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65화
건물이 마치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흔들렸다.
사람들이 비명을 질러댔지만, 너무도 거대한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수혁은 난간을 붙잡으며 이를 악다물었다.
‘고작 한 명밖에…….’
아래층에 남아 있던 수십, 수백 명의 사람 중 수혁이 구한 사람은 단 한 명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나머지 사람들은?
상상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귀가 먹먹해질 정도의 굉음과 진동이 한참 동안이나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사람들은 혹시나 건물이 무너질까 두려워 바닥에 몸을 딱 붙이고는 덜덜 떨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수혁은 되돌아가기로 했다.
저들과 최은송의 모습이 겹쳐 보였던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그녀가 얼마나 겁을 먹고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수혁은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생각보다 진동의 강도가 컸다.
수혁은 쓰나미라는 것을 TV나 영화로나 봤지, 직접 겪어본 적은 없었다.
때문에 머릿속으론 충분히 위험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겪는 쓰나미의 위력은 더욱 공포스러웠다.
수혁은 힘겨운 걸음으로 사람들을 헤치며 간신히 최은송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수, 수혁 씨!”
최은송은 소파 옆에 엎드려 장영수와 함께 서로를 지탱해 주고 있었다.
다행히 두려운 기색은 있었지만, 패닉에 빠지거나 한 것 같지는 않았다.
“조금만 참아요. 흔들리는 건 금방 멈출 테니까.”
수혁의 말대로 첫 충돌의 충격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몇 분이 흐르자 무너져 내릴 듯이 흔들리던 건물도 조금씩 진정이 되었다.
수혁은 천천히 창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다른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제 조금 안전해졌다는 느낌이 들자, 하나둘 밖을 확인하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밖을 확인한 사람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어떡해…….”
수혁의 손을 붙잡고 따라왔던 최은송이 입을 틀어막았다.
땅이 보이질 않았다.
낮은 건물들은 모조리 쓰나미에 집어 삼켜져 형체도 보이질 않았다.
아름답기 그지없던 에메랄드빛 바다는 사라지고, 무너진 건물의 잔해와 시체들로 뒤덮인 흙탕물만이 가득했다.
수혁은 자신도 모르게 최은송의 손을 꽉 붙잡았다.
저런 죽음의 바다에서 무사하다는 것에 안심해야 할까?
아니면, 그것을 피하지 못한 이들을 위해 애도해야 할까?
최은송이 무사하다는 것에는 한없이 안도했지만…….
수혁의 얼굴이 무거웠다.
“맙소사…….”
주위 사람들의 표정은 수혁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터전을 잃었고, 지인들을 잃었다.
단순한 관광객에 지나지 않은 수혁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던 사람들이 급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하는 사람.
주변을 돌아보며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
울음을 터트린 사람.
패닉에 빠져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은 사람.
복도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할멈…….”
수혁의 귀에 장영수의 음성이 들려왔다.
장영수는 혼이 빠져나간 듯한 모습으로 계속해서 전화를 걸고 있었다.
“어르신.”
수혁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그를 향해 다가갔다.
“할멈하고 연락이 안 되고 있네.”
장영수는 푸켓에 아내와 함께 여행을 왔다.
아내와 단둘이 하는 여행은 신혼여행 때를 빼고는 처음이었다.
일하기 위해 해외로 나와 봤을 뿐이었다.
그러다 은퇴를 앞두고 처음으로 여행을 온 것이었는데…….
“아내 분께선 어디 계십니까?”
보아하니 따로 있었던 것 같았다.
“수, 숙소. 몸이 별로 안 좋다고 해서…….”
장영수는 그런 아내를 위해 약을 사러 잠시 나왔다가 이런 일을 맞이하게 됐다.
“숙소가 어디였나요?”
이번엔 최은송이 물었다.
장영수는 정신없는 와중에도 기억을 더듬어 자신들이 묵고 있던 호텔의 이름을 말했다.
“거기라면…….”
최은송의 얼굴이 살짝 밝아졌다.
