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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41화 (41/425)

레스큐 시스템41화

“수혁 씨!”

최은송이 반가운 음성으로 수혁을 불렀다.

이번에는 집 앞이 아닌, 이전에 장을 봤던 대형 마트에서 만났다.

“이야, 제수씨 예쁘네.”

“복받은 놈.”

수혁이 반쯤 억지로 데리고 온 박상태와 김강식은 최은송을 보고는 호들갑을 떨었다.

누가 아저씨 아니랄까 봐…….

“어머, 안녕하세요.”

둘을 발견한 최은송이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반갑습니다. 저희 막내한테 이렇게 예쁜 여자친구가 있는 줄은 몰랐네요.”

하하하- 웃으며 말하는 김강식을 보며 수혁이 고개를 저었다.

“감사해요. 우리 수혁 씨가 신세 많이 지고 있다고 들었어요.”

수혁이 그런 말을 한 적은 없었지만…….

“아닙니다. 신세는 저희가 지고 있죠.”

박상태가 짐짓 점잖게 대꾸했고, 김강식은 옆에서 ‘우리 수혁 씨란다, 우리 수혁 씨’라며 주책을 떨었다.

괜히 끌고 왔나? 하는 후회가 절로 들 정도로 부끄러웠다.

“오늘 좋은 일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두 사람 데이트하는데 괜히 아저씨들이 끼어드는 거 아닌가 싶네요.”

“별말씀을요. 안 그래도 한 번 뵙고 싶었어요. 수혁 씨는 도통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 말을 하질 않아서.”

수혁은 짐짓 흘겨보는 최은송의 눈초리를 피하며 딴짓을 했다.

사실 그렇다.

그 어떤 소방관이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여자친구에게 곧이곧대로 말을 해주겠는가?

그렇게 위험한 일을 하는데 말이다.

특히나 수혁은 이전 생에서 결혼까지 생각했던 여자와 그런 이유로 헤어지지 않았던가?

만약 수혁이 한 행동들을 최은송이 알았더라면 지금처럼 좋은 만남은 가질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은송 씨는 좀 다른 것 같긴 하지만…….’

첫 만남 때, 수혁이 트럭 운전사를 구하기 위해 무모한 행동을 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최은송은 그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똑똑히 봤음에도, 수혁을 꺼리지 않았다.

그 때문에 수혁이 최은송에게 호감을 품게 된 것이기도 했다.

‘그래도 괜한 헛소리들 좀 안 하셨으면 좋겠는데.’

수혁은 불안한 눈으로 두 아저씨를 쳐다보다가 최은송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완벽한 나들이 복장이었다.

“……안 추워요?”

봄이 성큼 다가왔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쌀쌀한 기운이 가득했다.

너무 가볍게 입고 있어 감기라도 걸리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안 그래도 겉옷 챙겨왔어요.”

최은송은 걱정 말라는 듯 웃어 보이고는 앞장서서 마트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두 아저씨와 수혁을 내세워 엄청난 양의 장을 보기 시작했다.

그 엄청난 양에 박상태와 김강식의 얼굴이 새하얗게 변할 지경이었다.

“제수씨가 뭐 하는 사람이라고 했지?”

수혁은 질린 표정으로 물어보는 김강식을 보곤 피식- 하며 대답했다.

“요리사요. 꽤 큰 한식 레스토랑에서 일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요리사였구나.”

둘은 그제야 이해가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간식거리와 음료수 정도만 사서 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직업을 듣고 나니 이 많은 양이 설명되었다.

“직접 요리할 생각인가 본데?”

“네, 보육원에 봉사활동 가면 항상 애들한테 밥을 해준다고 하더라고요.”

“천사네, 천사야.”

“그런 천사가 어떻게 너 같은 놈을 만날까…….”

“아, 뭐래요.”

셋이 투닥거리는 모습을 본 최은송이 배시시 웃었다.

“보기 좋아요. 사실 좀 무뚝뚝한 분들이신 줄 알았는데.”

“주책이죠?”

“그 정도는 아니고.”

최은송이 생각했던 소방관의 이미지는 딱딱한 느낌이었다.

하는 일이 워낙 거칠다 보니, 으레 그런 성격을 지니고 있겠거니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리 틀린 생각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박상태는 최은송이 생각했던 것과 거의 일치했으니까.

지금 박상태가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평소와는 달랐다.

