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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50화 (50/425)

레스큐 시스템50화

수혁이 팔을 들어 손목에 찬 시계를 확인했다.

추가 붕괴가 일어나고, 이곳에 갇힌 지 네 시간이 흘렀다.

간간이 들려오는 부상자들의 신음 소리를 제외하면 아무런 말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들 역시 지금 상황이 그리 희망적이지 않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오히려 울며불며 소란을 피우지 않는 것이 다행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시간이 꽤 흐른 덕분에, 수혁은 어느 정도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여전히 자책감이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그것에 매여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그의 어깨 위에 열여섯이라는 숫자의 생명이 짊어져 있었으니 말이다.

문제는 끝도 없이 산적해 있었다.

물과 음식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테고.

구급약도 필요했다.

수혁이 조금이나마 챙겨왔던 것들도 이미 저 안에 깔려 어디 있는지 찾을 수도 없었다.

장비들도 없었다.

머리에 있는 랜턴을 제외하면, 모두 매몰되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공기가…….’

이 주변은 완전히 무너져 내려 고립되어 있는 상태였다.

아예 공기가 통하지 않는다고는 말하지 못하겠지만, 여기 있는 사람들이 몇 날 며칠 동안 버틸 수 있을 정도는 아닐 것이다.

아니, 분명 얼마 지나지 않아 공기가 바닥이 날 게 분명했다.

그때가 되면 끝장이었다.

목이 마르고 배가 고프기도 전에, 숨을 쉬지 못해 질식사하는 것이 더 빠를 것이다.

공기가 희박해져 가며 점차 의식이 몽롱해지고, 꿈을 꾸는 듯한 기분으로…….

‘고통스럽지 않게 죽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인가?’

수혁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뱉었다.

“우리 살 수 있을까요?”

박수진의 침울한 음성이 적막을 깨트렸다.

“포기하지 마세요.”

수혁은 애써 힘을 주어 대답했다.

아무리 좋지 못한 상황이라 하지만, 수혁마저 부정적인 모습을 보일 순 없었다.

지금 수혁은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포기 안 하면 살 수 있습니까?”

이번엔 군인이 물었다.

그는 매우 지친 기색으로, 언뜻 후회하고 있는 표정이었다.

“살 수 있습니다.”

수혁의 말에 군인이 힘없는 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지금 매우 억울한 상태였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재난에 누구보다 빨리 발 벗고 나서서 다른 이들을 도왔다.

군인으로써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망설이지 않고 행동했다.

그런데 돌아온 대가가 이것이었다.

선의를 갖고 도와준 남자 한 명이 저지른 일 때문에, 이제는 자신이 죽게 생겼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남이야 어떻게 되든 말든, 혼자 살 길을 찾았을 것이다.

“후우- 그 거짓말, 진짭니까?”

그렇게 묻는 군인의 음성에는 믿음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사실 수혁이라고 뾰족한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힘이 세다 한들, 자신들을 가두고 있는 이 거대한 잔해들을 옮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설사 그런 힘이 있다고 해도 문제였다.

시간도 시간이었지만, 정말이지 조금만 잘못 움직여도 다시 붕괴가 시작될 정도로 이곳은 불안정했다.

‘혼자라면 어떻게든 빠져나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수혁에게는 스킬 ‘실드’가 있다.

5분간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절대적인 보호가 보장되어 있는 스킬.

이곳이 무너질 것을 생각하지 않고 5분 동안 미친 듯이 탈출에 매진한다면.

어쩌면 살아서 밖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수혁은 그것은 고려조차 하지 않았다.

같이 죽으면 죽었지, 이곳에 있는 사람들을 포기할 생각 따위는 없었으니 말이다.

“포기하긴 아직 일러요.”

수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 하시려고요?”

박수진이 수혁을 따라 일어나며 물었다.

“여기서 빠져나갈 방법을 찾아봐야죠. 언제까지 앉아 있을 수만은 없으니까.”

