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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147화 (147/425)

레스큐 시스템 147화

“방수 시작해!”

화재 진압팀장의 명령과 함께 방수가 시작됐다.

커다란 물줄기가 시장 입구 쪽을 향해 미친 듯이 쏟아져 내렸다.

하지만 불길이 어찌나 강한지 물이 닿는 것과 동시에 증발해 버리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대기.”

박상태와 구조 3팀은 긴장한 얼굴로 때를 기다렸다.

불길이 어느 정도 진압이 되어야만 안으로 들어갈 수가 있었다.

“음…….”

하지만 1분이 지나고, 2분이 지나도 도저히 불길이 잡힐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안 되겠다.”

안쪽에는 수많은 요구조자가 갇혀 있었다.

밖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잠깐 기다려.”

박상태는 자리를 옮겨 화재 진압팀장에게로 향했다.

“더는 못 기다린다.”

“하지만 지원이 오지 않는 이상은 지금이 최선입니다.”

“같이 들어간다.”

“……같이 말입니까?”

화재 진압팀장은 박상태의 말에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생각하기에도 지금은 그것이 최선이었다.

“그럼 준비하고 계십쇼.”

박상태는 그에게 잘 부탁한다며 어깨를 몇 번 두들겨 주고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진압팀 뒤에 붙어서 진입한다.”

“알겠습니다.”

대원들의 얼굴에 긴장이 더욱 짙어졌다.

“엄호 방수하고, 진입해!”

화재 진압팀장의 외침과 함께 관창수가 노즐을 돌렸다.

그러자 일직선으로 뻗어나가던 물줄기가 순식간에 사방으로 넓게 퍼지기 시작했다.

“진입!”

넓게 퍼진 물방울이 잠시 동안 불길을 차단했다.

그리고 그 틈을 놓치지 않은 대원들이, 일제히 불의 벽을 뚫고 안으로 들어갔다.

관창수를 제외하고, 구조 3팀에서 가장 빨리 앞장선 것은 당연하게도 수혁이었다.

수혁은 자신이 부 관창수라도 되는 것처럼 화재 진압대원의 뒤에 바짝 붙어 있었다.

박상태는 그런 수혁을 부르려다 멈추었다.

평소 현장에서도 집중력이 대단하긴 했지만, 지금 수혁은 그 어느 때보다도 집중한 모습이었다.

자신보다도 앞서 있는 수혁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불러도 소용없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리고 박상태의 그 판단은 맞았다.

지금 수혁에게 주변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정신 따위는 없었으니까.

‘전방 130m 앞에서 왼쪽에 세 명. 거기서 조금 더 가면 두 명 더.’

‘생명 감지Ⅱ’와 ‘미니 맵’을 통해 가장 빠르게 요구조자를 구할 수 있는 경로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요구조자가 있는 곳까지는 고작해야 십여 미터 남짓.

평소라면 눈 깜빡할 사이에 도달할 수 있는 거리였지만, 엄호 방수하고 있는 관창수의 뒤를 따라가려니 속도가 너무 더뎠다.

‘이러단 늦어!’

잠시 계산을 해본 수혁이 속으로 소리를 질렀다.

이 속도로는 절대로 모든 요구조자를 구할 수가 없었다.

구조 3팀과 화재 진압대원, 그리고 뒤이어 올 지원을 감안해도 무리였다.

‘치고 나간다.’

더는 이렇게 뒤에 붙어서 움직일 여유가 없었다.

“조금 옆으로.”

수혁이 뒤에서 속삭이자, 부 관창수가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뒤를 힐끔 쳐다봤다.

“옆으로 비키라고!”

그 소리에 관창수마저 뒤를 돌아봤다.

속도가 더 느려지자, 수혁은 지체하지 않고 앞에서 달려가던 화재 진압대원 두 명을 옆으로 밀치고는 앞으로 달려나갔다.

“김수혁! 야, 이 미친 새끼야!”

박상태가 수혁을 불렀다.

그들이 보기엔 수혁이 자살이라도 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길 속에 엄호 방수도 없이 그냥 뛰어들다니?

아무리 방화복을 입었다지만, 그것이 만능은 아니었다.

정도를 넘어선 불길 속에서는 절대 버틸 수가 없었다.

박상태의 비명과도 같은 외침에 수혁이 한쪽 팔을 들었다.

