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46화
구멍 안쪽은 눈으로 확인한 것보다 훨씬 좁았다.
‘쯧.’
수혁은 속으로 혀를 차며, 눈앞을 가로막고 있는 작은 돌덩이들을 치웠다.
“많이 막혀 있냐?”
“이 정도는 괜찮아요.”
수혁은 치운 돌들을 뒤쪽으로 밀며 박상태의 물음에 대답했다.
“이래서 요구조자들 데리고 나올 수 있겠어?”
“하는 데까진 해봐야죠.”
정 빼내지 못할 것 같으면 생존물자라도 옮겨와야 한다.
이 안에 갇힌 사람들은 최소한 10일 이상을 버텨야 할지도 모른다.
그때 물을 비롯한 물자가 있고, 없고는 천양지차다.
추가 붕괴가 일어나기 전까지 구할 수 있는 선까지는 구하고, 만약 그렇지 못한 이들은 구조될 때까지 버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수혁의 계획이었다.
그것을 위해 김강식에게 미리 말까지 해두었다.
지금 김강식은 열심히 구멍을 넓히며, 물자까지 준비하고 있느라 바쁠 것이다.
“후우- 후우.”
수혁의 호흡이 마스크를 통해 밖으로 새어 나왔다.
“힘드냐? 교대해 줄까?”
“해줄 수 있음 좀 해줘요.”
박상태의 농담에 수혁이 웃으며 대답했다.
사실 웃을 분위기는 아니었다.
도대체 몇 명이나 죽었는지 모를 현장이었으니까.
하지만 수혁과 박상태는 경직된 분위기를 풀기 위해, 일부러 농담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숨 막히는 긴장감에 그들이 먼저 나가떨어질 것이 분명했다.
“이쪽으로 들어가면 플랫폼까지 얼마나 걸리지?”
“한 3분 정도요?”
수혁이 기억을 더듬어 대답했다.
물론 걸어서 갔을 때의 시간이었다.
“그럼 두 시간 안으로 뚫어보자. 할 수 있겠어?”
“까라면 까야죠, 뭐.”
수혁의 힘과 체력이면 두 시간이 아니라 한 시간도 충분하다.
중간에 도저히 움직일 수 없을 정도의 장애물이 있지 않는 이상은 말이다.
눈앞의 돌들을 모두 치워 버린 수혁이 다시 앞으로 기어가기 시작했다.
중간중간 사람의 신체 중 일부가 눈에 들어왔다.
수혁은 당장에라도 그들을 꺼내 밖으로 옮겨주고 싶은 마음을 참았다.
안타깝긴 하지만, 지금은 죽은 자들보단 산자가 우선이었다.
조금씩, 조금씩.
느리지만 꾸준히 앞으로 나아갔다.
웬만한 것에는 생채기도 나지 않는 수혁의 몸에 조금씩 긁힌 상처가 생겨났다.
질기기 그지없는 구조복도 찢어져 맨살이 드러났고, 핏방울이 방울방울 맺혀 흘렀다.
수혁이 그러할진대, 박상태나 박정우는 어떠할까?
둘은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푸념 한 마디 내뱉지 않았다.
그저 뒤를 따라가고 있는 것에 불과한 자신들과는 다르게, 수혁은 앞장서서 장애물을 제거하며 나아가고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자신들보다 몇 배는 더 힘들 게 분명했다.
아무리 수혁이 괴물 같은 놈이라고는 해도, 힘들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도 짜증 한 번 내지 않는데, 자신들이 불평해서야 면이 서지 않는다.
“야, 힘들면 말해라. 형이 바꿔줄 테니까.”
“제발 그렇게 해달라니까요.”
이렇게 뒤에서라도 수혁에게 응원하는 수밖에.
“어?”
그러다 갑자기 수혁이 움직임을 멈추고는 의문성을 터트렸다.
“왜? 또 막혔어?”
박상태가 물었다.
벌써 몇 번이나 앞이 가로막혀 시간을 지체했다.
만약 수혁이 아니었다면, 되돌아갔어야 했을 것이다.
박상태는 이번에도 그런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끝이에요.”
“……뭐?”
“공간이 뚫려 있습니다.”
이건 수혁도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아직 한참이나 더 기어가야 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수혁이 서서 걸어도 될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공간이 벌써 나타난 것이다.
수혁은 잠시 그 안을 살펴보고는 안전하다 판단했다.
‘위험 감지Ⅱ’ 스킬이 잠잠했던 것이다.
수혁은 망설임 없이 몸을 빼냈다.
