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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163화 (163/425)

레스큐 시스템 163화

“도통 답답해서 살 수가 없군!”

흉부외과 과장이 분통을 터트렸다.

“하루이틀도 아니고. 벌써 6개월이야, 6개월! 그동안 환자를 단 한 번도 못 봤다는 게 말이 되나!”

“그뿐만이 아니죠.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사람들을 의사랍시고 데려와서는…….”

“대체 이럴 거면 왜 이 병원으로 온 거랍니까?”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환자를 보지도 못하게 하고, 다른 의사들에게 치료를 맡길 것이라면 처음부터 그 병원으로 갔으면 됐을 일 아닌가?

왜 이런 번거롭고 불편하게 일을 처리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혹시 이미 사망한 건 아닐까요?”

과장들의 대화에 눈치를 보고 있던 전문의 한 명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뭐?”

“아니, 그렇지 않습니까? 김수혁 환자는 수술도 받았어야 하는 상태였는데, 지금까지 그 병실에서 나온 적이 없었습니다. 수술은커녕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했다는 거죠. 그런 상황에서 지금까지 생존해 있을 확률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전문의는 말을 하며 조금씩 자신감을 찾는 듯했지만, 과장들의 싸늘한 표정을 보곤 어깨를 움츠렸다.

“이 새끼가 지금 우리 얼굴에 먹칠하려고 작정했나. 다신 그딴 개소리 입 밖으로 꺼내지도 마, 알겠어?”

“죄, 죄송합니다.”

자신들이 맡은 환자가,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하고 죽었다?

그것이 아무리 위쪽에서 내린 결정에 따른 것이라지만, 그 책임과 비난을 피할 순 없었다.

그런 일은 일어나서도, 생각도 해서도 안 됐다.

“오늘도 할 말 없나?”

전문의를 노려보던 흉부외과 과장이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그곳에는 임현수가 의자에 앉아 커피를 홀짝이며 차트를 보고 있었다.

“……저 말입니까?”

갑작스런 물음에 고개를 들며 물었다.

“그래, 너. 오늘도 할 말 없냐고.”

“딱히 드릴 말씀은 없습니다만…….”

임현수의 담담한 태도에 흉부외과 과장이 입술을 깨물었다.

벌써 6개월이다.

임현수는 6개월간 지금과 똑같은 태도를 고수해 왔다.

“드릴 말씀이 없다.”

“밝힐 수 없다.”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다.”

평소 친분이 두텁던 임현수였기에, 술을 진탕 먹인 뒤 말을 들어보려 했음에도 들려오는 대답은 항상 같았다.

“대체 뭐 하자는 거야, 임현수 과장!”

이번엔 윽박을 질러보았다.

“과장님, 그렇게 화를 내셔도 저는 대답해 드릴 수가 없습니다.”

지난 6개월 동안 화를 내본 적이 없었을까?

임현수의 멱살을 잡기도 했었다.

앞으론 이 병원에서 의사 생활 못 할 것이라며 협박도 했었고.

그래도 소용없었다.

“후우…….”

흉부외과 과장은 임현수를 노려보다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까지 보여준 태도를 보면, 임현수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이야기를 해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나만 묻자.”

“대답할 수 없습니다.”

임현수는 질문 자체를 거부했다.

하지만 흉부외과 과장은 멈추지 않았다.

“김수혁 환자, 무사하냐? 그것만 가르쳐 줘라.”

생각했던 질문이 아니었는지, 임현수가 잠시 멈칫했다.

그러곤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김수혁 환자의 상태는 좋습니다. 여기까진 말씀드려도 될 것 같군요.”

“……그래, 무사하면 됐다.”

흉부외과 과장은 그것으로 임현수와의 대화를 끝마쳤다.

‘단단히 찍혔나 본데.’

임현수는 화를 다스리며 회의를 진행하는 흉부외과 과장과 다른 과장들을 보며 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처음 짐 머레이의 제안을 받았을 때, 그 역시 반발했다.

