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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91화 (91/425)

레스큐 시스템91화

“제가 할게요. 사람 설득하는 건 자신 있거든요.”

진지한이었다.

그는 자신 있는 표정으로 말을 했지만, 다른 대원들은 전혀 그를 믿고 있지 않았다.

“제가 이런 구조에 있어선 프로라니까요?”

아무도 호응을 해주지 않자, 진지한은 다시 한 번 자신을 어필했다.

“헛소리 그만하고. 일단은 위층 집을 통해서 구조할 계획이다. 물론 설득이 먼저 선행되어야 할 거고. 그게 여의치 않으면 기회를 봐서 구조한다.”

“알겠습니다.”

“아니, 제 말 좀……!”

“시끄럽고, 장비나 챙겨서 위로 올라가.”

박상태가 진지한의 말을 끊고 명령했다.

그러자 진지한은 세상이 자신의 능력을 몰라준다느니, 그러다 큰코다칠 거라느니, 하는 헛소리를 하며 멀어졌다.

“수혁아.”

하지만 박상태는 그런 진지한에게 시선도 주지 않고 수혁을 불렀다.

“부르셨어요?”

“뭐 괜찮은 방법 없냐?”

박상태가 혹시나 하고 수혁에게 물었지만, 그라고 해서 뾰족한 방법이 있는 건 아니었다.

쓸 만한 스킬도 없었다.

지난번 유조차 폭발 사고 때, 퀘스트를 완료해서 새로운 스킬을 얻었다면 혹시 또 몰랐겠지만, 그 퀘스트는 실패했다.

“형이 말한 대로 하는 게 가장 최선일 것 같은데요?”

수혁 자신이 팀장이라도 박상태와 똑같은 지시를 했을 것이다.

아니, 사실 그것 외에는 정말로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수혁에게 조금 기대를 했던 박상태는 약간 실망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알았다. 너도 올라갈 준비해.”

“아, 저는 밑으로 가도 돼요?”

수혁이 몸을 돌리던 박상태를 붙잡고 물었다.

“밑으로?”

“정확하게는 한 층 아랫집이요. 위에는 사람 충분히 많으니까.”

“거기서 뭘 하려고?”

박상태가 고개를 갸웃했다.

거기서 뭘 할 수 있단 말인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설마 떨어지는 자살자를 거기서 붙잡겠다는 뜻은 아닐 테고…….

“혹시 작전 실패해서 자살자가 뛰어내리면, 한번 붙잡아볼까 해서요.”

설마가 사람 잡았다.

“너 제정신이냐? 그게 가능할 것 같아?”

박상태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묻자, 수혁이 웃으며 대답했다.

“저 김수혁이에요, 자신 있어요.”

진지한과 같은 말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무게감은 차원이 달랐다.

그 말 한마디에 박상태는 정말로 수혁이 그럴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이 생겨 버린 것이다.

“……마음대로 해라. 미리 양해는 구하고 가.”

“네.”

박상태는 힘 있게 대답하고 멀어지는 수혁의 뒷모습을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저런 말을 믿는 자신이 어이가 없었다.

“레펠 제가 탈 겁니다.”

자살자가 있는 위층 집에 도착한 직후, 진지한이 꺼낸 말이었다.

“뭐?”

“제가 탈 거예요. 이건 팀장님이 아니라, 청장님이 와도 못 막아요.”

그렇게 말을 하는 진지한의 표정은 진지했다.

물론 그 모습을 보는 다른 대원들은 정 반대였다.

“너 레펠은 탈 줄 아냐?”

레펠은 구조대원이라면 누구나 탈 수 있다.

소방 학교에서도 배우고, 소방서에서도 수시로 훈련을 할 정도였으니까.

그만큼 레펠은 구조에 있어 필수적으로 할 줄 알아야만 했다.

하지만 그동안 봐온 진지한의 모습을 생각해 보면, 레펠을 타지 못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제가 레펠의 달인입니다, 달인!”

진지한이 자신의 가슴을 팡팡- 치며 말했다.

대원들의 얼굴에 의심이 서렸다.

“너 이번엔 왜 그러냐? 전에 지원 왔을 땐, 뭘 시켜도 뺀질거리면서 안 하더니?”

“제가 언제요? 그런 기억이 안 나는데?”

진지한은 정말로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이거, 진짜 웃기는 놈일세.”