“야, 야! 조심해!”
“괜찮으니까 어서 나오세요.”
박상태와 박정우는 수혁과 달리 매우 조심스러운 기색으로 구멍을 빠져나왔다.
“여긴 어디지?”
대충 플랫폼 근처인 것은 알겠다.
하지만 주변이 완전히 무너져 내린 탓에, 어딘지 정확히 구분하기가 힘들었다.
“거의 다 왔네요.”
수혁이 주변을 관찰하다 대답했다.
“그걸 어떻게 알아?”
박정우가 물었다.
항상 신일역을 이용하는 그조차도 어딘지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수혁이 확신하듯 말하는 것이 의문스러웠다.
“우리가 움직인 거리로 보면 거의 다 온 게 아닐까 싶어서.”
수혁이 얼버무렸다.
수혁이 확신한 것은 주변의 모습을 보고 짐작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생명 감지Ⅱ’ 스킬로 바로 이 주변에서 생명의 기운을 감지한 것뿐이다.
“하긴, 이 정도 왔으면 도착할 때도 됐지.”
박정우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제 어떻게 할까요?”
공간은 상당히 컸다.
십여 명 정도는 앉고도 남을 정도로 말이다.
“여기를 일단 중간 지점으로 정하면 될 것 같다.”
붕괴 중에도 무너지지 않고 버틴 곳이다.
보수는 좀 해야겠지만, 이 정도라면 추가 붕괴가 일어나도 버틸 수 있을 듯했다.
“그럼 저랑 정우 선배가 플랫폼 쪽을 맡을게요. 상태 형은 여기서 요구조자들 조치 부탁드려요.”
“둘만 가겠다고?”
“역할 분담이 필요해요.”
“역할 분담?”
“네. 정우 선배가 요구조자들을 여기까지 옮겨서 그 사람들 케어하고, 여기에 도착한 요구조자들을 밖으로 옮기는 게 형 역할.”
“지미, 나랑 정우만 X빠지게 생겼네.”
요구조자들을 데리고 다시 그 좁은 구멍을 통과해야 한다는 사실에 박상태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그리고 형은 밖에 오가면서, 물자들도 옮겨야 되니까. 제일 뺑이 치셔야겠네요.”
“야, 나랑 바꿔. 내가 플랫폼 갈 테니까, 네가 왔다 갔다 해. 막내 새끼가 빠져가지고 지 편한 것만 하려고 그래?”
박상태의 말은 진심이었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의미는 달랐다.
정말 힘들어서 그런 것이 아니고, 혹여 수혁이 또 위험해질까 싶어 걱정되었던 것이다.
수혁은 그런 박상태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왜 그래요? 저도 오랜만에 좀 편한 일좀 해보면 안 돼요? 그동안 고생 많이 했잖아요.”
“그게 내가 시켜서 한 고생이냐? 너 혼자 지랄발광해서 벌어진 거지.”
“어쨌든 간에요. 이번엔 양보 못 해요.”
수혁의 말에 박상태가 헛웃음을 지었다.
“저 새끼, 언젠 양보한 것처럼 말한다?”
“그러게 말입니다.”
박정우도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동안 많이 봐온 모습이긴 하지만, 팀장과 막내가 서로에게 대하는 모습이라기엔 너무도 친근했다.
“너 진짜 조심해라.”
“형이나 조심해요. 저보다 형이 더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누가 누굴 걱정해? 햇병아리가.”
구멍은 당분간 안전할 것이다.
수혁이 이동을 하며 취약해 보이는 지점에 지지대를 만들어두며 왔으니 말이다.
물론 그것은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추가 붕괴가 일어나기 시작하면 그런 지지대 따위는 수수깡처럼 무너져 내릴 것이다.
그러니 추가 붕괴가 일어날 조짐이 보이기 전까지 최대한 많은 사람을 구해야 했다.
“그럼 슬슬 움직이죠.”
쉴 만큼 쉬었다.
체력도 어느 정도 회복되었으니, 이제 다시 움직일 시간이었다.
수혁은 대화하며 봐둔 곳을 향해 다가갔다.
‘생명 감지Ⅱ’로 확인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플랫폼과 통하는 최단 루트는 아니었다.
하지만 안전했다.
조금 돌아가긴 하지만, 지금 가지고 있는 장비들로 길을 뚫어도 무너져 내릴 위험이 없는 곳이었다.
수혁이 손도끼를 들었다.
곡괭이는 크기가 커서 가지고 들어오지 못했다.
