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154화
‘실드.’
수혁은 ‘실드’를 사용했다.
투명한 막이 수혁의 몸을 둘러싸는 것이 느껴졌다.
뼛속까지 태울 것 같았던 열기가 일순간 씻은 듯이 사라졌다.
“후우…….”
수혁은 이제야 좀 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뒤에서 박상태가 자신을 부르는 듯했지만, 수혁은 돌아보지 않았다.
혹여나 잡힐까 걸음을 더욱 서둘렀다.
여전히 체력이 바닥나 있는 상태라 간신히 박상태보다 빨리 움직일 수가 있었다.
화르르륵-!
불길이 수혁을 집어삼키려 다가왔지만, ‘실드’에 가로막혀 더는 접근하지 못했다.
‘5분.’
‘실드’의 지속 시간은 5분이다.
그 안에 저 안에 있는 요구조자를 데리고 나와야만 했다.
‘가능할까?’
평소라면, 아니, 30분 전만 했어도 고민할 가치도 없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할 문제였다.
여기까지도 힘들어 박상태에게 업혀오지 않았던가?
그런 몸으로 의식이 없는 요구조자를 5분 내로 구조한다?
아무리 생각을 해도 불가능할 것 같았다.
‘그렇다고 안 들어갈 순 없잖아.’
눈앞에 생명이 경각에 달한 요구조자가 구조를 기다리고 있다.
아무리 위험하고 힘들다고 해도 그것을 외면할 순 없었다.
‘그래, 난 소방관이니까.’
몇 번이고 되뇌었던 말.
수혁은 억지로 자신을 세뇌시키며 힘겹게 걸음을 내디뎠다.
‘저긴가?’
수혁의 눈에 굳게 닫혀있는 문 하나가 들어왔다.
수혁은 ‘생명 감지Ⅱ’를 사용해 다시 한 번 요구조자의 위치를 확인했다.
‘맞구나.’
생명 반응이 저 문 너머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수혁은 망설이지 않고 문을 향해 다가갔다.
‘지독하다.’
화염으로 둘러싸인 장막 안쪽의 상황은 심각했다.
가스가 폭발하고, 근처에 인화성 물질이라도 있었는지, 공간 자체가 끓어오르고 있었다.
수혁이라 할지라도 ‘실드’가 없인 이런 곳에서 오래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용케 아직 생존해 있구나.’
요구조자가 아직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문에 도착한 수혁이 문고리를 잡았다.
백 드래프트 현상을 걱정하진 않았다.
‘실드’를 두르고 있었기에 백 드래프트가 아니라, 시장 전체가 폭발해도 살아남을 자신이 있었으니까.
철컥-
문을 잠그지는 않았는지 손쉽게 문이 열렸다.
안쪽은 어두컴컴했다.
랜턴의 불을 비춰 내부를 확인했다.
“음…….”
다행히도 이 안까지 화재가 번지지는 않았다.
불이 옮겨붙을 만한 곳이라곤 문 쪽밖에 없었는데, 운이 좋았는지 그곳까진 아직 화재가 번지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안심할 일은 아니었다.
수혁은 느끼지 못하고 있었지만, 내부는 불가마 사우나 이상의 온도를 자랑하는 중이었다.
한쪽 구석에 웅크린 채로 기절한 상태의 요구조자가 보였다.
“요구조자 발견, 요구조자 발견. 삼십대 남성. 의식 없음.”
한눈에 봐도 심상찮은 상태였다.
요구조자는 고온을 견디기 힘들었는지, 속옷을 제외한 옷을 모조리 벗은 채였다.
겉으로 드러난 피부는 화상으로 인한 물집으로 뒤덮여 있었다.
수혁은 재빨리 요구조자에게 다가가 호흡과 맥박을 체크했다.
둘 모두 미약하기 짝이 없었다.
당장에라도 끊겨 버릴 정도로 말이다.
‘당장 여기서 나가야 돼.’
정말 심각한 상태였다.
수혁은 요구조자에게 마스크를 씌우고는 방화복 상의를 벗었다.
‘시간이 없어!’
지친 와중에도 수혁은 순식간에 방화복을 벗은 뒤 그것으로 요구조자를 감쌌다.
‘응?’
그러다 문득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요구조자는 방화복에 화상입은 피부가 쓸리며 엄청난 고통이 느껴졌을 것이다.
그러면 무의식중에서라도 육체가 반응해야 할 텐데, 요구조자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코마!’