너무도 뻔뻔한 모습에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안 돼, 내가 탄다.”

지금은 단순히 집 열쇠를 잃어버렸다고 해서 문을 열어주기 위해 레펠을 타는 게 아니었다.

1초만 타이밍이 어긋나거나, 위치를 잘못 잡으면 그대로 한 사람이 추락하는 위험한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 입만 나불거리는 진지한을 투입시킬 순 없었다.

실력도 의심되지만, 결정적으로 그에 대한 믿음에 전혀 없었다.

“너무들 하시네, 진짜.”

진지한이 얼굴을 찌푸렸다.

“이거 돌아가면 다 얘기합니다? 지원 온 사람을 왕따시키고, 모멸감을 줬다고? 요즘 직장 내 괴롭힘이 문제 되는 거 알죠?”

이젠 숫제 협박까지 했다.

김강식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달아올랐다.

“참아요, 참아.”

당장에라도 주먹을 날릴 것 같은 김강식의 모습에, 이재한이 나서며 말렸다.

“그럼 둘이 타면 되잖아요. 쟤가 잘 못해도 형님이 있으니까. 둘이 타는 걸로 합시다, 예?”

이재한은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박정우가 부상을 입는 바람에 분위기도 안 좋은데, 진지한이 정말 저따위로 떠들고 다니면 문제가 생길 소지가 있었다.

“하, 진짜. 어이가 없어서.”

김강식은 신경질을 내며 침을 뱉으려다, 이곳이 집 안임을 깨닫고는 다시 삼켰다.

“야, 너도 준비해.”

간신히 김강식을 진정시킨 이재한이 진지한에게 턱짓을 하며 말했다.

“진작 그럴 것이지. 괜히 시간만 낭비하게.”

진지한이 혼자 중얼거렸지만, 이 안에서 그것을 못 들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덕분에 김강식이 다시 한 번 광분했지만, 이번엔 강효상까지 나서서 말렸다.

“흥흥-”

그러거나 말거나, 진지한은 콧노래를 부르며 로프를 묶었다.

도저히 구조하러 온 구조대원의 모습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애들 장난치러 온 것도 아니고…….’

김강식은 속에서 열불이 났지만, 다투느라 지체할 시간이 없었기에 참았다.

“준비됐습니다.”

로프의 한쪽 끝을 베란다 난간에 묶고 단단히 고정시킨 이재한이 조용히 속삭였다.

이제부턴 최대한 인기척을 내지 말아야 한다.

밑에 있는 자살자가 그들을 눈치채면, 어떤 돌발 상황이 펼쳐질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야, 뭐 하나만 묻자.”

김강식은 몸을 풀며 진지한에게 입을 열었다.

“뭡니까?”

뚱한 목소리로 자신이 아직 삐쳐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표현한 진지한은, 김강식을 쳐다보지도 않고 대꾸했다.

“너 갑자기 왜 이렇게 열심이냐? 원래 그랬다는 헛소리 말고, 진짜 왜 그러냐고.”

“저 원래 열심히 하는데요?”

김강식은 물어본 자신이 멍청했다며 고개를 저었다.

‘왜 그러냐니?’

반면 진지한은 말과는 달리,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수혁 때문이었다.

자신보다 한참 후배인 수혁이 얼마 안 있어 진급하며, 상급자가 된다는 소리에 자극받은 것이다.

그 자극이 좋은 방향으로 흘렀으면 좋았겠지만, 그러지 못했다.

수혁과의 경쟁심보단, 수혁에 대한 열등감이 먼저 왔다.

소방관이 된 지 1년도 채 안 된 병아리도 하는데, 자신이라고 못할 이유가 없다며, 근거 없는 자신감만 넘쳐났다.

자신의 행동이 요구조자와 다른 대원들에게 악영향을 끼칠 것이란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그저 수혁보다 더 돋보이고 싶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그런 진지한의 생각을 알 리가 없는 김강식은 한숨을 내쉬며 난간에 가까이 붙었다.

기회를 엿보다가 단숨에 내려가 자살을 막는 것이 임무였다.

수도 없이 레펠을 타본 김강식은 자신 있었다.

옆에서 진지한이 방해만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깊게 심호흡을 한 그는 무겁게 가라앉은 눈으로 아래쪽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박상태는 밑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레펠은 대원들이 알아서 잘할 것이라 생각했고, 자신은 여기서 상황을 지켜보며 지시 내릴 생각이었다.

