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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96화 (96/425)

레스큐 시스템96화

“……정말 괜찮아요?”

“그렇다니까요. 진짜 잘 어울려요.”

수혁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얼마 만에 입는 정장이란 말인가?

최은송은 엄지를 들어보였지만, 수혁의 얼굴은 펴질 줄을 몰랐다.

“너무 오랜만에 입어서 그런가?”

평소 트레이닝복을 즐겨 입는 수혁으로선 불편하기 짝이 없는 복장이었다.

“역시 제 생각대로 수혁 씨는 비율이 좋아서 핏이 잘 사네요.”

반면 최은송은 수혁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경조사가 있을 때나 입을까, 말까 했던 정장이었다.

당연히 유명 브랜드도 아니었고, 그리 비싼 가격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싸구려 같아 보이지 않았다.

최은송의 말대로, 수혁과 잘 어울렸기 때문이었다.

“은송 씨가 그렇다면, 뭐…….”

사실 최은송은 옷을 한 벌 사길 바랐다.

하지만 어차피 잘 입지도 않을 옷에 돈을 쓰기 싫었던 수혁은 거절했고.

절충안으로 그나마 괜찮은 이 정장을 꺼내 입은 것인데, 생각보다 괜찮은 듯싶었다.

“약속 시간이 언제죠?”

“이제 슬슬 출발하면 될 것 같네요.”

오늘은 예원과 식사를 하는 날이었다.

예원과 단둘이 만나는 자리였다면 거절할 생각이었는데, 그날 촬영했던 출연자들도 모인다는 소리에 가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런데 정말 저도 가도 돼요?”

최은송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그럼요. 그쪽에 이미 얘기해 놨어요, 은송 씨랑 같이 간다고.”

전부터 알았지만, 최은송은 7일간의 서바이벌의 애청자였다.

지금까지 방영된 건 단 한 편도 빼놓지 않고 모두 챙겨봤을 정도란다.

그래서 수혁은 최은송도 그 자리에 데려가기로 했다.

예원 측에선 난색을 표했지만, 만약 안 되면 수혁도 가지 않겠다고 하자 어쩔 수 없이 허락을 해주었다.

“그럼 이제 나가요.”

최은송이 수혁의 팔에 팔짱을 끼며 배시시- 웃었다.

오늘은 최은송 역시 나름대로 힘을 준 모습이었다.

눈에 띄는 액세서리나 화려한 복장은 아니었지만, 깔끔한 원피스가 그녀의 단아함을 돋보이게 해주었다.

약속 장소가 서울이었는지라, 둘은 최은송의 차를 타고 이동했다.

예상 도착 시간은 30분 후.

서울 근처의 신도시였는지라, 도로가 잘 뚫려 있어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이동하며 잠깐 대화를 나눈 것 같은데, 벌써 목적지 근처였다.

“어떡하죠? 긴장되는데.”

최은송이 과장되게 심호흡을 하며 말하는 모습에, 수혁이 웃었다.

“쓰나미도 겪어본 사람이 연예인 본다고 떨려요?”

“어, 그러네요?”

건물을 통째로 흔들던 쓰나미의 위력이 떠오르자, 긴장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때 느꼈던 공포에 비하면, 지금의 긴장은 차라리 기분이 좋을 정도였다.

“그리고 다들 좋은 사람들이니까 별로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거기서 만난 연예인들은 하나같이 친절했다.

시애는 말할 것도 없었고, 나머지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엔 도도해 보였던 안나경까지 나중에는 수혁에게 스스럼없이 다가올 정도였으니 말이다.

물론 그 좋은 사람 중 예원이라는 겉과 속이 다른 녀석은 제외였다.

수혁의 말에 최은송은 긴장 대신 기대감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내비게이션에서 안내종료 음성이 들렸다.

약속 장소는 한 유명 호텔의 레스토랑이었다.

수혁과 최은송이 발렛을 맡기고 차에서 내리는데,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어? 수혁 씨!”

수혁을 부르는 음성에는 반가운 기색이 역력했다.

뒤를 돌아보자, 그곳에는 낯익은 사람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어, 성우 형.”

그는 개그맨 하성우였다.

촬영이 끝나고 한국에 돌아와 몇 번 연락을 주고받은 둘은, 서로 호형호제할 정도로 친해져 있었다.

“그렇게 술 한잔하자고 해도 바쁘다고 빼더니, 여기서 이렇게 보네.”

“바빴다니까요.”

