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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83화 (83/425)

레스큐 시스템83화

집 내부는 컸다.

아니, 수혁의 입장에선 거대하다고 표현해도 좋을 정도였다.

지금 수혁이 살고 있는 고시원은 이 집 화장실과 비교해야 할 정도였으니까.

방 다섯 개에 화장실 세 개.

2층에는 축구를 해도 되겠다 싶을 크기의 테라스까지 있었다.

지하도 따로 있어, 거기엔 홈바까지 설치되어 수혁의 눈을 호강시켰다.

“마음에 드나?”

장영수의 물음에 수혁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에 들지 않을 리가 없었다.

평생을 2평 남짓한 고시원에서 살아왔으니까.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린 수혁은 정신을 차리려는 듯 머리를 흔들며 말했다.

“여기 너무 큰데요…….”

집이 아무리 좋다고는 하지만, 혼자서 살기에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컸다.

“이렇게 크면 청소나 관리하는 것도 쉽지 않을 텐데.”

고시원 월세보다도 싼, 월 10만 원이라는 금액이었으니 더욱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넙죽 받기에는 장영수의 선물이 조금 부담스러웠다.

“크긴 뭐가 크다고 그러는가? 이제 앞으로 결혼도 하고, 아이들도 낳고 하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지.”

결혼이란 말에 수혁이 반사적으로 최은송을 쳐다보았다.

그것은 그녀 역시 마찬가지여서, 둘은 시선이 마주쳤다.

순간적인 아이컨택에, 최은송의 얼굴이 확- 하고 달아올랐다.

“허허…….”

장영수는 그런 둘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푸켓에서 봤을 때 느낀 거지만, 참으로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정말 제가 여기서 살아도 되는 겁니까?”

“내가 지금까지 한 말을 듣긴 한 건가? 물론이지.”

수혁은 감회가 새로운 눈으로 집 안을 다시 둘러보았다.

심플하면서도 고급스러운 인테리어.

커다란 거실의 한쪽에는 장작을 넣어 불을 피울 수 있는 벽난로가 있었고, 한쪽에는 대나무가 심어져 있는 중정도 있었다.

자신이 이런 집에서 살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은 꿈에서도 해본 적이 없었다.

‘이건 푸켓에서 퀘스트 완료 보상으로 얻은 ‘인맥’ 덕분인가?’

수혁은 도대체 그 인맥이라는 게 뭔지 궁금했었다.

하지만 딱히 떠오르는 것도 없고, 짐작조차 되지 않았기에, 어느 순간부턴 그냥 잊고 살았다.

그런데 그 보상의 정체는 장영수였던 것 같았다.

“고민하지 마요, 수혁 씨.”

수혁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주변만 보고 있자, 최은송이 다가와 살며시 손을 잡았다.

“제가 볼 때 수혁 씨는, 이런 선물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니까.”

“하지만…….”

“소방관이라고 이렇게 멋진 집에서 살지 말란 법 있나요?”

최은송의 말을 들은 수혁은 머리를 살짝 긁으며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말처럼, 소방관이라고 좋은 집에서 좋은 음식을 먹으며 좋은 차를 타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잠시 생각하던 수혁은 장영수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선물을 받아들이겠다는 뜻이었다.

장영수가 환하게 미소 지었다.

만약 수혁이 끝까지 받지 않겠다고 거절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했는데, 다행이었다.

“잘 생각했네.”

어째 받는 사람보다 주는 사람이 더 행복해 보였다.

“아, 이사는 한 일주일 후쯤 하도록 하게나. 그전에 집을 좀 채워놔야지.”

“……집을 채워요?”

수혁은 장영수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허허, 고시원에 살면 가구라고는 하나도 없을 게 아닌가? 이사 오기 전에 들여놓을 건 좀 들여놔야지.”

수혁은 ‘아!’ 하는 표정을 지었다.

고시원에서 수혁의 짐이라고는, 옷가지 몇 개와 생필품들이 전부였다.

책상도, 침대도, 소파도.

그 어떤 것도 없었다.

“냉장고나 TV 같은 것도 놔야지.”

“그렇겠네요.”

수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마터면 텅 빈 집에 몸만 들어와서 살 뻔했다.

“그것도 내가 다 준비해둘 테니, 일주일 후에 와서 보도록 하게.”