임현수는 이 대학 병원의 의사였고, 짐 머레이가 한 제안은 다른 의사들을 적으로 만드는 행위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짐 머레이가 약속한 보상은 그것을 감수할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결국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임현수는 짐 머레이의 말을 따르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지금 상황.

‘다른 사람들한테 미안하긴 하지만…….’

임현수는 그 제안을 받아들이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당시에는 대체 왜 다른 의사들에게 수혁의 상태를 말하지 말라는지 알 수가 없었지만, 지금은 충분히 납득했다.

‘만약 다른 의사들이 김수혁 환자의 상태를 보면, 아마 난리가 났겠지.’

임현수는 수혁을 떠올리며 헛웃음을 지었다.

대체 누가 믿을 수 있을까?

죽음 직전까지 갔던 환자.

치료해도 일상 생활이 거의 불가능하며, 외모 역시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을 게 분명했을 정도의 부상.

그랬던 사람이 지금은…….

‘말해도 못 믿겠지. 나라도 못 믿었을 거야. 아니, 지금도 솔직히 꿈인가 싶을 정도니까.’

임현수는 별다른 일을 하지 않았다.

매일 수혁의 상태를 체크하고, 항생제를 비롯해 필요한 약들을 처방하는 것 외에는 딱히 할 일도 없었다.

수혁은 그가 뭔가를 하지 않아도 알아서 잘 회복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상한 건 그 의사들인데…….’

짐 머레이가 직접 미국에서 불러왔을 정도의 의사라면, 뭔가 있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들 역시도 임현수와 마찬가지의 신세였다.

뭔가 검사를 하고 있는 것 같긴 했지만, 그리 의미가 있어 보이진 않았고, 그저 수혁을 보며 연신 감탄만 할 뿐이었다.

‘뭐가 뭔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자신은 큰 기회를 잡았고, 그것을 위해서 그 누구에게도 수혁에 대한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임현수는 회의하는 둥, 마는 둥 하며 잠시 뒤에 수혁을 보러 가는 것을 기대했다.

오늘은 얼마나 회복되어 있을지 궁금함을 가득 지닌 채로.

* * *

“오셨네요.”

수혁이 웃으며 임현수를 맞이했다.

“오늘은 좀 어떠십니까?”

“보시다시피 점점 더 좋아지네요.”

놀랍게도 수혁은 말을 하고 있었다.

쇳소리 같은 거친 음성도 아니었다.

본래의 음성.

그 말은 곧 수혁의 기도와 성대가 정상이 되었다는 뜻이었다.

“한 번 봐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죠.”

임현수는 수혁에게로 다가가 환자복을 들어 올리고는 상체를 살폈다.

‘이건 볼 때마다 놀라워.’

수혁의 육체는 거의 회복 되어 있었다.

아직은 화상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긴 했지만, 이 정도의 회복력을 보인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말끔해질 것이 분명했다.

‘괴사된 조직도 모두 복구가 될 정도이니 이 정도쯤이야.’

절대 불가능한 괴사 세포가 다시 살아났을 정도의 회복력이었으니, 화상으로 일그러진 피부 정도쯤은 문제도 아닐 것이다.

“어제보다도 좋아졌네요.”

“덕분에요.”

수혁의 말에 임현수가 쓴웃음을 지었다.

“다행이네요. 숨 쉬는 건 좀 괜찮으십니까?”

“아직은 조금 불편하긴 한데, 이것도 많이 좋아졌어요.”

자가 호흡이 불가능했던 폐가, 이제는 거의 정상적인 기능을 하고 있었다.

“좋습니다.”

청진기로 수혁의 호흡을 들어본 임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라면 진짜로 당장 퇴원해서 일상 생활을 해도 될 정도였다.

‘그래도 소방관을 하기엔 좀 무리이려나?’

평범한 생활과 소방관의 생활은 아주 달랐으니 말이다.

“그러고 보니 보호자 분이 안 계시네요?”

수혁이 처음 입원을 하고, 6개월 동안 단 한 번도 자리를 비운 적이 없던 최은송이 보이질 않자 임현수가 고개를 갸웃했다.

