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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63화 (63/425)

레스큐 시스템 63화

“으흥흥.”

절로 콧노래가 나왔다.

커다란 캐리어에 옷가지를 싸는 수혁의 표정은 행복해 보였다.

“이런 날이 오기는 하는구나.”

드디어 내일이었다.

설렘 가득한 얼굴의 수혁은 그야말로 넣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때려 넣고 있었다.

누가 보면 3박 5일이 아니라 이민 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여권은 챙겼고…….”

그렇게 많이 챙겼으면서도 혹시 빠트린 게 있진 않은지 다시 체크를 했다.

“오케이!”

준비는 완벽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고시원 안에 있는 물건들은 죄다 캐리어 안에 들어간 것 같았으니…….

수혁은 침대에 드러누웠다.

하지만 잠이 오지는 않는지, 스마트폰을 들어 인터넷을 뒤적거렸다.

대부분 태국에 대한 것이었다.

태국, 그중에서도 푸켓의 날씨와 관광지, 음식 등등이 주를 이루었다.

“응?”

그러다 뭔가를 발견했는지 수혁이 자세를 바꾸며 액정에 집중했다.

“축제도 하네?”

운이 좋았던 것일까?

여행 기간 중에 푸켓에서는 축제가 열렸다.

송크란 축제.

일명 물 축제라고도 불리는 송크란은, 축제 기간 내내 물싸움을 벌이며 서로를 축복해 준다고 한다.

수많은 사람이 몰려 축제를 즐기고, 퍼레이드나 미스 송크란 선발대회 같은 행사도 있다고 하니…….

“이거 재밌겠다.”

너무 많은 사람이 모이면 혼잡스럽지 않을까 걱정도 되긴 했다.

하지만 그보다는 기대가 더 컸다.

“내일 만나면 얘기해 봐야겠다.”

수혁은 즐거운 상상을 하며, 결국엔 한숨도 못 잔 채 공항으로 출발을 해야만 했다.

“아이고, 덥다.”

더웠다.

물론 더울 것이란 예상은 하고 있었다.

수혁이 해외를 못 가봤다뿐이지, 바보는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수혁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더웠다.

“그렇게 더워요?”

최은송이 웃으며 수혁에게 부채를 부쳐 주었다.

하늘거리는 흰색 원피스에 라피아햇을 쓴 그녀의 모습은 예뻤다.

“버틸 만은 해요.”

화염 속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활보하는 수혁이다.

아무리 덥다고는 하지만, 방화복을 입고 섭씨 400도가 넘는 곳을 돌아다니는 것에는 비할 수가 없다.

그저 예상보다 더 더웠기에 조금 놀랐을 뿐.

“차 안은 좀 시원할 거예요.”

수혁과 최은송은 대기하고 있던 픽업 차량을 타고 리조트를 향했다.

숙소로 가는 길은 어두웠다.

비행기가 새벽에 도착했기 때문이었는데, 밤길이라서 그런지 솔직히 수혁은 아직 실감이 나질 않았다.

“그냥 시골 드라이브를 하는 것 같네요.”

“좀 그렇죠?”

최은송은 수혁의 말에 동의했다.

별로 보이는 것도 없었고, 덥다는 걸 빼면 한국의 시골길과 별로 다를 것도 없었다.

“그래도 빠통비치에 도착하면 다를 거예요. 거기는 정말 태국 분위기가 물씬 풍기거든요.”

빠통비치는 이런 시골 같은 분위기가 아니었다.

너무 늦은 시간이라 조금 한산하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차는 그렇게 한 시간여를 달렸다.

그러자 최은송이 말했던 것처럼, 조금씩 주변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와아…….”

수혁의 눈이 동그래졌다.

이국적인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집도, 나무도 한국과는 너무 다른 모습이었다.

그저 인터넷으로 봤을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감동이었다.

최은송은 그런 수혁을 보며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잔뜩 들뜬 수혁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해외여행을 오기로 결정한 건 정말 잘한 것 같았다.

그렇게 조금 더 이동한 뒤, 마침내 숙소에 도착했다.

“여기예요.”

