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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18화 (18/425)

레스큐 시스템 18화

예상대로 화점은 이곳저곳에 퍼져 있었다.

정상까지 가는 도중 만난 곳만 따져도 벌써 다섯 곳이 넘을 정도였으니, 화재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었다.

“이거 진화하려면 꽤 힘들 거 같은데.”

이강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인명구조는 당연히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화재 진압 역시 절대로 간과해서는 안 될 중요한 일이었다.

그런데 화재가 이 정도로 광범위하게 번져 있다면 진압이 쉬울 리가 없었다.

“그래도 날이 밝으면 소방헬기들이 투입될 테니 생각보단 빠르게 잡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도 힘들긴 마찬가지야. 헬기만으로 진압하기에는 화재 지역이 너무 넓어.”

그렇긴 했다.

하지만 수혁이 기억하기론, 산불을 진압하기 위해 출동하는 것은 소방 헬기뿐만이 아니었다.

부족한 소방 인력을 대체하기 위해 의용 소방대와 인근 도시에 있는 서의 지원, 그리고 무려 로젠바우어 판터까지 투입된다.

9,000ℓ가 넘는 물과 1,200ℓ의 거품 화합물을 저장할 수 있고, 분당 7,000ℓ에 달하는 물을 분사할 수 있는 괴물 소방차량.

도시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공항에 있던 것이 이번 산불에 지원을 나온 것이다.

로젠바우어 판터와 2백여 대에 달하는 펌프차, 그리고 지원을 나온 소방관들까지 합치면 산불을 진압하는 것에는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절대 쉬운 일은 아니지만.’

반면 이강현의 표정은 수혁의 말에도 펴질 줄 몰랐다.

그가 조연서에서 근무한 시간이 7년이다.

이 산에서 산불이 일어난 것은 처음이 아니다.

하지만 이 정도의 대규모 산불이 일어난 적은 없었다.

이강현은 그것이 불안했다.

이 신도시에서 일어나는 재난은 점점 그 횟수와 규모가 커지고 있었다.

“이거 이러다 정말 큰일 나는 거 아닌지 몰라.”

“큰일이요?”

갑작스러운 이강현의 말에 수혁이 고개를 돌려 물었다.

이강현은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그러자 수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수혁 역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알고 있었다.

수혁이 새 삶을 시작한 이후로 크고 작은 재난들은 끊이지 않고 발생했다.

하지만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는, 이런 산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위험한 것들도 있다.

수백 명 단위의 희생자와 수백억 단위의 재산 피해를 내는 재난들.

수혁은 그것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혹시 하인리히의 법칙이라고 아세요?”

수혁은 잠시 쉴 겸 걸음을 멈추고 이강현에게 물었다.

“하인리히의 법칙?”

이강현은 처음 듣는 듯했다.

“큰 사고는 우연히,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발생하는 게 아니라 그전에 반드시 경미한 사고들이 반복된 뒤 발생한다는 이론이에요.”

한 번의 중대한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 경상의 사고 29건, 경미한 무상해 사고가 300건이 발생 된다고 해서 ‘1:29:300’ 법칙이라고도 한다.

쉽게 말해, 큰 재난은 사소한 것들을 방치할 때 발생한다는 뜻.

수혁의 설명에 이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인리히의 법칙을 알지는 못했지만, 경험상 그것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라는 것을 체감하고 있는 덕분이었다.

“지금 상황이 전조일 수도 있어요.”

조연산 산불이 경미하다고 할 만한 규모는 아니었지만, 수혁은 이것이 진짜 큰 재난이 일어나기 전의 전조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그건 너무 비약 아닌가?”

이강현은 애써 수혁의 말을 부정하고 싶었다.

정말로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그때는 정말 큰일이었으니 말이다.

“그건 두고 보면 알 일이죠.”

수혁은 굳이 설명하지 않았다.

말해봐야 큰 의미도 없었고, 이제 다시 움직일 시간도 되었다.

“이제 거의 정상이 보일 때가 된 것 같은데.”

