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97화
‘설마 아니겠지.’
수혁은 자신이 잘못 봤을 것이라 생각했다.
조금 전 예원이 말한 것처럼, 수혁은 그에게 도움을 줬으면 줬지, 잘못을 저지른 기억은 없었다.
그러니 저렇게 적대적인 시선을 보낼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식사를 하며 중간중간 예원이 수혁을 쳐다볼 때마다 느껴지는 그 적대감은 절대 착각이 아니었다.
‘……내가 모르는 이유가 있는 건가?’
생각해 보면 예원은 첫 만남에서부터 수혁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눈치였다.
수혁이 자신을 소개하자마자 태도가 변한 것을 보면 알 수가 있었다.
그때는 그냥 스타병에 걸려서 그런 거라고만 생각을 했는데, 뭔가 좀 더 구체적인 이유가 있는 듯했다.
“왜 그래요? 음식이 입에 안 맞아요?”
수혁이 불편한 표정을 짓고 있자, 옆에서 맛있게 식사하고 있던 최은송이 조용히 물었다.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여기 음식 잘하네.”
예원 때문이라고 말을 하기엔 자리가 부적절해서 수혁은 대충 웃음으로 넘겼다.
최은송은 이상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이내 관심을 거두었다.
“이것도 한번 먹어봐요.”
최은송이 생선으로 추정되는 뭔가를 집어 수혁에게 먹여주었다.
“어, 맛있네요. 이거 뭐지?”
수혁은 일단 예원의 눈빛을 무시하기로 했다.
그런 것에 신경 쓸 시간에 최은송과 더 좋은 시간을 보내는 게 나았다.
그런데 그때였다.
“옥돔구이입니다. 꽤 맛있죠?”
대답은 최은송이 아닌, 예원에게서 나왔다.
‘젠장, 역시 착각이 아니었어.’
수혁에게 요리의 이름을 알려주는 예원의 눈빛은, 확실히 수혁을 내려다보는 기색이 역력했다.
마치 ‘너 이런 거 못 먹어봤지?’라는 표정.
수혁은 그것을 보고 예원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하, 이 유치한 새끼가.’
예원은 지금 수혁에게 쪽을 주려는 속셈인 게 분명했다.
소방관의 월급으로는 꿈도 꾸지 못할 고급 호텔에서, 고급 요리를 대접하며, 너와 나는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수혁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유치한 짓에 어울려 줘야 한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피곤해졌다.
“제철이 아니라 조금 맛이 떨어지긴 하네요.”
그때, 최은송이 옆에서 말했다.
“……예?”
“지금은 옥돔 철이 아니거든요. 제철이었으면 지금보다 훨씬 맛있었을 텐데.”
“그, 그런가요?”
생각지도 못한 사람의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예원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저라면 장어나 참돔 요리를 냈을 텐데, 조금 아쉽네요.”
최은송은 그 후로 옥돔과 참돔 요리의 차이에 대해 일장연설을 했다.
사람들이 눈을 끔뻑였다.
그저 수혁의 여자친구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뜻밖의 지식 방출에 깜짝 놀랐다.
“역시 요리하시는 분이라 그런지, 많이 아시네요!”
오직 시애만이 놀람 대신 감탄을 터트렸다.
“아, 셰프셨구나?”
예원이 그제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계획이 처음부터 틀어졌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본래대로라면 지금 당황하고 있어야 할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 수혁이어야만 했다.
“그래도 비싼 곳이라 그런지, 꽤 맛있긴 하네요.”
최은송이 살짝 미소 지으며 말을 끝마쳤다.
그러고는 수혁을 향해 ‘나 잘했죠?’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걸 본 수혁이 실소했다.
어떻게 안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최은송은 수혁과 예원의 분위기를 읽은 듯했다.
그래서 직접 나서 수혁에게 향한 시선을 자신에게로 돌린 게 분명했다.
만약 최은송이 나서지 않았다면, 예원은 여세를 몰아 수혁을 망신시켰을 확률이 높았다.
아쉬워하는 예원의 표정을 보면 알 수가 있었다.
‘애도 아니고…….’
남을 깎아내리며 자신의 우월감을 드러내기 위해, 이런 유치한 방법을 사용한다는 것 자체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왜 그러는지 이유조차 알 수가 없었으니.
‘나오지 말 걸 그랬나?’
오랜만에 시애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을 보고 싶어 나왔건만, 괜히 최은송에게까지 불똥이 튀는 건 아닌지 걱정되었다.
