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44화
“세상에…….”
신일역에 도착한 박상태가 가장 먼저 내뱉은 말이었다.
반대로 수혁은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현장의 모습은 그가 기억하고 있던 것보다 훨씬 처참했다.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에서는 먼지가 치솟아 오르고 있었고, 역이 무너져 내리며 어딘가 잘못 건드렸는지 불길마저 눈에 뜨였다.
그 사이로 지금도 빠져나오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피를 흘리고 있었으며, 심각해 보일 정도의 부상당한 사람도 있었다.
“빨리 움직여!”
정신 차린 박상태가 소리치자, 구조 3팀은 반사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금 먼저 해야 할 것은?’
안에 갇힌 사람들도 문제였지만, 일단은 눈앞에 보이는 사람들부터 안전한 곳으로 옮기는 것이 우선이었다.
“지원은?”
대원들이 움직이자 박상태는 무전기를 들고 상황실과 연락을 했다.
생각하고 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이었기에, 곧장 지원을 요청했다.
[이미 출동했습니다.]
상황실의 답변에 박상태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장 대원들에게 명령을 하달했다.
“일단 강식이랑 정우, 재한이는 대피하는 사람들 통제해.”
“알겠습니다.”
아직 안쪽으로 진입하기에는 장비도, 준비도 미비했다.
밖의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고, 장비가 도착해야 안쪽으로 진입할 수 있을 것이다.
수혁은 일단 눈앞에 떠오른 퀘스트를 읽었다.
==========================
*퀘스트 : 요구조자들을 최대한 많이 구조하라.
*내용 : 지하철역이 무너졌다.
이미 수많은 사람이 그 안에 깔려 사망한 상태.
하지만 좌절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그 지옥 같은 곳에서 생존해 있는 사람들이 있다.
다시 세상의 빛을 보길 간절히 원하는 그들에게, 구원의 손을 내밀어라!
*보상 : 경험치, 스킬, 등급 변경 – 베테랑 소방관
==========================
“상태 형.”
하지만 수혁은 그 시간 동안 가만히 기다리고 있을 생각이 없었다.
“안 돼.”
박상태는 수혁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미 아는 것처럼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시간 없어요. 지금 진입 안 하면 피해가 커져요.”
“그래도 안 돼.”
수혁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박상태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이런 붕괴 현장에서는 시간이 금이다.
구조가 늦어질수록, 진입이 늦어질수록 목숨을 잃는 사람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대로 된 준비도 없이 무작정 구조를 시작할 순 없었다.
그런 건 구조도, 뭣도 아니다.
그저 자살 행위에 불과했다.
“너무 위험해.”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해요.”
“너만 위험한 게 아니라, 안에 있는 사람들도 위험하다고, 새끼야.”
박상태는 이런 현장을 겪어본 적 있다.
지하철역은 아니었지만, 꽤나 큰 빌딩이 무너져 내린 현장에 출동했던 것이다.
덕분에 무엇이 위험한지 잘 알고 있었다.
“막무가내로 진입하다가 추가 붕괴가 일어나면 답 없다. 너도 죽고, 밑에 있는 사람도 다 죽는 거야.”
박상태는 수혁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마음 급한 건 알겠는데, 차근차근하자. 차근차근.”
사람들의 비명과는 대조적으로 낮게 가라앉은 박상태의 음성.
그의 말은 전부 옳았다.
이런 거대한 재난 앞에서, 수혁의 힘은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
수혁의 힘이 아무리 세고, 체력이 얼마나 좋든 간에.
그것이 구조용 중장비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아무리 스킬을 이용해 요구조자들의 위치를 특정할 수 있다 하더라도, 돌입 자체가 불가능하다면 수혁이라 할지라도 기다리는 수밖엔 없었다.
“하지만, 상태 형.”
수혁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본격적인 구조 작업은 구조공작차와 굴착기, 크레인과 같은 중장비들이 오면 시작될 것이다.
인근 소방서란 소방서에서 모두 지원을 올 것이고, 심지어는 특수 구조대 애들 역시 지원 나올 것이다.
그렇게 이어진 15일간의 구조 작업.
국가 차원의 지원 덕분에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긴 했지만…….
