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100화
공사장 승강기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500㎏? 600㎏?
정확한 무게는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사람의 힘으로 들 수 없다는 것은 분명했다.
그런데 수혁은 버텼다.
그것도 한팔로 말이다!
위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유지환은, 승강기가 추락하는 것보다, 수혁의 모습에 더욱 경악했다.
“이런 X발!”
박상태는 너무도 놀라 욕설을 내뱉었다.
다행히 로프는 단단하게 고정이 되어 있어 풀리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라, 수혁이었다.
“으그그그극!”
수혁은 팔이 뜯겨 나갈 것만 같은 고통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혼신의 힘을 다해 승강기를 붙잡은 탓에, 그가 잡은 부분이 엿가락처럼 휘어져 있었다.
요구조자는 이제 완전히 패닉 상태에 빠져 승강기 한쪽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떨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그를 향해 이쪽으로 오라고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입을 조금이라도 벌리면, 그대로 손을 놓칠 것만 같았다.
“조금만 버텨요, 수혁 씨!”
위로 올라가던 유지환이 방향을 바꿔 다시 아래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수혁은 대답하지 못했다.
악다문 이 사이로 비릿한 피가 새어 나왔다.
이를 너무 꽉 깨물어, 잇몸에서 출혈이 시작된 것이다.
투둑- 투두둑-!
그뿐만이 아니었다.
근육이 끊어지는 소리도 들려왔다.
아무리 수혁이라 할지라도, 한팔로 이 무거운 승강기를 붙잡고 버티기엔 무리였던 것이다.
팔이 덜덜- 떨리고, 몸이 두 쪽으로 찢어질 것만 같았다.
“수혁 씨!”
그사이 유지환이 수혁의 옆에 도착했다.
하지만 막상 도착을 하고나니, 뭘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요구조자부터!”
위에서 박상태가 명령했다.
수혁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몰랐다.
사실, 승강기의 추락을 잠시나마 멈췄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었으니까.
수혁의 힘이 다하기 전에 요구조자를 탈출시켜야만 했다.
유지환은 명령을 듣자마자 승강기 내부로 몸을 들이밀었다.
조금이라도 수혁에게 부담이 가지 않게 하기 위해, 승강기와의 접촉을 최대한 피한 상태로.
거꾸로 로프에 매달린 채, 조심스럽게 요구조자에게 접근한 유지환이 손을 뻗었다.
요구조자가 제정신이 아닌 상태였기에, 그의 팔을 붙잡고는 강제적으로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
그것을 확인한 김강식이 로프를 급하게 끌어당겼다.
두 명을 한꺼번에 끌어올리는 것이라 힘들었지만, 지금은 그런 것에 신경을 쓸 때가 아니었다.
환자를 보고 있는 강효상을 제외하고, 박상태와 이재한까지 로프에 붙었다.
덕분에 유지환은 빠른 속도로 위로 올라갈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승강기 밖으로 빠져나왔다.
“놔!”
박상태가 소리치자, 수혁이 손에서 힘을 풀었다.
가가가각-!
그러자 쇠가 갈리는 소리와 함께 승강기가 20층 아래로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콰아아앙-!
승강기는 순식간에 땅에 도달했고, 커다란 소음과 함께 흙먼지가 치솟아 올랐다.
수혁은 멍한 눈빛으로 그것을 내려다봤다.
퀘스트 완료 메시지와 레벨 업을 했다는 글자들이 떠올랐지만,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야, 김수혁! 괜찮냐! 대답해!”
박상태의 외침이 아득하게 들려왔다.
수혁은 잘 움직이지도 않는 팔을 들어 올려,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러곤 말했다.
“아프니까 빨리 좀 올려줘요.”
“수혁 씨, 정말 사람 맞습니까?”
유지환의 질문에, 박상태가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아니, 팀장님도 보셨잖아요. 그게 사람이 낼 수 있는 힘입니까?”
“사람이 아니면? 뭔데?”
“……로봇?”
“헛소리하고 앉았네.”
박상태가 헛웃음을 지었다.
유지환은 농담처럼 얘기했지만, 정말 오늘 수혁의 모습은 사람 같지가 않았다.