불편해할지도 모르는 최은송을 향한 배려일 것이다.

‘하여간 사람 참 좋다니까.’

박상태는 거칠고 사내다운 사람이었지만, 이렇게 남들을 생각하는 면도 있었다.

그렇기에 수혁이 좋아하고 따르는 것이었고.

“이 정도면 된 것 같으니까 슬슬 출발할까요?”

“우리도 버스 타고 가요?”

“아, 저희는 여기서 제 차로 갈 거예요. 버스는 애들하고 봉사하시는 분들로 꽉 차서.”

“아…….”

만약 교통사고가 난다면, 버스 안에서 같이 있는 편이 빠르게 구조할 수 있었다.

운이 좋다면 사고 자체를 피할 수도 있었고.

이렇게 따로 가면 힘들었다.

“보육원에 들러서 같이 출발해도 될까요?”

“네? 그러면 시간이 좀 부족한데.”

최은송은 미리 목적지에 가서 식사 준비를 할 계획이었다.

같이 출발한다면 점심시간까지 준비를 못 맞출지도 몰랐다.

“그래도요. 그렇게 하면 안 될까요?”

뜬금없는 수혁의 부탁에 최은송이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무슨 일 있어?”

수혁과 최은송의 대화를 듣고 있던 박상태가 끼어들었다.

그러면서 수혁을 슬쩍- 쳐다보았다.

마치 ‘또 무슨 일 있는 거냐?’라고 묻는 듯했다.

박상태의 눈빛을 본 수혁이 잠시 고민하다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박상태는 작게 한숨을 내쉬더니 최은송에게 말했다.

“이 녀석 말대로 보육원에 들러서 같이 출발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박상태가 그리 말하자 최은송은 더욱 어리둥절해했다.

“이 녀석 촉이 좀……. 이런 식으로 말할 때 들어서 손해 볼 일은 없을 겁니다, 아마.”

최은송은 수혁을 가만히 쳐다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알겠어요, 제가 조금 더 서두르면 되겠죠.”

왠지 심상찮아 보이는 분위기에 최은송은 수혁의 말대로 하기로 했다.

“미안해요.”

“미안할 것도 많네요.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는데, 나중에 꼭 설명해 줘야 해요?”

“그럴게요.”

수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걸로 최악의 상황은 면할 수 있겠다.’

자리가 없어 버스를 같이 타고 가진 못하겠지만, 이 정도면 괜찮았다.

오히려 구조하는 데에는 바로 뒤에서 따라가는 편이 좋을지도 모른다.

수혁은 매고 온 가방을 쓰다듬었다.

그 안에는 조연산 산불 때 쓰려고 사놨던 방연 마스크들이 들어 있었다.

‘이번엔…….’

아이들도 구하고, 안타깝게 죽은 그 회사원도 살릴 수 있을 것이다.

“아줌마다!”

“아줌마 차야!”

“너흰 이제 죽었다.”

소풍 갈 생각에 잔뜩 들떠서 밖에 나와 있던 아이들이 최은송의 차를 발견하고는 환호했다.

최은송은 보육원 한쪽에 서 있는 버스의 옆에 차를 주차하고는 밖으로 나와 자신을 아줌마라고 부른 아이들을 향해 질주했다.

“너 일루 와!”

“으아악!”

하늘거리는 나들이복을 입은 채 바람처럼 뛰어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아니, 어떻게 여기로 왔어요?”

아이들을 준비시키고 있던 보육원장이 갑자기 찾아온 수혁을 보고는 토끼 눈을 떴다.

“이왕이면 같이 가는 편이 좋을 것 같아서요. 아이들도 좀 보고 싶었고.”

수혁이 너스레를 떨며 말하자 보육원장이 오호호- 하며 웃었다.

그녀도 아이들 못지않게 들뜬 것 같았다.

그러다 수혁의 뒤쪽에서 멀뚱히 서 있는 둘을 발견하고는 물었다.

“그런데 저분들은?”

“저랑 같이 일하는 선배들인데 오늘 같이 도와주기로 했습니다.”

“이런, 고마우신 분들이 또.”

보육원장은 환하게 웃으며 두 아저씨에게 다가가 인사를 나누었다.

“그런데 혹시 버스에 남는 자리 있나요?”

“자리요?”

수혁이 묻자 보육원장은 잠시 계산을 하는 듯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두세 자리 정도는 남을 것 같네요.”

