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8화
투우웅-
묵직한 진동과 함께 수혁을 중심으로 알 수 없는 파문이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 나갔다.
오직 수혁만이 듣고 볼 수 있는 광경.
스킬 ‘생명 감지I’가 발동되는 것과 동시에 퍼져 나간 파문은 마치 레이더처럼 주위 사람들의 숫자를 수혁에게 알려주었다.
‘이런 식이군.’
그렇게 알아낸 사람의 숫자는 총 13명.
수혁이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펴보았다.
“너……. 지금 내 말 무시하는 거냐?”
대화하다 갑자기 뒤를 돌아보니, 박정우의 입장에선 수혁이 마치 자신을 무시하는 것처럼 느꼈다.
화가 치밀어 오른 박정우가 수혁의 어깨를 거칠게 잡아끌었다.
“선배가 말하는데 뭐 하는 짓이야, 지금!”
그 광경에 더는 가만있으면 큰일이 벌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 박상태가 둘을 말리려 했다.
수혁의 말을 듣지 못했다면 말이다.
“열세 명. ……한 명이 부족해.”
수혁의 중얼거림에 박상태가 움찔- 하며 자신도 모르게 주변을 살펴보았다.
‘열두 명인데?’
순식간에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숫자를 파악한 박상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상태 형, 그냥 가죠.”
박정우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잠시 대기.”
“형!”
조금 전까지는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박상태가, 갑자기 수혁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 같자 박정우가 당황해 소리쳤다.
“그만, 조용히 해. 김수혁, 방금 뭐라고 했지? 다시 말해봐라.”
박상태는 수혁이 분명 열세 명이라고 말한 것을 들었다.
그리고 한 명이 부족하다는 것도.
수혁의 말에 따르면 지금 이곳에 보이지 않는 한 명이 더 있다는 뜻이었다.
그 한 명이 수혁이 말하는 요구조자일 확률이 높았고.
동시에 처음 함께했던 구조현장에서 수혁이 보여주었던 그 비정상적인 행동이 떠올랐다.
‘무슨, 무당이냐?’
혹시 수혁이 신기가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한 명. 근방 10m 내에 한 명 더 있습니다. 찾아야 해요.”
“말도 안 되는 소릴 하고 있어!”
“내 말 들어요, 정우 형. 후회하기 싫으면.”
박상태는 둘 사이에 몸을 집어넣으며 수혁의 눈동자를 쳐다보았다.
‘그날과 똑같군.’
확신에 가득 찬 눈.
수혁은 요구조자가 있다고 절대적으로 확신하고 있었다.
그것을 확인한 박상태는 한 번 수혁을 믿어보기로 했다.
감인지, 신기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인해 보고 싶었다.
“내려, 수색 시작한다.”
“상태 형!”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박정우가 깜짝 놀라며 소리쳤고, 차 안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이재한마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명령이다. 당장 수색해.”
수혁은 박상태의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사람이 있을 만한 곳을 뒤지기 시작했다.
네 명이 수색하기에 반경 10m라는 범위는 그리 넓은 크기가 아니었다.
주차장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하더라도 차 내부나 하부가 아니면 공간이 나오질 않았던 것이다.
‘천장… 은 아니고.’
환기통이 있기는 했지만 사람이 드나들 정도의 크기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남은 곳은 주위에 몇 곳 되지 않는다.
박정우와 이재한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렇다고 박상태의 명령을 무시할 순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수색을 시작했다.
네 명의 구조대원이 복귀하다 말고 갑자기 주차장 내부를 돌아다니기 시작하자, 흩어졌던 사람들이 다시 모여들었다.
“무슨 일이래?”
“모르겠어요. 자기들끼리 싸우다가 갑자기 이러네?”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건가?”
사람들의 수군거림에 박정우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정신병자 같은 놈 하나 때문에 이 무슨 헛짓거리란 말인가?
‘X새끼, 수색 끝나고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으면 넌 나한테 뒤졌다.’
왠지 수혁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박상태가 말리더라도,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자신의 힘만으로 힘들다면 고한선에게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해서라도 가만두지 않겠다며 이를 갈았다.