‘너무 늦어.’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하겠지만, 며칠 후에는 추가 붕괴가 일어난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이 더 많이 다치고, 죽을 것이다.
“지금 움직여야 해요.”
박상태의 얼굴이 살짝 찌푸려졌다.
“너 인마, 내 말 지금까지 귓등으로 들었어? 위험하다니까?”
“저 믿으시죠?”
“하아, 이 새끼가 또…….”
박상태는 골치가 아프다는 듯 머리를 부여잡았다.
“혼자 갈 수도 있었는데, 전에 형이 말했던 것 때문에 먼저 말하는 거예요.”
무슨 짓을 저지르든, 미리 말을 하고 저지르라던 박상태의 말.
수혁은 박상태나 대원들에게 더는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기에 솔직하게 말을 꺼낸 것이었다.
“그래서? 뭘 어떻게 하려고?”
수혁의 생각은 알겠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역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계단들은 붕괴의 잔해들로 모두 막혀 있었고, 그것을 뚫기 위해선 장비들이 도착해야 한다.
구조차에 실려 있는 장비들로는 어림도 없었다.
“다른 쪽으로 들어가면 돼요.”
“……다른 쪽?”
“지하철은 연결되어 있으니까.”
“밑으로 해서 가자는 말이냐?”
“그쪽이 훨씬 안전할 거예요.”
수혁이 시선을 돌리며 한쪽을 쳐다보았다.
그곳에는 대형 쇼핑센터가 있었다.
“저기에도 역으로 가는 통로가 있었죠, 아마?”
박상태의 얼굴이 진지해졌다.
“계획은? 정말로 들어갈 생각이냐?”
반쯤은 넘어온 듯한 박상태의 태도에 수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따라오세요. 이제부턴 진짜 시간 싸움이니 서둘러야 해요. 아, 다른 사람들도 데리고 가야 해요. 저희 둘만으론 힘들 것 같으니까.”
수혁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박수진은 눈을 떴다.
‘아니, 뜬 거 맞나?’
분명 자신을 눈을 뜬 것 같은데,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직 주변에서 들려오는 신음과 울음소리만이 박수진의 감각을 괴롭혔다.
“으아아앙.”
품속에서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화들짝 놀란 박수진이 몸을 일으키려다, 비명을 질렀다.
“아아악!”
누군가 자신의 온몸을 망치로 내려친 것 같은 고통이 느껴졌다.
박수진의 비명을 코앞에서 들은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가 더욱 커졌다.
박수진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잠시 망각하고 있었던 현재 상황을 깨달은 것이다.
“괘, 괜찮니?”
박수진은 억지로 터져 나오는 신음을 참으며 품에 안고 있는 아이에게 물었다.
하지만 아이는 울기만 할 뿐, 대답하지 않았다.
‘하긴…….’
박수진은 자신이 이 아이라고 해도 대답할 정신이 없을 것 같았다.
갑자기 주변이 모두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질 않나, 엄마와는 떨어지고, 주변은 어둠으로 들어찼다.
낯선 누나가 걱정스럽게 묻는다고 해서 대답할 정신은 아닐 것이다.
박수진은 덜덜 떨리는 손을 움직여 스마트폰을 꺼냈다.
다행히 망가지지 않았는지, 켜졌다.
손가락을 움직여 플래시를 켠 박수진은 빛을 이용해 주변을 밝혔다.
“아…….”
주변은 온통 아수라장이었다.
떨어져 내린 돌덩이에 깔려 있는 사람들은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고, 그나마 괜찮아 보이는 사람들도 피투성이였다.
그들은 박수진이 켠 플래시를 보고는, 하나둘 자신들도 폰을 꺼내 주변을 밝히기 시작했다.
“괘, 괜찮으세요?”
“여기요! 좀 도와주세요!”
“살려줘…….”
마치 생지옥에 와 있는 것 같은 모습에 박수진은 입을 틀어막았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비명을 지를 것 같았다.
“태환아! 어딨어, 태환아아악!”
아이를 잃어버린 듯한 엄마의 절규가 들려왔다.
박수진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품속의 아이를 쳐다보았지만, 이 아이는 그 엄마가 찾는 태환이라는 아이가 아닌 듯했다.