“아, 다행이네요. 그럼 저도 버스에 타고 가… 아야. 갑자기 왜 때려요?”

반색하며 말하던 수혁의 뒤통수를 후려친 박상태는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그를 쳐다봤다.

“네가 거기 타면, 제수씨는?”

“아…….”

사고에 대해서만 생각을 집중하다 보니 중요한 걸 잊었다.

“나랑 강식이가 버스 타고 갈 테니까, 너는 제수씨랑 오붓하게 좋은 차 타고 와라. 알콩달콩하게 분위기도 좀 내고. 보니까 만난 지 얼마 안 된 것 같던데.”

옆에서 김강식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되겠어요?”

“안 될 건 또 뭐 있냐?”

확실히 버스 안에 두 사람이 타고 있다면 훨씬 더 안심할 수 있었다.

“음, 그, 어.”

“이제 와서 또 옹알이하냐?”

수혁이 뭔가를 말할까 말까 고민하는 기색이자, 박상태가 혀를 찼다.

“그냥 말해, 인마. 또 뭐가 문젠데?”

“그냥 조심하시라고요. 안전벨트 꼭 하시고, 애들도 전부 벨트 착용시켜 주시고요.”

수혁의 말에 박상태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이게 또 불안하게 만드네.”

“해서 나쁠 건 없잖아요. 법도 그렇고.”

박상태는 어색한 표정으로 변명하는 수혁을 빤히 쳐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여기로 와서 같이 출발하자고 한 거냐?”

수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박상태는 수혁에게 이미 대답을 들은 것처럼 몸을 돌렸다.

“조심해요, 상태 형.”

수혁은 그런 그의 등을 향해 말했고, 박상태는 손을 들어 한 번 흔들어주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이제 출발하자!”

출발 시간이 다 됐는지, 보육원장이 아이들을 버스에 태우기 시작했다.

그녀와 아이들, 그리고 자원봉사를 나온 몇몇 선생들까지 합치면 그 숫자가 무려 37명이나 됐다.

‘저 많은 사람을 혼자 구해냈으니…….’

새삼스레 그 사람에 대한 존경심이 샘솟았다.

“우리도 이제 가요.”

“그럴까요?”

아줌마라고 불렀던 아이들에게 성공적인 응징을 했는지, 최은송의 얼굴은 밝았다.

둘이 차에 올라타자 버스가 먼저 출발을 했다.

“우리 서두르지 말고 버스 뒤에 천천히 따라가요.”

대형 마트에서부터 계속되는 이상하기 짝이 없는 부탁이었다.

하지만 최은송은 수혁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어려운 것도 아니고, 그저 조금 천천히 가자는 것뿐이었으니까.

최은송의 차는 버스의 꽁무니에 붙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렇게 나들이 가는 거 정말 오랜만이에요.”

옷차림에서부터 느낀 거지만, 최은송은 잔뜩 들뜬 모습이었다.

“저도요. 고등학교 졸업하고는 처음으로 가는 여행이네요. 애들 소풍이긴 하지만.”

“아하하. 저도 마찬가지예요. 대학 다닐 땐 몇 번 기회가 있었는데, 집이 좀 엄해서 꿈도 못 꿨죠.”

“다음에 같이 여행 한번 가요.”

수혁은 자신이 말을 해놓고도 흠칫- 놀랐다.

사귀기 시작한 지 아직 백 일도 되지 않은 데다, 실제로 만난 날은 얼마 되지도 않는다.

이제 서로 나이가 있으니 흉이 될 일은 아니었지만, 너무 빨리 이야기를 꺼낸 것이 아닐까? 하는 후회가 됐다.

“저는 제주도 가보고 싶어요.”

하지만 최은송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그것이 수혁을 향한 배려였는지, 아니면 정말로 가고 싶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의 대답에 수혁은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이 나이 먹도록 제주도 한 번 못 가봤다니……. 심하죠?”

“심하긴요. 저도 못 가봤는데. 가요, 제주도. 저도 꼭 가보고 싶은 곳이니까.”

최은송이 배시시- 웃었다.

참으로 웃음이 많은 사람이었다.

웃는 모습이 예쁘기도 했고.

수혁은 괜히 흐뭇해져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흘렸다.

그렇게 둘이 꽁냥거리는 사이, 버스가 고가도로에 진입했다.

그리고…….

수혁이 생각한 대로, 교통사고가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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