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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59화 (59/425)

레스큐 시스템 59화

수혁의 얼굴은 초췌했다.

그 안에 갇혀 며칠 동안 물 한 모금, 밥 한 숟갈도 먹지 못하고 동분서주했으니…….

수척해질 대로 수척해진 수혁을 본 최은송은 울먹거리며 그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누가 누구보고 얼굴이 상했다는 거예요?”

“그런가?”

최은송의 말에 수혁이 애써 웃음을 지어 보였다.

“저 정말 괜찮으니까 얼굴 좀 펴요.”

누군가 자신을 이렇게 걱정해 주고 있다는 사실에, 수혁은 괜히 기분이 좋았다.

물론 구조 3팀의 동료들도 자신을 걱정했겠지만, 그런 아저씨들과 최은송은 느낌이 많이 달랐다.

둘은 잠시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서로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다 문득 수혁이 물었다.

“많이 걱정했어요?”

당연히 걱정했을 것이다.

만약 서로 입장이 바뀌었다면, 수혁은 정말로 가슴이 새까맣게 타버렸을지도 몰랐다.

“지금 그걸 질문이라고 하는 거예요? 당연히 했죠!”

최은송이 눈가의 눈물을 닦아내며 대답하자, 수혁은 미안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미안해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는 하지만, 그녀에게 마음고생을 시킨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미안하다고도 하지 말고요.”

하지만 최은송은 수혁의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수혁 씨는 해야 할 일을 한 거니까. 저한테 미안하다고 하면, 수혁 씨가 구해낸 분들한테 제가 죄짓는 기분이에요.”

예상하지 못한 대답이었다.

“앞으로도 수혁 씨는 해야 할 일을 하세요. 저는 기다릴 수 있으니까요. 대신… 죽지만 마요, 절대로요.”

최은송의 입술이 수혁의 이마에 닿았다.

수혁은 잠시 그녀의 말을 곱씹다 고개를 끄덕였다.

“약속할게요.”

그러곤 최은송의 손을 붙잡았다.

조금 움직였다고 온몸이 아팠지만, 수혁은 내색하지 않았다.

“절대로 안 죽을게요.”

수혁의 약속에 그제야 최은송의 얼굴에 미소가 맺혔다.

“저… 분위기 깨서 죄송합니다만, 이제 제가 좀 봐도 되겠습니까?”

뒤쪽에서 멀뚱히 서 있던 수혁의 주치의가 헛기침하며 슬그머니 앞으로 다가왔다.

“아, 네.”

최은송은 다급히 주변을 살펴보았다.

환자, 간호사 할 것 없이 모두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둘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것을 확인한 최은송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어, 어, 저는 이제 그만, 면회 시간이…….”

당황한 최은송이 횡설수설을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한테 소문은 내지 않을 테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의사가 짓궂은 미소를 지은 채로 말하자, 그녀의 얼굴을 더욱 빨개졌다.

“자, 김수혁 환자분. 몸은 좀 어떠세요?”

“그렇게 좋은 것 같지는 않네요.”

엄살을 부리는 게 아니라, 정말로 죽을 맛이었다.

만약 최은송이 곁에 없었다면, 아프다며 곡소리를 내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래도 지금은 많이 좋아진 상태입니다. 처음에 실려 오셨을 때는 정말 위험했었으니까요.”

당시의 기억은 없었다.

박상태의 얼굴을 보고 안심하며 정신 줄을 놓아버렸으니 말이다.

그런데 간호사나 의사의 말을 들어보면 꽤나 심각한 상황이었던 것 같았다.

“지난번에도 느낀 거지만, 김수혁 환자분은 회복 속도가 매우 빠릅니다. 저도 신기할 정도로 말이죠.”

“……지난번이요?”

수혁은 자신이 이 의사를 만난 적이 있었던가? 하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리 봐도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조연산 화재에서 부상을 당하고 입원하셨을 때 본 적이 있습니다. 제 환자가 아니긴 하셨습니다만, 그때도 꽤 소문이 돌았었거든요.”

“아…….”

그러고 보니 여기는 그때 입원한 병원이었다.