계속해서 울고만 있을 뿐, 엄마의 목소리에도, 태환이라는 이름에도 반응을 하지 않았으니까.
박수진은 아이를 조금 더 강하게 안고 진정시켜 주었다.
“여기 사람 살려요!”
누군가의 울부짖음.
그것을 들은 또 다른 누군가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다른 사람들에 비하자면 꽤 양호해 보이는 상태의 남자였다.
그는 박수진이 한 것처럼 스마트폰의 플래시를 이용해 소리친 사람의 곁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주변이 온통 무너져 내린 돌들로 엉망인 상태라 움직이는 것이 쉬워 보이진 않았지만, 그는 어찌어찌 그에게 도착할 수 있었다.
“저, 저 좀 살려주세요! 다리가, 다리가!”
그는 스크린 도어였던 것처럼 보이는 쇳덩이에 다리가 깔린 채 피를 흘리고 있었다.
“여기 좀 도와주세요!”
그것을 확인한 남자가 주변을 향해 소리쳤다.
혼자서는 절대로 이것들을 치울 수가 없어 보였던 것이다.
그 외침을 들은 사람들 몇몇이 움직였다.
박수진은 잠시 고민하다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지금은 혼자 몸을 사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사람들끼리 힘을 모아야 살아날 수 있었다.
“꼬마야, 잠시 여기에서 기다리고 있어. 금방 다녀올게.”
박수진은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침착한 음성으로 아이를 달랬다.
차분한 박수진의 음성을 들은 아이는 조금이지만 진정하고는, 불안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괜찮아, 괜찮아. 여기 있으면 안전할 거야.”
괜히 아이를 데리고 같이 갔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낭패였다.
다행히 이 주변은 위험해 보이지 않았다.
또다시 무너져 내리지만 않는다면, 지금 박수진이 가려고 하는 곳보다는 훨씬 안전할 것이다.
박수진은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는 아이를 잠시 떨어트려 두고는, 소리친 남자가 있는 곳을 향해 움직였다.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지만, 거기까지 도달하는 길은 험했다.
먼지와 잔해들로 시야도 제대로 확보되지 않았던 것이다.
‘조심, 조심…….’
박수진은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움직였다.
그럼에도 날카로운 잔해들에 긁혀 여기저기 상처가 났다.
“휴우…….”
간신히 목적지에 도착한 박수진은 폰을 껐다.
굳이 그녀가 켜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의 폰으로 인해 주변이 밝았던 것이다.
‘배터리 아껴야지.’
언제까지 이 안에 갇혀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그러니 아낄 수 있는 건 아껴야 했다.
“여기를 같이 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가장 먼저 움직였던 남자의 말이었다.
군복을 입고 있는 것으로 봐선, 휴가 나온 군인인 것 같았다.
군인은 주변으로 모여든 사람들을 통솔해 잔해에 깔려 있는 사람을 구하기 시작했다.
“으아악! 살살! 살살해, 이 새끼들아!”
박수진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금 그를 구하려고 애를 쓰는 사람들에게 욕설을 내뱉다니?
아무리 고통스럽다고는 하지만…….
“좀 참으세요.”
“너 이 새끼, 내가 누군 줄 알고.”
“이 와중에 당신이 누군지 관심 없으니까, 입 닥치고 참으라고. 그냥 갈까?”
군인은 짜증이 났는지, 거칠게 말했다.
남자는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군인을 쳐다보는 그의 눈빛은 살벌했다.
도저히 자신을 구해주러 온 사람을 향한 눈빛이 아니었다.
‘미친놈인가?’
박수진은 그를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밖에서 뭐 하는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상식도, 생각도 한참이나 부족한 사람 같았다.
“하나, 둘, 셋 하면 같이 드는 겁니다.”
사람들은 각자 자리를 잡고 군인의 지시를 따랐다.
박수진 역시 한 손을 보태 쇳덩이의 한 모퉁이를 잡고 기다렸다.
“하나, 둘, 셋!”
“흐읍!”
군인의 구호에 맞춰 힘을 주자 남자의 다리를 짓누르고 있던 쇳덩이가 조금씩 위로 올라갔다.
“빨리 다리 빼요!”
군인이 소리를 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