“우리가 아까 팔씨름할 때, 수혁이 빼자고 한 이유를 알겠냐?”
그러고 보니 잊고 있었다.
번외 경기로 수혁과 팔씨름을 하기로 했다는 것을 말이다.
“저놈은 진짜 괴물이야. 힘도 그렇고, 체력도 그렇고. 가끔가다 보여주는 이상하리만치 정확한 감도 그렇고.”
박상태가 거칠게 머리를 긁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이해가 안 갈 때가 많거든. 오늘 일도 그런 일 중 하나고.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냐? 그놈 덕분에 못 구할 뻔한 요구조자들을 수도 없이 많이 살렸는데.”
유지환의 어깨를 두드린 박상태가 말을 이었다.
“소방관이 그거면 됐지.”
그 말에 유지환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어우, 삭신이야.”
그때, 병원에 갔던 수혁이 돌아왔다.
수혁은 승강기를 붙잡았던 팔에 붕대를 칭칭 감고 있었다.
붕대가 부풀어 올라 있는 것으로 봐선, 얼음찜질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괜찮냐? 병원에선 뭐래?”
박상태가 반색하며 수혁에게 다가가 물었다.
“별건 없었어요. 다행히 뼈에는 이상이 없답니다. 그냥 근육이 조금 파열되고, 인대도 좀 늘어나고. 아, 치아 쪽도 상했다고 하네요. 그게 전부예요.”
“……그게 별거 아니냐?”
수혁은 대수롭지 않게 말을 했지만,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족히 한 달은 요양해야 할 정도의 부상이었다.
“이런 건 침 바르면 금방 나아요.”
“미친놈.”
박상태가 고개를 저었다.
역시 수혁은 이해가 되지 않는 놈이었다.
“괜찮으십니까?”
유지환이 조심스럽게 다가와 물었다.
“아, 네. 보시다시피.”
수혁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
“예?”
“아, 아닙니다.”
유지환은 대체 어떻게 해야 그런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관두었다.
수혁이 오늘 보여준 모습은, 그냥 차 밑에 깔린 자신의 아이를 구한 엄마의 초능력 같은 것이라고 믿는 것이 정신건강에 이로울 것 같았다.
수혁은 말을 하다 만 유지환을 싱겁다는 듯이 쳐다보고는, 다시 박상태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거 은송 씨한테는 말하지 마요.”
“내가 입이 그렇게 가벼울 것 같냐?”
박상태는 수혁이 왜 그런 말을 하는지 누구보다 잘 이해했다.
그 역시 가족이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수혁이 또 다쳤다는 소식을 들으면, 최은송은 걱정하느라 밤잠도 설칠 것이 분명했다.
“아, 그리고 오늘 구한 환자 말인데. 다행히 무사하단다.”
예상했던 대로 그는 심장마비 직전의 상황이었다.
만약 시간이 조금만 더 지체되었다면, 심장이 멈추었을 것이고, 그랬다면 예후가 그리 좋지 않을 수도 있었다.
“다른 요구조자들도 안정을 되찾았다고 연락이 왔고. 그 마지막 요구조자는 너한테 죄송하다고 말을 전해달라고 했다는데.”
그 말에 수혁이 웃었다.
더 안전하고 좋게 끝날 수도 있었겠지만, 사실 그의 반응은 정상적인 행동이었다.
누구라도 그런 상황에선 제정신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때문에 수혁은 그를 탓하지 않았다.
“그런데…….”
박상태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너, 다음 주까지 회복할 수 있겠냐?”
수혁이 다른 사람들보다 회복이 빠르다는 것은 박상태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는 있었다.
아무리 회복이 빠르다 하더라도, 일주일 안에 회복하는 것은 절대로 무리였다.
“글쎄요……. 아마 힘들지 싶은데.”
수혁의 대답에 박상태가 한숨을 내쉬었다.
“다음 주는 왜요? 무슨 일 있습니까?”
대화를 듣던 유지환이 궁금한 듯 물었다.
“넌 소방관 맞냐?”
박상태가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다음 주에 세계 소방관 경기 대회 있잖아, 인마.”
“아, 그게 벌써 다음 주입니까?”
