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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72화 (72/425)

레스큐 시스템 72화

“상태 형?”

수혁의 눈이 커졌다.

여기서 볼 것이라고는 생각도 해보지 못한 사람을 만난 것이다.

“야, 김수혁! 이 새끼야!”

박상태는 그런 수혁을 향해 달려왔다.

분위기는 당장 머리를 한 대 쥐어박을 것 같았는데, 표정을 보면 반가움과 안도가 가득했다.

“대체 여긴 어떻게 온 거예요?”

복장을 보면 예상할 수 있었겠지만, 너무 당황한 나머지 그런 것을 살필 겨를이 없었다.

“괜찮냐? 어디 다친 덴 없고?”

박상태는 수혁의 질문에 질문으로 대답하며, 수혁의 몸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다행히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TV로 보긴 했지만, 이렇게 직접 눈으로 보니 안심되었다.

“아니, 저는 괜찮은데요. 그보다 혹시 지원 오신 거예요?”

수혁은 그제야 박상태의 모습을 제대로 확인했다.

평상복이 아닌 구조복을 착용하고 있었다.

그것도 팔에는 태극기가 새겨져 있는 구조복 말이다.

저걸 입고 있다는 건 한국에서 지원 나온 구조팀이라는 뜻이었다.

“다행이다, 진짜 아무 일도 없어서 다행이야.”

직접 눈으로 이렇게 수혁이 멀쩡한 모습을 보니, 그동안 그를 괴롭혔던 죄책감이 조금은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제수씨는? 제수씨는 괜찮냐?”

그나마 수혁은 뉴스를 통해 보았지만, 최은송은 어떻게 됐는지 알 길이 없었다.

“은송 씨도 괜찮아요. 지금은 대피소에서 몸을 추스르고 있을 거예요.”

최은송을 생각하자 수혁은 미안함이 몰려왔다.

어느 정도 사태가 진정되긴 했지만, 아직 한국으로 돌아갈 상황은 되지 못했다.

덕분에 최은송은 대피소에서 지내고 있었다.

옆에 장영수와 조순애가 함께 있다고는 하지만, 그런 열악한 환경에 최은송을 두고 왔다는 것이 너무도 미안했다.

“그렇지 않아도 조만간 비행기로 피해자들 수송한다고 하더라. 정부에서 힘을 쓴다니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거고.”

“웬일로 일 처리가 빠르네요.”

“그럴 만한 이유가 있…….”

“오랜만입니다, 김수혁 씨.”

그때, 누군가 둘에게 다가오며 말을 걸었다.

수혁은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자, 그는 머리를 긁적였다.

“전에 한번 본 적이 있는데, 기억 못 하시는 것 같군요. 수도권 119 특수 구조대의 김갑수라고 합니다.”

김갑수는 웃으며 수혁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

수혁은 그의 이름을 듣고 박상태를 쳐다보았다.

이전에 박상태를 통해 수혁을 한번 만나보고 싶다는 말을 전해왔던 사람이었다.

“김수혁입니다.”

수혁은 그의 손을 정중하게 마주 잡았다.

계급도 그가 훨씬 위였고, 무엇보다 그는 신일역 붕괴 현장에서 자신을 구조해 준 구조대원 중 한 명이었다.

그러니 예의를 갖추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한번 꼭 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태국에서 보게 되는군요.”

“하하…….”

수혁이 어색하게 웃었다.

이전에 그의 부탁을 거절한 적이 있었기에, 속으로 조금 찔렸기 때문이었다.

“뭐, 그 이야기는 차차 하기로 하고……. 우선은 구조부터 시작해야겠군요.”

지난 시간 동안 수혁은 푸켓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을 구해냈다.

그를 뒤따르던 에밀리와 조쉬가 제발 좀 쉬면 안 되겠냐고 애걸할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수혁이 돌아다닌 곳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했다.

도움의 손길이 닿은 곳보다, 아직 닿지 못한 곳이 몇 배, 몇십 배는 더 많았다.

김갑수를 필두로 한 대한민국 구조팀 수십 명은 장비를 이끌고 주변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자세한 얘기는 오늘 밤에 하자.”

박상태 역시 아쉬운 눈으로 수혁을 한 번 돌아보고는 몸을 돌려 사라졌다.

“아, 김수혁 씨.”

수혁은 가만히 그런 구조대원들의 모습을 바라보다 김갑수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그를 쳐다보았다.

“수혁 씨가 사용할 옷과 장비들이 있습니다.”

김갑수가 한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구조대가 설치한 천막이 있었다.

“저 안에서 갈아입고 나오시면 됩니다.”

