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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143화 (143/425)

레스큐 시스템 143화

“여긴가?”

택시에서 내린 수혁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기사가 골목길 안쪽까지 들어가지 않고 큰길에 세워준 탓에 수혁은 조금 걸어야만 했다.

‘이쪽이었지?’

수혁이 살아왔던 곳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터라 길을 헤맬 수밖에 없었다.

좁디좁은 골목길 사이로 걷던 수혁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러니까 늦을 수밖에.”

점심시간.

그것도 평일의 점심시간임에도 골목길은 불법 주차되어 있는 차량들로 꽉 막혀 있었다.

이런 상황이었으니, 펌프차나 구조용 중장비 차량이 통과하지 못해 늦게 도착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냥 밀어버릴 수도 없고…….”

몇 년 후에는 법이 개정된다.

긴급 출동한 소방차의 진로를 막는 불법 주차 차량은 훼손하고 지나가더라도 소방대원들에게 민형사상의 책임을 묻지 않는 법이 말이다.

불법 주차 차량으로 인해 생긴 수많은 피해를 생각하면, 훨씬 더 이전에 만들어졌어야 할 법이었다.

그때는 지금에라도 이렇게 바뀐 게 어디냐며 좋아했지만…….

‘그 법이 지금 필요한데.’

지금 이 차들을 밀고 진입한다면, 펌프차 기관원이 배상해야 할 돈은 그의 연봉을 뛰어넘고도 남을 정도였다.

“후우…….”

독일의 시스템과 비교해 보면 너무도 차이가 났다.

소방, 구조 기술이 아무리 뛰어나면 뭐하나?

국가에서 정작 필요한 곳, 필요한 시점에 제대로 된 지원을 해주지 않는데.

한숨을 내쉬며 걸음을 옮기던 수혁이 멈칫했다.

거미줄 같았던 골목길이 왠지 눈에 익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다!’

오래전 일이라 다 잊어버렸을 줄 알았는데, 막상 도착하자 새록새록 떠올랐다.

수혁은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 골목길을 빨리 걷기 시작했다.

‘여기서 왼쪽, 그리고 오른쪽으로 가면……?’

나왔다.

수혁의 기억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이곳의 모습은 무너져 내린 콘크리트 더미와 울부짖는 소방관들의 애통함뿐이었으니까.

하지만…….

“불이야!”

수혁이 아주 빠르게 도착한 것은 아니었다.

연립 주택에선 이미 불이 치솟아 오르고 있었다.

그것을 발견한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며 주변에 화재 소식을 알리고 있었다.

‘2층! 그래도 아직은 약해!’

불이 난 지 얼마 되지는 않았는지, 화재의 크기가 아예 손을 쓰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수혁은 재빨리 그곳을 향해 달려갔다.

“119에 신고하셨습니까?”

불이 났다며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있는 아저씨를 향해 수혁이 물었다.

“아차! 신고부터 해야지!”

당황해하던 아저씨는 그제야 생각이 났다는 듯 스마트폰을 꺼내 바로 신고하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수혁은 모자를 벗으며 안으로 들어갈 준비를 했다.

반 차를 쓰며 장비를 갖고 나올 수 있을 리가 만무했기에, 수혁은 평범한 소방 활동복 차림이었다.

‘맨몸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건데…….’

수혁이 예상했던 것보다 화재가 빨리 발생했기에 주변을 돌아보며 방법을 생각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생명 감지Ⅱ!’

수혁은 곧장 ‘생명 감지Ⅱ’ 스킬을 사용했다.

‘네 명.’

스킬에 감지된 요구조자는 총 네 명이었다.

평일 오후라 그런지 집에 있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그들은 갑작스런 화재에 놀랐는지 허둥거리며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을 확인한 수혁은 신고해 준 아저씨에게 모자를 내밀며 말했다.

“이것 좀 잠깐 맡아주시겠습니까?”

“아, 예!”

아저씨는 그제야 수혁의 차림새를 보고는 소방관임을 눈치챘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소방관이 출동할 때까진 이 주변으로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좀 막아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걱정하지 마쇼! 내가 잘 막고 있을 테니까.”

아저씨의 호언장담에 수혁이 고개를 한 번 숙이고는 몸을 돌렸다.

안에 요구조자가 없다면, 구조대원들이 주택 안으로 진입할 이유가 없었다.

그 참혹하기 그지없었던 일을 원천부터 차단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반 차 쓰길 잘했다.’

