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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57화 (57/425)

레스큐 시스템 57화

길이 열렸다.

마침내 그들의 앞길을 막고 있던 장애물을 뚫고, 안쪽까지 이어진 길을 뚫은 것이다.

박상태와 구조 3팀이 작업을 시작했던 시점으로부터 꼬박 3일이 넘게 걸렸다.

하지만 감격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진입합니다.”

김갑수가 가장 선두에 서서 뚫린 길을 통해 안쪽으로 들어갔다.

안쪽에는 생각보다 커다란 공간이 있었다.

지금까지 그들이 뚫었던 커다란 콘크리트 덩어리가 지붕 역할을 한 모양이었다.

철로도 보일 정도로 양호한 공간에 김갑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저쪽인가 봅니다.”

뒤따라온 박상태가 한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열차의 꽁무니가 잔해에 파묻혀 반파된 상태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대원들은 그곳을 향해 다가갔다.

“사망자 한 명 발견.”

안타깝게도 기관사로 보이는 남자는 사망한 상태였다.

미처 붕괴 현장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고, 휩쓸린 모양이었다.

박상태는 그를 향해 잠시 고개 숙여 묵념하고는 다시 주변을 살펴보았다.

열차 안의 상태도 나쁘지 않았다.

이리저리 찌그러지고 유리가 박살나 있긴 했지만, 사람들이 오가기에는 충분했다.

“연결로는 막혀 있는 것 같군요.”

김갑수가 한쪽을 가리켰다.

그의 말대로 열차 사이의 연결통로는 막혀 있었다.

“그나마 다행입니다.”

저 정도면 뚫는 데 그리 힘들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요구조자는 열차 안에 있는 것 같습니다.”

이곳에 있을 것이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러기엔 소리가 너무 멀었으니까.

김갑수의 말처럼 열차 안에 있는 게 확실했다.

이 정도의 상태라면 살아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서두릅시다. 시간이 꽤 흘렀으니, 컨디션이 좋지 않을 겁니다.”

그렇지 않아도 신호가 끊겼다고 하지 않았던가?

정신을 잃었거나, 최악의 경우에는 이미 사망한 상태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시간을 지체하면 지체할수록 그럴 확률이 더욱 높아진다.

“너희는 저기 뚫고, 지원 나오신 분들은 주변 수색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박상태와 구조 3팀에게는 사망한 기관사의 시신 수습을 부탁했다.

아직 체력이 완전히 회복되지 못했기에, 그나마 힘이 덜 드는 일을 맡긴 것이었다.

김갑수의 배려에 박상태는 고맙다는 듯 눈짓을 하고는 김강식과 박정우를 데리고 열차 쪽으로 이동했다.

재난 현장에서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사망자의 시신을 수습하는 일 역시 구조대가 하는 일 중 하나였다.

박상태 역시 그런 경험이 많았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경험이 있다 한들, 도저히 익숙해지질 않았다.

‘하긴, 거기에 익숙해져서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하면, 구조대 관둬야지.’

박상태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을 하며 기관사의 시신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사이 특수 구조대는 열차 안으로 진입해 막혀 있는 곳을 뚫기 시작했다.

지난 며칠 동안 구조 3팀이 뚫은 것에 비하면 그리 어려운 작업도 아니었다.

힘이야 좀 들겠지만, 그들에게는 장비도 있었고 사람도 더 많았다.

게다가 붕괴 위험도 없었으니…….

열차의 연결통로를 뚫는 것은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시신 수습이 끝난 구조 3팀과 다른 구조대원들은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그들의 뒤에 서 있었다.

그들이 파악한 바에 의하면, 요구조자는 이 열차의 다음 칸에 있는 것이 확실했다.

문제는 과연 그 요구조자가 아직 살아 있냐는 것.

그 누구도 입 밖에 내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모두 불안함에 젖어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관문이 열리고…….

“여기 사람 있어요!”

한 여자의 외침이 들려왔다.

김갑수는 그 음성을 듣자마자 곧바로 안쪽을 향해 달려들어 갔다.

그러면서 무전기를 들고 소리쳤다.

“생존자 발견, 생존자 발견!”

그런 김갑수의 뒤를 따라 들어간 박상태의 눈이 더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역시, 형일 줄 알았다니까…….”

반송장이 된 모습으로 박상태를 향해 웃으며 말하는 남자.

“너… 이 새끼…….”