그 말에 수혁이 자신의 몸을 내려 다 보았다.

“음…….”

거지도 이런 거지가 또 없었다.

구조하는 것에는 전혀 지장이 없긴 했지만, 이왕이면 태극 마크를 단 구조복을 입는 게 더 나아 보이긴 했다.

“감사합니다.”

수혁이 고개를 숙이자, 김갑수는 두 손을 내저었다.

“감사는 오히려 이쪽에서 하고 싶은데.”

“예?”

김갑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수혁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수혁 씨 덕분에 대한민국 구조대의 위상이 올라갔습니다.”

“……위상이요?”

수혁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한쪽을 향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기절한 것처럼 휴식을 취하고 있는 에밀리와 조쉬가 눈에 들어왔다.

‘기대하라고 하더니…….’

대체 언제 자신의 영상을 영국으로 보낸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계속 자신과 붙어 있었던 것 같은데.

“한국으로 돌아가시면 꽤나 시끄러울 겁니다.”

영국 공영방송인 BBC에서 수혁을 영웅이라 말했다.

수혁에게 구조된 사람들 역시 그를 구원자라며 칭송했고.

한국의 언론이 그런 수혁을 가만히 놔둘 리가 없었다.

당연히 수혁이란 소방관에 관심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수혁이 신일역 사고 당시 생존자들을 구했던 구조대원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 이후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수혁은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사람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그거 참 부담스럽네요.”

수혁이라고 유명해지는 게 싫을 리가 없었다.

좋지 않은 일로 그런 것도 아니고.

남들이 칭찬해 주는데 싫어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갑자기 주목받는 것이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었다.

“뭐, 이미 벌어진 일이니 어쩌겠습니까? 게다가 나쁘기만 한 일도 아닙니다.”

김갑수는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는 수혁을 보며 미소 지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좀 전에 정부가 웬일로 일 처리를 빨리한다고 하셨죠?”

수혁이 박상태와의 대화를 떠올리곤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된 이유 중에는 수혁 씨도 한몫했습니다. 수혁 씨가 유명해지자, 정부에서도 꽤나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고 들었거든요.”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어쩌면 표창도 받으실 겁니다.”

그거 받은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수혁이 어색하게 웃었다.

“표창보다는 비행기나 빨리 띄워줬으면 좋겠네요. 여기가 사람들이 지내기엔 그렇게 좋은 환경은 아니거든요.”

수혁의 말에 김갑수가 짙게 미소 지었다.

전에도 그랬지만, 수혁은 참 탐이 나는 대원이었다.

자신의 팀에 데려오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일단 그런 건 나중에 신경 쓰는 게 좋겠네요. 지금은 그것보다 급한 일들이 많으니까.”

수혁은 김갑수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천막 쪽으로 다가갔다.

거기서 자신의 사이즈에 맞는 구조복으로 갈아입은 후, 밖으로 나왔다.

“와우. 다른 사람 같다.”

언제 온 것인지,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조쉬가 그런 수혁을 향해 카메라를 들이댔다.

“계속 찍게요? 벌써 방송 한 번 나간 거 같던데.”

“당근. 나는 계속 당신을 촬영합니다.”

조쉬의 말에 수혁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자신이 허락한 일인 것을.

“그럼 조심히 따라와요. 오늘도 사정 안 봐줄 겁니다.”

수혁은 ‘생명 감지Ⅱ’ 스킬을 사용해 요구조자들의 위치를 확인했다.

그러곤 이곳에 있는 그 누구보다도 빠른 속도로 구조를 시작했다.

대한민국 구조 지원팀의 구조 활동은 10일간 이어졌다.

전 세계에서 수많은 구조팀이 지원을 와준 덕분에 시간이 많이 단축되었다.

그 10일 동안 푸켓에서는 많은 기적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 이상으로 슬픈 일 역시 많았다.

유가족들의 울음소리가 푸켓 전역에 울려 퍼졌고, 여전히 찾지 못한 실종자의 가족들은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이제 슬슬 떠날 준비 합시다.”

김갑수의 말에 구조대원들은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제 헤어질 시간이네요.”

수혁은 조쉬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동안 고마웠다.”

조쉬는 수혁의 손을 맞잡으며 그렇게 인사했다.

“덕분에 제가 유명세 좀 타게 됐네요.”

“유명세? 세금입니다?”

“……뭐, 그렇다 칩시다.”

이상한 오해를 한 것 같은데, 설명해 주기도 귀찮았던 수혁은 대충 넘겼다.

“에밀리도 그간 고생 많았어요.”

