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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155화 (155/425)

레스큐 시스템 155화

소방관이 쓰러졌다.

그것도 제 일선에서 쉬지 않고 구조해 냈던 소방관.

가장 먼저 들어가 단 한 번도 밖으로 나오지 않고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움직였던 소방관이 쓰러졌다.

그 소식을 들은 사람들의 움직임이 다급해졌다.

그 혼자 발견하고 구조한 요구조자의 수가 20명이 넘는다.

지금까지 구조된 요구조자의 절반에 가까운 수를 혼자서 찾아낸 것이다.

그런 대원이 부상을 입었다니, 마음이 조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바로 이송 준비하고! 진압대는 어떻게 해서든지 길 뚫어!”

무려 다섯 개의 소방서에서 수혁을 무사히 밖으로 데리고 나올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했다.

만약 충분한 공간만 있었다면 헬기를 불렀을지도 몰랐다.

“상황은 어때?”

“그리 좋지 못하답니다. 맨몸으로 불 속에 뒤덮였다고…….”

“맨몸? 아니, 방화복은 어쩌고!”

“그게…….”

보고하던 대원 역시 자세한 사정은 알지 못했는지라 대답하지 못했다.

그때였다.

“불길을 뚫느라 벗어서 요구조자한테 입혔답니다.”

옆에서 진입 준비를 하고 있던 박정우가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는 대신 대답해 주었다.

“뭐요?”

박정우의 말을 들은 이들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기 방화복을 벗어서 요구조자한테 입혔다고?”

“네, 그렇다네요, 그 미친 새끼가.”

박정우는 울먹이는 음성으로 수혁을 향해 욕을 했다.

“세상에 소방관이 지 혼자만 있는 것도 아니고, 대체 그 새끼는 왜 그럴까요?”

수혁이 죽을 뻔한 위기를 넘긴 것이 벌써 몇 번째인가?

자신이 소방관 생활을 하며 입원 한 번 할 동안, 수혁은 몇 번이나 병원 신세를 졌다.

박정우는 그것이 너무 싫었다.

이러다 수혁이 정말로 잘못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불쑥불쑥 찾아올 정도였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수혁은 걱정 말라는 듯 홀로 뛰쳐나가 따로 행동했다.

다른 대원들은 그것에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지만, 모두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수혁에 대한 걱정.

수혁이 이해하지 못할 힘과 능력을 지닌 뛰어난 소방관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사람이다.

이런 현장에서는 한 걸음만 잘못 움직여도 잘못될 수도 있었으니, 걱정이 되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리고 그 걱정과 불안이 결국 현실이 되고 말았다.

“X발. 위험하면 자기 몸부터 챙길 것이지…….”

결국 눈물 한 방울을 흘린 박정우가 신경질적으로 눈가를 닦으며 준비를 끝마쳤다.

그러곤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는 둘에게 꾸벅 인사하곤, 구조 3팀으로 돌아갔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던 이들 역시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박정우가 불평하듯이 말한 수혁의 이야기는 둘에겐 영웅의 이야기처럼 들렸다.

그런 소방관을 잃을 순 없었다.

“준비 끝났습니다.”

“돌입한다.”

김강식이 앞장섰다.

요구조자를 구하고, 잠시 밖으로 나와 몸을 식히고 있던 김강식은 수혁의 소식을 듣자마자 시장 안으로 뛰쳐 들어가려고 했다.

만약 다른 대원들이 말리지 않았더라면, 혼자서라도 그 안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김강식을 선두로 구조 3팀이 시장 안으로 진입했다.

펌프차 세 대와 화재 진압대 열다섯 명이 길을 열기 위해 동시에 방수를 시작했다.

“길 뚫고! 주변 막아!”

불길은 여전히 거셌다.

조금만 방심하면 주춤했던 불길이 대원들을 향해 다시 이빨을 들이댔다.

화재 진압대는 구조 3팀이 빠르게 이동할 수 있도록 엄호 방수를 하며 뒤를 따랐다.

그렇게 얼마를 들어갔을까?

“저희는 여기까지입니다!”

화재 진압팀장이 고개를 저으며 소리쳤다.

호스의 길이가 한계에 다다랐던 것이다.

“수고하셨습니다. 여기서부턴 저희끼리 가겠습니다.”

“더 도움이 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화재 진압팀장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사과했다.

하지만 김강식은 그의 사과를 받아줄 여유가 없었다.

그가 사과할 이유도 없었고.

“그럼 저희는 이곳에서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화재 진압팀장은 멀어지는 구조 3팀을 향해 소리쳤고, 김강식은 한쪽 팔을 드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후욱- 후욱-!”