수혁은 지도를 꺼내 들며 자신들의 위치를 확인했다.

생각대로 이제 정상까지는 코앞이라고 해도 될 정도까지 도달했다.

이쯤 되면 슬슬 구조 3팀이나 요구조자들 중 누구를 만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요구조자들은 어디 있을까?”

이강현이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

대답을 듣기 위한 질문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같이 행동했으니, 수혁도 모를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물론 이강현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수혁은 요구조자들이 정확히 어디 있는지 알지 못했으니까.

전생에서 수혁은 이쪽이 아닌, 캠핑장 쪽으로 향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수혁은 이강현의 눈치를 보며 그에게 들리지 않는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 ‘생명 탐지II’.”

투웅-

동심원이 퍼져 나갔다.

파장은 순식간에 주변 산세를 뒤덮으며 수혁에게 정보를 가져다주었다.

‘찾았다!’

스킬에 감지된 생명체는 크게 두 부류로 나뉘었다.

움직이지 않고 한곳에 뭉쳐 있는 네 명과 빠른 속도로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열두 명.

요구조자와 구조 3팀이 틀림없었다.

‘이거 진짜 사기네.’

이전에도 유용했지만, Ⅱ로 업그레이드된 후에는 정말로 사기라고 불러도 될 정도의 능력이었다.

솔직히 웬만한 현장에서는 이 스킬 하나만으로도 대부분의 요구조자들을 구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

수혁은 잡생각을 털어내고는 한쪽을 가리켰다.

“이쪽입니다.”

“뭐?”

확신에 찬 수혁의 태도에 이강현의 눈이 커졌다.

“그걸 어떻게 알아?”

지금껏 수혁의 행동으로 봤을 땐, 요구조자들의 정확한 위치를 모르는 것이 분명했다.

만약 알고 있었다면 구조대와 무전을 할 때, 공터의 위치를 가르쳐 주며 정상 쪽 요구조자들의 위치도 같이 알려줬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수혁은 그러지 않았다.

그 말은 곧 수혁도 요구조자들의 정확한 위치를 모르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제 와 갑자기 위치를 정확히 짚는다고?

“뭐, 감이라고 해두죠.”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수혁의 모습에 이강현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 말을 지금 나보고 믿으라는 건 아니지?”

“믿으시는 게 좋을 겁니다. 이래 봬도 저희 서에서는 꽤 유명하거든요.”

빈말이 아니었다.

오죽하면 박상태가 혹시 수혁에게 신기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할 정도였으니.

하지만 그 사실을 이강현이 알 리가 없었다.

“밑져 봐야 본전이니까 제 말 한번 믿어보세요.”

이강현에게 씨익- 하고 웃어준 수혁은 요구조자들이 있는 방향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감이라니.”

이강현은 허허- 웃으며 수혁의 뒤를 따랐다.

수혁의 말대로 밑져야 본전이었다.

그들이 향하는 방향에 요구조자가 있으면 좋고, 없다 하더라도 어차피 수색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수혁의 감은 맞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감이 아니라 스킬이긴 했지만…….

“말도 안 돼.”

저 앞에서 손수건을 흔들며 자신들을 부르는 사람들을 보며 이강현은 넋이 나간 표정을 지었다.

“이쪽입니다! 이쪽이요!”

부부로 보이는 노인 두 명과 중년의 사내, 그리고 열 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이제 살았다는 표정으로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수혁은 그들의 모습을 확인하자마자 지체하지 않고 더욱 빠르게 발을 놀렸다.

“괜찮으십니까?”

수혁은 그들의 곁에 도착하자마자 챙겨둔 방연 마스크를 빼내며 물었다.

“아이고, 이제 살았네, 살았어.”

할아버지는 눈물을 쏟을 듯한 기색으로 수혁의 손을 붙잡았다.

“고마우이.”

“별말씀을요. 당연히 저희가 해야 할 일인데요, 뭘.”

수혁은 할아버지를 향해 안심하라는 듯한 눈웃음을 지어 보이고는 아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괜찮니?”