수혁은 더 늦지 않게 도착했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주택 안쪽으로 뛰어들어 갔다.

“비켜! 비켜!”

마침 밖으로 뛰쳐나오던 남자 한 명이 앞에 있는 수혁을 밀치기 위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생명 감지Ⅱ’를 사용하고 있던 수혁은 남자의 존재를 이미 알아차리고 있었기에 몸을 슬쩍 움직이며 충돌을 피했다.

“어, 어?”

수혁을 밀기 위해 잔뜩 힘을 주고 있던 남자는 수혁이 피해 버리자 균형을 잃으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조심하세요.”

수혁은 그런 남자의 팔을 붙잡아주며 말했다.

“놔, 이 새끼야!”

서른 정도로 보이는 남자는 험상궂은 표정으로 수혁의 팔을 뿌리치고는 그대로 밖을 향해 뛰어나갔다.

“쯧.”

남자의 태도에 수혁이 혀를 찼다.

하지만 이해하지 못할 상황도 아니었다.

자신이 사는 건물에 불이 났는데 정신이 없을 만도 했다.

수혁은 그 남자를 뒤로하고 요구조자가 감지된 곳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쿵쿵-!

“계십니까!”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집은 문이 잠겨 있었다.

수혁이 문을 두드려 봤지만,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스킬로 확인해 봤으나 요구조자는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화재 현장에서 요구조자가 집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고, 집 안에 머물러 있는 경우는 두 가지였다.

첫째는 잠을 자고 있을 경우다.

이렇게 소란스러운데 잠을 잘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지만, 의외로 그런 경우가 많다.

두 번째는 요구조자가 제대로 된 거동할 수 없는 경우였다.

몸이 불편한 분일 수도 있고, 급히 도망치다 부상을 입을 수도 있었다.

그것이 아니라면 연기를 들이마시고 정신을 잃었던가.

그 어느 경우라도 위험하다는 것은 마찬가지였기에, 수혁은 망설이지 않았다.

우지끈- 하는 소리와 함께 문고리가 떨어져 나갔다.

잠겨 있던 문이 열리는 것과 동시에 수혁이 안으로 들어가며 소리쳤다.

“구조대입니다! 괜찮으십니까?”

“여, 여기…….”

안방 쪽에서 작게 할아버지의 음성이 들려왔다.

수혁이 다급히 그쪽으로 달려갔다.

그곳에는 나이가 지긋하신 할아버지 한 분이 허리를 부여잡고 쓰러져 있었다.

“할아버지, 괜찮으세요?”

할아버지는 어찌나 고통스러운지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로 식은땀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허, 허리가.”

아무래도 불이 났다는 소리에 급히 집을 빠져나오려다가 허리를 삐끗한 모양이었다.

“조금만 참으세요.”

수혁이 할아버지의 몸을 조심스럽게 안아 들었다.

“으으윽!”

조금만 움직여도 고통이 심한지 할아버지는 연신 신음 소리를 터트렸다.

수혁은 최대한 충격이 가지 않게 주의하며 할아버지를 밖으로 옮겼다.

“여기 좀 도와주세요!”

수혁이 소리치자 사람들 몇 명이 달려왔다.

“조심, 조심…….”

수혁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할아버지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구급차가 도착할 때까지 여기서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누워 계세요. 아셨죠?”

“고맙, 네.”

할아버지는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수혁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수혁은 별것 아니라는 듯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 좀 부탁드립니다.”

“여기는 우리한테 맡기고, 얼른 사람들이나 구해오쇼.”

처음 신고해 주었던 남자가 걱정 말라며 손을 휘저었다.

수혁은 다시 몸을 돌려 연립 주택 안으로 들어갔다.

‘남은 사람은 둘.’

본래 넷이었던 요구조자들 중 남자와 할아버지가 밖으로 빠져나왔으니, 이제 남은 것은 두 명뿐이었다.

‘위치는 2층이고…….’

한 집에 모여 있었다.

수혁은 지체하지 않고 그곳으로 향했다.

단 몇 걸음만으로 2층에 도착한 수혁이 현관 문고리를 붙잡았다.

찰칵-!

이번 역시 부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문은 그대로 열렸다.

잠시 당황한 수혁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구조대입니다! 괜찮으……?”

안으로 들어간 수혁이 멈칫했다.

집 안에는 노부부가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보아하니 화재가 일어난 곳은 바로 이 집인 것 같았다.

집안 곳곳에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으니까.