차에서 내려 리조트의 모습을 본 수혁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생각보다 훨씬 크고 고급스러웠다.

수혁은 최은송이 체크인을 하고 방에 도착할 때까지 내부를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방에 들어선 이후가 가장 놀라웠다.

“저, 저거 수영장이에요?”

수영장이 테라스와 연결되어 있었다.

“맞아요. 공용이긴 한데, 방에서 곧바로 수영장으로 갈 수 있어요.”

이런 식의 룸이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해봤기에, 수혁은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

“너, 너무 비싼 곳 아니에요?”

수혁은 이곳이 말로만 듣던 스위트 룸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하지만 최은송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생각하는 것만큼은 아니에요.”

물론 싼 곳은 아니었다.

하지만 최은송에겐 그리 비싼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더 좋은 방을 구할 수 있었음에도, 수혁이 부담스러워할까 봐 이 방으로 예약한 것이다.

“그러면 다행이네요.”

수혁은 감탄한 표정으로 방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일단은 좀 쉬어요. 아침부터는 바쁘게 돌아다녀야 하니까요.”

최은송의 말에 수혁이 살짝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까지 애써 생각하지 않고 있었지만, 오늘은 그녀와 함께 보내는 첫날밤이었다.

긴장이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최은송 역시 마찬가지였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 그럼 저 먼저 씻을게요.”

“네…….”

수혁은 잽싸게 욕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자신의 머리를 감싸 쥐었다.

“아오, 떨려.”

수혁은 샤워하며 간신히 진정시키고는 밖으로 나갔다.

최은송은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 채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왠지 그 모습이 귀엽게 느껴졌다.

둘은 서로 어색하게 쳐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둘의 행복한 첫날밤이 지나갔다.

휴가는 즐거웠다.

최은송이 어찌나 일정을 알차게 짰는지, 너무 바쁘지도 않았고, 즐길 수 있는 것은 모두 즐길 수 있었다.

최은송과 함께한 모든 것이 즐거웠지만, 그중 단연 지금이 최고였다.

“꺄아아아!”

최은송은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물줄기에 비명을 질렀다.

사방이 온통 물 천지였다.

사람들은 물총과 호스, 양동이로 물을 뿌려대고 있었다.

수혁과 최은송은 지금 물 축제 한가운데에 있었다.

“아하하!”

최은송은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물을 맞으며 웃고 있었다.

송크란 축제에서 물을 뿌리는 행위는 축복을 의미한다.

때문에 아무리 물을 맞아도 불쾌하지가 않았다.

오히려 더 뿌려달라는 듯 웃으며 팔을 벌렸다.

덕분에 축제 현장은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물을 뿌리는 사람도, 맞는 사람도 모두가 행복한 시간인 것이다.

수혁과 최은송은 한 시간이 넘도록 물싸움하며 즐긴 뒤, 근처 바에 들어가 앉았다.

병맥주 두 병을 시켜 한 모금씩 마신 둘은 아직도 흥분이 가시지 않은 표정이었다.

“진짜 재미있네요.”

“그쵸? 그쵸?”

최은송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수혁의 팔을 껴안았다.

둘은 사이가 부쩍 더 가까워졌다.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스킨십만 봐도 알 수가 있었다.

“그런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좀 복잡하네요.”

인산인해라는 말이 이보다 더 잘 어울릴 수가 없었다.

“그건 좀 그래요. 재밌긴 한데, 지치기도 하네요.”

최은송도 지친 모양이었다.

“여기서 조금 쉬다가 숙소로 돌아가요.”

슬슬 저녁 먹을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흠뻑 젖은 상태였으니, 일단은 숙소로 돌아가서 옷도 갈아입어야 했다.

“저녁은 뭐가 좋을까요?”

“음…….”

솔직히 말하자면 수혁은 태국 현지 음식이 입에 맞진 않았다.

그렇다고 첫 해외여행에 가려 먹고 싶진 않았기 때문에, 사양하지 않고 모두 먹어보긴 했지만…….

“오늘은 한식이 좀 먹고 싶은데.”

수혁은 말하면서도 자신이 촌스럽게 구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어머, 저도요!”