수혁이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하성우와의 술 약속은 계속 미루고, 이 자리에 나온 것이 민망했던 것이다.

“이렇게라도 보면 됐지, 뭐. 신경 쓰지 마. 소방관이 바쁜 건 나도 잘 아니까. 그런데 옆에 분은 일행?”

신경 쓰지 말라며 손을 젓던 하성우가 그제야 최은송을 발견하곤 물었다.

“네, 제 여자친구요. 오늘 같이 오기로 했거든요.”

“그래? 반갑습니다. 저는 개그 하는 하성우라고 합니다.”

하성우가 최은송에게 인사를 건넸다.

“최은송이라고 해요.”

최은송 역시 웃으며 마주 인사를 했다.

“이야, 제수씨가 아름다우시네. 연예인 하셔도 되겠다.”

하성우는 수혁을 부럽다는 듯 쳐다보며 말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런데 은송 씨는 연예인보다 요리사를 더 좋아해서.”

“어? 셰프셔?”

“아직 배우고 있어요.”

최은송이 어색하게 웃으며, 수혁의 옆구리를 살짝 꼬집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아요!’ 하고 소치치는 것 같았다.

“사이좋으시네. 일단 들어가자.”

그 모습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은 하성우가 앞장서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말하면 사람들이 놀려요.”

“뭘요? 다 사실인데.”

수혁이 능글맞게 웃었다.

그 모습에 최은송이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예원 이름으로 예약되어 있을 텐데.”

먼저 간 하성우가 직원에게 말하자, 그는 한쪽으로 자리를 안내했다.

직원이 셋을 데리고 간 곳은 꽤 커다란 룸이었다.

“이런 곳도 있었네.”

하성우는 이곳에 몇 번 와본 적이 있었지만, 이런 룸이 있는 줄은 몰랐다.

“따로 예약해야 할 거예요.”

나름 고급 한식 레스토랑에서 일하고 있는 최은송은 이런 쪽에 아는 것이 많았다.

아직 다른 사람은 오지 않은 것인지, 룸 안은 비어 있었다.

셋은 일단 자리를 잡고 앉아 대화를 나누었다.

대화의 주제는 역시 촬영 때 벌어진 에피소드들이었다.

하성우는 개그맨 특유의 입담으로 수혁의 활약상을 묘사했고, 최은송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그의 말에 집중했다.

“어? 빨리 오셨네요?

잠시 후 도착한 것은 이진성이었다.

그리고 이진성의 뒤로 사람들이 줄줄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시애, 효진, 제스는 도착하자마자 곧장 수혁에게 달려왔다.

“오랜만이에요, 오빠!”

특히나 시애는 반가워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게, 마치 강아지를 보는 것 같았다.

자신을 구해준 사람이니 오죽하겠느냐만, 다른 멤버들이 깜짝 놀랄 정도로 적극적인 모습이었다.

당황한 표정으로 간신히 그런 시애를 떼어낸 수혁은 괜히 옆에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최은송의 눈치를 봤다.

“어, 이분은 누구세요?”

시애가 그런 최은송을 발견하고는 물었다.

“안녕하세요, 수혁 씨 여자친구인 최은송이라고 해요.”

최은송의 소개에 시애가 ‘아!’ 하는 표정을 지었다.

“저 알아요! 그 요리하신다는 분!”

시애는 꺄아- 하며 최은송의 손을 붙잡고, 반갑다며 인사를 했다.

그녀의 예상치 못한 반응에 최은송도 당황하고 말았다.

“저, 저를 어떻게?”

시애가 수혁의 팬이라는 얘기는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자신까지 알 것이라고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다.

“헤헤, 어쩌다 보니…….”

시애는 자신이 오버했다는 것을 깨닫고는 은근슬쩍 눈길을 피했다.

수혁과 최은송은 궁금했지만, 자리가 자리인 만큼 그 의문은 나중에 풀기로 했다.

“다들 오랜만이네요.”

아직 도착하지 않은 건, 식사를 초대한 예원뿐이었다.

일단은 예원이 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한 사람들은 하나씩 자리에 앉기 시작했다.

시애는 하성우를 밀어내고 수혁의 옆자리를 차지해 앉았다.

“몸은 좀 괜찮아?”

수혁이 묻자, 시애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오빠 덕분에 이제 괜찮아요. 아직 무리하면 안 된다고 하긴 하는데, 금방 회복할 거라고 걱정 말래요.”

머리 쪽의 부상은, 상처 그 자체보다는 후유증이 더 무서운 법이었다.