챙겨온 장비라고는 손도끼와 빠루 정도가 전부.
이것으로 길을 뚫어야 한다.
벌써부터 지친 표정을 짓고 있는 다른 두 사람과는 다르게, 수혁은 대수롭지 않은 모습이었다.
둘에게 미안하긴 했지만, 수혁에겐 그리 힘든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리 조금 더 힘냅시다.”
* * *
박수진을 비롯한 사람들이 구한 사람들의 숫자가 벌써 다섯 명을 넘어섰다.
대부분 처음 구한 남자보다 훨씬 심각한 상태였다.
의식이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었고, 그나마 의식이 있는 한 사람은 피를 얼마나 흘렸는지 당장에라도 숨이 넘어갈 듯한 모습이었다.
“끝이 없네요.”
사람들을 구하기 시작한 지 벌써 세 시간이 다 되어간다.
그 시간 동안 구한 사람보다, 아직 구하지 못한 사람이 몇 배는 더 많아 보였다.
이대로 가다간 죽는 사람이 속출할 것이 뻔했다.
“그래도 좀 쉬어야 합니다.”
박수진은 많이 지쳤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그나마 멀쩡한 사람들이라고는 하지만, 그들 역시 크고 작은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가장 상태가 양호한 박수진조차도 몸 이곳저곳이 찢어진 상태였으니, 다른 사람들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 구하지 않으면 죽는 사람이 생길 거예요.”
“우리가 쉬어야 사람들을 더 구할 수 있습니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군인은 박수진의 걱정에 고개를 저었다.
그라고 움직이기 싫겠는가?
하지만 그들이 모두를 구할 순 없었다.
한 사람을 더 살리자고, 자신들을 희생할 순 없었다.
박수진은 시무룩한 기색으로 자리에 앉았다.
그녀도 알고 있었다.
그저 신음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계속해서 눈에 밟혔을 뿐이다.
이곳에서 살아나간다고 해도, 그들의 모습이 평생 잊히지 않을 것 같았다.
“곧 구조대가 올 겁니다.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만 하면 됩니다.”
냉정하긴 해도, 맞는 말이었다.
“알았어요.”
박수진은 대답하며 자신이 구한 아이가 있던 곳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한 중년 여인이 아이를 돌보고 있었다.
박수진과 일행이 구한 여인이었다.
그녀는 팔이 부러진 탓에 구조에 참여하지는 못하고, 자신들이 구해낸 부상자들을 돌보고 있었다.
그렇게 모여 있는 사람들이 십여 명.
그들은 나이가 많거나, 거동하기 힘든 부상을 입은 이들이었다.
“하아-”
박수진이 한숨을 내뱉었다.
‘여기서 나갈 수 있을까?’
구조대는 올 것이다.
여기가 외딴 바다 한가운데도 아니고, 도시 한복판이었으니 오지 않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게 언제가 될지는 알 수 없었다.
오늘이 될지, 내일이 될지.
아니면 일주일, 10일…….
혹시 자신이 죽기 전까지 오지 않으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구조대에 대해 생각할수록 희망 대신 불안만 커져 갔다.
박수진은 괜한 불안감을 떨치기 위해 폰을 들었다.
전화는 터지지 않았다.
당연히 인터넷 연결도 되지 않았다.
완벽한 고립감이 점차 그녀의 정신을 잠식해 갔다.
박수진은 자신도 모르게 톡을 열어 엄마에게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렇게라도 뭔가를 남기고 싶었다.
-살려줘, 엄마. 무서…….
그렇게 글을 쓰던 박수진이 고개를 저었다.
만약 엄마가 이런 자신의 메시지를 본다면 어떤 마음이 들겠는가?
엄마에게 그런 고통을 주고 싶지 않았다.
-엄마, 난 괜찮아. 다친 데도 없고 멀쩡해. 나 여기서 사람도 구했다? 아이도 한 명 구하고, 이상한 진상 아저씨도 구하고, 다친 사람들 많이 구했어. 나 잘했지? 그러니까 밖에 나가면 고기 사줘, 고기.
글을 쓰던 박수진의 눈에 애써 참고 있던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엄마가 보고 싶었다.
아빠가 보고 싶었다.
키우던 강아지 두부도 보고 싶었다.
친구들도 보고 싶었고, 웬수 같은 남동생도 보고 싶었다.
그들을 다신 볼 수 없을 것 같아 너무도 무서웠다.
“흑.”
자신도 모르게 울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리고 그때였다.
캉캉-!
구원의 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