“그 호텔이라면 괜찮을 거예요. 수위보다 훨씬 높은 건물인 데다, 서비스도 잘되어 있으니까요. 아마 경보가 울리자마자 투숙객들을 대피시켰을 거예요.”
“전화가 안 되는 건 아마도 기지국들도 쓰나미에 휩쓸려서 그런 것일 겁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수혁과 최은송의 말에 장영수의 얼굴에 안도감이 서렸다.
그저 자신을 안심시키기 위한 말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진심으로 둘의 말을 믿고 싶었다.
“고, 고맙네.”
장영수는 손을 내밀어 두 사람의 손을 붙잡고는 연신 흔들었다.
“내 이 은혜는 꼭 갚음세.”
이 먼 타국에서 한국 사람을 만나 목숨까지 구함을 받았다.
장영수는 그 은혜를 갚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은혜는요, 무슨.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인데…….”
지나칠 정도로 감사 인사를 하는 그의 모습에 수혁이 난처해했다.
그러자 최은송이 나섰다.
“이 사람 소방관이에요. 원래 사람 구하는 일하는 게 직업이니까, 그렇게까지 안 하셔도 돼요.”
소방관이라는 말에 장영수의 눈이 동그래졌다.
어쩐지 체력이 범상치가 않다고 생각을 했었다.
아무리 왜소한 노인이라지만, 자신을 업고 한달음에 20층을 넘게 올라갈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소방관이라니 왠지 납득이 되었다.
“언제쯤 할멈을 찾으러 갈 수 있겠나?”
장영수가 물었다.
하지만 수혁은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지금은 뭘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
장비도 없었고, 말도 통하지 않는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물이 빠지지 않으면 움직일 수가 없어.’
수혁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 * *
“팀장님!”
운동을 나갔던 박정우가 사무실 문을 박차고 안으로 다급하게 들어왔다.
“여기가 너네 집 안방이냐!”
그 모습에 박상태가 소리를 질렀다.
“요즘 이것들이 빠져가지고…….”
박상태는 이 기회에 조금은 풀어진 분위기를 다잡으려 마음먹었다.
하지만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박정우가 선수를 쳤다.
“쓰나미가 일어났답니다!”
그 말에 박상태가 멈칫했다.
“……쓰나미?”
자연재해는 수많은 재난 중에서도 가장 무자비하고 위험한 종류다.
인재로 일어나는 것들은 그래도 어느 정도 예방이 가능하다.
하지만 지진, 화산폭발, 쓰나미 등등.
이런 재난은 막을 방법이 없다.
내진설계나 방파제, 예보시스템들 같은 것이 있긴 했지만, 그것들은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애초에 막을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한 번 일어나면 그 피해는 정말 어마어마했다.
다행히 한국은 그런 자연재해에서 안전한 편이긴 했다.
옆 나라 일본에 비하자면 말이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쓰나미가 일어났다니? 우리나라에서?”
김강식이 눈을 크게 뜨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설마 이 한국에서 쓰나미가 발생했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이건 보통 사건이 아니었다.
“아니요, 한국이 아니라 태국입니다!”
한국이 아니라는 말에 김강식이 살짝 김샌 표정을 지었다.
안타까운 일이긴 했지만, 솔직히 여기서 일어나는 일을 처리하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친다.
저 멀리 동남아에 있는 국가까지 신경 쓸 여력은 없었다.
“그거참 큰일이네.”
김강식이 그렇게 중얼거리며 자리에 앉다가 멈칫했다.
“방금 어디라고 했지?”
“태국이요. 그것도 푸켓에서 일어났답니다.”
김강식이 마른침을 삼켰다.
그제야 왜 박정우가 그렇게 급하게 뛰어들어 왔는지 깨달은 것이다.
김강식의 고개가 홱- 돌아가며 박상태를 쳐다보았다.
이미 박상태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박상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일단은 자신의 노트북을 켰다.
그러곤 빠르게 인터넷 뉴스 기사들을 훑기 시작했다.
쓰나미가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자세한 기사는 없었다.
그저 ‘쓰나미가 일어났다’라는 정도의 기사가 전부.