몇 번이나 들어왔던 곳이었지만, 여전히 괴로웠다.

뜨거운 공기와 화염이 구조 3팀을 괴롭혔다.

거기다 지칠 대로 지쳐 버린 체력에 전력으로 달리다 보니, 호흡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길 역시 평탄하지 않았다.

아니, 처음 들어왔을 때보다도 엉망이었다.

천장이 무너져 내리고, 잔해들이 쌓이며 길을 막는 경우가 생기고 있었던 것이다.

“도끼!”

김강식의 외침에 박정우와 이재한이 앞으로 나서며 도끼를 휘둘렀다.

콰가각-!

길을 막고 있던 잔해들이 둘의 도끼질에 산산이 부서지며 흩어졌다.

“위에 조심!”

강효상은 그들의 뒤를 따르며 주변을 살폈다.

만약 위험한 징후가 보이면, 지체하지 않고 소리를 질러 그것을 알렸다.

강효상의 외침에 대원들이 뒤로 몸을 피했다.

콰앙-!

천장에 매달려 있던 커다란 간판 하나가 옆으로 떨어지며 굉음을 냈다.

“계속 길 뚫어!”

하지만 놀라고 있을 겨를이 없었다.

구조 3팀의 대원들은 다시 길을 열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왼쪽!”

김강식이 왼손을 뻗으며 방향을 지시했다.

대원들은 재빨리 방향을 꺾으며 김강식이 가리킨 골목으로 들어갔다.

불길이 더 심해지고, 움직이기 훨씬 어려워졌다.

그럼에도 김강식이 이 길을 택한 것은, 여기가 가장 빠르기 때문이었다.

대원들은 힘겹게, 힘겹게 골목을 빠져나와 다시 달렸다.

그렇게 불과 싸우며 얼마나 이동했을까?

박상태가 무전으로 가르쳐 준 지점이 가까워졌다.

“팀장님!”

저 멀리서 박상태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김강식이 소리쳐 부르자, 박상태가 고개를 돌려 이쪽을 쳐다보았다.

‘수혁이랑 요구조자인가?’

박상태는 바닥에 쓰러져 있는 두 명의 사람을 보살피고 있었다.

‘의식은 없는 것 같고…….’

두 사람의 상태는 정확히 듣지 못했다.

그저 그리 좋지 않다는 것과 시간이 없다는 이야기만 들었을 뿐이다.

“어, 어떻습니까?”

수혁과 박상태가 있는 곳에 도착한 김강식이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물었다.

“안 좋아.”

김강식이 쓰러져 있는 수혁을 확인했다.

상체가 모두 화상을 입은 상황이었다.

머리카락도 모조리 불에 타버렸고.

하지만 가장 심각한 건 호흡음이었다.

성대와 폐에 문제가 생겼는지, 쌕- 쌕- 거리고 있었다.

“이건…….”

김강식이 뒷말을 잇지 못했다.

이 정도 부상이라면 치료를 해도 예전과 같은 생활은 하지 못할 것이다.

폐 손상으로 인해 일상생활에도 지장이 있을 게 뻔했고, 화상 입은 얼굴과 상반신 때문에 흉측한 외모를 갖게 될지도 몰랐다.

“그만.”

박상태는 김강식의 말을 막았다.

그러곤 질책하듯 말했다.

“요구조자의 상태가 더 위험하다. 이쪽부터 신경 써.”

박상태의 말에 김강식이 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반박하진 못했다.

그들은 소방관이다.

아무리 동료인 수혁이 안타깝고, 걱정된다고는 하지만, 지금은 요구조자가 우선이었다.

“알겠습니다.”

요구조자는 수혁보다 더 심각했다.

수혁은 그래도 지금 당장 죽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요구조자는 그야말로 생사가 경각에 달려 있었던 것이다.

박상태와 김강식은 자꾸만 수혁에게로 돌아가려는 시선을 억지로 붙잡고, 요구조자를 먼저 챙겼다.

“김강식, 이재한, 너희가 요구조자를 맡는다. 나랑 강효상이 수혁을 맡고, 정우 너는 선두에 서.”

“알겠습니다.”

박상태의 명령을 들은 대원들이 들것들을 준비했다.

업고 달리는 것이 가장 빠르긴 했지만, 대원들의 체력 문제도 있었고, 요구조자의 상태가 심각하기도 했기 때문에 미리 준비한 것이었다.

“올려.”

김강식과 이재한이 요구조자를 조심스럽게 들것 위로 올렸다.

“시간 없으니까 먼저 출발해. 낙하물 조심하고.”

“알겠습니다.”