자극에 전혀 반응하지 않는 것으로 봐선, 요구조자의 의식 수준은 코마(Coma).
‘저산소증? 신경 손상?’
수혁은 의사가 아니었는지라 정확한 진단을 내릴 순 없었지만, 요구조자가 심각한 상태라는 건 알 수가 있었다.
그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말이다.
수혁은 다급한 표정으로 요구조자를 안아 들었다.
‘으으윽!’
팔이 정말 사시나무 떨듯 떨려왔다.
고작 한 명.
요구조자 한 명을 안아 들었음에도 팔이 끊어질 것 같았다.
사람 한 명 안고 이동하는 것은 레벨과 스킬이 없던 이전 생에서도 가능한 일이었는데…….
지금은 그냥 팔에 안긴 요구조자를 내려놓고 싶다는 충동이 강하게 들 정도였다.
‘조금만 더 버텨라.’
수혁은 자신의 육체와 요구조자, 둘 모두에게 간절하게 빌었다.
단 몇 분만이면 충분하다.
제발 그때까지만 버텨달라고 빌었다.
수혁이 밖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시간이 얼마나 남았지?’
1분? 2분?
잘 모르겠다.
확실한 건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는 것.
‘실드’의 지속 시간이 끝나기 전에 이 지옥 같은 곳을 벗어나야만 했다.
‘실드를 곧바로 다시 쓸 수 있으면 좋았을 텐데…….’
이전 현장들에서 수혁은 자신이 가진 스킬을 가지고 몇 가지 실험을 해보았다.
그중에는 당연히 ‘실드’를 실험한 적도 있었고.
하루에 몇 번이나 사용이 가능한지.
그리고 연속으로 사용할 수 있는지.
결과적으로 수혁이 알아낸 것은 ‘실드’의 사용은 쿨타임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5분 남짓이나 되었다.
여기서 5분이면 수혁과 요구조자 모두에게 치명적이었다.
‘그전에 나가야 해.’
수혁은 이를 악다물었다.
얼마나 세게 물었는지, 어금니가 뭉개지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입 안쪽에서 출혈이 일어났는지, 비릿한 맛이 느껴졌다.
‘이거 또 혼나겠다.’
박상태에게는 물론이고, 최은송에게도 혼쭐이 날 것이다.
그뿐인가?
오늘 보여준 스킬에 대한 변명거리도 생각해야만 했다.
박상태가 여기저기 이야기를 하고 다니지 않을 것이란 믿음은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물쩍 넘어갈 사람도 아니었다.
그가 납득할 만한 뭔가를 미리 생각해 두어야만 했다.
수혁은 계속해서 생각했다.
의도적으로 점점 한계를 벗어난 육체의 상태를 잊기 위해서였다.
그것이 약간은 효과가 있었는지, 수혁은 생각보다 빠르게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기부턴 조심해야 돼.’
수혁이야 문제없다지만, 요구조자는 ‘실드’의 영향권 밖에 있으면 불에 직접적으로 맞닿는다.
그러니 요구조자를 최대한 자신의 몸에 밀착시키는 수밖에 없었다.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코마 상태에 빠진 요구조자는 약간의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기에, 수혁이 의도한 대로 몸을 완전히 밀착시켜 안을 수가 있었다.
만약 조금이라도 정신이 있었다면 이런 식으로 안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가자.’
미흡한 점은 있었다.
‘실드’의 크기에 한계가 있었기에, 요구조자의 육체가 전부 보호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약간의 피해는 감수하고서라도 이곳을 빠져나가야만 했다.
수혁은 벗어둔 방화복으로 노출된 요구조자의 육체를 최대한 감싸 안으며 불길 속으로 걸어갔다.
들어갈 때와 마찬가지로, 불길은 ‘실드’에 가로막혀 감히 수혁에게 범접하지 못했다.
요구조자 역시 최대한 수혁과 붙어 있었기에, 크게 문제될 만한 영향은 받지 않았다.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거의 다 왔어.’
조금만 더 가면 박상태의 모습이 보일 것이다.
수혁은 자신이 짊어지고 있는 이 무거운 짐을, 1초라도 빨리 박상태에게 넘겨주고 싶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몇 발자국을 더 걷자, 마침내 박상태의 모습이 불길 너머로 흐릿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됐다!’
수혁의 입술이 작게 호선을 그렸다.
정말로 52명이나 되는 요구조자를 모두 구조해 낸 것이다.
