 데다 짓이겨진 다리 쪽에서 출혈이 상당하다는 것이 문제이긴 했다.
하지만 그것은 이제부터 구급대와 병원에서 케어할 일이었다.
“오케이, 빼냈어. 구급! 출혈이 심해!”
요구조자를 빼내자 주르륵- 하며 붉은 피가 쏟아져 내렸다.
상처를 압박하고 있던 범퍼가 사라지자, 멈췄던 출혈이 터져 버린 것이다.
순식간에 바닥을 흥건하게 적신 피에 구급대원들이 기다렸다는 듯 달려왔다.
“지혈제 더 가져와. 생각보다 출혈이 심하네.”
피가 낭자한 상황에서도 구급대원들은 침착한 표정으로 지혈제를 상처 주위에 뿌렸다.
그러고는 압박붕대로 상처 부위를 단단하게 감싸고서 들것에 구조자를 실어 구급차로 옮겼다.
“우리 먼저 출발합니다!”
심각한 출혈에 구급대는 1초도 지체하지 않고 그대로 병원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와아아!”
짝짝짝짝-!
박수와 환호가 들려왔다.
현장 근처에서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이 구조대에게 보내는 인사였다.
박상태를 비롯한 구조대원들은 이런 상황에 익숙한지 고개를 한 번 숙여주고는 주변 정리를 시작했다.
이번에는 수혁도 같이 움직였지만, 박정우는 제지하지 않았다.
그리 힘든 작업이 아니긴 했어도 긴장한 탓에 피로감이 몰려온 탓이었다.
또 박상태가 보고 있기도 했고.
수혁은 박정우의 눈치를 보며 장비들을 챙겼다.
‘음?’
그러다 살짝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손에 들고 있는 장비들의 무게를 합치면 20㎏이 훌쩍 넘었다.
그런데 마치 작은 아령 하나를 드는 것 정도의 힘밖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레벨 업이 좋긴 하네.’
수혁이 피식- 웃었다.
현재 수혁의 레벨은 고작해야 6레벨.
만약 이대로 20, 30레벨을 넘어가면 영화에서나 보던 히어로가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괜한 기대감에 장비를 옮기던 수혁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그러다 장비의 철수가 마무리될 때쯤, 문득 수혁은 뭔가 이상한 점을 느끼곤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지? 왜 퀘스트 완료가 안 뜨는 거지?’
지금까지의 경험에 비춰보면, 구조에 성공하는 즉시 퀘스트 완료가 떴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구조가 완료된 후, 구급차로 이송까지 끝낸 상태였다.
그럼에도 퀘스트는 완료되지 않았다.
왠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수혁은 퀘스트 창을 다시 읽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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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 : 요구조자들을 모두 구조하라!
*내용 : 지하 주차장에서 일어난 급발진 사고로 부상을 입고 구조를 기다리는 이들이 있다. 구조의 난이도는 높지 않지만, 시간이 촉박하다. 구조대의 도움을 기다리는 이들을 제시간 내에 모두 구조하라!
*보상 : 경험치, 스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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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이상했다.
‘요구조자를 구조하라, 가 아니고 요구조자들을 모두 구조하라?’
복수였다.
그 말은 요구조자가 한 명이 아닌, 최소한 두 명이라는 말이었다.
처음 퀘스트를 받았을 땐 운전자까지 포함해서 생각했기에 이상함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애초에 운전자는 수혁이 도착했을 당시 이미 후송이 완료된 상태였으니, 그를 제외하고 또 다른 요구조자가 있다는 말이었다.
“김수혁! 정리 다 됐으면 밍기적거리지 말고 빨리 차에 타라!”
박상태의 음성에 수혁의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앉았다.
만약 이대로 복귀한다면?
퀘스트는 실패하고 말 것이다.
아니, 퀘스트 실패 따위는 알 바 아니다.
어디선가 도움을 바라고 있을 요구조자의 목숨이 위태로워질 것이다.
“자, 잠깐만요.”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진 수혁이 박상태를 불러 세웠다.
“……무슨 일이야?”
어서 복귀해 지친 심신을 쉬게 하려던 박상태는 늦장을 부리고 있는 수혁에게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곧 수혁의 얼굴이 심상치 않음을 확인하고는 덩달아 굳은 표정으로 차에서 내렸다.