“아, 아뇨. 선물은 집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나머지는 제가 알아서 준비하겠습니다.”

“자네가 무슨 돈이 있다고? 그냥 내 말 받아들이게.”

“제가 사용할 물건을 살 정도는 있습니다.”

수혁은 이번엔 물러나지 않았다.

이런 집을 월 10만 원에 살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큰 선물이었다.

더는 그에게 뭔가를 받는 것은 사양이었다.

“필요한 건 저희가 알아서 장만할게요.”

최은송 역시 이번에는 수혁의 편을 들었다.

“원래 이런 건 여자가 더 잘 아는 법이니까요.”

의미심장한 미소로 말하는 최은송의 모습에, 장영수는 잠시 생각하더니 껄껄- 웃었다.

“그래, 그렇지. 자네의 말이 맞네. 하마터면 내가 큰 즐거움을 하나 빼앗을 뻔했구만.”

최은송은 왠지 수줍은 미소를 지었고, 수혁은 둘의 대화를 이해하지 못해 어리둥절한 모습이었다.

“그럼 그건 둘에게 맡기도록 하겠네.”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수혁은 장영수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이전 생과 이번 생을 통틀어.

드디어 수혁이 고시원을 벗어나게 되는 순간이었다.

“어, 왔냐? X전일.”

“뭡니까, 그건?”

“뭐긴 뭐야? 네 별명이지.”

오랜만에 출근한 수혁을 보며 박상태가 낄낄거렸다.

“이쯤 되면 네가 가는 곳에 재난이 일어난다고 해도 믿을 수 있다.”

“그거 소방관으로선 최악 아닙니까?”

“뭐, 근데 넌 대부분 구조해 내니까 최악은 아니지.”

둘은 시답잖은 농담을 하며 사무실로 들어갔다.

냐아앙-!

오랜만에 보는 치즈가 반갑다며 수혁에게 다가왔다.

“이놈은 볼 때마다 커져 있네요. 이거 고양이 아닌 거 아닙니까? 호랑이라 해도 믿겠네.”

“우리 서에 동물 확대범이 있어서 그래.”

“무슨 이야기 중이십니까? 어, 수혁이 출근했네.”

박상태가 말한 동물 확대범이 사무실로 들어오며 아는 체를 했다.

“정우 선배, 치즈 몸무게 얼마나 나가요?”

“얼마 전에 쟀을 때 6.5㎏ 정도 나왔던 것 같은데.”

무겁다.

“……비만이죠?”

“비만이면 어떠냐. 이렇게 귀엽기만 한걸. 그치, 치즈야아?”

박정우는 한 손에 간식을 들고는 치즈를 유혹해 장난을 쳤다.

“나중엔 굴러다닐 거야, 분명.”

박상태는 그런 치즈를 보며 혀를 찼다.

“그나저나, 얼굴은 좀 괜찮냐?”

“별거 아니에요.”

박상태의 걱정 섞인 물음에 수혁이 손을 휘저었다.

“넘어졌을 땐 좀 아팠는데, 지금은 다친 것도 까먹을 정도니까.”

“한 두 시간 정도를 한 번도 안 쉬고 뛰었다며?”

“저도 도착하자마자 기절해서 얼마나 뛰었는지는 모르겠는데, 대충 그 정도는 될걸요?”

“괴물 같은 놈.”

정글 속을, 그것도 비가 내리는 와중에 사람을 등에 업고 두 시간을 달린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어떻게 된 게 너는 점점 유명해진다?”

현재 수혁은 웬만한 연예인들보다도 유명했다.

모두가 그의 얼굴을 알아보는 것은 아니었지만, 수혁의 이름만큼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소방관이 유명해져서 뭐합니까? 사람을 잘 구해야지.”

“유명해져서 나쁠 건 없지. 안 그러냐?”

“수혁이가 유명해진 덕분에, 저희도 TV에 나가게 됐잖습니까.”

치즈와 간식을 가지고 혈투를 벌이던 박정우가 말했다.

“……TV라뇨?”

수혁이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박상태를 쳐다봤다.

“아, 네가 나간 예능 프로그램처럼 거창한 건 아니다. 어디 방송국 교양 프로그램에서 우리 서 다큐를 찍고 싶다고 그러더라.”

다큐라…….