그 와중에도 노부부는 빠져나올 생각은 하지 않고 뭔가를 계속하고 있었다.

“대체 지금 여기서 뭘 하고 계시는 겁니까! 불이 났으면 밖으로 빠져나가야지!”

수혁이 소리를 질렀다.

노부부는 그제야 수혁의 존재를 눈치채고는 화들짝 놀라며 돌아봤다.

“그, 그게…….”

할머니는 수혁의 눈치를 보며 말끝을 흐렸다.

“빨리 나오세요! 더 늦으면 큰일 납니다!”

불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아직까진 이렇게 집 안을 돌아다닐 수 있겠지만, 몇 분만 더 지나면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을 정도가 될 것이다.

“하지만.”

수혁은 머뭇거리고 있는 노부부의 손에 들린 것을 확인했다.

무슨 대단한 것을 챙기느라 이러고 있는가 싶었는데…….

수혁이 전혀 생각지도 것이었다.

‘앨범.’

얼마나 오래된 것일까?

노부부가 살아온 세월만큼 오래되어 보이는 앨범이었다.

수혁은 그것을 보고는 잠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노부부에겐 그 어떤 것보다도 앨범 안의 빛바랜 추억이 소중했던 것이다.

심지어 자신들의 안위보다도 더.

하지만 그것을 이해한다고 해서 언제까지 보고만 있을 순 없었다.

“나가셔야 해요.”

“잠깐만. 몇 개만 더 챙기면 되니까, 응?”

할머니가 앨범을 품에 안으며 간절한 표정을 지었다.

“제가 나중에 챙겨 드릴게요. 일단은 나가셔야 해요.”

수혁은 고개를 저으며 아쉬워하는 두 노부부를 데리고 밖으로 빠져나오는데, 저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제 왔구나.’

출동은 빨랐다.

최초 신고가 들어가고 고작해야 5분가량 흘렀을 뿐이었으니까.

하지만 사이렌 소리가 가까워지지 못 하는 것으로 봐선, 이전 생과 마찬가지로 불법 주차 차량에 가로막혀 진입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도 요구조자들은 다 구조했으니까.’

이제 소중한 목숨이 허무하게 사라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잠시만 여기서 기다리고 계세요. 앨범은 제가 올라가서 찾아올 테니까.”

“부탁하네.”

할머니가 수혁의 손을 꼭 잡으며 부탁했다.

“걱정 마세요.”

수혁은 노부부를 향해 안심하라는 듯 고개를 끄덕여 주고는 다시 2층으로 향했다.

그 잠깐 사이에 불길은 더욱 번져 있었다.

이대로라면 출동한 소방관들이 도착하기 전에 본격적으로 화재가 커질 것 같았다.

‘그전에 가지고 나와야지.’

수혁은 노부부가 살던 집으로 들어갔다.

불길이 위협해 왔지만, 수혁은 ‘실드’를 사용한 채 집안을 뒤지기 시작했다.

거실 장을 샅샅이 뒤지던 수혁의 눈에 정말 오래되어 보이는 앨범 하나가 들어왔다.

‘이건가?’

족히 50년은 넘어 보이는 세월이 느껴졌다.

수혁은 그것을 조심스럽게 품에 안고는 밖으로 빠져나왔다.

앨범을 보고 좋아할 노부부의 모습을 생각하니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수혁은 1층으로 내려와 밖으로 나섰다.

“어?”

골목 끝에서 방화복을 입은 채 전력으로 달려오는 소방관들이 보였다.

수혁은 그들을 확인하고는 노부부에게 다가가, 앨범을 건넸다.

“할머니, 여기요.”

앨범을 본 노부부가 눈물을 흘렸다.

“고맙네, 고마워!”

“별말씀을요.”

수혁이 웃으며 손을 내젓는데, 소방관들이 도착했다.

그들은 숨을 헐떡이며 잠시 화재가 난 주택을 올려다보았다.

“혹시 안에 남아 있는 분이 계십니까?”

구조팀장으로 보이는 대원이 사람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그러다 문득 수혁을 발견하고는 다가왔다.

“남은 사람은 없습니다.”

수혁의 말에 팀장의 눈에 안도감이 서렸다.

혹시나 늦었을까 봐 걱정했는데, 요구조자가 없다니…….

그보다 다행일 순 없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우리 아들, 아들이 아직 있어!”

할머니 옆에서 잠자코 있던 할아버지가 이쪽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수혁과 팀장의 얼굴이 동시에 굳었다.

‘……저게 무슨 소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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