“걱정하지 마요! 알아서 할 테니까!”

“저 개또라이가 또…….”

구조 3팀은 고개를 저었고, 화재 진압대원들은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는 듯 박상태를 쳐다봤다.

“저놈은 신경 쓰지 말고 본래 계획대로 간다.”

이제 와 수혁의 뒤를 따라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수혁이 알아서 잘할 것이라 믿는 수밖에.

박상태와 대원들은 천천히 전진 했다.

제발 수혁이 무사하길 기도하며…….

뜨거웠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 온몸이 통째로 불에 살라지는 느낌이었다.

불길로 인해 시야도 제대로 확보되지도 않는 상황.

그럼에도 수혁은 멈추지 않았다.

‘미니 맵’에 의지하며 착실하게, 그리고 빠르게 달렸다.

‘여기서 왼쪽!’

수혁이 방향을 틀자 불에 타고 있는 상점 하나가 나타났다.

원래 무엇을 파는 곳이었는지는 알아볼 수조차 없었다.

수혁의 눈에 보이는 것은 그저 열기를 견디지 못하고 깨진 가게 문과 그쪽에 쌓여 있는 철제 캐비닛뿐이었다.

‘불을 막으려고 했구나!’

나무로 된 가구였으면 순식간에 불에 타 없어졌을 것이다.

다행히 철제였기에 어느 정도 불길이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 있었던 것 같았다.

수혁은 그곳으로 다가가며 소리쳤다.

“물러나세요!”

‘생명 감지Ⅱ’로 본 요구조자들은 캐비닛과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럼에도 소리를 지른 것은 구조대가 왔다는 것을 그들에게 알리기 위함이었다.

수혁이 발을 뻗었다.

쾅-!

그리 견고하지 않았던 철제 캐비닛은, 수혁의 발길질 한 번을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꺄아악!”

안쪽에서 여자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구조대입니다! 안심하세요!”

가게 안에 몸을 숨기고 있는 사람은 모두 셋.

할머니 한 분과 중년의 여성 둘이었다.

다행히 그들은 연기를 들이마시지 않은 듯 두려움이 가득하긴 해도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었다.

수혁은 늦지 않게 보조 마스크를 꺼내 셋의 얼굴에 씌워주었다.

“이제 됐습니다.”

수혁은 벌벌 떨고 있는 셋을 안심시키기 위해 차분한 말투로 말을 걸었다.

“뒤에 소방관들이 더 오고 있습니다. 곧 빠져나가실 수 있을 거예요.”

수혁의 말에 그들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어느 정도 진정이 된 듯하자 수혁이 무전기를 들었다.

“요구조자 세 명 발견했습니다.”

[어디야?]

수혁의 무전을 들은 박상태가 다급하게 대답을 했다.

“지금 형이 있는 곳에서 12m 떨어진 곳에서 왼쪽을 보면 가게 하나 있어요.”

[……뭐?]

박상태의 음성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자신이 지금 어디 있는 줄 알고 12m 앞이라는 건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수혁은 나중에 변명하더라도 지금은 스킬의 능력을 숨길 생각이 없었기에, 다시 한 번 똑똑히 말했다.

“이제 10m 전방이요. 지금 이 상태로는 못 빠져나가니까, 호스 더 투입시켜 주세요. 그리고 강식 선배랑 정우 선배가 요구조자들 데리고 밖으로 빠져나가야 합니다.”

[너 그게 대체 무슨 말이야?]

“그냥 그렇게만 알아들어요. 뒤는 맡길게요.”

수혁은 그 말을 끝으로 무전기를 내려놓았다.

박상태에게 미안하긴 했지만, 지금은 이런 대화로 낭비할 시간이 없었다.

“잠시 후에 여러분을 데리고 밖으로 나갈 사람들이 올 겁니다. 그때까진 무섭더라도 이곳에서 벗어나지 마세요.”

“어, 어디 가시나요?”

중년 여성 한 분이 수혁에게 물었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자신들을 이곳에 남겨둔 채 떠날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아직 안쪽에 갇혀 있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쪽으로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저희는 그냥 두고요?”

“다른 사람이 금방 올 겁니다.”

“안 돼요!”

중년의 여성이 수혁의 팔을 붙잡았다.