일부러 밝게 대답을 한 수혁은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기가 막히네.’

유독 이곳만 붉은색 표시가 나타나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커다란 광고판과 스크린 도어의 철골조가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무너져 내리던 잔해들을 지탱하고 있었다.

만약 조금이라도 구조가 어긋나 있었더라면,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이곳 역시 매몰되었을 것이다.

수혁은 새삼스럽게 자신이 갖고 있는 스킬에 대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순간이동 같은 스킬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런 스킬이 있었다면, 이곳에서도 충분히 빠져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그 이후에는 엄청난 후폭풍이 불겠지만…….

‘아무렴 어때, 일단 살아남는 게 중요하지.’

순간이동에 대해 떠올리자 그 활용법들이 무궁무진하게 떠올랐다.

요구조자들을 데리고 같이 빠져나가거나, 그런 것이 불가능하다면 물자나 봄베 같은 장비들을 가지고 돌아올 수도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순간이동 스킬이 없다는 것이 너무도 아쉬웠다.

하지만 아쉬워한다고 해서 갑자기 스킬이 뚝- 하고 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은 가지고 있는 것들을 이용해 이곳을 빠져나갈 방법을 찾아야 했다.

“음…….”

수혁이 침음성을 뱉었다.

괜찮다 싶어 보이는 곳임에도 수혁이 손만 가져다 대려고 하면 순식간에 붉은 표시가 퍼져 나갔다.

그곳을 건드리면 안 된다는 뜻이었다.

‘젠장, 도무지 건드릴 수 있는 곳이 없네.’

위쪽으로 갈 수 있을 만한 곳에는 손을 대는 족족 붉은 표시가 나타났다.

“하아…….”

수혁이 다시 한 번 한숨을 쉬었다.

“……방법이 없어요?”

수혁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던 박수진은 그 한숨의 의미를 깨닫고는 안색이 어두워졌다.

“조금 더 찾아봅시다.”

“저희도 도울게요.”

수혁 혼자서 움직이는 것보다는 모두 같이 찾는 것이 나을 것이라 판단한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수혁은 고개를 저었다.

자신도 스킬이 아니라면, 어디가 위험한지 제대로 구분을 할 수가 없는 곳이었다.

만약 사람들이 막무가내로 이곳저곳을 들쑤시다 잘못 건드리면, 또다시 악몽이 펼쳐지고 말 것이다.

“저 혼자 하는 게 낫습니다. 아무거나 건드리면 큰일 나요.”

사람들이 멈칫했다.

수혁이 말한 큰일이 뭔지는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히 알아들었다.

마른침을 삼킨 사람들이 다시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집에 가는 건데…….”

오직 박수진만이 수혁의 근처에 맴돌며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오늘 남자친구한테 바람맞았거든요. 여기서 30분이 넘게 기다렸어요. 진짜 그놈만 아니었으면 이런 일도 안 겪었을 텐데.”

수혁은 이 와중에도 남자친구를 욕하며 전의를 불태우고 있는 이 젊은 아가씨의 모습에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누군가의 얼굴이 떠올랐다.

수혁의 여자친구.

‘최은송.’

비록 만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 누구보다도 좋아하는 사람.

‘은송 씨한테 연락이 갔을까?’

수혁은 그것을 바라지 않았지만, 박상태라면 최은송에게 연락을 했을 것이다.

수혁과 가까운 지인들 중 박상태가 연락처를 알고 있는 사람은 최은송이 유일했으니까.

그리고 최은송이 알았다면 고승우에게도 소식이 갔을 확률이 높았다.

‘많이 놀랐을 텐데…….’

고승우야 그렇다 치고, 최은송이 너무 큰 충격을 받지 않았을까 걱정이 되었다.

이제는 이런 일 때문에 그녀가 자신을 떠나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놀라거나 무서워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진 않았다.

만약 최은송이 자신과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수혁 역시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놀라고 무서울 테니까.

