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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37화 (37/425)

레스큐 시스템37화

“생각보다 이 애물단지를 찾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서…….”

수혁은 변명했다.

대원들에게 맞은 곳이 욱신거렸지만,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아니, 오히려 고맙고도 미안했다.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이들이 얼마나 힘들었을지는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소방관들에게 있어 동료의 순직이란 결코 피해갈 수 없는 트라우마다.

이전 생에서 그것을 몇 번이나 경험해 본 수혁은 그 누구보다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아무리 계획이 있어 이런 행동을 했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동료들에게 미안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죄송합니다.”

수혁은 박상태와 다른 대원들에게 허리를 숙였다.

한참 동안이나 욕과 잔소리를 하던 대원들의 입이 다물어졌다.

“하아-”

박상태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수혁을 뚫어져라 노려보다 입을 열었다.

“너, 이 새끼……. 앞으론 단독행동 금지다.”

“알겠습니다.”

수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들이 했을 걱정을 생각하면, 당분간은 찍소리도 하지 않고 명령에 따르는 것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 그런데 기자들은 다 돌아갔어요?”

주변을 슬쩍 돌아본 수혁이 조용히 물었다.

“기자들은 왜?”

박상태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놈 보여줘야죠. 그러려고 들어갔다 온 건데.”

그 말을 들은 박상태는 그제야 수혁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너…….”

“자기 대원들을 불 속으로 밀어 넣는 그런 사람 밑에서 사람 구할 수 있겠어요?”

뭐라 말을 하려던 박상태가 입을 다물었다.

그도 알고 있었다.

아니, 사실 수혁보다 박상태가 더 잘 알고 있었다.

고한선과 함께한 시간이 수혁보다 몇 배는 길었으니까.

이번처럼 위험한 것은 아니었어도, 고한선은 종종 납득하기 힘든 명령을 내리곤 했었다.

그리고 그것은 전부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한 명령이었다.

덕분에 뺑이 친 것은 자신을 포함한 부하들이었고.

더럽고 X 같은 일이었지만, 어쩌겠는가?

그런 상사를 둔 것이 죄라면 죄였다.

그러다 이번에 회의감이 들었다.

사람도 아니고, 고작해야 로봇을 구하라는 명령이라니…….

심지어 그 명령으로 인해 수혁이 죽을 뻔했다.

이러려고 소방관이 된 것이 아니었다.

만약 수혁이 저 안에서 죽었다면, 박상태는 더 이상 참지 않고 고한선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을 것이다.

“상태 형?”

수혁이 아무런 말도 없이 가만히 서 있기만 하는 박상태를 불렀다.

“기자들은 저쪽에 있다.”

박상태가 손을 들어 한쪽을 가리켰다.

그가 가리킨 곳은 본래 기자들이 있던 곳과는 멀찍이 떨어진 후방이었다.

아마도 공장에서 폭발이 일어나자, 혹여나 휘말릴까 두려워 뒤로 물러난 것 같았다.

기자들의 수는 고작 세 명.

하지만 세 명이면 충분했다.

고한선에게 엿을 먹이기에는 말이다.

수혁은 박상태의 어깨에 기대며 속삭였다.

“형, 저 좀 부축해 줘요.”

기자들은 우연찮게도 구급 차량과 그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강식 선배는 저 고철 좀 부탁드릴게요.”

옆에서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김강식은 멍하니 서 있다 수혁의 부탁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구급차로 가죠. 좀 아픈 거 같으니까.”

수혁이 웃으며 말했다.

* * *

“지금 뭐 하자는 겁니까?”

박상태는 서로 복귀하자마자 곧장 고한선의 방으로 향했다.

딱딱하게 굳어 있는 표정은 그가 얼마나 화가 나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을 씹어 먹을 듯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 박상태를 보면서도, 고한선은 대수롭지 않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또 뭐가 불만이야?”

“……뭐가 불만이냐고요?”

너무도 뻔뻔한 모습에 헛웃음이 절로 나올 지경이었다.

“뭐, 내 명령이 그렇게 마음에 안 들었어?”

“마음에 들고 말고 하는 문제가 아니잖습니까!”

“야, 박상태!”

