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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29화 (29/425)

레스큐 시스템29화

줄어들었던 트럭의 속도가 조금씩 빨라지고 있었다.

아직 장애물이 있었기에 순식간에 최고속을 찍지는 못했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미친 듯한 질주가 시작될 것이 분명했다.

수혁은 그전에 트럭에 올라타야만 했다.

‘지금!’

트럭이 바로 옆을 지나갈 때를 기다리며 타이밍을 재고 있던 수혁이 몸을 날렸다.

“꺄악!”

그런 수혁의 모습을 본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다행히 수혁은 트럭의 짐칸에 무사히 오를 수가 있었다

“허억, 허억!”

순간의 긴장으로 인해 호흡이 거칠어졌다.

비록 수혁이 몸을 날릴 때 빨간색 표시가 나타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번지 점프할 때와 비슷한 경우다.

시설이 안전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음에도, 단 한 걸음을 내딛는 것이 그토록 무섭지 않던가?

아무런 위험이 감지되지 않고, 충분한 능력이 있음에도, 두려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성공이다!”

수혁은 바짝 마른침을 삼키며 앞쪽으로 이동했다.

덜커덩-!

“우왁!”

뭔가를 밟았는지, 트럭이 흔들리며 하마터면 떨어질 뻔했다.

간신히 균형을 잡으며 몸을 지탱한 수혁의 심장이 쿵쾅거렸다.

마음 같아선 주저앉아 조금 진정시키고 싶었지만, 그럴 시간이 없었다.

앞쪽에 달린 기둥을 단단히 붙잡은 수혁이 몸을 내밀어 운전석 쪽으로 손을 뻗었다.

위험천만한 행동이었다.

만약 트럭이 가로등이나 가로수 쪽을 향했더라면 그대로 충돌했을 것이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이리저리 흔들리는 트럭에서 떨어질 수도 있었고.

수혁은 기둥을 잡은 손에 힘을 잔뜩 실었다.

끼기긱-!

어찌나 강하게 붙잡았는지, 쇳덩이가 일그러질 정도였다.

그 엄청난 악력 덕분에 수혁은 트럭 위에서도 떨어지지 않고 버틸 수가 있었다.

반대쪽 손을 운전석 손잡이를 향해 뻗었다.

그러곤 잡아당기자, 문이 벌컥- 열렸다.

혹시나 운전자가 떨어질까 봐 뻗은 손을 거두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하지만 운전자는 안전벨트를 하고 있었는지, 그런 불상사는 벌어지지 않았다.

‘이런 멍청한 놈!’

차 안으로 몸을 이동시키려던 수혁이 인상을 팍- 썼다.

당연하게도 운전석에는 운전자가 앉아 있었다.

그러니 차 안으로 들어가려면 조수석 쪽을 열었어야 했다.

하지만 이제 정말로 지체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움직이는 것에만 급급해서 제대로 생각을 하지 못한 자신의 허술함을 자책하며, 수혁은 다시 한 번 몸을 날렸다.

슈화악-!

“으으으윽!”

몸을 날린 수혁의 귓가로 날카로운 바람 소리가 들렸다.

방금 가로등이 수혁의 등을 스쳐 지나간 것이다.

아찔한 감각에 기겁했지만, 어떻게든 차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수혁은 일단 핸들을 붙잡고, 브레이크를 밟았다.

끼이이익-!

미친 황소처럼 날뛰던 트럭이 기다란 스키드마크를 남기며 멈춰 섰다.

차가 멈추자 수혁은 그대로 키를 뽑고는 사이드 브레이크를 잠그며 참았던 숨을 뱉었다.

“후아아-!”

설명은 길었지만, 수혁이 트럭 위로 몸을 날린 후부터 지금까지, 고작 30초도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수혁은 한 시간은 넘게 흐른 듯한 기분이었다.

그만큼 집중을 한 것이었다.

트럭의 폭주는 막았지만, 아직 남은 것이 있었다.

수혁은 떨리는 손으로 운전자의 안전벨트를 풀었다.

그러고는 앞으로 쓰러지는 그를 조심스럽게 안아 들고 밖으로 빼냈다.

“119에 신고해요!”

바로 근처에서 구경하고 있는 한 여자에게 소리쳤다.

갑자기 지목을 당한 여자는 당황한 듯 주변을 돌아봤지만, 재차 이어지는 수혁의 외침에 고개를 끄덕이며 신고하기 시작했다.

그사이 수혁은 운전자를 살폈다.

‘호흡이 없다.’