“그래, 그리고 저놈은 최강 소방관 경기 출전자고.”
그러고 보니 들은 것 같았다.
소방 기술 경연 대회 전국 본선에서 수혁이 우승을 차지했다는 것을 말이다.
“어, 그럼 큰일 아닙니까?”
수혁은 위쪽에서도 한껏 기대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본선에서의 기록이 세계 신기록과 고작 1초밖에 차이가 나질 않았으니 말이다.
이번 대회가 한국에서 열리는 만큼, 수혁이 우승을 차지하면, 그보다 더 좋은 그림은 없었다.
이미 유명 인사인 수혁이었으니, 홍보 효과도 클 테고.
그런데 이렇게 부상당 한 상태라면 경기 출전 자체가 불투명했다.
“위에서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닐 텐데…….”
신일서 서장부터 한껏 기대 중이었으니,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뭐, 어떻게든 되지 않겠어요?”
하지만 정작 수혁 본인은 그리 걱정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무슨 방법이라도 있냐?”
“딱히 방법은 없는데……. 그냥 이대로 출전해도 별로 문제는 없을 것 같아서요. 누구한테 질 것 같지도 않고.”
수혁의 말에 박상태와 유지환이 동시에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팔도 제대로 못 움직이는 놈이, 대체 무슨 자신감이란 말인가?
그런데 더 당황스러운 건, 수혁이 정말 질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었다.
박상태는 물론이고, 오늘 수혁의 초인적인 힘을 본 유지환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수혁이라면 한 팔만 써도 충분히 입상하고도 남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내 유지환은 고개를 저었다.
수혁이 놀라운 능력의 소유자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이번엔 세계대회다.
전 세계에서 괴물 같은 소방관들이 모두 집결한다는 뜻이었다.
아무리 수혁이라도, 한 팔을 쓰지 못하는 지금은 무리였다.
상식적으로 그렇지 않은가?
유지환은 애써 그렇게 자신의 생각을 부정했다.
“지환 씨, 아쉽게도 팔씨름은 다음 기회로 미뤄야겠네요. 팔이 이 모양이라.”
“괘, 괜찮습니다.”
분명 출동하기 전까지 유지환은 자신이 있었다.
충분히 수혁에게서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모르겠다.’
아니, 벌써부터 패배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유지환은 괜히 착잡한 심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또 다치셨네요?”
수혁은 뜨끔한 표정으로 안절부절못했다.
눈을 가늘게 뜬 채, 팔짱을 끼고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최은송이 너무 무서웠다.
‘젠장, 누구한테 들은 거지?’
분명 모두에게 신신당부했다.
제발 은송 씨에게 말을 하지 말아 달라고 말이다.
그리고 모두 걱정 말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상태 형은 아니고.’
박상태는 그가 장담한 대로 입이 무거운 사람이었다.
수혁이 왜 그런 부탁을 했는지도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었고.
그러니 박상태는 아니었다.
‘강식 선배도 아닐 테고.’
김강식은 수혁의 말이라면 껌뻑 죽는 사람이었으니, 용의자에서 제외했다.
‘그럼 남은 건…….’
이재한뿐이었다.
강효상이나 유지환은 최은송의 연락처도 모르고 있을 테니 말이다.
수혁은 이재한이 범인이라 확신하고, 복수를 다짐했다.
“지금 딴생각하는 거예요?”
최은송의 눈이 더 가늘어졌다.
“아, 아니, 그게 아니고요.”
수혁은 식은땀을 흘리며 최은송의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 애를 썼다.
“수혁 씨가 얼마나 힘든 일을 하는지는 저도 잘 알고 있어요. 그 누구보다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도 잘 알고. 하지만…….”
최은송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붕대를 감은 수혁의 팔을 조심스럽게 매만졌다.
“제발 수혁 씨 자신도 좀 아껴주세요.”
그녀의 말에 수혁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자신을 만나 마음고생하는 최은송에게 미안할 따름이었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요.”
수혁의 표정과 팔을 번갈아 보던 최은송이, 뭔가를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오늘부터 저도 여기서 살래요. 내가 계속 옆에서 지켜봐야겠어.”
수혁의 눈이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