“그거 무슨 24시간 내내 따라다니면서 찍는 건가요?”

“24시간은 아니고, 근무시간 때만. 우리 팀을 찍고 싶다던데? 뭐, 정확히 말하자면 너를 찍고 싶다는 뜻이겠지.”

박상태의 말에 수혁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게 허가가 났어요?”

“서장님이 허락 안 해주셨을 것 같냐? 당연히 허가 내주셨지.”

이번에 느낀 거지만, 신일서 서장은 명예욕이 꽤나 큰 것 같았다.

“언제부터 찍는대요?”

“내일. 딱히 우리가 준비할 건 없다더라. 그냥 평소처럼 하라고.”

“하루만?”

“일주일.”

또 7일 동안 촬영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수혁은 피곤한 표정을 지었다.

“네 덕분에 TV출연도 해보고, 아주 출세했다, 응?”

박상태는 자신이 TV에 나온다는 게 그저 좋은지, 싱글벙글했다.

“뭐 보여줄 거나 있으려나 모르겠네요.”

그들이 하는 일이라고는 그저 출동과 복귀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그 출동의 대부분은 사소한 것들이었고.

열쇠를 놓고 왔다며 현관문을 따달라거나, 엘리베이터가 멈췄다거나 하는 것들 말이다.

수혁은 다큐멘터리 제작진들이 괜히 실망하는 건 아닐까? 하고 걱정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심각한 사고가 일어나길 바라는 건 아니었고.

“그건 그 사람들이 걱정할 일이지. 우리야 평소대로 행동하라니, 그냥 하던 대로 하면 돼.”

박상태는 수혁에게 쓸데없는 걱정을 한다며 타박했다.

“어? 수혁이 왔냐? 이번에도 또 사고쳤다며?”

“제가 사고친 거 아니거든요?”

출근한 김강식이 수혁을 보곤 농담했고, 덕분에 사무실 안은 떠들썩해졌다.

평소와 같은 모습이었다.

“저희나 카메라는 의식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음 날이 되자, 정말로 다큐멘터리를 촬영하기 위해 방송국 사람들이 찾아왔다.

수혁은 생각보다 많은 제작진의 숫자에 살짝 놀랐다.

7일간의 서바이벌 제작진과는 비교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스무 명이 넘었다.

“대원분들께 각자 카메라 한 대씩 붙을 겁니다.”

카메라를 든 사람만 열 명이나 되었다.

그 외에도 PD와 스태프들이 바글바글했다.

덕분에 신일서는 오랜만에 사람들로 넘쳐났다.

“저희는 뭘 하면 됩니까?”

이재한이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물었다.

얼마나 긴장한 것인지, 무슨 로봇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냥 평소대로요.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저희는 의식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니, 의식하지 말아주세요.”

PD의 말에 이재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왠지 끼릭끼릭- 거리는 소리가 나야 할 것 같은 그의 모습에 수혁이 숨죽여 웃었다.

“아, 그리고 시간 날 때마다 한 분씩 인터뷰도 진행할 생각입니다.”

인터뷰라는 말에 대원들의 얼굴이 모두 이재한처럼 변해 버렸다.

TV에 나온다며 시시덕거리던 박상태마저 뻣뻣하게 굳어졌다.

“그럼 그렇게 아시고,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PD가 촬영 개시를 알리자 대원들은 우왕좌왕했다.

그나마 한 번 경험이 있는 수혁만이 자연스럽게 자신의 책상으로 가서 앉을 뿐이었다.

“아주 망신살 제대로 뻗치겠네.”

수혁은 대원들의 모습을 보며 키득거렸다.

특히나 박정우는 대체 머리에 뭘 바른 건지, 세기말적 분위기를 풍겨대고 있었다.

방송이 나가면 밤에 이불 좀 걷어찰 게 분명했다.

수혁이 그런 대원들을 구경하고 있을 때였다.

[구조출동, 구조출동.]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출동 명령이 떨어졌다.

그러자 방금 전까지 어리바리하던 대원들의 분위기가 한순간에 바뀌었다.

“뛰어!”

박상태가 소리를 치며 가장 먼저 달려나갔고, 수혁 역시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달렸다.

갑자기 변한 대원들의 모습에 제작진들이 당황하며 그 뒤를 따라 허겁지겁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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