박상태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 * *

“생존자 발견했답니다!”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지금까지 시끄럽긴 했어도, 분위기 자체는 엄숙하기 그지없던 현장이다.

생존자 발견 0명에 늘어나는 것은 사망자 숫자뿐이었으니, 당연한 분위기였다.

그런데 마침내 생존자를 발견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흥분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소방관들은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고, 기자들 역시 동분서주했다.

대한민국 전체가 들썩일 정도의 참변이 일어난 이후, 첫 기적이다.

지금 이때만큼은 모든 사람의 이목이 생존자에게로 쏠렸다.

최은송 역시 마찬가지였다.

최문식이 가져다준 옷으로 갈아입은 그녀는 초조한 얼굴로 생존자의 소식이 전해지길 기다렸다.

“수혁 씨겠죠? 그래야 하는데…….”

누군가는 이기적이라 말할 수도 있겠지만, 최은송은 생존자가 제발 수혁이길 바랐다.

“좀 진정하거라.”

최문식은 안절부절못하는 딸을 보며 덩달아 긴장했다.

딸의 그런 모습에 얼굴 한 번 못 본 수혁이란 놈이 궁금해질 지경이었다.

만약 수혁이 살아서 돌아온다면, 그땐 자신의 딸을 이렇게 고생시킨 대가를 톡톡하게 치르게 해주리라 마음을 먹었다.

‘그러니 꼭 살아 있게.’

최문식은 그렇게 기도했다.

최은송을 위해서라도 제발 살아 있기를…….

그때.

저 멀리서 이재한이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다급해 보이는 그의 모습에 최은송은 ‘혹시?’ 하는 기대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녀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수혁이가 살아 있습니다!”

그토록 기다렸던 말.

최은송은 끊어질 듯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긴장의 실이 끊어지는 것을 느꼈다.

동시에 정신이 아찔해지며 휘청거렸다.

“은송아!”

깜짝 놀란 최문식이 그런 딸을 부축했다.

“어, 어디죠? 그 사람 지금 어디에 있어요?”

울음이 가득 섞인 음성으로 물었다.

“병원으로 이송 중입니다.”

“벼, 병원이요? 하지만 아직 생존자가 밖으로 나왔다는 얘기는…….”

“다른 쪽에서 구했습니다. 다행히 여기와는 거리가 좀 떨어져 있어서 사람들이 몰리기 전에 이송시킬 수 있었죠.”

이재한은 한시름 놓았다는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그는 박상태를 따라 수혁을 구하러 가지 못한 것에 대한 자책감에 마음고생이 심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괴롭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수혁이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듣자, 이재한은 최은송 못지않게 기뻤다.

“어디 병원이죠?”

최은송은 당장에라도 그곳을 향해 달려갈 것처럼 물었다.

하지만 이재한은 그것까지는 모르겠다는 듯 난감한 기색이었다.

“성동 병원입니다.”

그때, 누군가 말했다.

이재한이 깜짝 놀라 돌아보자, 그곳에는 강효상이 서 있었다.

“너……?”

“소식을 알고 싶어 하실 것 같아서 알아보고 오느라 좀 늦었습니다.”

강효상은 무뚝뚝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몸을 돌려 사라졌다.

그 역시 수혁이 걱정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비록 남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성격 때문에 오해를 사고는 했지만, 자신 역시 구조 3팀이었다.

그럼에도 박상태를 따라가지 않은 것은, 그는 함부로 명령을 어길 수 있는 처지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다른 동료들은 알지 못하는 모종의 이유 때문에 말이다.

“성동 병원이랍니다.”

이재한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하자, 최은송은 그에게 허리를 크게 숙이고는 곧장 자신의 차가 있는 곳으로 가기 시작했다.

“은송아! 잠깐만!”

그런 그녀를 최문식이 만류했다.

지금 최은송은 운전할 정신이 아니었다.

몸 상태 역시 그리 좋지 못해서 그녀가 운전했다간 크게 사고가 날지도 몰랐다.

“내가 데려다주마.”

최문식은 최은송을 끌고 자신의 차로 갔다.

내비게이션에 성동 병원을 찍은 뒤, 최문식은 바로 차를 출발했다.

차 안은 조용했다.

최문식은 과연 수혁이란 놈이 어떤 놈일지 생각하느라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고, 최은송은 말할 정신이 없었다.

길은 복잡했다.