수혁은 최은송을 생각해서라도 어떻게든 이곳을 빠져나가야만 했다.

그래서 언젠간 그녀와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싶었다.

그 아이가 또 아이를 낳을 때까지, 그녀와 함께 천천히 늙어가고 싶었다.

그때까진 죽을 수 없었다.

‘천수를 못 누리고 죽는 건 한 번으로 족해.’

이전 생에서도 사람의 목숨을 구하다 죽었다.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며 각오하긴 했지만, 또다시 그렇게 죽고 싶진 않았다.

‘결혼은 한번 해봐야 할 거 아니냐!’

남들은 한 번 사는 인생에서도 잘만 하는 결혼이다.

그런데 두 번째 삶을 살고 있는 수혁은 아직 한 번도 하지 못했다.

그것이 억울해서라도 살아야 했다.

“여기서 나가면 절대 가만두지 마요.”

수혁은 최은송을 생각하며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가만둘 생각은 하지도 않고 있거든요? 나가기만 해봐요. 아주 그냥, 젓갈을 담가서 땅속에 파묻어 버릴 생각이니까.”

‘젓갈을 담그다니.’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박수진의 어휘 선택에 수혁이 허허- 하며 웃었다.

“그래그래. 땅에 묻어버…….”

조금이라도 분위기를 환기시키고자 박수진의 말에 맞장구를 치던 수혁이 갑자기 말끝을 흐렸다.

“응? 왜요? 제가 말이 너무 심했어요? 원래 이런 성격이 아닌데, 지금 긴장을 좀 많이 해서…….”

박수진은 뒤늦게 자신이 말을 너무 험하게 했다는 것을 깨닫고 수습을 하려 했지만, 수혁은 이미 그녀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잠시만요.”

손을 들어 박수진의 입을 막은 수혁이 다시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전과는 다른 곳들을 집중적으로 보고 있었다.

‘왜 이 생각을 못했을까?’

땅속이라니!

위로 가지 못한다?

그렇다면 밑으로 가면 되지 않겠는가?

여기가 빌딩 붕괴 현장 같은 곳이었다면 말도 안 되는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여기는 달랐다.

‘지하철.’

그렇다.

여기는 지하철 플랫폼이다.

그 말은 곧, 이 근처에는 지하철이 다니는 철로가 있다는 뜻이었다.

‘스크린 도어가 있는 걸로 봐선 바로 근처에 철로가 있다는 뜻이다.’

붕괴된 곳은 지하철역이다.

어느 정도 주변에 영향을 주긴 했겠지만, 철로 쪽은 그나마 이곳보단 붕괴의 여파에서 벗어나 있었다.

‘게다가 이 역에는 열차도 정차해 있었지.’

수혁은 빠르게 계획을 짰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열차가 어느 쪽에 있는지 방향을 찾는 것이다.

그리고 방향을 찾는다면, 최대한 조심스럽게 이곳과 열차를 잇는 통로를 만든다.

어렵기야 하겠지만, 밖으로 향하는 길을 만드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난이도가 낮았다.

게다가 열차 안이라면 이 붕괴 속에서도 무사할 확률이 높았다.

열차의 구조와 강도라면 웬만한 무게도 견딜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일단 열차로 가면, 철로가 이어진 터널을 통해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물론 거기서도 땅을 파야 하겠지만 말이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었다.

위험하기까지 했다.

그렇지만 이곳에서 아무런 희망도 없이 앉아서 죽음을 기다리느니,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살길을 찾는 게 낫지 않겠는가?

“잠시 모여보시겠어요?”

수혁이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자신이 생각했던 바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지금 사람들에게는 이곳에서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이 필요했다.

수혁이 의도한 대로, 짧은 설명을 들은 사람들의 얼굴이 환해졌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던 어두운 미래가, 조금은 밝아진 것이다.

수혁을 비롯한 사람들의 얼굴에 작게나마 희망의 빛이 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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