“그래도 몸조리 잘해.”

소속사에서 알아서 잘 케어하겠지만, 수혁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알겠습니닷!”

시애가 장난스럽게 대답했다.

“그런데 언니, 아! 언니라고 불러도 되죠?”

시애가 이번엔 최은송에게 관심을 주었다.

“아, 네.”

“수혁 오빠 어떻게 만났어요?”

둘은 금세 쿵짝이 잘 맞아 서로 즐겁게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수혁은 둘이 나누는 이야기의 절반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그 중간에 멍하니 앉아 있을 뿐이었다.

그때 닫혀 있던 문이 열리며, 예원이 들어왔다.

“이거 죄송합니다. 스케줄이 생각보다 늦게 끝이 나서… 좀 늦었네요.”

오랜만에 보는 예원은 여전히 잘생겼다.

아이돌이 아니라, 모델을 해도 어울리는 외모였다.

미리 도착한 사람들을 둘러보던 예원은, 수혁과 최은송을 발견하고는 눈을 빛냈다.

하지만 그는 굳이 아는 척을 하지 않고 비어 있는 자리로 가서 앉았다.

“시애야, 몸은 좀 어때?”

예원은 미안함이 가득 담긴 얼굴로 시애의 안부를 물었다.

“전 괜찮아요.”

시애는 걱정 말라는 듯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그땐 정말 미안했어. 재밌는 장면 하나 건지려는 생각에…….”

“진짜 괜찮다니까요. 의사 쌤도 괜찮다고 했고, 이젠 안 아파요.”

나중에 들은 얘기인데, 예원은 단 한 번도 시애의 병문안을 가지 않았다고 한다.

스케줄이 바빠서였다고는 하는데, 매니저를 통해 과일을 몇 번 보낸 것이 전부라고 했다.

‘그렇게 걱정되면 직접 한 번 갔어야지.’

의도한 것이든, 아니든.

예원의 행동으로 인해 시애가 크게 다쳤다.

그렇다면 한 번이라도 직접 찾아가는 것이 예의 아닌가?

아무리 바쁘다 하더라도 말이다.

물론 당사자인 시애가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데, 수혁이 나설 일도 아니었다.

“수혁 씨도 오랜만이네요. 그날엔 감사했습니다.”

예원이 수혁에게 인사한 것은, 다른 사람들과 모두 인사를 나눈 후 가장 마지막이었다.

“네, 오랜만입니다.”

수혁의 음성은 왠지 퉁명했다.

괜히 탐탁지 않은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겉으로 드러난 것이었다.

최은송은 그것을 눈치채고는 의아한 눈으로 수혁을 쳐다보았다.

평소의 수혁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예원은 미소를 지우지 않고 말을 이었다.

“수혁 씨가 없었으면 정말 큰일날 뻔했습니다. 수혁 씨는 시애뿐만 아니라, 저한테도 은인이세요.”

예원의 태도는 수혁조차도 가식인지, 아닌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예의 있는 모습이었다.

예원이 저렇게까지 말하자, 수혁은 마냥 무시할 수도 없었다.

“그 정도로 대단한 일을 한 건 아닙니다. 예원 씨도 방송의 재미를 위해서 그랬던 거니까, 너무 그렇게 자책하지 마세요.”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분위기는 훈훈했다.

예원이 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겉으로 보기엔 그랬다.

“늦었으니까 그럼 식사부터 하시죠.”

예원은 직원을 불러 미리 예약해 두었던 음식들을 부탁했다.

잠시 후.

음식들이 서빙되기 시작했다.

한눈에도 비싸 보이는 것들이었다.

CF로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는 안나경이 눈을 크게 뜰 정도였으니, 수혁으로선 엄두도 내지 못할 가격임이 분명했다.

“여러분께 폐를 끼친 것에 대한 사과로 제가 사는 거니까, 마음껏 드세요.”

“이야, 역시 예원이야. 사람이 경우를 알아.”

하성우는 크게 웃으며 예원을 칭찬했다.

다른 사람들도 예원에게 잘 먹겠다는 인사를 하고는 식사를 시작했다.

“이거 꽤 비싼 요리예요.”

최은송이 즐거운 얼굴로 수혁에게 말했다.

요리사인 그녀는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맛보는 게,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였다.

수혁은 그녀를 데리고 오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젓가락을 들다 예원과 눈이 마주쳤다.

푸근한 미소를 짓고 있는 표정과는 달리, 그의 눈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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