신일역 일대는 거의 마비가 되다시피 했기 때문에, 교통체증이 심해도 너무 심했다.

그럴수록 최은송은 점점 더 다급해졌다.

1초라도 더 빨리 수혁을 보고 싶었다.

“지금 가도 바로는 못 볼 거다. 그러니까 좀 진정해.”

이곳에 와서 딸의 새로운 모습을 참 많이도 봤다.

남자 한 명 때문에 그렇게 애태우는 최은송의 모습이 그에게는 참 낯설었다.

그렇게 이성적이고 차분한 성격이었던 딸이 어쩌다 이렇게 변했는지…….

“남자친구 얘기 좀 해봐라.”

일단 살아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이제 더는 마음 졸이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도착하려면 시간도 남았고, 그사이에 수혁에 대해서 좀 알고 싶었다.

어떻게 만난 건지, 어떤 사람인지.

최문식의 물음에 최은송이 천천히 설명을 시작했다.

고승우의 소개로 만나게 되었다는 것과 첫 만남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도.

그녀의 설명을 듣던 최문식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한 건 직접 보고 겪어야 알겠지만, 딸의 이야기를 들어봐선 괜찮은 남자 같았다.

‘설마하니 콩깍지에 쓰여서 이러는 것 같지는 않고.’

딸이 이렇게까지 말하는 것을 보면 실제로도 괜찮은 것 같았다.

하지만 최문식은 수혁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람 자체는 괜찮을지 몰라도, 직업이 문제였다.

이번엔 살아 돌아와서 다행이지만, 다음에 또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최은송이 받을 충격과 슬픔은 엄청날 것이다.

‘그래도 아직은 괜찮다.’

지금은 그저 만나는 단계일 뿐, 결혼한 사이는 아니다.

최문식은 깊은 생각에 빠졌다.

자신의 딸과 수혁의 관계에 대해서.

“여기서 저 먼저 내릴게요.”

앞쪽에 성동 병원의 모습이 보이자 최은송은 그렇게 말하곤, 그대로 차에서 내려 버렸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수혁을 보고 싶다는 생각에 더는 참을 수 없던 것이다.

“허, 참.”

최문식은 그런 딸의 뒷모습을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환자입니다!”

미리 연락받고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들이 빠르게 스트레쳐에 붙었다.

신일역 사고에서 기적적으로 발견된 생존자의 숫자는 총 열일곱 명.

그중 부상이 심한 사람들은 다섯 명이었고, 나머지는 탈수증세가 좀 있을 뿐 양호한 상태였다.

수혁은 중상자 쪽에 속했다.

생명에 지장이 갈 정도로 눈에 띄는 외상은 없었지만, 탈수가 너무 심했고, 자잘한 외상이 너무도 많았다.

누가 보면 혼자 사람들을 다 구한 것 같았다.

‘혼자 구한 게 맞지.’

이송해 온 구급대원은 감탄했다.

다른 생존자의 말에 따르면, 그들이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은 모두 수혁의 덕분이었다.

거기다가 혼자 그들을 탈출시키기 위해 이렇게 몸이 엉망진창이 될 정도로 노력을 했다.

그것만으로도 수혁은 충분히 존경을 받을 만한 사람이었다.

수혁은 박상태에게 인사를 하고 난 다음 정신을 잃었다.

그때까지 버티고 있었던 게 용할 정도로 수혁의 몸 상태는 엉망이었다.

수혁은 다른 요구조자들과 함께 그 지옥 같았던 곳에서 구조되었다.

그러곤 밖에 준비되어 있던 구급차에 실려 병원에 도착했다.

의사는 일단 간단한 검사를 한 뒤, 수혁을 곧장 집중 치료실로 옮겼다.

지금 수혁은 그 누구보다도 가장 관심을 받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만에 하나라도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어휴, 생각하고 싶지도 않네.’

의사는 몸서리를 쳤다.

그러면서 수혁의 몸을 살폈다.

‘용케 아직까지 살아 있군.’

수혁은 겉으로 보는 것보다 심각한 상태였다.

외상은 둘째치고, 바이탈 수치도 오락가락하는 게 심상찮았다.

최대한 노력은 해볼 테지만, 아직 어떤 장담도 할 수가 없었다.

의사는 한숨을 내쉬며 집중 치료실 밖으로 나갔다.

일단은 보호자와 이야기를 좀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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