참다못한 박상태가 언성을 높이자, 고한선 역시 질 수 없다는 듯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너희가 해야 할 의무가 뭐야! 시민의 안전과 재산을 지키는 거 아니야?”

고한선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박상태를 몰아붙였다.

“내 명령으로 가지고 나온 그거! 그것도 다 세금으로 만들어진 거야. 국민의 세금으로 만든 걸 가지고 나오라는 게 대체 뭐가 마음에 안 들어서 이 지랄이야!”

발작처럼 소리치는 고한선의 모습을 보며 박상태가 헛웃음을 지었다.

도저히 말이 통하는 상대가 아니었다.

“우리 애들도 사람이야. 화상도 입고, 다치기도 하고, 죽을 수도 있는 사람. 슈퍼맨이 아니란 말이야, 이 개X끼야!”

“너, 너……!”

“뭐! 부하한테 욕 처먹으니까 꼽냐? 꼬우면 이 새끼야, 그 지랄을 하지 말던가!”

고한선을 향해 한바탕 욕을 퍼부은 박상태는 문을 박차고 밖으로 나왔다.

뒤늦게 고한선이 뭐라고 소리치는 것이 들려왔지만, 그냥 무시했다.

‘어디서 개가 짖나?’

그래도 한식구라고 수혁이 계획한 일이 조금 마음에 걸렸는데…….

저따위로 나오면 얘기가 달라진다.

저딴 식으로 나온다면 오히려 더욱 X되게 만들고 싶어진다.

“후우.”

“제가 뭐랬어요? 씨알도 안 먹힐 거라고 했죠?”

밖으로 나와 답답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던 박상태의 옆으로 수혁이 다가왔다.

“……몸은 좀 어떠냐?”

“괜찮아요.”

놀랍게도 수혁은 약간의 화상을 제외하고는 문제가 전혀 없었다.

‘실드’ 덕분이었지만, 그것을 알지 못하는 박상태는 수혁에게 천운이 따랐다고 생각했다.

그 폭발의 충격 속에서도 이렇게 멀쩡하다니…….

수혁이 아무리 괴물 같은 놈이라지만, 이건 하늘이 돕지 않은 이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박상태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도 병원 가서 제대로 검사 한번 받아봐.”

“진짜 괜찮다니까요?”

“그래도 인마, 젊을 때 괜찮다고 계속 방치하다가 늙어서 고생해. 내가 그런 사람 한두 명 본 줄 아냐?”

“아, 그럼 병원 갈 시간이라도 주던가.”

“뭐?”

박상태는 작게 투덜대는 수혁을 보고는 어이없다는 웃음을 터트렸다.

“비번 날 가, 이 새끼야.”

박상태는 굳어 있던 표정을 풀었다.

“그나저나 잘되겠냐?”

“글쎄요.”

그건 이제부터 두고 봐야 알 일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이 되었다.

[로봇보다 못한 소방관 대우, 이래도 괜찮은가?]

[비료공장 폭발 현장에서 소방관이 사망할 뻔한 사연.]

[시민의 목숨을 지켜야 할 소방관이 대신 구해온 것.]

기사의 숫자는 적었다.

애초에 기자의 숫자도 세 명에 불과했으니, 기사가 많을 리가 없었다.

그나마 있는 기사들도 굳이 찾아보려 하지 않으면 발견하기 힘들었다.

“이거 너무…….”

“반응이 없다고요?”

수혁이 웃으며 말하자 박상태가 헛기침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수혁이 감수한 위험을 생각하면, 너무도 초라했다.

그가 생각하기에 이런 기사는 메인화면에 떡하니 박혀 있어도 모자랄 정도였는데…….

“기다려 보세요. 시간이 좀 필요하니까.”

알 수 없는 말에 박상태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알았다.”

그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앉으며 고한선의 방을 노려보았다.

의외로 박상태는 고한선에게 더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어제 표정만 봤을 때는 고한선의 목을 졸라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는데 말이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수혁은 이 편이 더 좋다고 생각했다.

괜히 면전에서 대립각을 세워봐야 박상태에게 득이 될 일이 없었다.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도, 고한선은 신일서 구조대의 대장이었으니 말이다.

‘그나저나…….’

