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49화
“또 무너졌습니다!”
박상태는 정신을 다잡았다.
보고 있는 사람이 많다.
여기서 불안한 모습을 보여서 좋을 게 하나도 없었다.
박정우를 데리고 구석으로 이동한 박상태가 조용히 물었다.
“김수혁은?”
“연락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박정우의 착- 가라앉은 대답에 박상태는 입술을 깨물었다.
하늘을 향해 한바탕 욕을 퍼붓고 싶었다.
이번엔 아무리 수혁이라 할지라도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팀장님.”
박정우가 박상태를 불렀다.
그의 입술이 찢어지며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박상태는 소매로 피를 거칠게 닦아내고는 무전기를 들었다.
“추가 붕괴 확인됐습니다. 지원팀 철수 바랍니다.”
“철수라니요? 지금 철수하면……!”
“어쩔 수 없다. 한 번 더 무너지면 여기도 안전하다고 장담 못 해.”
그런 위험한 장소에 지원팀을 불러들일 수 없었다.
“그럼 막내는요!”
박정우가 격앙된 표정으로 소리쳤다.
사람들의 시선이 이쪽으로 집중되는 것이 느껴졌다.
“목소리 낮춰, 이 새끼야.”
박상태의 거친 말투에 박정우가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그의 표정에는 감출 수 없는 불만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그놈 구하자고 여기 있는 사람들 죄다 위험에 빠트리자고?”
박상태라고 수혁을 구하고 싶지 않을까?
마음만으로 따지자면, 박정우보다도 박상태가 더 간절했다.
하지만 박상태는 구조 3팀을 이끌고 있는 팀장이었다.
그리고 다른 요구조자들의 생명 역시 책임을 지고 있다.
당장에라도 저 돌 더미들을 허물고 수혁을 구하러 달려가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죽었을지도 모를 수혁과 수십 명의 생명.
저울의 양쪽에 놓인 그 둘 중 어느 쪽이 더 무거운지는 굳이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명확했다.
“우선은 이곳에 있는 요구조자들부터 밖으로 빼낸다. 김수혁은 그다음이야.”
그 말은 마치 박정우보단, 자신에게 하는 말 같았다.
“……알겠습니다.”
박정우는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박상태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가족에게 연락은… 아.”
말을 하던 박정우가 아차! 하며 입을 다물었다.
수혁에게는 가족이 없었다는 것을 뒤늦게 떠올린 것이다.
“제수씨한테는 내가 연락하지. 너는 여기 상황부터 정리해.”
박상태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최은송에게 어떻게 말을 전해야 할지…….
도무지 떠오르질 않았다.
* * *
“목란에 향정식 나왔어요.”
최은송이 접시에 묻은 양념을 깨끗한 행주로 닦으며 말했다.
“마지막 상인가요?”
“네, 이제 오더 끝이에요.”
“오늘도 수고 많았어요.”
서빙을 해주는 직원이 웃으며 말하자, 최은송 역시 마주 미소 지었다.
“수고는 일러요. 아직 정리할 게 산더미인데.”
“하하하, 수고하세요.”
잽싸게 말을 바꾼 직원은 정갈하게 음식이 올라가 있는 카트를 들고 사라졌다.
“하아- 지친다.”
오늘 하루만 대체 몇 접시의 음식을 한 건지 셀 수도 없었다.
어깨는 떨어져 나갈 것 같았고, 다리는 끊어질 것처럼 아팠다.
“그래도 이제 끝이니까.”
앞으로 조금만 더 고생하면 달콤한 퇴근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흥흥흥-”
절로 나오는 콧노래를 부르며 다시 주방으로 들어갔다.
“무슨 좋은 일 있냐?”
안에서 칼을 닦고 있던 그녀의 선배가 그 소리를 들었는지,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쟤 요즘 연애하잖아요. 생각만 해도 좋은가 보죠.”
“너 연애해?
정리하고 있던 다른 여선배의 말에, 그의 눈동자가 동그래졌다.
“그런 거 아니거든요?”
“아니긴 뭐가 아니야. 표정에 다 쓰여 있구만.”
“연애하는 건 맞는데, 지금은 그냥 퇴근 시간 다 돼서 좋은 거라고요.”
