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15화
“누구……?”
이강현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수혁을 쳐다봤다.
수혁이 구조대원이라는 것은 복장만 봐도 알 수가 있었다.
하지만 구조대원이 왜? 어떻게? 이곳에 있는지는 이해하지 못했다.
혹시 지휘부에서 이쪽에 문제가 생겼다는 걸 알아차리고 벌써 구조대를 파견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일서 구조 3팀 대원 김수혁입니다.”
수혁은 안도의 미소를 지으며 이강현과 요구조자들을 향해 다가갔다.
“다른 분들은 어디 계십니까?”
주변을 살펴봐도 수혁 한 명밖에는 보이지 않았기에 이강현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그러자 수혁은 살짝 쓴웃음을 지으며 이강현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게 말했다.
“저 혼자입니다.”
수혁의 대답에 이강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게 무슨?”
“지원을 온 것은 저 혼자라는 말입니다.”
“허!”
이강현은 헛웃음을 지으며 수혁의 얼굴을 살폈다.
검댕이와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는 것으로 봐선 고생깨나 한 모습이었다.
“다른 지원은 없습니까?”
“당분간은…….”
지금도 회의는 하고 있을 것이다.
다만 이들의 현재 위치를 특정지을 수 없는 데다, 인력 부족으로 진행이 더딜 뿐.
이강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잠깐 반짝였던 희망이 빠르게 그 모습을 감추었다.
“그런데 어떻게 오신 겁니까?”
이강현은 수혁의 나이가 아직 젊다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예의를 잃지 않았다.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구조대를 홀로 이탈해 도우러 왔다고 말할 순 없었기에, 수혁은 이강현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저분들이 전부입니까?”
수혁의 말에 이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캠핑장에 있던 인원은 저분들이 전부입니다.”
수혁은 대충 숫자를 헤아려보았다.
총 32명.
상황실에서 알려온 숫자와 일치했다.
하지만 구조를 기다리는 이들은 이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산 중턱에 있는 작은 사찰의 스님들과 산책을 나온 주민들, 그리고 산불을 진화하다 갇혀 버린 소방관들까지.
구해야 할 이들은 이들 말고도 많았다.
“일단 움직이시죠.”
잠깐 시간을 지체했다고 매캐한 연기가 스멀스멀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이강현 역시 그것을 느꼈는지 수혁의 말에 동의하고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 쪽으로 가고 계신 겁니까?”
“여기로 가는 중입니다.”
이강현은 품에서 지도를 꺼내 수혁에게 보여주었다.
지도는 작은 동그라미와 선으로 뒤덮여 있었다.
이강현이 그중 하나를 찍어주자 수혁의 눈이 가늘어졌다.
“여긴…….”
“거기라면 물도 있고, 주변에 나무도 없어서 다른 구조대가 도착할 때까지 시간을 벌 수 있을 겁니다.”
틀린 말은 아니다.
확실히 이런 환경이라면 불을 피해 한없이 도망 다니는 것보단 나았다.
하지만 수혁은 고개를 저었다.
“여긴 안 됩니다.”
“……뭐요?”
이강현은 수혁의 말에 인상을 찌푸렸다.
수혁에 대해 예의를 갖추고 대우를 해주고 있긴 했지만, 그것이 수혁을 인정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저 자신들을 돕기 위해 달려온 것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일 뿐.
수혁의 나이로 미루어 짐작해 보건대, 고작해야 이제 시보를 벗어난 소방사에 불과할 것이다.
즉, 다시 말해서 이강현과 비교해 보면 새파란 애송이라는 뜻이었다.
그런 수혁이 자신의 계획에 대해 제동을 걸다니?
당황스럽다 못해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수혁은 그런 이강현의 기색을 눈치챘지만, 일부러 무시했다.
지금은 그런 것 하나하나에 반응할 시간이 없었다.
“이곳 지형을 보시면, 제 말에 동의하실 겁니다.”
분명 물가는 메리트가 있는 장소였다.
만약 수혁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였다면, 그 역시 이곳을 선택했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이 장소만은 절대 피해야만 했다.