그런데 레펠을 준비하는 대원들을 본 박상태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곧바로 차로 달려가 망원경을 가져온 그는 로프를 착용하고 있는 진지한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무전기를 들었다.

“야, 누가 쟤한테 로프 줬어?”

당연히 김강식과 이재한이 탈 것이라고 생각했던지라,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

[일이 좀 있었습니다.]

이재한의 음성이 들려오자 박상태는 소리치려다 참으며 조용히 말했다.

“일은 무슨 일? 그보다 쟤 레펠 탈 줄 안대?”

[그게…….]

이재한은 최대한 간략하게 방금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허허…….”

소방관 생활 10년 만에 저런 놈은 처음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지난번에 지원 왔을 때, 다음부턴 다른 놈으로 보내달라고 요청했어야 했다며 후회했다.

“살다 보니 이런 개 같은 경우도 보네, 참나. 저 새끼 사고 못 치게 잘 감시해.”

[알겠습니다.]

저 꼴통이라면 분명 자신이 한 협박대로 행동할 것이 분명했다.

“아이고, 두야.”

두통마저 생길 지경이었다.

“남동생분 도착했습니다.”

그때, 경찰 한 명이 다가오며 말했다.

그의 뒤에는 이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청년 한 명이 무표정으로 서 있었다.

“이분이……?”

“네, 동생이랍니다.”

박상태가 뺨을 긁적이며 그를 쳐다보았다.

하나뿐인 자신의 누나가 자살 소동을 벌이고 있는데도, 그는 아무런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

아니, 귀찮아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는 누나에게는 시선 한 번 주지 않고 오직 박상태만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신일서 구조대의 박상태라고 합니다.”

박상태는 왠지 모를 쌔한 느낌이 들었지만,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았다.

“김주용입니다.”

김주용은 여전히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없이 박상태와 악수를 나눴다.

“누님의 이름은 어떻게 됩니까?”

“김주현이요.”

일단 박상태는 자살자의 신원부터 확인했다.

나이는 27세.

직장은 없고, 집에서 놀고먹는 백수라고 한다.

김주용은 그런 누나와 같이 살며 홀로 생계를 책임지고 있었고.

“한두 번 이러는 것도 아니고. 그냥 뒈지라고 두세요.”

박상태는 김주용의 말에 충격을 받았다.

제발 살려달라며 매달리는 것까진 바라지 않았지만, 그냥 죽게 두라니?

그게 자신의 유일한 가족에게 할 말인가?

“……한두 번이 아니라고요?”

“벌써 열 번이 넘어요, 자살한다고 지X염병을 떤 게. 이번에도 말만 저러지, 금방 내려올걸요?”

김주용은 코웃음까지 쳤다.

“왜 그러는 겁니까?”

“저도 몰라요. 그냥 갑자기 살기 싫어졌다는데, 그냥 미친X이지.”

박상태는 그를 이용해 설득하려는 계획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김주용의 태도로 봐선 설득은커녕, 괜한 자극만 줄 것 같았다.

“음, 알겠습니다. 김주현 씨는 저희가 잘 구해드릴 테니, 걱정 마세요.”

더 할 말이 없어 대충 그렇게 둘러댄 박상태는, 그에게 현관 비밀번호를 묻고는 경찰에게 눈짓했다.

눈빛에 담긴 뜻을 알아차린 경찰이 김주용을 데리고 한쪽으로 데리고 갔다.

“하아, 진짜 바빠 죽겠는데.”

김주용이 한숨을 쉬며 하는 말이 들렸지만, 박상태는 애써 무시했다.

저런 걸 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머릿속이 조금 복잡해졌다.

결국 설득은 자신이 직접 나서는 수밖에 없어 보였다.

“여기서 상황 좀 보시다, 변화가 있으면 바로 알려주세요.”

경찰 중 한 명에게 그렇게 부탁한 박상태가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다.

설득하려면 일단 그녀의 집 안으로 들어가서 하는 편이 나아 보였다.

15층에 도착한 박상태는 김주용에게 들은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 안으로 조심히 들어갔다.

“나가! 들어오지 마! 나가라고!”

문소리를 들은 것일까?

김주현은 박상태에게 비명 지르듯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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