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90화
“다행히 회복하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것 같단다.”
박정우의 상태를 듣고 온 박상태가 대원들에게 말했다.
“아, 정말요? 다행이네요.”
수혁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백 드래프트 현상은 그동안 화재 현장에서 수많은 소방관의 목숨을 앗아간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다행히 박정우는 그 정도까진 아니었지만, 갈비뼈가 세 대나 골절되는 부상을 입었다.
덕분에 한동안은 병원에 입원해야 하는 신세였다.
“그래서 경기청에서 한 명 지원을 보내주기로 했다.”
“지원이요?”
수혁의 눈이 살짝 커졌다.
꼼짝없이 박정우를 제외한 다섯 명이 일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위에서 지원해 줄 줄은 몰랐다.
“지원 오는 게 처음은 아니야. 너 입원했을 때도 계속 지원해 줬어, 인마.”
“아…….”
수혁의 입원 경력은 화려했다.
몸을 사리지 않고 들이대는 바람에, 조금 큰 사고가 일어났다 하면 입원하곤 했으니까.
“아마 이번에도 같은 녀석이 올 거다.”
박상태의 말에 다른 대원들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그놈이 또요?”
“아, 그 진상…….”
그들의 반응에 수혁이 고개를 갸웃했다.
“왜요? 누가 오는데요?”
“차라리 안 오는 게 더 도움이 될 것 같은 놈.”
“쥐뿔 능력도 안 되면서 제 잘난 맛에 사는 놈.”
“재수 없는 놈.”
김강식과 이재한, 강효상의 평가였다.
“……왠지 예전 생각나는데요?”
회귀 후 처음 대원들이 자신을 대하던 태도와 비슷해 보였다.
“그래도 너는 능력이라도 있었지. 그놈은 진짜, 어휴.”
김강식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궁금해졌다.
“인마, 그래도 우리 도와주러 온 사람이야. 너무 그렇게 뭐라고 하지 마라.”
박상태가 한소리 하자, 대원들은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오늘 오후부터 이쪽으로 출근하기로 했으니까, 알아서 잘 챙겨주고.”
그 말을 끝으로 박상태는 밖으로 나가 버렸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수다가 시작됐다.
“정우 놈, 그렇게 심각한 거 아니면 그냥 출근하라고 하는 게 어때?”
“그러고 싶은데, 갈비가 나가서 몸을 못 움직인답니다.”
“아, 저놈이 안 다치니까 이젠 다른 놈이 다쳐 가지고…….”
“그러게나 말입니다. 그냥 우리끼리 일한다고 하면 안 되나?”
김강식과 이재한은 언제부터 그리 쿵짝이 잘 맞았는지, 아직 오지도 않은 사람을 씹어댔다.
“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그래요?”
수혁이 은근슬쩍 대화에 끼며 묻자, 둘은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짓다 입을 열었다.
“그냥 애가 싸가지가 없어.”
“하는 말 들어보면 집도 좀 잘사는 것 같던데, 그래서 그런가?”
“잘살기는 개뿔. 그거 다 이빨 까는 거야. 잘사는 집 아들놈이 왜 이 짓을 하고 있어?”
그것도 그랬다.
“지가 지 입으로 그러는데요, 뭐.”
“현장 나가서 어리바리 타는 거 보면 곱게 자란 거 같긴 한데…….”
둘도 정확하게는 모르는 것 같았다.
“장비 이름은 다 못 외우고, 체력도 없고, 힘도 없고, 그런 주제에 힘든 일 안 하려고 뺀질거리면서 요령이나 피우고. 그럴 거면 왜 소방관을 하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다, 진짜.”
김강식의 말에 수혁은 문득- 누군가가 떠올랐다.
이전 생에서 한 번 본 적이 있는 사람이었다.
‘설마 걔인가?’
오래전의 기억이라 이름은 생각나지 않았지만, 그때의 수혁도 이 둘처럼 불평을 쏟아냈었다.
제대로 할 줄 아는 일이라곤 하나도 없었으면서, 허세만 잔뜩 부리던…….
‘그래, 그런 놈이 하나 있었지.’
딱 한 번 봤을 뿐인데도, 워낙 인상이 깊어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수혁은 머리를 긁적이며 인상을 찌푸렸다.
‘이거 좀 귀찮아질지도 모르겠는데.’
소방관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팀워크다.
수혁이 할 말은 아니었지만, 팀워크를 맞추는 것은 정말로 중요한 일이었다.
만약 그것을 방해하고 저해한다면, 요구조자뿐 아니라 소방관 자신도 위험해질 수 있었다.