쓰나미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피해는 얼마나 발생했는지, 대처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나온 것은 하나도 없었다.
“이런 X발…….”
박상태가 나지막이 욕설을 내뱉었다.
그러곤 머리를 감싸 안았다.
“대체 왜 그 새끼는 가는 곳마다…….”
이런 일이 발생하는지 모르겠다.
오랜만에 쉰다고 떠난 곳에서, 다시없을 대재앙을 만났다.
그래도 크게 걱정을 하지는 않았다.
수혁의 감과 능력이라면, 아무리 쓰나미가 몰려온다고 해도 무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생각과는 반대로 박상태는 자책감에 시달렸다.
“하필이면 내가 태국을 가라고 해서…….”
구조 3팀의 대원 중 유일하게 박상태만이 태국을 가라고 밀어붙였다.
물론 결정한 것은 최은송이었지만, 괜히 자신이 태국을 가라고 해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 같아 가슴이 무거웠다.
“지원은? 한국에서도 지원 보낸대?”
박상태가 박정우를 향해 물었다.
하지만 그가 모르는 일을 박정우가 알 리가 만무했다.
“그게, 저도 잘…….”
기사로만 봐도 피해가 상당할 것이란 예상이 들었다.
대한민국 구조대의 구조 기술은 세계적으로도 탑 급에 속한다.
그중에서도 중앙 119구조대는 국제 구조대의 역할도 맡고 있어, 타국에 심각한 재해가 일어났을 때 지원을 가기도 한다.
푸켓은 한국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유명 관광지였으니, 피해를 입은 한국인들도 많을 것이다.
그들을 돕기 위해서라도 지원 갈 가능성이 높았다.
“수혁이하고 연락은? 돼?”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어보았다.
하지만 박정우는 고개를 저었다.
“전화도 안 되고, 톡도 보지 않고 있습니다. 제수씨도 마찬가지고요.”
박상태의 얼굴이 조금 더 심각해졌다.
물론 통신이 터지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었기에, 박상태는 불안감을 가까스로 진정시켰다.
“지원은 어떻게 되는지 한번 알아봐. 이쪽에서도 알아볼 테니까.”
박정우는 의외로 발이 넓은 친구였다.
아직 소방관 생활한 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음에도, 여러 곳에 지인들이 많았다.
때문에 오히려 박정우가 박상태보다도 빠르게 정보를 입수할 수도 있었다.
“알겠습니다.”
박정우가 대답하며 스마트폰을 들고 밖으로 나가자, 박상태 역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장실 다녀오마.”
누가 뭐래도 신일서에서 이런 정보에 가장 빠른 사람은 당연히 서장이었다.
빠른 걸음으로 서장실에 도착한 박상태가 노크했다.
“들어와.”
여느 때와 다름없는 서장의 음성이 들려왔다.
박상태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서장 역시 소식을 들었는지 노트북을 보고 있었다.
“서장님.”
“말해.”
“태국에 쓰나미가…….”
“그래, 알고 있어.”
서장이 눈살을 살짝 찌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안 좋은 일이긴 한데, 우리가 신경 쓸 일은 아니야. 특구나 중앙에서 알아서 잘할 테니까, 너무 호들갑 떨지 말자고.”
서장의 말이 옳았다.
태국에서 쓰나미가 발생했다고 자신들이 난리를 칠 이유가 없었다.
만약 그곳에 수혁이 없었다면 말이다.
“막내가 휴가를 푸켓으로 갔습니다.”
마우스를 움직이던 서장의 손이 멈췄다.
“걔가 거기로 갔던가?”
“예…….”
서장이 혀를 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한번 알아볼 테니까, 자리에 가서 대기하고 있어. 아무리 걱정되더라도 할 일은 해야지.”
“부탁드립니다.”
박상태가 허리를 꾸벅- 숙이고는 서장실 밖으로 나갔다.
“음…….”
서장은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짓다 전화기를 들었다.
그러곤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어, 난데. 혹시 푸켓 소식 좀 알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