“말씀하신 대로 그곳은 불길이 확산되기 어려운 지형입니다. 물도 있으니 탈수를 방지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지도를 잘 보시면 그곳은 작은 분지의 형태를 이루고 있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강현은 기분이 상하긴 했지만, 일단은 수혁의 말대로 지도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아까는 신경쓰지 못했지만, 지금 다시 보니 확실히 수혁의 말처럼 분지의 형상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분지보다는 움푹 안쪽으로 패인 형태.
“그런데 그게 어쨌다는 겁니까?”
이강현은 이해하지 못한 얼굴로 수혁에게 물었다.
분지의 형태인 것은 맞다.
하지만 그게 뭐 어떻단 말인가?
“화재 현장에서 조심해야 할 것은 불길만이 아니라는 것은 아실 것 아닙니까?”
화재 시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내는 것은 불이 아니었다.
“연기……?”
“예, 그렇습니다.”
수혁은 대답은 그것이 끝이었다.
그리고 이강현은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 같은 표정으로 다시 한 번 지도를 살폈다.
휘하 대원이 파악한 화재 지점과 풍향, 그리고 자신이 직접 선택했던 곳에 연관점을 이어보았다.
“이런 미……!”
순간 욕을 내뱉을 뻔한 이강현은 뒤에 있는 요구조자들을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실수할 뻔했다!’
일단 불길을 피해 안전한 곳을 찾느라 신경 쓰지 못했던 것이 이제야 눈에 들어왔다.
‘위험한 곳이야.’
처음 생각한 대로 불길은 그곳까지 번지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연기는 아니었다.
오히려 화재 지점에서부터 시작된 연기가 그곳을 향해 모여드는 형세였다.
만약 그곳으로 향한다면, 한 시간도 채 버티지 못하고 연기에 질식할 확률이 높았다.
이강현은 충격을 받은 눈으로 수혁을 쳐다보았다.
“어떻게 안 겁니까?”
7년이다.
이강현이 구조대 활동을 한 지.
아직 베테랑 소리를 들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현장에서 7년이면 잔뼈가 굵어질 대로 굵어진 상태였다.
그런 이강현도 눈치채지 못한 것을 고작해야 이십대에 불과한 젊은 구조대원이 알아차렸다는 게 믿을 수가 없었다.
“어쩌다 보니…….”
수혁이 말한 것은 단순한 이론이 아니었다.
10년이 넘는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확신이었다.
실제로 이전 생에서 저들은 대부분 사망했다.
정확히 어떻게 죽었는지는 떠올리지 못했지만, 지도를 보고는 알 수 있었다.
저들은 물가로 이동을 했다가 연기에 휩싸였던 것이다.
“박종훈!”
이강현은 요구조자들의 뒤쪽에 서 있던 박종훈을 불렀다.
이동하며 계속해서 화재 지점을 체크하던 대원이었다.
박종훈은 의아한 얼굴로 재빠르게 달려왔다.
“무슨 일이십니까?”
새로운 구조대원을 만나서 이제 고생이 끝났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강현의 표정을 보아하니 뭔가 문제가 생긴 모양이었다.
“경로 다시 짜. 여긴 안 되겠다.”
박종훈의 얼굴이 굳어졌다.
“하지만 선배, 여기가 제일 안전…….”
“위험해.”
이강현은 박종훈에게 빠르게 설명을 해주었다.
설명이 진행되며 박종훈의 얼굴은 서서히 사색이 되었다.
그의 말대로라면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몽땅 죽을 뻔했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빨리 다른 경로 찾아.”
박종훈은 이 조연산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어릴 적부터 이 근방에 살아서 이 산을 제집처럼 드나들었고, 조연서에 배치받은 뒤로도 수십 번의 출동을 해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도를 보는 박종훈의 얼굴을 펴질 생각을 하지 못했다.
도저히 방법이 생각나질 않았다.
산불은 이미 자신들을 둘러싼 상태로 퍼져 빠져나갈 구멍은 보이지 않았고, 안전한 곳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갑자기 움직임을 멈추는 바람에 한숨 돌리고 있던 사람들은 왠지 심각해진 분위기에 점점 불안해졌다.
그들 역시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눈치챈 것이다.
박종훈이 지지부진하자 가만히 그들을 지켜보고 있던 수혁이 나섰다.
“이쪽으로 가시죠.”
수혁이 손을 내밀어 박종훈이 보고 있던 지도의 한 지점을 찍었다.