한편 수혁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사람이 있을 만한 곳은 거의 다 둘러보았지만,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런 성과 없이 시간이 흐르자 수혁의 이마에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선배들과 척을 지면서까지 시작한 수색이었으니, 초조해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만약 이대로 요구조자를 찾지 못한다면…….
나름대로 각오를 하고 저지른 일이었지만, 불안감은 계속해서 커져만 갔다.
“없습니다.”
“저도 발견 못 했어요.”
수색을 끝낸 박정우와 이재한이 박상태에게 보고했다.
박상태 역시 아무런 흔적을 찾지 못해 난감한 표정이었다.
‘내가 잘못 생각한 건가?’
수혁에게 자신이 모르는 특별한 뭔가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냥 말도 되지 않는 헛된 기대에 불과했던 것 같았다.
더 이상의 수색은 무의미하다고 판단한 박상태가 슬쩍 손목시계를 확인하고는 수혁에게 고개를 돌렸다.
“김수혁, 수색 종료다. 이만 복귀…….”
“잠시만요!”
수혁이 간절한 표정으로 박상태를 쳐다봤다.
절대 이대로 수색을 끝내선 안 된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거기까지만 하자.”
중립적인 태도를 보이던 이재한마저 고개를 저으며 수혁을 말렸다.
수혁 역시 이 이상 자신의 뜻을 관철하는 것이 무리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전생이었다면 모를까, 지금의 수혁은 배치받은 지 고작 3일밖에 되지 않은 신출내기였으니까.
수혁은 깊고 무거운 한숨을 내쉰 뒤, 선배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요구조자의 존재 여부는 둘째 치고, 자신이 무례했던 것은 사실이었으니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 했다.
“별 거지 같은 놈 때문에 시간만…….”
“그만해.”
“저 이대로 그냥은 못 넘어갑니다. 징계를 받게 하든지, 뭘 하든지. 멋대로 행동한 대가를 꼭 받아낼 겁니다.”
박상태는 씹어 먹듯 욕설을 내뱉는 박정우를 말리지 못했다.
자신 역시 수혁을 믿은 게 실수라면 실수였으니 말이다.
어깨가 축 처진 수혁이 구조차를 향해 걸음을 옮길 때였다.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견인차 한 대가 빠르게 지하주차장으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급발진 사고 차량을 견인해 가려는 듯했다.
수혁을 포함한 대원들의 시선이 견인차를 향했다가, 자연스럽게 사고 차량으로 옮겨갔다.
그러다 수혁과 박상태의 머릿속에서 뭔가가 번뜩였다.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사고 차량을 향해 뛰어갔다.
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란 박정우가 소리쳤다.
“팀장님!”
“장비 챙겨서 따라와!”
하지만 박상태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그런 박정우에게 명령했다.
먼저 도착한 것은 수혁이었다.
박상태보다 젊은 데다가 레벨 업을 통해 신체 능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했기 때문이었다.
수혁은 도착하는 것과 동시에 심호흡 한 번 하지 않고 바로 트렁크를 두드렸다.
쾅쾅쾅-!
“여기 누구 있습니까!”
뒤늦게 도착한 박상태가 트렁크를 향해 귀를 가져다 댔다.
그러곤 수혁과 눈을 마주친 다음 고개를 저었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수혁은 얼굴을 찡그리며 다시 한 번 있는 힘껏 트렁크를 내려쳤다.
쾅쾅-!
어찌나 세게 두드렸는지, 트렁크의 철판이 움푹- 들어갈 정도였다.
“있으면 대답해 주세요! 이 안에 사람 있습니까?”
크게 외친 수혁이 손가락을 입에 대곤 주위의 구경꾼들을 향해 조용히 하라 소리쳤다.
견인차의 사이렌까지 끄자 주차장 내부는 바늘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정도의 적막이 흘렀다.
박상태는 두 눈을 감고 귀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하지만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이번에도 잘못 생각한 것 같다며 박상태가 귀를 떼려던 바로 그때였다.
“어, 엄마…….”
수혁과 박상태의 몸이 굳었다.
그러곤 다시 귀를 가져다 댔다.