아이는 밑에서 보이는 불길에 잔뜩 겁을 집어먹었는지, 아버지로 보이는 남자의 뒤에 숨은 채로 수혁을 피했다.

“죄송합니다. 아이가 낯을 좀 가려서.”

아버지는 수혁과 이강현의 출현에 한층 편안해진 얼굴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괜찮습니다. 이런 상황이면 무서울 만도 하죠.”

수혁은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말썽을 부리지 않고 저렇게 얌전히 있는 것이 수혁의 입장에서는 편했다.

“그런데 두 분이 전부인가요?”

완전히 고립되어 어디로 가야 할지 판단이 되지도 않는 상황에 구조대가 자신들을 찾았으니 안심이 되긴 했다.

하지만 고작 두 명으로는 자신들을 안전하게 밖으로 대피시킬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후속대가 오고 있습니다.”

수혁은 그런 남자의 불안을 눈치채고는 최대한 편안한 말투로 대답해 주었다.

“다행이군요.”

수혁의 노력이 통했는지,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바로 움직여도 괜찮겠습니까?”

사람들은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산을 오래 헤매지는 않았지만, 밑에서 점점 번져 가는 산불을 보며 꽤나 정신력을 소비했을 것이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점점 지쳐 갔을 테고.

요구조자들이 움직이기 힘든 상태라면 수혁은 조금 더 이곳에서 쉴 의향도 있었다.

아직 여기는 그리 급박한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당장에라도 여기서 벗어나고 싶은 듯했다.

“저희는 괜찮습니다.”

“괜찮고말고.”

“그럼 바로 움직이시죠.”

수혁은 네 명에게 방연 마스크를 모두 씌웠다.

“제가 선두에 서겠습니다.”

수혁이 앞으로 나서자 이강현은 홀린 듯 요구조자들의 뒤쪽에 섰다.

물이 흐르듯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

‘저놈 대체 뭐야?’

산불에 대비한 장소와 장비, 괴물 같은 체력, 단번에 요구조자들을 찾은 능력과 나이에 맞지 않게 익숙해 보이는 모습까지.

수혁을 만나고부터 지금까지, 단 하나도 이해가 되는 것이 없었다.

‘신일서라고 했나?’

이곳에서 벗어나면 일단 수혁에 대해서 좀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아도 신일서에는 친분이 있는 소방관이 있었다.

‘강식이한테 물어보면 정체를 좀 알 수 있겠지.’

이강현은 김강식을 떠올렸다.

“이쪽입니다.”

수혁은 능숙하게 요구조자들을 인도하며 산속을 헤쳐나갔다.

어느 쪽으로 가는 건지 이강현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요구조자들을 한 방에 찾은 것을 보면, 아무 생각 없이 움직이지는 않을 것 같았다.

수혁은 뒤에서 이강현이 자신을 관찰하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설명할 말이 없기도 했고, 앞으로 딱히 마주칠 일도 많지 않았다.

그보다는 구조 3팀과 합류하는 것이 시급했다.

아직은 괜찮다고는 하지만, 불똥이 사방으로 날리는 탓에 언제 근방에서 불길이 치솟아 오를지 알 수 없었다.

‘이쪽인가?’

구조 3팀의 동선을 떠올렸다.

만약 그 방향을 유지하고 있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합류할 수 있을 것이다.

수혁은 주변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하지만 빠르게 움직였다.

그렇게 계속 움직이던 수혁의 눈에 뭔가가 들어왔다.

붉은 화염의 빛과는 다른 불빛.

분명 랜턴에서 나오는 것이 분명한 환한 빛이 여기저기 산발적으로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수혁은 그것을 발견하자마자 무전기를 빼 들었다.

“상태 형, 이쪽이에요.”

수혁이 빛이 움직이는 방향으로 랜턴을 휘두르며 말하자, 순식간에 빛이 이쪽을 향해 집중됐다.

그리고 무전기에서 박상태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찾았다, 이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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