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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55화 (55/425)

레스큐 시스템 55화

입에서 단내가 나는 것 같았다.

체력 비축에 대한 생각도 하지 않고 미친 듯이 전진한 탓이었다.

처음에는 차근차근 움직일 생각이었다.

이곳에서 채 빠져나가기도 전에 완전 방전이 되어버릴 순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구조대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자 생각이 바뀌었다.

저들이 돌아가기 전에 어떻게 해서든 자신들의 존재를 알려야만 했다.

그래서 수혁은 힘을 아끼지 않았다.

덕분에 엄청난 속도로 여기까지 도착할 수 있었지만…….

‘한계야.’

당분간은 손가락 하나도 까딱하기 힘들 정도로 지쳐 버렸다.

‘구조대는 어디까지 왔지?’

잠시 바닥에 주저앉아 휴식을 취하던 수혁이 스킬을 발동시켰다.

그리고 얼굴이 찌푸려졌다.

‘거의 멈춰 있는 상태다.’

조금 가까워지긴 했지만, 수혁이 이동한 거리를 생각해 보면 구조대의 속도가 너무 느렸다.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저들에게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능력이 없었으니까.

수혁은 속이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이대로 구조대가 포기하고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그건 안 돼.’

수혁이 품에서 박수진에게 빌린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잠깐잠깐 전원을 켜 사용했음에도, 배터리는 거의 바닥을 보이고 있어, 언제 꺼질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수혁은 망설이지 않고 플래시를 켜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그러다 뭔가를 발견하곤 그곳을 향해 다가갔다.

붕괴의 충격 때문인지, 너덜너덜해진 철봉이었다.

수혁은 마지막 남은 힘까지 쥐어짜 그것을 뜯어냈다.

끼기긱-!

평소의 수혁이었다면 별다른 힘도 들이지 않고 뜯어낼 수 있었겠지만, 힘이 다한 지금은 한참 동안 용을 쓰고 난 후에야 간신히 뜯어낼 수 있었다.

“아이고, 죽겠다.”

농담처럼 내뱉은 말이었지만, 수혁은 정말로 죽을 것 같았다.

손에서는 멎었던 피가 다시 줄줄 흐르기 시작했고, 핑- 하며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였다.

하지만 수혁은 이를 악물고 손에 든 철봉을 휘둘렀다.

캉- 캉- 캉-!

처음에는 쉬지 않고 계속 두드리려고 했다.

하지만 도저히 그럴 힘조차 남아 있질 않았다.

반쯤 쓰러지다시피 바닥에 누워 다섯 번을 두들기고 5초 동안 쉬는 것을 반복했다.

그렇게 얼마를 두드렸을까?

구조대의 움직임이 바뀌었다.

‘됐다!’

제자리에 가만있던 구조대의 움직임이 활발해졌던 것이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한 행동이었다.

무너진 흙과 돌에 막혀 소리가 거기까지 들릴지, 안 들릴지 확신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 다행히도…….

‘들렸구나.’

천만다행이었다.

이곳에 요구조자가 있다는 사실을 저들이 알았으니, 이제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아예 진입이 불가능하다면 모를까, 조금 위험하고 시간이 걸릴지언정 충분히 도달할 수 있었으니까.

‘그나저나 왜 세 명밖에 없지……?’

보통 구조대 한 팀은 팀장 한 명과 5인으로 구성된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지금 이곳으로 오고 있는 사람은 고작 세 명에 불과했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가?’

한 팀이 전부 있었다면 조금 더 수월했을 것이란 생각에 수혁은 조금 아쉬워졌다.

‘설마 우리 팀은 아니겠지.’

수혁은 설마 하는 생각에 속으로 웃었다.

구조 3팀은 현재 정신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자신에 대한 문제도 그렇고, 붕괴 현장을 코앞에서 경험했으니 말이다.

‘상태 형한테 아무 일도 없었으면 좋겠는데…….’

혹시 박상태가 그 붕괴에 휘말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조금 답답해졌다.

‘밖에 나가면 상태 형을 좀 찾아봐야겠다.’

움직이기도 힘든 상황 속에서도 수혁은 박상태를 걱정했다.

이전 생에서 자신의 목숨을 구하고 대신 순직한 사람이었으니,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일단은…….’

이곳에서 나가는 게 먼저였다.