최은송은 수혁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그렇지 않아도 최은송 역시 한식이 그리워지고 있었던 것이다.

한식 요리사였기에 더욱 그랬다.

“그럼 한국 음식 파는 데를 좀 알아볼게요.”

이곳에는 생각 외로 한식을 파는 음식점이 많았다.

대형 쇼핑몰인 정실론 내에도 있었고, 길거리에서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가 있었다.

숙소로 돌아온 최은송은 빠르게 씻은 뒤 한국 음식점을 검색했다.

“여기가 괜찮을 것 같아요.”

놀랍게도 삼겹살을 파는 가게가 있었다.

“와, 푸켓까지 와서 삼겹살을 먹을 수 있을 거라곤 생각 못 했는데요?”

“저도요.”

최은송이 아하하- 하고 웃었다.

“해외에서 먹는 삼겹살은 어떤 맛일지 궁금하지 않아요?”

“뭐, 궁금한 것보단…….”

“궁금한 것보단?”

“그냥 먹고 싶네요.”

불판 위에서 지글지글 익어가는 삼겹살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입에 침이 고였다.

“그럼 여기로 가요.”

둘은 손잡고 숙소를 빠져나왔다.

음식점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X글맵도 필요가 없었다.

가게 앞에 커다란 태극기가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 분이 하시는 가게라더니, 태극기를 걸어놨네요.”

괜히 반가운 마음에 빠르게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둘을 맞이해 준 것은 직원으로 보이는 태국 사람이었다.

그는 어색한 한국말로 인사하며 자리로 안내했다.

“삼겹살 2인분 주세요.”

음식을 주문한 수혁은 가게 안을 둘러보았다.

불판 때문에 덥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실내는 에어컨이 빵빵하게 틀어져 있어 시원했다.

이윽고 음식이 나왔다.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잘 차린 한 상이었다.

수혁이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맛있는 냄새가 솔솔 풍기며 식욕을 자극했다.

“이제 슬슬 먹으면 될 것 같아요.”

수혁이 고기 한 점을 들어 쌈을 싸서 최은송에게 건네려던 그때였다.

“응?”

최은송이 고개를 돌려 밖을 쳐다보았다.

“왜요? 무슨 일 있어요?”

수혁도 밖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딱히 이상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아니, 방금 무슨 비명소리 같은 게 들린 것 같아서…….”

“비명소리요?”

수혁은 손에 든 쌈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못 들었나 봐요.”

최은송이 고개를 젓자 수혁은 다시 자리에 앉았다.

아니, 앉으려고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수혁의 귀에도 똑똑히 들렸다.

저 멀리서 들려오는 비명소리를 말이다.

수혁이 다급하게 밖으로 나갔다.

한두 명이 지르는 비명이 아니었다.

최소한 수십 명.

어쩌면 수백 명 이상의 사람들이 동시에 지르는 비명이 분명했다.

‘무슨 일이 일어났다!’

별로 좋은 일은 아닌 게 분명했다.

그리고 밖으로 나간 순간.

수혁은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세상이 붉었다.

저녁노을이나, 조명 때문이 아니었다.

키이이이잉-!

이명과 함께 눈앞에 미친 듯이 떠오르고 있는 글자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은송 씨!”

수혁은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뒤로 돌아 최은송의 손을 붙잡고는 뛰쳐나갔다.

“가, 갑자기 왜 그래요?”

뒤에서 직원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지만, 지금은 그딴 것에 신경을 쓸 시간이 없었다.

“도망가야 해요!”

“예? 도망이라니요?”

수혁은 이전에 떠올렸던 기억을 다시 끄집어냈다.

그때는 이 일이 정확히 어느 곳에서 일어날지, 그리고 언제 일어나는 일인지 알지 못했었다.

하지만 이젠 알았다.

하필이면 그것이 오늘, 바로 이곳에서 일어난다.

세계에 너무나도 큰 충격을 준 재난.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막을 수도 없었던 재난.

조연산 산불?

신일역 붕괴?

그것들 역시 대형 재난이긴 했지만, 지금 이것과는 스케일 자체가 달랐다.

비교조차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수혁이 최은송을 향해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쓰나미, 쓰나미가 오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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