“엄마아아.”
“박정우! 당장 뛰어와서 트렁크 따!”
박상태가 소리쳤고, 동시에 수혁은 무전기를 들었다.
“요구조자 발견, 요구조자 발견. 급발진차량 트렁크에 10세가량으로 추정되는 아이가 갇혀 있습니다. 부상 정도는 아직 육안으로 파악이 불가능하며, 말을 하는 것으로 보아 의식은 있지만, 드라우지(Drowsy:기면)이나 스투퍼(Stupor:혼미) 정도로 보입니다. 지금 바로 구조 시작할 테니, 당장 구급대 출동 부탁드립니다!”
수혁의 보고에 상황실은 당황했다.
급발진 현장에 나가 구조에 성공하고, 복귀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요구조자라니?
묻고 싶은 말이 한가득이었지만, 일단 수혁의 요청대로 구급차를 출동시키는 것이 급선무였기에 질문은 뒤로 미뤘다.
수혁은 보고를 끝내고는 곧장 트렁크에 붙었다.
벽과 충돌한 전방과는 달리 후방의 상태는 양호했지만, 충격에 어딘가 비틀렸는지 트렁크는 열리지 않았다.
결국 박정우가 급하게 가져온 유압 스프레다를 끼워 넣고 작동시키는 수밖에 없었다.
쩌어어어어억-!
굳게 닫혀 있던 트렁크가 열리며 비릿한 냄새가 확- 하고 퍼져 나왔다.
‘피 냄새!’
비릿하고 역한, 그리고 익숙한 그 냄새의 정체는 바로 피 냄새였다.
끼이이익-!
차체가 뒤틀려 잘 열리지 않는 문을 강제로 열어 젖혔다.
“이런, 썅!”
완전히 드러난 트렁크 내부의 모습에 수혁이 자기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었다.
“지혈 도구 가져와! 지금 당장!”
트렁크 안에 있던 요구조자의 정체는 수혁이 예상한 대로 10세 전후로 보이는 여자아이였다.
고작해야 수혁의 허리 정도밖에 되지 않는 작은 아이가 피를 흘리며 트렁크에 갇혀 있었던 것이다.
사고의 여파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인지.
아이의 얼굴은 엉망이었다.
퉁퉁- 붓고 찢어져, 피부색이 본래 검붉은색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다른 곳 역시 마찬가지였다.
팔도 부러져 있는 것 같았고, 성한 곳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을 정도.
“엄마…….”
아이는 의식이 혼미한 상태에서도 엄마를 찾았다.
수혁은 그런 아이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으며 말했다.
“괜찮아. 이제 곧 엄마 만나게 해줄게.”
아이를 안심시키듯 속삭인 수혁이 박상태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이거 아무래도…….”
박상태는 수혁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수 있었다.
“확인을 해봐야겠지만, 내 생각도 마찬가지다. 일단 운전자가 실려갔다는 병원과 경찰에 연락해 놓을 테니, 너는 구급차 올 때까지 아이 컨디션이나 케어하고 있어.”
“네, 알겠습니다.”
작게 고개를 끄덕인 수혁은 박정우가 어느새 가져온 응급처치 키트를 가지고 지혈하기 시작했다.
뒤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박정우와 이재한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리 다급한 상황이라 하더라도, 박상태가 남에게 구조자의 상태를 맡기다니?
그것도 갓 시작한 햇병아리에게 말이다.
아니, 그보다도 놀라운 것은 따로 있었다.
‘대체 어떻게 요구조자가 있다는 걸 안 거지?’
그런 정보는커녕, 손톱만큼의 조짐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수혁을 미친놈 취급했던 것이 아닌가?
그런데 정말로 요구조자가 있었다.
예상치 못한 곳에, 상상도 하지 못한 아이가.
박정우는 자신도 모르게 응급처치를 하고 있는 수혁의 어깨에 손을 얹고 말했다.
“너……. 대체 정체가 뭐야?”
그 질문에 수혁은 움찔- 하고 놀랐지만, 손을 멈추진 않았다.
대신 당연한 걸 묻는다는 듯, 덤덤하게 대답했다.
“소방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