그리고 수혁이 기억하는 그는, 팀워크의 팀자도 모르는 독불장군이었다.
그것도 안 좋은 쪽으로 말이다.
수혁은 왠지 모를 불안감이 들었다.
“안녕하십니까. 또 뵙네요?”
오후가 되자, 박상태가 이야기한 소방관이 지원 나왔다.
그는 수혁과 비슷한 나이에, 훤칠하고 잘생긴 얼굴의 소유자였다.
‘맞네, 그놈.’
그의 얼굴을 보자 기억이 더욱 생생하게 살아났다.
“어라, 처음 보는 분도 계시고.”
그는 다른 대원들에게 건성으로 인사하고는 곧장 수혁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반갑습니다, 저는 진지한이라고 하는데… 누구?”
행동과 이름의 괴리감이 하늘과 땅의 차이만큼 컸다.
“아, 네. 김수혁입니다.”
수혁이 그의 손을 마주 잡으며 자신을 소개하자, 진지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신입인가 보네, 임용한 지 얼마나 됐어?”
그는 자연스럽게 수혁에게 말을 놓았다.
무조건 자신이 선배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수혁을 처음 보는 데다, 계급장이 아직 소방사였으니 그렇게 생각할 만도 했다.
물론 그렇다 해도 이렇게 대뜸 말부터 놓는 것은 예의가 아니긴 했다.
“이제 1년 다 되어갑니다만.”
“이야, 아직 병아리네, 병아리야. 아직 뭐가 뭔지도 잘 모르겠지? 그럴 거야. 보통은 적응하는 데 오래 걸리니까. 뭐, 나는 금방 했지만.”
수혁의 대답에 진지한은 곧바로 내려다보듯 건방을 떨었다.
“까불지 마, 인마. 걔가 너보다 상급자니까.”
뒤에서 나타난 박상태가, 서류 뭉치로 진지한의 뒤통수를 탁- 하고 치며 말했다.
“에이, 무슨 1년도 안 된 병아리가 저보다 상급자예요? 여기 육각수도 떡 하니 두 개밖에 안 붙어 있구만.”
진지한은 박상태가 농담한 거라고 생각하는지, 수혁에게 어깨동무하며 웃었다.
“나 농담 같은 거 안 한다. 걔가 이번 소방 기술 경연 대회 우승자야. 그래서 조만간 특진할 거고.”
박상태의 말에 진지한이 슬그머니 수혁의 어깨에서 팔을 내렸다.
“아, 이분이 그분이구나? 이쪽 지역에서 우승자가 나왔다더만. 얘기는 많이 들었어요? 그… 김수혁 씨?”
진지한은 언제 말을 놓았느냐는 듯, 곧바로 태세전환을 했다.
하지만 여전히 예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아, 네.”
딱히 대답할 말이 없었던 수혁은 대충 고개를 끄덕여 주고는 시선을 돌렸다.
딱 그의 기억 속에 있던 모습 그대로였다.
대체 저런 성격으로 어떻게 소방관 생활을 했는지 모르겠다.
신일서는 조금 다르지만, 보통 이쪽 바닥은 위계질서가 엄격하다.
또 하나의 군대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말이다.
그런 곳에서 저렇게 안하무인에 예의라곤 찾아볼 수 없는 성격은 버티기 힘들었다.
‘어떻게 보면 대단하기도 하고.’
누가 뭐라고 하든, 말든 자기 페이스로만 살아간다는 게 쉽지는 않았으니.
“그러고 보니 박정우 선배가 안 보이네? 아, 그 양반이 다친 건가? 그러게 내가 조심 좀 하라니까. 언제 한 번 이럴 줄 알았지.”
아무렇게나 툭- 내뱉은 그의 말에 순간 사무실 분위기가 차갑게 얼어붙었다.
“야, 이 새끼야! 이게 듣자 듣자 하니까 말하는 싸가지가…….”
“그만.”
화를 참지 못한 김강식이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박상태가 말렸다.
“하지만 팀장님! 저 새끼 말하는 본새가 지금 X같잖아요!”
“됐으니까 그만하라고.”
박상태 역시 진지한이 마음에 들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생각 같아선 김강식처럼 말로만 화를 내는 게 아니라, 저 입을 뭉개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래선 안 된다.
어쨌든 진지한은 자신들을 도와주기 위해 지원 나온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실제로 도움이 되는지, 안 되는지는 둘째치고서라도.
“너도 말조심해. 한 번만 더 그딴 식으로 생각 없이 아무 말이나 싸지르면 그땐 가만 안 둘 테니까.”