퀘스트조차도 불가능할 것이라 예상했던 것을 말이다.
수혁이 웃으며 박상태를 부르려던 바로 그때였다.
키이잉-!
시야가 붉게 변했다.
불길 한가운데에서 ‘실드’로 보호받고 있는 수혁에게 ‘위험 감지Ⅱ’가 발동할 만한 이유는 없었다.
단 한 가지 경우를 제외하고.
‘끝났다.’
5분이 됐다.
‘실드’는 마치 처음부터 존재한 적이 없었다는 것처럼,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투명한 막에 가로막혀 있던 불길이 수혁을 향해 쇄도하기 시작했다.
화르르르륵-!
새빨간 화염이 당장에라도 수혁을 불태울 것처럼 사방에서 다가왔다.
수혁은 그 모든 것을 보고, 느꼈다.
순식간에 주변의 온도가 느껴지기 시작했고, 귀에서는 찢어질 듯한 경고음이 수혁을 괴롭혔다.
‘늦었어.’
수혁은 자신이 이 불길을 피하지 못하리란 것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그러기엔 시간도, 체력도 너무나 부족했다.
‘하지만…….’
요구조자는 구해야 한다.
품에 안고 있는 요구조자만은 어떻게 해서든지 이곳에서 벗어나게 해주어야만 했다.
수혁의 팔에 힘이 들어갔다.
수혁조차도 아직 이런 힘이 남아 있었나? 싶을 정도로 강한 힘이었다.
‘이 정도면 충분해.’
수혁이 그대로 요구조자를 던졌다.
위험한 행동이었다.
요구조자는 지금 숨만 간신히 붙어 있는 상태였으니, 큰 충격을 받으면 그대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과 같이 있을 순 없었다.
차라리 던지는 쪽에 살아날 확률이 훨씬 높았으니까.
수혁은 박상태를 향해 날아가는 요구조자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자리에 쓰러졌다.
더는 서 있을 힘조차 남아 있질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불길이 수혁을 덮쳤다.
“김수혀어어억!”
왠지 박상태의 음성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요구조자나 잘 받아요.’
수혁은 온몸을 태워 버릴 것만 같은 고통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퀘스트 완료!]
* * *
박상태는 갑자기 날아오는 사람을 자신도 모르게 기겁하며 받아냈다.
‘요구조자?’
속옷만 입은 채, 겉에는 방화복이 걸쳐져 있었다.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요구조자를 안은 채 어리둥절한 눈으로 수혁이 있는 곳을 쳐다봤다.
그리고 확인할 수가 있었다.
불길 속에서 그대로 쓰러져 버리는 수혁을 말이다.
처음에는 자신이 잘못 본 줄 알았다.
그다음에는 수혁이 장난치는 것인 줄 알았고.
둘 모두 말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지만, 박상태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다 수혁이 불길에 휩싸이는 것을 보고는 깨달았다.
지금 수혁이 위험한 상태라는 것을 말이다.
“김수혀어어억!”
안고 있던 요구조자를 급히 땅에 내려놓고는 수혁을 향해 달려갔다.
엄청난 열기에 숨이 턱턱- 막히고, 온몸이 타오르는 것 같았지만, 멈추지 않았다.
자신이 이러할진대 저 안에 있는 수혁은 어떻겠는가?
박상태는 눈에 보이는 것이 없는 사람처럼, 무작정 불길 속으로 뛰어들어 갔다.
‘이, 이 미친 새끼!’
요구조자가 걸치고 있던 방화복의 정체가 수혁의 것이었다는 것을 확인한 박상태가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수혁의 상의는 이미 불살라 사라졌고, 그 안에 보이는 피부는 화상이 심각했다.
박상태는 지체하지 않고 수혁의 팔을 잡고 그대로 밖으로 뛰쳐나왔다.
안고 나올 시간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박상태는 불길 밖으로 나와 요구조자가 있는 곳까지 도착한 뒤, 수혁의 상태를 살폈다.
수혁은 정신을 잃었는지, 눈을 감고 있었다.
방화복을 벗은 상체는 눈을 뜨고 봐줄 수가 없을 정도로 심한 화상을 입었고, 뜨거운 열기에 폐까지 손상됐는지 호흡도 불안정했다.
박상태는 그것을 확인하곤 곧장 무전기를 들었다.
“대원이 부상당했다! 대원이 부상당했다!”
박상태가 절규하듯 소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