수혁은 끙- 하는 소리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금이라도 구조대와 빠르게 조우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수혁은 떨리는 손으로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최문식은 그야말로 미친 듯이 차를 몰았다.

이래선 안 된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딸에 대한 걱정에 마음이 급해졌다.

덕분에 신일역까지 도착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물론 그 대가로 과속딱지를 수도 없이 많이 받게 되겠지만 말이다.

쾅-!

차에서 내린 최문식은 문을 세게 닫고는 주변을 살펴봤다.

“허어-”

TV로 보긴 했지만, 직접 목도한 사고 현장은 그야말로 전쟁터 같았다.

이런 곳에 딸이 머물고 있다는 생각에 정신이 아찔해졌다.

혹여나 좋지 않은 일에 휘말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물밀 듯 밀려왔다.

곧장 딸에게 가고 싶었지만 이런 상황에선 찾기도 어려워 보였기에, 최문식은 곧바로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하지만 최은송의 전화기는 꺼져 있었다.

이런 곳에서 충전할 수 있을 리가 없을 테니, 배터리가 다 된 것일 수도 있었다.

최문식은 곤란한 표정으로 어쩔 수 없이 주변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쉽게 딸을 찾을 수는 없었다.

이 주변이 너무 복잡하기도 했고, 사실상 평범한 민간인에 불과한 그가 접근할 수 없는 곳도 많았기 때문이었다.

사실 최은송은 그가 들어갈 수 없는 안쪽에 있었지만, 그것을 모르는 최문식은 그저 주위를 서성이며 딸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어디 있는 건지…….”

그렇게 한참 동안이나 딸을 찾던 최문식이 한숨을 내쉬며 걸음을 멈추었다.

신일역 주변은 모두 찾아보았다.

그럼에도 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제 그가 가보지 않은 곳은 접근 금지 라인이 쳐져 있는 곳 안쪽뿐이었다.

‘설마?’

최문식은 그럴 리 없다 생각하면서도 라인을 향해 다가가 안쪽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그토록 찾고 있던 딸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

“은송아!”

딸은 멀리서 한눈에 보기에도 초췌한 모습이었다.

눈처럼 새하얗던 셰프복은 흙먼지에 꼬질꼬질해져 있었고, 표정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어둡다는 것은 확실했다.

최문식이 더는 앞뒤 생각할 겨를도 없이 곧바로 라인을 넘어 안쪽으로 들어갔다.

“어? 여기 들어오시면 안 되는데.”

지나가던 소방관 한 명이 그런 최문식을 보고는 제지하려 했다.

“딸이 저기 있네. 딸만 데리고 곧장 나올 테니 잠시만…….”

최문식이 그를 향해 부탁했다.

어찌나 간절해 보이는 표정이던지, 소방관은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저랑 같이 가시죠.”

위험한 현장에 민간인을 함부로 돌아다니게 할 순 없었다.

그랬다가 무슨 사고라도 난다면, 후속 조치가 잘못되었다느니, 소방관들이 안일했다느니.

그런 말들로 도배가 될 테니 말이다.

그러니 혼자 이곳을 활보하게 둘 순 없었고, 자신이 동행하기로 했다.

바쁘긴 했지만 마침 그쪽으로 가던 도중이었기도 했으니.

“고맙네, 고마워.”

최문식은 소방관의 뒤를 따라 최은송을 향해 다가갔다.

“이 근처에서 벗어나시면 안 됩니다. 제가 금방 다시 올 테니까 그때 같이 나가세요.”

최문식은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는 소방관이 뭐라 하는지 제대로 들을 정신이 아니었다.

이제 확연히 가까워진 딸의 모습은, 멀리서 봤을 때보다도 더 힘들어 보였던 것이다.

“은송아!”

소방관의 충고가 무색하게도, 최문식은 딸을 향해 후다닥- 달려갔다.

“거참.”

소방관이 헛웃음을 지으며 걸음을 옮겼다.

부녀상봉은 퍽- 감동스러운 장면이었지만, 지금은 이렇게 한가로이 그것을 바라보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반면 최은송은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퍼뜩- 놀라 고개를 돌렸다.

“……아빠?”

그녀의 눈이 동그래졌다.

최문식과 통화한 기억은 있었다.

그리고 그에게 몇 가지 부탁을 한 것도.

그런데 정말로 이곳까지 찾아올 줄은 몰랐다.