박상태의 살벌한 눈빛을 마주한 진지한은, 오버스럽게 두 손을 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일들 해, 괜히 소란 피우지 말고.”
박상태가 나간 사무실의 분위기는 여전히 싸늘했다.
박상태의 명령 때문에 대놓고 뭐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진지한을 노려보며 아무도 입을 열지 않고 있었다.
진지한은 분위기에 익숙하지, 어깨를 한 번 으쓱해 보이고는 자신의 자리로 가서 앉았다.
“이거 차암, 부담스러워서 일하겠나아?”
곡조를 붙여 노래하듯 속삭이는 진지한의 음성에, 김강식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휴.”
다행히 그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콧김을 한번 훅- 내뱉으며 밖으로 나가 버렸다.
“같이 가요. 나도 커피나 한잔하게.”
이재한과 강효상이 그런 김강식의 뒤를 따라 나가 버렸다.
덕분에 사무실에는 수혁과 진지한, 둘만 남았다.
“참 피곤하게들 살아. 안 그래요?”
누구 때문에 이런 분위기가 만들어진 건지는 생각도 하지 않는지, 진지한은 혀를 차며 수혁에게 물었다.
‘한 대 팰까?’
수혁은 속으로 진지하게 고민했다.
“내가 여기서 얼마나 일을 할진 모르겠는데. 그동안 친하게 지냅시다, 우리. 모르는 거 있으면 나한테 물어보고. 내가 다 가르쳐 줄 테니까.”
진지한이 수혁에게 자신만 믿으라는 듯 웃으며 말했다.
수혁은 김강식의 뒤를 따라 진즉에 나가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나가기에도 늦었다.
사무실에 누군가 한 명은 남아 있어야 했는데, 진지한만 남겨두고 나가기엔 너무 불안했기 때문이었다.
“대답도 안 하시네. 특진한다고 유세 떠는 거야, 뭐야?”
‘허허…….’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수혁이 지금이라도 그냥 밖으로 나가 버릴까 고민하고 있는데, 출동 명령이 떨어졌다.
[구조 출동, 구조 출동.]
수혁은 마침 잘됐다는 표정으로 밖을 향해 뛰쳐나갔다.
“어, 어? 같이 갑시다!”
진지한은 움직임도 굼떴다.
수혁이 사무실 밖으로 나갈 때까지, 아직 책상도 못 벗어났을 정도였다.
그런 진지한의 모습을 흘깃- 쳐다본 수혁은 속으로 헛웃음을 터트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캐릭터였다.
이번에 도착한 현장은 한 아파트 단지였다.
“이거 좀 골치 아픈데?”
신고 내용은 누군가 아파트 베란다에 매달려 있다는 것이었다.
추락 사고가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급히 달려왔는데, 한 여자가 베란다에서 자살 소동을 벌이고 있었다.
현장에는 먼저 도착한 경찰이 구경 나온 사람들을 통제하고 있었다.
“어떻게 할까요?”
자살소동을 벌이고 있는 여자의 집은 15층.
저기서 떨어지면 거의 사망이 확실해 보였다.
“일단 매트 깔아.”
박상태는 수혁에게 인명 구조용 에어매트를 꺼내오라고 지시하고는 고민에 빠졌다.
자살자가 매달려 있는 위치가 그리 좋지 못했다.
집 안을 통해 접근한다면 경계심이 심해질 것이고, 옥상으로 접근하기엔 거리가 너무 멀었다.
자살자가 있는 곳 근처에 도착하기도 전에 걸릴 게 분명했다.
“수고 많으십니다.”
박상태가 고민하고 있는데, 경찰 한 명이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아, 수고 많으십니다.”
박상태가 정신을 차리고는 마주 인사를 했다.
“왜 저런답니까?”
“저희도 아직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별다른 요구사항 같은 것도 없고, 그냥 죽게 내버려 두라고 소리만 지르고 있습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누구는 사람 목숨 살리겠답시고 미친 듯이 뛰어다니다 다쳐서 병원에 입원하는데, 누구는 살기 싫다고 저 난리를 치고 있는 걸 보면…….
“가족들하고 연락은?”
“가족이라곤 남동생 한 명뿐이더군요. 조금 전에 연락이 닿아서 이쪽으로 오고 있는 중입니다.”
“골치 아프네요, 정말.”
박상태의 시선이 위를 향했다.
다행히 당장 뛰어내릴 것 같아 보이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안심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일단은 위층 집을 이용하는 수밖에 없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