수혁은 이번엔 조쉬의 옆에서 아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에밀리에게 손을 내밀었다.

“저도요.”

조쉬의 통역 덕분에 둘의 의사소통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혹시나 영국으로 여행 오게 된다면 꼭 연락해 줘요. 언제가 됐든 마중 나갈 테니까.”

“글쎄요. 영국까지 여행 갈 날이 올지 모르겠네요.”

“꼭 오세요.”

에밀리는 이글거리는 눈동자로 수혁을 쳐다보며 압박했다.

“하하…….”

슬쩍 그녀의 눈길을 피했다.

괜히 부담스러운 여자였다.

“그럼 인연이 되면 또 봅시다.”

수혁은 아쉬워하는 둘에게 작별인사를 한 뒤, 이동을 시작한 구조팀의 뒤를 따랐다.

아직 구조 활동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었다.

실종자들은 여전히 많았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은 더 많았다.

하지만 그것은 이제 남은 자들의 몫이었다.

‘퀘스트도 완료가 됐고.’

혹시나 퀘스트가 완료되지 않으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을 했지만, 다행히 퀘스트는 한국으로의 복귀가 결정되자 곧장 완료되었다.

마치 수혁이 할 수 있는 일은 이제 없다는 듯이 말이다.

“너도 참 난놈이다.”

“뭐가요?”

갑자기 뜬금없는 박상태의 말에 수혁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쉬라고 휴가 보내줬더니, 쓰나미를 몰고 오질 않나…….”

“그게 제가 몰고 온 겁니까?”

수혁이 헛웃음을 터트렸지만, 박상태는 심각한 얼굴이었다.

“뭐 하나만 물어보자.”

“뭔데요?”

“혹시 조상님 중에 전일이라는 성함 가진 분 계시지 않냐?”

너무도 진지하게 물어보는 박상태의 태도에 수혁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한번 알아봐. 분명히…….”

“아, 쫌!”

수혁이 귀를 막고 도망갔다.

박상태는 그런 수혁의 뒷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김수혁 씨!”

“이쪽 한 번 봐주세요! 이쪽이요!”

수혁은 그 자리에 굳은 것처럼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번쩍- 거리는 플래시와 도대체 몇 명인지도 모를 정도로 많은 기자의 모습에 사고가 정지된 것 같았다.

“제가 말했죠? 꽤나 시끄러울 거라고.”

김갑수가 그런 수혁의 옆을 스쳐 지나가며 어깨를 토닥였다.

“하하, 이 정도일 줄은…….”

수혁은 자신이 무슨 아이돌이라도 되는 줄 알았다.

그만큼 취재진들의 열기는 뜨거웠다.

“죄송하지만 대원들이 많이 지쳐 있는 관계로, 인터뷰는 다음에 하겠습니다.”

김갑수와 몇몇 대원들이 나서서 기자들을 진정시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때를 기다려 온 기자들이 쉽게 물러설 리가 없었다.

“김수혁 씨! 몇 가지만 물어봅시다!”

“하나면 돼요! 하나만!”

기자들이 더욱 크게 소리쳤다.

다른 대원들의 지친 모습을 본 수혁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괜히 자신 때문에 고생하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수혁은 김갑수에게 다가가 속삭였다.

“그냥 제가 따로 빠져 잠깐 인터뷰하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그러자 김갑수는 그래도 되겠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다른 분들 쉬셔야 하니까요.”

김갑수는 수혁에게 고맙다는 듯 한번 웃어주고는, 따로 인터뷰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타게 됐는데, 기분이 어떠십니까?”

“구조하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습니까?”

“BBC에서는 김수혁 씨 혼자 백 명이 넘는 사람들을 구조했다고 하던데, 그게 정말입니까?”

수혁은 별로 대답할 가치도 느껴지지 않는 저급한 질문들에 대충 대답해 주었다.

‘하나만 질문한다더니…….’

조금씩 짜증이 치솟았다.

그때였다.

“그런 참혹한 현장에서, 자기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들었을 텐데……. 왜 구조 활동을 하신 겁니까?”

수혁의 시선이 그 질문을 한 기자에게 돌아갔다.

‘왜?’

수혁은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다.

왜 자신은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 움직였을까?

‘퀘스트 때문에?’

만약 퀘스트가 없었다면.

그랬다면 움직이지 않았을까?

수혁은 고개를 저었다.

사람들을 구조하라는 퀘스트가 뜨지 않았더라도 수혁은 움직였을 것이다.

그 이유는 사실 고민할 필요도 없이 간단했다.

수혁이 당연하다는 듯, 웃으며 대답했다.

“저는 소방관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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