맥박도 뛰질 않았다.

‘심정지!’

수혁은 곧장 운전자의 턱을 치켜세우며 기도를 확보하고는, CPR을 시작했다.

“흡! 흡! 흡!”

당연한 말이었지만, 심정지 환자에게 심폐소생술을 시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굳이 인공호흡까지 하진 않더라도, 심장을 압박해 혈액이 흐르게 만드는 것만으로도 골든타임이 훨씬 늘어나기 때문이었다.

수혁은 쉴 새 없이 가슴을 압박했다.

“수, 수혁 씨!”

낯익은 음성에 수혁이 고개를 들었다.

그곳에는 새하얗게 질린 얼굴의 최은송이 수혁을 바라보고 있었다.

“잠! 시! 만요!”

수혁은 손을 멈추지 않은 채로 최은송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하고 싶은 말이 많긴 했지만, 지금은 이 사람을 살리는 것에 집중해야 할 때였다.

최은송 역시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지, 더는 수혁을 부르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는 수혁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긴장과 초조, 그리고 체력소모가 이어진 덕분에 수혁의 얼굴은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1월의 차디찬 공기도 땀이 새어 나오는 것을 막지 못했다.

혼란스러운 주변과는 달리 수혁의 귀에는 오직 자신의 호흡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5분가량이 흘렀다.

저 멀리서 사이렌 소리와 함께 구급차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수혁은 시선도 돌리지 않았다.

결국, 구급차가 도착한 뒤, 구급대원들이 바로 옆까지 다가올 때까지 1초도 쉬지 않고 심폐소생술을 하던 수혁이 손을 뗐다.

“심정지입니다. CPR은 5분 정도 했고, 호흡이 멈춘 지는 10분 안팎인 것 같습니다.”

수혁은 구급대원에게 빠르게 브리핑을 했다.

수혁에게서 운전자를 건네받은 구급대원은 눈을 빛내며 물었다.

“의사십니까?”

“신일서 구조대에 있는 김수혁입니다.”

수혁의 대답에 구급대원이 ‘아하!’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수고하셨습니다.”

구급대원은 수혁에게 인사하고는 곧바로 운전자를 구급차에 싣고 출발했다.

신고자가 설명을 잘했는지, 추가적으로 몇 대의 구급차가 더 도착했다.

그들 역시 트럭에 치여 다친 부상자들을 싣고는 빠르게 사라졌다.

수혁은 그제야 잔뜩 긴장했던 몸에서 힘을 풀었다.

“후우우-”

가벼운 탈력감과 함께 살짝 현기증이 났다.

휘청이는 수혁의 몸을 누군가 붙잡았다.

고개를 돌리자 걱정스러운 낯빛의 최은송이 보였다.

‘아…….’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망했다’였다.

자신의 무모한 행동을 본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할지는 뻔했다.

수혁은 묻어두었던 기억 하나를 떠올렸다.

이전 생에서 그가 가장 사랑했던 여자.

삼십대 중반에 만나 결혼까지 생각했었던…….

어느 날, 수혁은 평소와 같이 화재 출동을 나갔다.

시내 한복판에 있는 노래방에서 화재가 일어났다는 신고를 받은 것이다.

화재는 심각할 정도였고, 노래방 건물의 상층에서는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요구조자들이 있었다.

수혁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대원들과 함께 그 불과 연기를 뚫고 건물 안으로 돌입했다.

그리고 구조를 기다리던 요구조자 세 명을 구해냈다.

수혁과 대원들은 구경하던 사람들에게 큰 환호를 받았고, 그날의 일은 그렇게 평범하게 끝나는 듯했다.

하지만 그 사건을 계기로 수혁은 그녀와 헤어졌다.

주변에서 구경하던 사람들 중에 그녀도 있었던 것이다.

“도저히 버틸 자신이 없어요.”

막연히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직접 눈으로 본 수혁의 구조하는 모습은 그녀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수혁이 출동할 때마다, 매일같이 가슴을 졸이며 제발 무사히 돌아와 달라 기도하면서 살 자신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헤어졌다.

몇 년을 만나며, 서로 결혼까지 생각했던 여자마저 견디지 못하고 떠났으니, 오늘 처음 만난 최은송이야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수혁은 긴장했다.

방금 전 트럭에 뛰어오를 때보다도 더 긴장되는 것 같았다.

“……괜찮아요?”

수혁에게 말을 건네는 최은송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수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조금 지쳤을 뿐, 어딘가 다치거나 하지는 않았으니까.