“뭐, 경과가 좋으니 걱정하실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내일쯤 일반 병실로 옮겨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의사는 뒤에서 관심 있게 대화를 듣고 있는 최은송을 돌아보았다.

“일반 병실로 가면 지금보다 면회는 편하실 테니, 오늘은 이만 돌아갈까요?”

“아, 네.”

최은송은 아쉬운 얼굴로 수혁을 쳐다보았다.

며칠간 마음 졸이며 기다렸던 것치고는 만남의 시간이 너무도 짧았다.

“내일 봐요.”

수혁이 괜찮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환자분도 쉬어야 하니까요.”

최은송은 나가고 싶지 않았지만, 의사의 이어진 말에는 어쩔 수 없이 발길을 돌렸다.

“후우…….”

최은송의 모습이 사라지자, 수혁이 미간을 찌푸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참는다고 참았지만, 솔직히 너무 아팠다.

“여자친구가 미인이시네요.”

간호사 한 명이 수혁에게 다가오며 장난기 섞인 음성으로 말했다.

“역시 그렇죠?”

수혁은 당연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환자분은 팔불출이고요.”

“사실을 얘기한 건데요, 뭐.”

간호사의 장난에 수혁은 조금 통증이 가시는 것 같았다.

“그 예쁜 여자친구 얼굴 많이 보고 싶으시면, 빨리 나으셔야 하겠죠?”

간호사는 수혁의 능청에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이불을 걷었다.

“돌아누우세요. 붕대 갈아야 하니까.”

왠지 간호사의 손길이 거칠어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 *

“금일로 구조 활동을 종료한다는 발표가 있었습니다.”

“장장 12일에 걸친 구조 작업이 종료된다는 것은, 이제 더는 실종자가 없다는 뜻입니까?”

“그렇진 않습니다. 여전히 발견하지 못한 실종자들은 남아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벌써 종결짓는 겁니까?”

“완전히 마무리가 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어느 정도 정리가 된 만큼, 규모를 축소한다는 뜻입니다. 구조 작업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왜 갑자기 이런 결정을 내린 걸까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실종 신고가 된 분들 중 대부분을 찾았다는 것. 그리고 이젠 진행이 많이 된 만큼 많은 인원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비용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비용이요?”

“그만큼 지난 12일간 구조에 사용된 비용이 부담된다는 뜻이겠죠.”

뉴스에서는 아나운서와 전문가가 비용 문제와 그로 인해 벌어진 유가족들과의 갈등에 대한 주제를 다루고 있었다.

사과를 깎으며 그것을 보고 있던 최은송이 투덜거렸다.

“하여튼 이 나라는 사람 목숨보다 돈이 더 중요하다니까요.”

“하루이틀도 아닌데요, 뭐.”

수혁 역시 그녀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었다.

이전 생에서 돈 때문에 겪은 안 좋은 일이 한두 번이었던가?

특히나 공상(공무상 상해) 문제로 얼마나 더러운 꼴을 많이 봐왔던가?

소방관의 직무로 인해 질환에 걸렸다는 사실을 본인이 스스로 증명해야만 공상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절대 쉽지 않았다.

암 등 희귀 질환으로 인한 공상의 승인률은 고작 57% 정도에 불과하다.

오죽하면 국민들의 기부금으로 공상 불인정 소방관들의 치료비 지원을 할까?

국가에서 내줘야 할 돈을 국민들이 대신 내주는 것이었다.

그런 것을 곁에서 볼 때마다 정말 이 일에 회의감이 들 정도였다.

목숨을 걸고 일한 대가가 소송과 가정불화라니…….

“지금 끝내도 괜찮을까요? 아직 못 찾은 사람들이 있는데.”

수혁은 최은송의 말에 동의했다.

만에 하나, 십만에 하나라도 생존자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면.

정말 단 한 명이라도 살아서 구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는 희망이 있다면, 구조는 계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비용 문제 따위로 그들의 생명을 포기해선 안 된다.

하지만…….

“……어쩔 수 없죠.”