‘아니, 아빠 성격이라면…….’

소문난 딸바보인 최문식이, 자신의 딸이 이런 곳에 있다는데 안 올 리가 없었다.

최은송은 우는 듯, 웃는 듯한 표정으로 최문식을 향해 다가갔다.

“괜찮아? 어디 다친 덴 없고?”

최문식은 최은송을 이리저리 돌리며 혹시나 다치진 않았는지 살폈다.

“아니야, 아빠. 나 안 다쳤어.”

그저 좀 씻지도 못하고, 옷도 갈아입지 못해 꾀죄죄해 보일 뿐.

수혁의 동료들이 바쁜 와중에도 그녀를 챙겨주어 밥도 꼬박꼬박 챙겨 먹었다.

잘 넘어가진 않았지만…….

“이놈아, 이게 괜찮은 거야?”

하지만 아빠인 최문식의 눈에는 그녀가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한 것 같이 보였다.

“일단 옷부터 갈아입자. 그리고 난 다음에 집으로 돌아가고.”

옷을 갈아입자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최은송이 멈칫했다.

그 모습을 본 최문식이 한숨을 쉬었다.

“은송아, 네가 그 수혁인지 미역인지 하는 놈을 기다리는 건 좋은데, 여기서 이러는 건 아니다. 민폐야.”

짐짓 엄하게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이렇게 복잡하고 바쁘게 돌아가는 현장에 최은송이 있으면, 얼마나 거슬리겠는가?

통화할 때 들은 얘기로는 따로 챙겨주는 이들도 있다던데.

사람을 구해야 할 소방관들이 자신의 딸 때문에 그런 수고까지 해야 한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도 아는데……. 그래도 못 가겠어, 아빠.”

최은송의 눈에 다시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왠지 내가 여기서 떠나면, 다시는 못 볼 것 같아서 못 가겠어.”

결국 눈물을 주르륵- 흘리는 딸을 보며 최문식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대체 수혁이란 놈이 누구기에?’

딸의 남자친구.

그리고 사람들을 구하다 매몰된 소방관.

최문식이 아는 건 이 정도가 전부였다.

수혁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사람인지?

성격이 어떤지?

그런 것에 대해선 하나도 알지 못했다.

그럼에도 자신의 딸이 이렇게 울면서 걱정하는 걸 보면 괜찮은 사람이긴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딸이 전화하며 가장 먼저 했던 얘기가 떠올랐다.

“우리 수혁 씨 좀 살려줘요, 아빠.”

최문식은 울고 있는 딸을 보며 자신이 해줄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했다.

그리고 잠시 후.

그가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 * *

박상태는 한계에 다다랐음을 인정했다.

김강식과 박정우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박상태가 떠올린 한계란 체력적인 한계가 아니었다.

“우리끼린 무리다.”

이 앞은 사람의 힘만으로는 길을 뚫을 수가 없었다.

거대한 철근 콘크리트가 그들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이걸 건드리면 위험했다.

오래 걸리기도 할 테고.

안전하게 길을 뚫으려면 좀 더 첨단화된 장비와 인력이 필요했다.

“……안 되겠습니까?”

“그래, 이건 무리야.”

박상태가 분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럼 지원 요청을…….”

그 수밖엔 없었다.

요구조자가 확인된 마당이었으니, 위쪽에서도 마냥 무시하진 못할 것이다.

물론 그 대가로 자신들은 징계를 받겠지만.

‘그깟 징계, 받으면 되지.’

사람 한 명 살리는 대가치고는 가볍지 않은가?

“그럼 조금 쉬고 있어. 내가 직접 가서 얘기를…….”

말을 하던 박상태가 뒤를 돌아보았다.

김강식과 박정우 역시 박상태를 따라 시선을 옮겼다.

“불빛?”

저 멀리서 불빛이 보이고 있었다.

한두 개가 아니었다.

최소한 10여 개가 넘는 불빛이었다.

“뭐지? 우리 잡으러 왔나?”

김강식이 실없는 농담을 해봤지만, 웃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박상태는 조금씩 이쪽으로 다가오는 불빛들을 바라보다, 점점 눈이 커졌다.

“저건?”

오렌지색 제복이 어둠 속을 뚫고 박상태의 눈에 박혔다.

“……특수 애들인데?”

바로 수도권 119 특수 구조대였다.

“쟤들이 여길 왜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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