이제 슬슬 반응이 올 때가 됐다.

기사 자체로는 별 볼 일 없다.

노출도 거의 되어 있지 않았고, 위쪽에서 기사를 막은 것인지 숫자도 몇 개 안 된다.

이대로 가다간 그냥 묻혀 버릴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수혁은 자신 있었다.

이런 이슈를 터트리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그중 하나가 커뮤니티에 올리는 거지.’

SNS도 좋긴 했지만, 자신을 노출시키고 싶지 않았던 수혁은 각종 커뮤니티에 기사들을 올렸다.

아직은 크게 반응이 없었지만, 조금씩 알음알음 그것들이 퍼져 나가는 중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나라 소방관들의 처우는 대부분의 국민들이 관심을 가지는 영역이다.

국회의원들 월급 줄 돈으로 제발 소방관들 장비나 더 사달라고 외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런 상황에 소방관이 사람이 아닌, 로봇을 구하러 불길 속으로 들어갔다는 것이 알려진다면?

거기에 국민의 혈세로 만들어진 그 로봇이 거의 불량품에 가까우며, 그것을 구하러 간 소방관이 죽을 뻔했다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인터넷은 뜨겁게 달궈질 것이다.

물론 그것이 오래가진 않을 것이다.

크게 달라질 것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잠시 동안의 관심이면 족하다.

그 정도면 고한선을 압박하기엔 충분했다.

잘만 하면 그가 그토록 애지중지하는 그의 자리가 위태로워질 수도 있었다.

‘거기까진 바라지도 않지만…….’

최소한 지금 자리에서 물러날 정도는 될 것이다.

수혁은 그것을 바랐다.

“음, 그건 그렇고.”

고한선의 일은 이제 그의 손을 떠났다.

굳이 수혁이 더는 신경을 쓰지 않아도 알아서 일은 굴러갈 것이다.

수혁은 생각에 잠겼다.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전국 소방 기술 경연 대회 본선에도 참가해야 하고, 최은송과의 만남도 소홀히 할 순 없다.

하지만 지금 수혁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

그것은 당연하게도 앞으로 벌어질 재난들이었다.

지금도 몇 번이나 대형 현장에 출동했다.

다른 지역이라면 몇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할 정도의 규모들이었지만, 수혁은 채 1년도 되지 않아 몇 번이나 경험했다.

그 모든 것은 바로 이 도시가 너무 급격하게 개발이 된 탓이었다.

마구잡이로, 그리고 빠르게 일을 진행하다 보니, 인재가 발생할 건덕지가 너무도 많았다.

하지만 그것들은 앞으로 발생할 것들에 비하자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전 생에서는 난리였지.’

대형 화재, 교통사고, 붕괴 등등.

같이 일하던 동료들도 몇 명이나 순직했을 정도로 끔찍한 재난들이 연이어 일어났다.

‘그중에 한 명이…….’

수혁의 시선이 박상태를 향했다.

박상태는 이전 생에서 수혁을 구하고 대신 목숨을 잃었다.

자신으로 인해 한 사람이 목숨을 잃었으니, 그것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물며 순직한 사람이 자신의 사수인 박상태였으니 더욱 그러했다.

‘이번에는 절대로 같은 일을 반복할 수 없지.’

박상태뿐만 아니라, 다른 동료들도 모두 구할 생각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생각을 해야 한다.

앞으로 벌어질 재난에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지…….

가장 가까운 시일 내에 벌어지는 대형 재난은 앞으로 한 달 후였다.

10년이 지난 시점이었음에도, 정확한 날짜까지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을 정도로 큰 사건.

‘최소한 100명 이상이 사망했지.’

수혁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얼마 전 출동했던 조연산 화재와는 피해자 규모가 차원이 달랐다.

‘내가 모두를 구할 순 없겠지만,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한다.’

수혁이 아무리 용을 써도 백 명 이상의 사람들을 홀로 모두 구할 순 없었다.

그것은 신일서뿐만 아니라 이 도시 내의 모든 구조대가 출동해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후우…….”

무거운 한숨을 내쉰 수혁의 시선이 한쪽을 향했다.

그곳에는 지하철 노선도가 펼쳐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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