그럼에도 수혁은 아무런 말도 없이 이어질 최은송의 말을 기다렸다.

그리고 이내 그녀의 입이 열렸다.

“다행이에요. 진짜 보는데 조마조마해서 죽는 줄 알았어요.”

하하하- 하며 진 빠진 웃음을 내뱉는 그녀의 모습에 수혁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가 예상했던 모습이 아니었다.

수혁의 표정을 본 최은송이 어딘지 모르게 짓궂은 미소를 띠었다.

“왜 그렇게 봐요?”

“……아무렇지도 않으세요?”

수혁이 반문하자 최은송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렇지 않긴요. 조마조마해서 죽을 뻔했다니까요?”

“아니, 그러니까…….”

“제가 수혁 씨 그런 모습을 보고 무서워서 선 그을 것 같아서 그래요?”

정곡을 찌르는 말에 수혁이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최은송은 자신이 맡고 있던 점퍼를 수혁에게 입히며 말했다.

“놀라고 무서웠던 건 부정 못 하겠는데요. 그렇다고 해서 수혁 씨랑 거리를 둘 생각도 없어요.”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다.

아니, 솔직히 그런 말을 듣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이 없었기에, 떠올리지 않았던 것이기도 했다.

그런데 최은송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수혁의 예상과는 완전히 다른 반응을 보여주었다.

“앞으로 수혁 씨 만나려면 담력 좀 키워야겠어요. 심장 떨려서 어디 연애하겠나?”

수혁이 헛웃음을 지었다.

“방금 같은 꼴을 보고도 저랑 연애할 생각이 납니까?”

진심으로 궁금해서 물었다.

“네.”

짧은 대답에 미소가 지어졌다.

“왜요?”

“음…….”

잠시 고민하던 최은송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연금?”

그러고는 ‘푸하하!’ 하고 웃었다.

농담 섞인 그녀의 대답에 수혁 역시 따라 웃었다.

“재밌게 만나봐요, 우리.”

“그럽시다, 그럼.”

둘은 서로 마주 보며 히죽- 웃었다.

‘승우 놈한테 한턱 쏴야겠다.’

이런 좋은 사람을 소개시켜 주었으니, 탈모에 좋은 샴푸도 한 번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너 또 사람 구했다면서?”

다음 날 출근을 하자마자 만난 박상태에게 들은 소리였다.

“그건 또 어디서 들었어요?”

“어디서 듣긴 인마. 그날 출동 나갔던 구급대원이 가르쳐 줬다.”

“아…….”

분명 수혁은 그날 구급대원에게 자신이 누구인지 밝혔다.

아무 생각 없이 한 말이었는데, 연락이 들어온 모양이었다.

“어디 다친 데는 없고?”

“네. 긁히지도 않았어요.”

“넌……. 어휴, 무슨 놈의 새끼가 퇴원을 하자마자.”

“그러게요, 하하.”

이쯤 되면 소방계의 김전X이나 X난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어디 나가기만 하면 불이 나고, 사고가 일어나니…….

“여어- 출근했냐?”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며 수혁에게 인사를 하는 사람은 이재한이었다.

“네. 덕분에 잘 회복하고 돌아왔습니다.”

“회복은 무슨, 어제 또 난리 쳤다며?”

이재한이 은근한 표정으로 묻자 수혁은 속으로 끄응- 하고 앓는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서 전체에 퍼진 듯했다.

이재한은 그런 수혁의 어깨를 두드려 주고는 탕비실 쪽으로 갔다.

“커피?”

“아, 전 괜찮습니다.”

“형이 타주면 그냥 감사합니다, 하고 마셔, 인마.”

“하하, 네. 감사합니다.”

“내 것도 하나 타와라.”

“형님은 알아서 타서 드시고.”

박상태의 말을 가볍게 무시한 이재한은 곧 종이컵 두 개를 손에 들고 나왔다.

“감사합니다.”

커피라고 해봐야 믹스커피였지만, 수혁은 맛있게 받아마셨다.

“그나저나, 준비는 하고 있는 거냐?”

소방 기술 경연 대회를 말하는 것이었다.

“준비랄 게 따로 있나요, 뭐.”

“하긴, 네 체력이면…….”

박상태와 이재한이 질린 눈빛으로 수혁을 쳐다봤다.

지금껏 수혁이 보여주었던 신체 능력이면, 이런 시도별 예선에선 우승을 차지하지 못하는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그래도 방심하지 말고.”

“명심하겠습니다.”

수혁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대회까지 3일.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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