그 후로도 예원은 계속해서 틈만 나면 수혁을 깎아내리려 시도했다.
“수혁 씨 슈트는 어디서 맞춘 건가요? 잘 어울리시는데.”
“소방관은 하는 일에 비해 대우가 그리 좋지 않다고 들었는데… 월급도 그리 많지는 않죠?”
“그럼 대학은 안 가시고 바로 소방공무원 쪽으로 가신 건가요?”
치졸하기 짝이 없었다.
겉으로는 예의가 바른 태도였지만, 조금만 생각해도 그 안에 담겨있는 뜻이 그리 좋지 않다는 것쯤은 충분히 눈치챌 수 있었다.
수혁은 예원이 질문할 때마다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다른 사람들 역시 예원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고는 조용히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만약 수혁이 대응을 잘못한다면, 분위기 자체가 어그러질 수도 있는 상황.
하지만 그런 것을 최은송이 가만히 보고만 있을 리가 없었다.
“뭐, 브랜드가 중요한가요? 이렇게 잘 어울리는데. 그쵸?”
“소방관은 돈을 보고하는 일이 아니라, 사명감을 가지고 하는 일이니까요. 저는 그래서 소방관분들이 더욱 존경스러워요.”
“수혁 씨는 처음부터 소방관이 꿈이었다고 하네요. 괜히 도움도 되지 않는 대학에 가서 시간 낭비할 필요 없이, 바로 소방공무원 준비를 하셨다는데.”
마치 창과 방패 같았다.
예원은 끝도 없이 질문했고, 최은송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것에 대꾸했다.
계속되는 공방에, 예원의 적대감이 수혁에게서 최은송에게로 옮겨갔다.
“최은송 씨는 요리하신다고 하셨죠?”
“네, 아직은 좀 미숙하지만 열심히 하고 있어요.”
“혹시 어디서 일하시는지 알 수 있을까요? 다음에 저희 멤버들과 함께 방문해 보고 싶은데.”
수혁의 눈살이 살짝 찌푸려졌다.
아무래도 예원이 공격의 타깃을 바꾼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예원은 수혁과 최은송이 머뭇거리는 것을 보고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선뜻 말하지 못하는 것으로 봐선 별 볼 일 없는 식당에서 일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괜찮으니 말씀해 주세요. 저나 저희 멤버들이나 입맛이 별로 까다롭진 않아서 어디서든 잘 먹거든요.”
네 요리에 별로 기대를 하지 않는다, 라는 뜻을 은연중에 내비쳤다.
그 뜻을 알아들은 최은송이 픽- 하고 웃었다.
“종로에 있는 예향정이라는 이름의 작은 한식 전문점이에요.”
“아, 그래요? 조만간 꼭 한번 찾아뵙겠습니다.”
“글쎄요. 예약이 가능하실지 모르겠는데…….”
최은송이 웃으며 말하자 예원이 눈썹이 꿈틀거렸다.
“장사가 꽤 잘되나 봐요?”
예원은 속으로 헛웃음을 지었다.
자신은 대한민국 탑 아이돌이다.
자신이 한 번 밥을 먹으러 가기만 해도 감지덕지해야 할 판에, 뭐? 예약?
예원은 최은송이 자신을 무시했다는 생각에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그렇기도 하지만, 저희는 기본적으로 손님을 가려 받는 편이라서.”
“하!”
예원은 자신도 모르게 어이없다는 웃음을 내뱉고 말았다.
그러니까 최은송의 말은, 예약이 많이 밀려 있다는 게 아니라, 밥을 먹으러 올 자격이 안 된다는 뜻이었다.
“이거, 저희도 나름대로 꽤 잘나간다고 생각했는데. 최은송 씨 가게에는 대체 어떤 분들이 식사하러 오시는지 궁금하군요.”
예원의 음성에는 날이 잔뜩 서 있었다.
“그분들의 신상은 제가 밝힐 순 없고. 최소한 차관급 이상은 되셔야 예약이 가능할 거예요.”
최은송의 말에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대체 무슨 식당이기에 차관급 이상은 되어야 예약이 가능하단 말인가?
“참고로 대통령께서도 가끔 방문하실 정도니, 음식 맛은 장담할 수 있어요. 아쉽게도 예약은 힘드시겠지만.”
놀리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아쉽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최은송을 보며, 예원의 얼굴이 붉어졌다.
“언니, 저도 안 돼요?”