“요구조자가 한 명밖에 없는 거 확실해요?”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너도 아까 무전 들었잖아. 현장에도 다른 부상자들은 없었고.”
“다시 한 번만 확인해 주면 안 돼요? 아무래도 느낌이 안 좋은데.”
수혁 역시 무전을 들어 알고 있었다.
하지만 퀘스트가 또 다른 요구조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 마당에 이대로 그냥 돌아갈 수는 없었다.
“이 새끼, 또 이러네.”
박상태의 눈매가 좁아졌다.
수혁에게 평범하지 않은 뭔가가 있다는 것은 느끼고 있었지만, 이건 아니었다.
첫 발령 이후 고작 사흘.
그동안 친 사고가 두 번이었으니, 오늘까지 사고를 치면 하루에 한 번씩 치는 셈이었다.
이대로 가다간 징계위원회까지 열려 수혁에게 좋지 않은 일이 생길 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다.
“헛소리하지 말고 차에 타. 너 또 한 번 사고 치면 나도 더는 뒤 봐줄 수 없어.”
박상태의 음성에는 걱정이 서려 있었다.
하지만 수혁은 절대 이대로 복귀할 생각이 없었다.
사람의 목숨이 달린 일이었다.
‘어차피 찍힌 몸…….’
한 번 찍히나, 두 번 찍히나.
별문제 있겠냐는 생각도 들었다.
“끽해봐야 감봉 정도겠지.”
사람의 목숨을 구한 대가로 감봉이라면 싸게 먹힌 거다.
입술을 살짝 짓씹은 수혁이 박상태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수색 허가해 주세요. 분명 뭐가 더 있어요.”
욕을 처먹든, 징계를 당하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이제 수혁에게 생명을 구하는 일보다 중요한 것은 존재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박상태는 고개를 저었다.
구조가 끝난 현장에서 이렇게 서 있는 것은 시간 낭비였다.
괜히 시간을 지체했다가 다른 사고가 터져 구조에 늦는다면, 그야말로 재앙이었다.
“안 돼. 차에 타. 이건 명령이야.”
박상태의 음성은 단호했다.
“형님, 그냥 두고 가죠. 팀워크 해치는 놈 따위 우리 대에 둘 필요 없어요.”
차 안에서 싸늘한 음성이 들려왔다.
박정우였다.
“야, 넌 인마. 말을 그딴 식으로 하냐? 그래도 식군데.”
이재한과 박상태의 뒤를 이어 구조 3팀의 서열 3위인 이재한이 그런 박정우를 힐난했다.
“식구는 무슨. 뭐가 이쁘다고 식구입니까? 저놈은 그냥 여기서 코빼기도 안 보이는 요구조자나 찾으라고 하고 돌아가시죠.”
박상태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수혁의 행동이 벌써부터 구조대에 영향을 끼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좋지 않은 방향으로.
“들었지? 타라. 마지막으로 하는 명령이다. 이번에도 명령 무시하면 그냥 넘어가지 않…….”
“찾으면? 찾으면 어떻게 할 겁니까?”
“뭐?”
“제가 요구조자 찾으면 어떻게 할 거냐고요. 이대로 그냥 갔다가 사망자 나오면. 형이 책임질 거예요? 아니면 선배가 책임질 겁니까?”
수혁이 박상태와 박정우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구조대는 확신 없이 감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수혁의 말에 열이 받은 박정우가 차 밖으로 튀어나오며 소리쳤다.
그러고는 수혁의 멱살을 잡고 밀치며 말했다.
“네가 그렇게 잘났냐? 선배, 절차, 명령 다 무시해 가면서 행동할 정도로?”
“무시하자는 게 아니잖습니까? 시간을 조금만 주면…….”
“그게 그 말이지, 새끼야. 지금 네가 하고 있는 행동, 그 자체가 우리를 무시하고 있다는 거야!”
박정우의 말에 수혁은 입술을 깨문 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의 말에 틀린 것은 하나도 없었으니까.
죽일 듯 노려보던 박정우는, 수혁이 입을 다물자 심호흡을 하곤 차 안으로 들어갔다.
“타라. 더는 똑같은 말 하게 하지 말고.”
“그럴 수 없습니다.”
“이 새끼가 그래도……!”
다시 한 번 박정우가 발작하려는 것과 동시에, 수혁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생명 감지I’.’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던 스킬의 존재를 이제야 기억해 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