지금 수혁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지금 수혁의 몸 상태는 제대로 걷는 것조차도 힘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형님들이 잘해주길 바라는 수밖에요.”

대대적인 구조 작업의 중단이라는 것은, 지원을 나온 인력들이 철수한다는 뜻이었다.

그 말은 현장의 지척에 있는 신일서에선 계속해서 수색 작업을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최소한 일주일은 더 그곳을 뒤질 것이다.

“그나저나, 상태 형한텐 별 소식 없나요?”

수혁은 계속해서 박상태가 걱정되었다.

다행히 지금까진 별일 없었지만, 그렇다고 안심할 수는 없었다.

만일 자신이 입원해 있는 지금, 박상태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다면…….

도저히 구할 수 있는 방도가 없었다.

“네, 오늘도 별다른 얘기는 없었어요. 그저 수혁 씨 몸조리 잘하라고만 하던데요?”

최은송은 이상한 눈빛으로 수혁을 쳐다보았다.

벌써 똑같은 질문을 몇 번이나 물었다.

그것도 일반 병실로 자리를 옮기고 난 뒤, 매일같이 말이다.

이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누가 보면 내가 아니라 상태 오빠랑 사귀는 줄 알겠네.”

최은송이 살짝 눈을 흘기며 말하자, 수혁은 식은땀을 흘렸다.

“그게 아니고, 그냥 좀 걱정돼서.”

“대체 뭐가 걱정되는 건데요?”

딱히 대답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전 생에서 박상태가 자신을 구하다 죽었기 때문에 걱정된다고 말할 순 없지 않은가?

“제가 감이 좀 좋잖아요. 그런데 요즘 느낌이 영 안 좋아서…….”

최은송은 수혁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박상태와 김강식에게 수혁에 대한 얘기를 듣기는 했다.

지난번 보육원 버스 사고 때도, 수혁이 왠지 느낌이 좋지 않다고 그 둘을 데리고 갔다는 사실도.

그런 것을 보면 수혁의 말은 마냥 무시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제가 계속 알아볼게요.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알려주고.”

지금까진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했던 연락이었지만, 이제는 좀 관심을 갖고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 그런데 수혁 씨.”

그러다 문득 최은송이 뭔가 떠오른 표정으로 불렀다.

그런데 그녀는 쉽게 말을 잇지 못하고 우물쭈물했다.

그 모습에 수혁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무슨 일 있어요?”

“그건 아닌데……. 아니, 맞나?”

잠시 횡설수설하던 최은송은 작게 한숨을 내쉬더니, 결국은 말을 꺼냈다.

“오늘 저희 부모님이 오시기로 했어요.”

수혁은 잠시 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예?”

“아버지가… 수혁 씨 한번 보고 싶으시다면서…….”

순간 수혁은 눈앞이 새하얘졌다.

여자친구의 부모님을 보는 것이 처음은 아니었다.

이전 생에서도 한 번 본 적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는 미리 약속을 잡고,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한 상태였다.

지금처럼 갑작스러운 만남이 아니라.

최은송은 그런 수혁의 마음을 짐작하는지 미안한 얼굴로 수혁의 입에 과일을 넣어주었다.

“최대한 말려보려고 했는데, 이렇게 됐네요.”

사실 최은송은 그간 아버지의 방문을 막고 있었다.

왠지 아버지가 수혁을 탐탁지 않아 하는 눈치였기에, 더욱 필사적으로 막았다.

하지만 이제 그것도 한계였다.

잠자코 있던 어머니까지 가세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허락하고 만 것이다.

최은송은 수혁에게 미안함을 느끼는 동시에 내심 기대도 되었다.

그녀가 보는 수혁은 정말로 좋은 사람이었다.

책임감도 있고, 성실했으며, 무엇보다도 선한 사람이었다.

소방관이라는 직업과 지금 상황이 맞물려 아버지는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지만, 그것도 직접 만나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라 여겼다.

어머니는 언제나 그랬듯 자신의 편에 서줄 테고 말이다.

“어, 언제 오시는데요?”

수혁이 묻자 최은송이 배시시 웃으며 대답했다.

“한 10분 뒤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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