옆에서 시애가 꼭 한번 가보고 싶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자 최은송은 시애를 보며 눈웃음을 지었다.
“다음에 옆에 친구들이랑 한번 와요. 내가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으니까.”
“와아!”
예원에게 했던 말과는 달랐다.
수혁은 그런 최은송과 예원의 모습을 보고는 머리를 긁적였다.
만약 최은송을 데리고 오지 않았다면, 이 자리가 얼마나 불편했을지…….
수혁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굳은 얼굴로 가만히 이쪽을 노려보고 있는 예원을 보며 생각했다.
‘아무래도 유치한 건 나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이렇게 통쾌한 걸 보면 말이다.
“……누구랑 식사했다고요?”
“시애요. 아, 효진이랑 제스도 같이.”
수혁이 능글맞은 표정으로 유지환을 쳐다보았다.
“그러니까, 버블걸스 말이죠?”
“네.”
수혁이 고개를 끄덕이자, 유지환은 진지한 표정으로 그런 수혁의 양어깨를 붙잡았다.
“저는요?”
“뭐, 뭐요?”
우락부락한 유지환이 더욱 무섭게 변했다.
“저는 왜 안 불렀습니까? 아니, 여자친구분도 같이 갈 수 있는 자리였으면, 저도 불러도 됐잖습니까?”
“아니, 그건 좀…….”
“왜 안 부르셨죠? 일부러 저 괴롭히려고 안 부른 겁니까? 그런 거죠? 맞죠? 제 말 맞죠?”
유지환이 팔을 흔들자, 수혁의 몸이 갈대처럼 이리저리 휘둘렸다.
“나도 불렀어야지!”
결국 유지환은 절규했다.
수혁은 유지환의 이런 반응을 기대하긴 했지만, 너무 잘 먹힌 것 같았다.
“아, 알았으니까 이제 그만.”
멀미까지 날 지경이었는지라, 수혁은 손을 들어 유지환의 팔을 붙잡았다.
그러자 유지환의 움직임이 바로 멈추었다.
멈추고자 해서 멈춘 것이 아니었다.
지금도 그는 팔에 힘을 잔뜩 주고 있었다.
그럼에도 팔이 움직이지 않는 것은, 수혁의 힘이 유지환의 힘보다 훨씬 세기 때문이었다.
유지환의 눈에 당황과 함께 승부욕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덩치만 보자면 수혁은 유지환에게 상대도 되지 않을 정도였다.
수혁의 몸이 왜소한 것이 아니라, 그만큼 유지환이 괴물 같은 육체의 소유자였다.
그러니 수혁에게 힘으로 밀린다는 것은 그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흐읍!”
유지환이 팔에 힘을 더했다.
그러자 수혁이 잡고 있던 팔이 움찔- 하며 움직였다.
그러자 이번엔 수혁이 힘을 더 주었다.
“……보기와 다르게 힘이 세시네요.”
“지환 씨는 보는 것처럼 힘이 세시고.”
수혁과 유지환은 서로 마주 보며 씨익- 이를 드러냈다.
“아주 꼴값들을 하고 있네. 아침 댓바람부터 뭔 헛짓거리들이야?”
때마침 출근한 박상태가, 그런 수혁과 유지환의 모습을 보며 혀를 찼다.
박상태의 핀잔에 둘은 머쓱한 표정으로 힘을 뺐다.
“오셨습니까? 좋은 아침입니다.”
“좋은 아침에 시꺼먼 남자 둘이 뭐 하고 있었냐? 블루스라도 추려고?”
“아니, 그게 아니라…….”
유지환이 당황하며 변명하려 하자, 수혁이 웃으며 대신 대답했다.
“상태 형, 지환 씨 엄청 힘이 세네요. 형은 상대도 안 될 것 같은데.”
그 말에 박상태가 멈칫- 했다.
“인마, 내가 그래도 어? 이 나이 먹도록 하루도 안 빼놓고 단련을 거듭한 몸이야!”
확실히 박상태의 몸은 나이에 걸맞지 않게 뛰어났다.
키가 좀 작은 것이 흠이지만, 그것만 빼면 전신이 단단한 근육으로 무장되어 있었다.
“그래도 지환 씨한테는 안 될걸요?”
수혁은 다시 한 번 도발했다.
“하, 이 새끼들이 진짜.”
박상태가 헛웃음을 지으며 둘을 향해 다가왔다.
“누가 더 센지 해보자, 이 어린노무 새끼들아.”
박상태도 나이 많은 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