최은송이 새침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이야, 어떤 놈이 우리 막내를 채갔을까? 뭐 하는 사람이야?”
최은송은 수혁의 이야기가 나오자, 자신도 모르게 실실- 웃음이 새어 나왔다.
“좋은 일 하는 사람이에요.”
“좋은 일 뭐?”
“소방관이요.”
최은송의 대답에 주방 사람들이 아- 하는 표정을 지었다.
“반응들이 왜 그래요? 소방관이 뭐가 어때서?”
“우, 우리 표정이 뭐 어떻다고? 소방관이라……. 훌륭하신 분들이지.”
가장 관심을 보였던 선배가 얼버무리듯이 대답했다.
“그렇죠? 제가 몇 번이나 수혁 씨가 사람들 구하는 모습을 봤는데, 정말 대단하더라고요.”
최은송은 흥분한 기색으로 수혁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았다.
첫 만남에서 트럭으로 뛰어들어 사람을 구한 일과 보육원 버스에서 아이들을 구한 일.
그리고 같이 봉사활동도 했으며, 무슨 소방관 대회에서 1등을 했다는 것까지.
그녀의 선배들은 최은송이 원래 이렇게 말이 많았나? 싶은 표정이었다.
“그런데 좀 위험하지 않아?”
여선배가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위험이요?”
“그게 왜, 그러다 다치고 그러면……. 나라에서 제대로 보상도 안 해주고 그런다던데.”
여선배의 걱정은 현실적이었다.
“음…….”
최은송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만약 수혁이 크게 다쳐서, 몸도 제대로 가누기 힘든 상태가 되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거운 주제였지만, 생각은 짧았다.
“수혁 씨가 다치면 뭐, 제가 먹여 살리면 되죠. 제가 또 한 능력하잖아요.”
밝게 대답하는 최은송의 모습에 선배들은 결국 웃음을 터트렸다.
“아주 여장부네, 여장부야. 그래, 우리 막내가 능력이 좋긴 하지.”
“돈도 잘 벌고, 얼굴도 예쁘고. 수혁 씨라고 했나? 우리 은송이 업고 다녀도 모자라겠어.”
농담 섞인 칭찬에 최은송이 배시시- 웃었다.
“잡담은 여기까지 하고, 뒷정리 시작하자. 빨리 퇴근해야지.”
“네!”
크게 대답한 최은송이 소매를 걷고 정리를 시작하려 할 때였다.
우우우웅-
그녀의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렸다.
“응?”
이 시간에 연락할 사람이 있던가?
‘수혁 씨는 지금 한창 일할 시간일 텐데…….’
누구지? 하며 폰을 꺼내 든 최은송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액정에 표시된 발신자가 박상태였던 것이다.
지난번 버스사고 이후로 연락처를 저장해 두긴 했지만, 실제로 연락이 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최은송은 의아한 표정으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예상치 못한 연락이었지만, 최은송의 음성은 반가움이 가득했다.
수혁의 직장 선배라서가 아니라, 그날 본 박상태와 김강식은 참 좋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제수씨? 오랜만입니다.]
“그러게요.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최은송과는 달리, 박상태의 음성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것이 느껴지자 최은송은 불안해졌다.
방금 전 선배들과 나눈 대화 때문에 더욱 그랬다.
하지만 그저 피곤해서 그런 것일 뿐, 별일 아닐 것이라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하지만 뒤이어진 박상태의 말에, 최은송의 표정이 무너져 내렸다.
[수혁이가 지금 위험합니다. 어쩌면… 잘못됐을 수도 있습니다.]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선배들에게 뭐라고 말을 하고 가게를 나왔는지, 그리고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차를 향해 달려간 것까지는 기억이 났지만, 운전한 기억은 나질 않았다.
그럼에도 최은송은 무사히 이곳에 도착했다.
“이게…….”
그녀는 자신이 받아들일 수 있는 한계를 벗어난 충격에 몸을 휘청거렸다.
아수라장이었다.
정신없이 번쩍거리며 주변을 밝히는 붉은 경광등과 뇌리에 박히는 사람들의 비명 소리.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구급차가 몰려 있었고, 그보다도 많은 사람이 피를 흘리고 있었다.
