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12화
째깍, 째깍.
사무실은 적막했다.
몇몇은 운동하러 갔고, 몇몇은 개인 장비 정비를 하고 있었다.
일찍이 장구류 정비를 끝낸 수혁은 책상에 앉아 서류를 들여다봤다.
출동을 다녀온 뒤라면 빼먹지 말고 작성해야 하는 일지.
수혁의 시선은 그것에 닿아 있었지만, 머릿속은 온통 시간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벌써 오후 4시.’
지금쯤이면 슬슬 화재가 시작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출동하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남아 있을 터였다.
화재가 일어나는 산은 수혁이 근무하는 신일 소방서의 관할 지역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수혁이 출동하는 것은, 산불의 규모가 심상치 않음을 깨닫고 지원 요청이 들어왔을 때였다.
오도독-
긴장감을 이기지 못한 수혁이 자신도 모르게 손톱을 씹었다.
“뭐 하냐?”
움찔-
갑자기 들려온 박상태의 음성에 수혁이 깜짝 놀랐다.
“예?”
“뭐 하냐고.”
박상태는 턱짓으로 수혁의 손가락을 가리켰다.
“집에 무슨 일이라도 있어?”
“아, 아니요.”
“그런데 왜 그렇게 안절부절못하고 있냐, 똥 마려운 개처럼.”
박상태의 말에 수혁이 어색하게 미소 지었다.
아무래도 자신이 긴장한 내색을 많이 내보인 것 같았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다행히 박상태가 말을 걸어주는 바람에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긴장의 끈이 조금 느슨해진 기분이었다.
박상태는 그런 수혁의 모습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혹시 또 감이 안 좋거나 그런 건 아니지?”
순간 수혁은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자 반쯤 장난으로 말을 꺼냈던 박상태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박상태는 소위 말하는 수혁의 그 감이라는 것을 꽤나 신용하는 편이었다.
그렇다고 수혁이 무슨 예언가나 신기가 있다고까지 믿는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들과는 다른 뭔가가 있다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껏 수혁의 말은 틀린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마치 ‘알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말해봐, 또 무슨 일이야?”
박상태는 주변을 둘러보며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조용히 물었다.
그래도 나름 최고참인 자신이 고작해야 한 달밖에 되지 않은 신입한테 이런 것을 묻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좋지 않았다.
박상태 자신에게도 그렇고, 수혁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수혁은 가뜩이나 미운털이 박혀 있었으니…….
“어, 음.”
수혁이 은근한 박상태의 음성에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산불이 날 거라고 말을 해줄 수도 없고.’
그건 단순한 감이나 예측의 영역이 아니었다.
세상에 어떤 감이 조금 이따 산불이 터질 거란 것까지 알게 해준단 말인가?
때문에 수혁은 대충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그냥 좀 마음이 좀 싱숭생숭하네요.”
어색하게 하하- 웃으며 대답하는 수혁의 모습에 박상태는 의심스럽다는 눈빛을 보냈다.
하지만 그렇다고 수혁을 추궁할 수도 없는 일.
박상태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요즘 너무 무리한 거 아니냐? 아무리 체력이 좋다고 해도 조금씩 요령도 부리고 해야 나중에 탈 안 난다.”
“걱정 안 하셔도 돼요.”
빈말이 아니었다.
실제로 수혁은 미쳤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의 체력을 지니고 있었으니까.
“인마, 형이 말을 하면 들…….”
박상태가 씨익- 하면서 웃는 수혁을 향해 핀잔을 주려던 바로 그때였다.
[화재 출동, 화재 출동.]
스피커에서 요란한 사이렌과 함께 출동 명령이 터져 나왔다.
벌떡-!
수혁은 기다렸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뛰어!”
박상태 역시 곧바로 밖을 향해 뛰쳐나갔다.
이 출동이 산불로 인한 것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수혁은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직감적이라거나 느낌이 그렇다는 애매한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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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 : 최대한 많은 요구조자를 구조하라!
*내용 : 대형 산불 발생! 수많은 사람이 산불로 인해 목숨을 위협받고 있다. 조금이라도 지체했다간 수십 명의 희생자를 낼지도 모른다. 늦기 전에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요구조자를 구조하라!
*보상 : 경험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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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
글자에 불과했지만, 그 문장에서는 다급함이 느껴졌다.
수혁은 앞서 달려가던 박상태를 순식간에 추월하고는 가장 먼저 구조 차량에 올라탔다.
“출발!”
박상태를 비롯한 나머지 구조대원들이 뒤이어 차량에 탑승하자, 곧바로 차가 출발했다.
왜애애애앵-!
출동한 것은 구조대뿐만이 아니었다.
소방서 내의 모든 펌프차와 구급차들까지 쏟아져 나왔다.
그것만 봐도 화재의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짐작할 수가 있었다.
“상황 부탁드립니다.”
무전기를 잡은 박상태가 묻자, 지직- 하는 노이즈와 함께 상황실의 긴박한 음성이 들려왔다.
[조연산 일대에 화재가 일어났습니다. 화재 규모가 너무 커서 주변의 모든 소방서에 지원 요청이 들어온 상태입니다.]
“파악된 요구조자는 몇 명이나 됩니까?”
산불을 끄는 것도 중요했지만, 박상태는 구조대원이었다.
불을 끄는 것은 화재 진압대에게 맡기고, 자신들은 혹시 모를 조난자들을 구조해야만 했다.
박상태는 질문하면서도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애초에 산불이란 것이 인명피해보다는 재산 피해가 큰 종류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어진 무전기의 음성에, 박상태는 얼굴을 딱딱하게 굳힐 수밖에 없었다.