김강식은 안타까운 눈으로 수혁을 한 번 쳐다보고는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제 수혁이도 올려.”

박상태는 강효상과 함께 수혁을 들것에 실었다.

그러곤 양옆에서 들것을 들어 올렸다.

“빠져나간다.”

박상태가 앞에 서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구조 3팀이 이곳까지 들어오며 주변 정리를 해놓은 덕분에 밖으로 향하는 길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주변에 위험 요소가 있는지 살피며 빠르게 나아가던 박상태가 문득 강효상을 향해 물었다.

“혹시 제수씨한테 연락했냐?”

“……잘 모르겠습니다. 저희도 정신이 없어서. 한 사람은 없을 것 같습니다만.”

그 말을 들은 박상태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최은송에게 연락해서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이런 내용의 연락을 몇 번이나 한 적 있었지만, 그때마다 최은송에게 너무 미안했다.

괜히 자신 때문에 수혁이 다친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번에는…….’

박상태는 의사가 아니었기 때문에, 수혁이 얼마나 심각한 상태인지는 알지 못했다.

생명이 위험한 것인지, 아니면 치료하면 살 수 있는지.

박상태로선 알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살아난다고 해도, 앞으로 수혁의 인생은 많이 달라질 것이 확실했다.

‘어쩌면 제수씨도 떠날지 모른다.’

단순한 부상이 아니다.

화상으로 인해 외모가 망가져 버렸다.

화상의 흉터를 이겨내고 떳떳하게 대중 앞에 나서는 이들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둠 속에 숨어버린다.

심하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수혁은 앞으로 그런 삶을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최은송 역시 그런 수혁의 곁에 남는다는 결정하기가 쉽지 않을 테고.

박상태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아니,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저 앞에 마중 나온 화재 진압대와 구급대원들이 보였지만, 평소 구조에 성공했을 때처럼 기쁘거나 희열이 느껴지질 않았다.

수혁이 실려 있는 들것이 너무도 무거웠다.

당장에라도 내려놓고 싶을 만큼…….

* * *

‘아파.’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오랜 시간 동안 잠에 들었다 깨어난 것처럼 정신은 몽롱했고, 몸은 잘 움직여지지 않았다.

하지만 몸이 아프다는 것만은 생생하게 느껴졌다.

‘눈을…….’

수혁은 앞을 보기 위해 눈꺼풀에 힘을 줬다.

하지만 여전히 앞은 어두웠다.

두려움이 왈칵- 치솟아 올랐다.

‘누, 누구 없습니까!’

소리를 질러보려 했지만 소리는 목 안을 맴돌 뿐, 밖으로 나오질 않았다.

그저 끔찍한 통증만이 계속해서 괴롭혀댔다.

‘상태 형! 은송 씨! 강식 선배!’

몇 번이고 시도해도 마찬가지였다.

수혁은 고통에 몸부림치다 퍼뜩- 기억을 떠올렸다.

‘아…….’

정신을 잃기 전의 마지막 기억.

요구조자를 박상태에게 던지고 난 뒤, 불 속에 갇혀 쓰러지던 장면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살았구나.’

수혁은 자신이 살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지금 느껴지는 통증이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도 깨달았다.

‘화상.’

그냥 쓰라리고 따끔한 정도의 통증이 아니다.

생살을 찢고, 칼로 긁어내는 것만 같았다.

그런 통증이 온몸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폐도 상했고.’

숨을 쉬는 것이 힘겨웠다.

천천히 자신의 몸 상태를 확인한 수혁은 절망했다.

‘차라리 죽을걸.’

이런 상태라면 죽는 것이 나았다.

최은송과 다른 동료들이 슬퍼하겠지만, 곁에서 힘들어하는 것보단 나았으니까.

자신과 같은 꼴을 당한 선배들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생각해 보면, 죽음보다 못한 삶이 어떤 것인지 여실히 알 수가 있었다.

“김수혁 씨, 정신이 드십니까?”

그때 누군가의 음성이 들려왔다.

수혁은 대답하지 못했지만, 그는 수혁의 의식이 돌아온 것을 알고 있는 듯했다.

“여긴 병원입니다. 지금은 통증이 너무 심하실 테니, 조금 더 재워 드리겠습니다.”

‘아니, 잠깐…….’

수혁은 잠을 자고 싶지가 않았다.

몸이 뜯겨져 나가는 것처럼 아프긴 했지만, 그래도 다시 정신을 잃고 싶진 않았다.

다시 깨어났을 때, 곁에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을까 봐 두려웠다.

하지만 수혁의 정신은 빠르게 아득해져 갔다.

그리고 수혁이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3일이란 시간이 흐른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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