지하철 역사는 본래의 형체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폭격이라도 맞은 것처럼 폭삭 주저앉아, 마치 거대한 돌무덤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도대체 몇 명이나 되는지 셀 수도 없는 소방관들이 그 잔해들을 헤치며 수색을 진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희망은 보이지 않았다.
지금까지 그들이 그 잔해 안에서 찾은 이들은 대부분 숨이 끊어진 상태였던 것이다.
“여기 사람!”
누군가 소리쳤고, 온갖 장비를 갖춘 소방관들이 그쪽으로 향했다.
힘을 합쳐 무거운 돌을 들어 올리자, 사람의 팔이 보였다.
다급해진 사람들이 주변의 잔해들을 치우며 팔의 주인을 꺼내기 위해 애를 썼다.
그리고…….
마침내 사람을 밖으로 꺼낸 소방관들의 표정이 어두웠다.
이번에도 생존자가 아닌, 사망자였다.
소방관들은 시체를 들것에 싣고는 구급차가 있는 곳으로 옮겼다.
그리고 다시 수색을 시작했다.
그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최은송이 자신도 모르게 손을 들어 입을 막았다.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리며 그녀의 뺨을 적셨다.
수혁이 저 지옥 같은 곳 아래에 있다는 사실이 너무도 무서웠다.
혹시라도 그도 저렇게 되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제수씨?”
그때, 누군가 그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란 최은송이 고개를 돌리자, 그녀의 뒤에 서서 눈을 크게 뜨고 있는 김강식이 보였다.
김강식은 그녀를 여기서 볼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여긴 어떻게……? 아니, 어떻게 알고?”
“사, 상태 오빠한테 전화가…….”
최은송은 넋이 나간 얼굴로 말을 더듬었다.
김강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가족이 없는 수혁이었으니, 연락할 사람이 그녀밖에 없었을 테니까.
김강식은 난감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곤 주변을 둘러보다 그녀의 손을 잡아 이끌고는 자리를 옮겼다.
“일단 이쪽으로 가죠.”
“수, 수혁 씨는요? 수혁 씨 지금 살아 있는 거 맞죠?”
최은송은 그의 뒤를 따라가며 물었다.
하지만 김강식은 그것에 대한 대답을 해줄 수가 없었다.
그도 몰랐으니까.
하지만 그는 이내 확신에 가득 찬 음성으로 말했다.
“살아 있을 겁니다.”
그 대답에 최은송의 표정이 약간이지만 풀렸다.
“자세한 건 설명드릴 수가 없어요, 우리도 지금 파악 중이라서. 그러니까 일단은 상황이 조금 정리될 때까지 여기서 기다리고 있는 게 좋을 겁니다.”
김강식이 최은송을 데리고 온 곳은 구조 3팀의 구조차가 주차되어 있는 곳이었다.
“연락은 안 되나요?”
최은송이 김강식의 어깨에 매달려 있는 무전기를 보며 물었다.
전화는 무리더라도, 혹시 소방관들이 쓰는 무전기라면 수혁과 연락이 되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저희도 지금 연락할 방법을 찾고 있어요.”
돌려서 말하긴 했지만, 안 된다는 뜻이었다.
최은송의 눈에서 다시 눈물이 흘러내렸다.
“저희가 구할 겁니다. 무조건 구할 거예요. 그놈이 이렇게 쉽게 갈 놈 아니라는 거, 제수씨도 잘 알잖아요.”
최은송은 닭똥 같은 눈물을 떨어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꼭 구해주세요.”
살아서 돌아오기만 하면 된다.
어디가, 얼마나 다쳤든, 살아서 나오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선배들에게 말한 것처럼, 자신이 어떻게든 책임지고 먹여 살릴 자신도 있었다.
그러니까…….
살아만 있으면 된다.
최은송은 계속해서 그렇게 속으로 되뇌었다.
“약속할게요.”
김강식이 무거운 목소리로 대답하고는, 어딘가로 달려갔다.
‘제발…….’
최은송은 눈을 감고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어떤 신이든 좋았다.
제발 수혁만 살려줄 수 있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