[알려진 수만 32명입니다. 그것도 최소한으로 잡은 것이고, 그 이상 얼마나 되는지는 아직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최소한 32명이라니!
12월의 겨울 산에, 그것도 딱히 볼 것도 없는 흔한 동네 뒷산에!
“작년에 오픈한 캠핑장 때문일 거예요.”
어리둥절해하는 박상태를 향해 수혁이 설명을 덧붙였다.
“아!”
그쪽 관할이 아니라 잘 모르고 있었지만, 새로 캠핑장이 생겼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도 같았다.
“안 좋은데…….”
구조 3팀의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요구조자의 숫자가 많다는 것도 문제였지만,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바로 자신들이 조연산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혹시 모를 산불에 대비해 숙지하긴 했지만, 솔직히 그것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관할 지역도 아니었을뿐더러, 그리 큰 산이 아니었기에 굳이 신경을 쓰지 않았던 탓이다.
그런데 요구조자가 저렇게 많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지도 가져와!”
박상태의 외침과 동시에 수혁이 지도를 건넸다.
마치 미리 준비하고 있었던 것 같은 수혁의 태도에 박상태의 눈이 가늘어졌다.
‘설마…….’
박상태는 무슨 생각을 떠올렸는지 수혁을 빤히 쳐다보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겠지.’
순간 떠오른 의심을 지워내고는 지도를 펼쳤다.
“음.”
산은 넓었다.
산세가 험하지는 않았지만, 이런 상황에서 그 널따란 크기는 구조에 충분히 장애가 될 수 있었다.
“캠핑장이 어디야?”
캠핑장이 만들어지기 전의 지도였는지, 지도에는 위치가 표시되어있지 않았다.
“여깁니다.”
수혁은 박상태의 물음에 곧장 손가락을 뻗어 한 곳을 가리켰다.
“……안 좋아.”
캠핑장의 위치를 확인한 박상태가 얼굴을 찌푸리며 다시 한 번 되뇌었다.
캠핑장은 산속 깊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어느 쪽으로든 빠져나가기 위해선 한참을 걸어야만 할 정도로 말이다.
“차는 들어갈 수 있지?”
박상태가 수혁을 향해 물었다.
물론 캠핑장까지 연결되어 있는 도로는 있었다.
차박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니 차 한두 대 정도는 충분히 오갈 수 있는 길이었다.
하지만…….
수혁은 알고 있었다.
그 길은 지금 쓸 수가 없다.
이미 화재가 그 길을 집어삼킨 상태일 테니 말이다.
“도로가 있긴 한데요…….”
수혁의 말투에서 뭔가를 느낀 것일까?
박상태는 가라앉은 눈으로 다시 지도를 살폈다.
‘만약 길이 끊겼다면?’
수혁이 자세히 말을 하진 않았지만, 방금 그 말에서는 길을 쓸 수 없다는 뉘앙스가 팍팍- 풍겨왔다.
어떻게 수혁이 그런 것을 알고 있는지는 제쳐 놓고, 만약 정말로 차가 들어갈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을 해보았다.
“답이 없네, 이거.”
캠핑장 주변은 울창한 숲으로 뒤덮여 있었다.
한겨울의 숲.
그것은 마른 장작이 쌓여 있다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만약 시간을 조금이라도 지체한다면, 불길은 사람들이 대피하는 속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퍼져 나갈 것이다.
“도착했습니다!”
기관원의 외침과 동시에 차가 멈추었다.
구조 3팀의 대원들은 지체하지 않고 차 문을 열고는 밖으로 뛰어나왔다.
그러고는 움직임을 멈추었다.
“미친…….”
“하.”
박상태와 김강식이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을 내뱉었다.
그것은 수혁 역시 마찬가지.
전생에서의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제대로 숨을 쉴 수도 없을 정도로 뜨거운 열기와 깜깜한 밤하늘을 환하게 비출 정도로 거대한 불길.
산불은 이미 쉽게 손을 댈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해진 상태였다.
불의 산이라 칭해도 이상하지 않을 광경.
수많은 화재 현장을 다녔지만, 이 정도의 대형 화재를 처음 목도한 구조대원들은 그야말로 압도당한 상태였다.
베테랑 중 베테랑은 박상태마저도 그랬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때,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바로 수혁이었다.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상황에 수혁은 홀로 장비들을 내리기 시작했다.
왠지 이질적인 모습이었다.
선배들도 겁을 집어먹은 상황에, 새파란 신입 혼자 상황파악을 하고 움직이는 모습은.
하지만 그 덕분에 다른 사람들이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우, 움직여!”
박상태는 방금 전의 자신이 부끄러웠는지 얼굴을 붉히며 소리쳤다.
그러고는 한쪽에 세워져 있는 상황 본부를 향했다.
구조할 땐 하더라도, 일단은 정확한 상황을 알아야만 했으니까.
박상태가 사라지자 수혁은 장비를 내리며 주변을 살펴보았다.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펌프차만 거의 30대 정도가 도열해 있었고, 그 사이를 뛰어다니는 소방관들은 백 명은 족히 넘어 보였다.
비명과도 같은 외침과 분주하게 오가는 이들만 봐도 상황이 얼마나 급박한지 알 수가 있었다.
수혁은 그들을 잠시 살펴보다 장비 몇 가지를 챙겨 들었다.
봄베와 같은 무거운 것들은 제외했다.
보조 마스크 몇 개와 도끼, 그리고 개인용 산불 진화 장비인 등짐 펌프 하나.
그것들을 챙긴 수혁은 혼란을 틈타 조용히 움직였다.
그리고 잠시 후.
수혁은 그 어떤 곳에서도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