박종훈이 고개를 들었다.
“뭡니까?”
수혁을 쳐다보는 박종훈의 표정에는 분명 불쾌감이 서려 있었다.
그것은 단순히 자신이 수혁보다 이 산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자부심에서 생긴 것이 아니었다.
그저 수혁이 찍은 곳이 너무도 터무니없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여기는 안전한 곳이 아닙니다.”
이강현 역시 수혁이 가리킨 곳을 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거기는 불을 피할 수 있는 곳이 아닌데?”
오히려 자칫 잘못했다간 통구이가 되기 딱 좋은 곳이었다.
그렇다고 연기를 피할 수 있는 지형인 것도 아니었다.
여기로 피신하느니, 처음 이강현이 선택한 곳으로 향하는 편이 백 배는 안전할 것이다.
하지만 수혁은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이곳으로 가면 살 수 있습니다.”
이강현은 그런 수혁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그리고 수혁의 얼굴에서 강한 확신을 읽을 수 있었다.
때문에 고민이 되었다.
아직 젊어 경험이 부족해 보였지만, 조금 전의 일을 떠올려 보면 마냥 무시하기도 힘들었다.
“설마 제가 아무런 준비도 없이 왔겠습니까? 이곳으로 가면 살 수 있습니다. 믿어주세요.”
수혁은 이강현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안 됩니다!”
왠지 이강현이 흔들리는 듯 보이자 박종훈이 펄쩍- 뛰며 소리쳤다.
조연산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박종훈은, 저 위치가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알고 있었다.
아니, 애초에 이 산불 속에서 안전한 장소를 찾기 힘들긴 했지만…….
그래도 그곳은 아니었다.
이강현은 눈을 감고 잠시 고민했다.
이성은 수혁의 말을 거부하라고 계속해서 외쳤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믿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것은 수혁의 얼굴에 드러나 있는 자신감 때문이었다.
웬만한 확신이 있지 않은 이상, 저런 표정을 지을 리가 없었다.
갈등하던 이강현은 결정했는지 눈을 뜨고는 수혁을 향해 입을 열었다.
“한번 믿어보지.”
“선배!”
“조용히 해. 사람들 불안해한다.”
이강현은 박종훈을 한 번 노려보고는 수혁에게 물었다.
“확실한 거겠지?”
존대는 어디로 갔는지 어느새 수혁을 향해 말을 놓고 있었다.
“물론입니다. 저도 이런 곳에서 죽고 싶진 않거든요.”
수혁은 작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일 잘못되면 죽어서도 가만 안 둘 테니까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이강현은 수혁에게 세웠던 벽을 허물었는지, 훨씬 편한 태도로 대했다.
“걱정은 붙들어 매십쇼.”
수혁 역시 자신을 믿어준 이강현에 대해 호감을 느끼며 장난스럽게 대답했다.
“다시 움직입시다!”
박종훈은 그런 수혁과 이강현을 불만이 가득 담긴 눈으로 쳐다보다 고개를 저으며 뒤쪽으로 이동했다.
이강현이 결정한 일이니 이제 되돌릴 수 없다.
제발 일이 잘 풀리기만을 바랄 뿐.
수혁과 일행은 빠르게 움직였다.
목적지가 그리 먼 곳은 아니었지만, 중간중간 불길과 연기를 피해 이동을 해야 했기에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사람들은 점점 지쳐 갔다.
그것은 구조대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일반인들보다 체력이 좋다고는 하지만, 이런 산속을 헤매는데 그들이라고 용빼는 재주가 있을 리 없었다.
하지만 아무도 불평하는 이는 없었다.
수혁 때문이다.
수혁은 체력이 바닥나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아줌마 한 명을 등에 업은 채로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괴물인가?’
이강현은 그런 수혁의 뒷모습을 경악이 서린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무거운 방화복을 입고, 사람을 한 명 둘러업은 채로 이런 산속을 움직인다?
잠시간이라면 모를까, 수혁처럼 이런 긴 시간 동안 움직일 자신은 없었다.
‘체력 검정하면 무조건 1등이겠구만.’
도저히 사람으로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마침내 수혁과 일행은 목적지에 도달했다.
“어?”
“이게 뭐야?”
이강현과 박종훈이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눈앞에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