그러곤 절대 놓지 않겠다는 듯 고개를 마구 저으며 소리를 질렀다.

“우리를 여기다 내팽개치고 가면 안 되지! 살려줘야 할 거 아니야! 못 가! 우릴 꺼내주기 전까진 절대 못 가!”

히스테릭한 그녀의 모습을 본 수혁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그녀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 이건 정상적인 반응이었다.

그리고 수혁 역시 이들을 밖으로 빼낼 대원들이 도착할 때까지, 여기 머무는 것이 맞았다.

구조대원은 요구조자들을 버려두고 다른 곳으로 향해선 안 된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도 촉박했다.

머리로는 이곳에 남아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마음은 벌써 다른 요구조자들이 있는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고작 몇 초의 시간 동안 수혁은 셀 수 없을 정도의 갈등을 경험했다.

과연 다른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이들을 두려움 속에 놔둬도 되는 것일까?

그것이 비록 몇 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수혁이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그때였다.

“놔줘.”

잠자코 상황을 지켜만 보고 있던 할머니가 중년 여성에게 말을 내뱉었다.

“어, 엄마?”

“놔줘, 이것아. 가뜩이나 우리 같은 사람들 구한다고 이 불구덩이 속에 걸어 들어온 양반들인데, 네가 그러면 얼마나 힘들것어. 안 그래도 힘든 사람 붙잡고 있지 말고, 그 손 놔.”

“그, 그래도…….”

“아, 뭣혀! 놓으라니까!”

중년 여성은 할머니의 호통에 절대 놓지 않을 것만 같았던 손에 힘을 풀었다.

“소방관 총각은 이제 가봐. 이 안쪽에는 우리보다 더 위험한 사람들이 많을 터니.”

수혁은 할머니를 잠시 바라보다 허리를 꾸벅- 숙였다.

“할머니 덕분에 더 많은 사람이 살 수 있을 겁니다.”

“인사는 됐고, 얼른 가봐.”

할머니가 어서 움직이라는 듯 손을 휘저었다.

“금방 다른 구조대원이 올 테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기다리고 계세요.”

수혁은 떨어지지 않는 발을 억지로 떼어냈다.

빠르게 움직여야 할 발걸음이 천근만근이었다.

수혁은 이를 악물며 억지로 다른 요구조자가 있는 곳을 향했다.

“후욱- 후욱-!”

가게 밖으로 나오자 몸이 절로 움츠러들 정도의 불길이 수혁을 덮쳐 왔다.

‘그래도 가야 해!’

방화복을 입고, 면체 마스크를 쓴 자신도 이렇게 뜨겁고 힘들었다.

그러니 장비라고는 하나도 없을 요구조자들은 얼마나 힘들겠는가?

수혁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들은 모두 이곳에서 목숨을 잃고 말 것이다.

앞으로 49명.

‘모두 구해내고 만다!’

수혁의 눈이 타올랐다.

‘여긴가?’

엄호 방수 뒤에 숨어 이동하던 박상태가 걸음을 멈추었다.

‘12m?’

완전히 정확하지는 않았지만, 대충 그 정도 이동을 한 것 같았다.

박상태가 왼쪽을 쳐다보았다.

확실히 상점 하나가 눈에 띄었다.

하지만 상점은 주위 어느 곳을 둘러봐도 존재했다.

수혁이 말한 곳이 이곳이라 장담할 수가 없었다.

애초에 12m라는 거리 자체를 이해할 수 없었으니까.

그럼에도 박상태는 이곳을 확인하기로 결정했다.

그 말을 한 사람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바로 김수혁이었으니까.

“강식이랑 정우, 따라붙어.”

일단 수혁의 말대로 화재 진압대의 추가투입을 요청한 상태였다.

만약 이곳에 정말로 요구조자 세 명이 있다면, 그들을 데리고 빠져나갈 인원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박상태와 김강식, 박정우가 상점 안쪽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그리고 발견했다.

수혁이 말한 요구조자 세 명을.

‘대체 뭐야, 그놈?’

박상태는 황당한 얼굴로 헛웃음을 내뱉었다.

“요구조자 세 명 확보. 요구조자 세 명 확보. 후발대 도착은 언제야?”

[거의 다 도착했습니다.]

무전기에서 흘러나오는 음성을 들으며 박상태가 요구조자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이제 안심하세요. 구하러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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