“아, 오랜만에 직접 요리해 주고 싶다고 해서……. 잠시 집에 돌아갔네요.”

“요리사라고 했었죠?”

“네.”

수혁이 웃으며 대답했다.

최은송은 6개월간 휴직했다.

평범한 직장인이라면 절대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하지만 최은송은 어머니가 직접 운영하는 레스토랑에서 일하고 있었으니, 그것이 가능했다.

다행히 동료들도 그런 최은송을 이해해 주고 주방은 걱정 말라며 응원해 주었고.

덕분에 최은송은 일 걱정 없이 수혁을 간호할 수가 있었다.

수혁은 그것이 너무도 미안했고, 또 고마웠다.

“그것참 부럽네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희 마누라는 요리 실력이 영 아니거든요.”

임현수는 듣는 사람도 없는데, 괜히 속삭였다.

“그럼 같이 드실래요?”

수혁이 하하- 웃으며 물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두 분의 오붓한 시간을 빼앗을 순 없죠.”

그랬다가 최은송에게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몰랐다.

의사들 사이에서 최은송은 유명했다.

병원장은 물론이고, 이사장까지 그녀의 말이라면 끔뻑 죽는 모습이 몇 번이고 목격되었기 때문이다.

임현수는 그렇지 않아도 고달픈 병원 생활 중에, 괜히 최은송에게까지 찍히고 싶지 않았다.

“괜찮은데…….”

수혁이 다시 한 번 권유해 봤지만, 임현수는 이번에도 역시 고개를 저었다.

“그럼 일단 오늘도 항생제를 좀 처방해 드리겠습니다.”

수혁의 몸이 거의 회복되긴 했지만, 아직 완벽한 것은 아니었다.

때문에 항생제를 처방할 필요가 있었다.

‘아니, 사실 항생제가 없어도 될 것 같긴 하지만…….’

죽은 세포도 살려내는데 항생제가 큰 도움이 될까 싶었다.

가만둬도 알아서 잘 회복될 것 같았던 것이다.

그래도 임현수는 항생제를 처방했다.

이런 일이라도 하지 않으면 환자를 너무 방치하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없는 것보단 낫겠지.’

임현수가 그런 생각을 하며 약을 처방하고 있는데, 병실 문이 열렸다.

“어머, 선생님 오셨네요.”

최은송이었다.

그녀는 양손에 뭔가를 가득 들고 있었다.

“오셨습니까?”

임현수는 얼른 가서 최은송이 들고 있는 것들을 받아 들며 인사를 건넸다.

“고맙습니다.”

꽤나 무거웠던 것인지, 최은송은 사양하지 않고 그에게 짐을 맡겼다.

“이걸 직접 다 들고 오신 겁니까?”

최은송이 갖고 온 것은 도시락 케이스였다.

그것도 5층짜리 도시락이 무려 네 개.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는 알 수가 없었지만, 냄새만 맡아도 왠지 맛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임현수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내가 오늘 아침을 먹었던가?’

생각해 보니 커피 한 잔밖에는 먹은 게 없었다.

괜히 배가 더욱 고파졌다.

“오랜만에 실력 발휘를 좀 했어요. 하다 보니까 이렇게 많이 해버렸네요.”

최은송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보호자 분을 볼 때마다 김수혁 환자가 너무 부럽습니다.”

화상을 입은 연인.

앞으로 일상 생활도 불가능할 테고, 외모도 흉측해질 그런 연인을 위해, 병실에서 먹고 자다시피 하며 병간호하는 여자친구라니.

지금이야 엄청나게 좋아져서 완치가 코앞이라고는 하지만, 그런 희생을 해주는 최은송을 볼 때마다 감탄이 나왔다.

임현수의 말에 최은송이 배시시- 웃으며 도시락을 열었다.

그 안에는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의 진수성찬이 담겨 있었다.

“……오늘이 추석입니까?”

누가 보면 명절 음식인 줄 알 정도였다.

갈비찜, 불고기, 잡채, 전 등등.

임현수의 집에서는 명절에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조금 드시고 가실래요?”

최은송이 물었다.

임현수는 자신도 모르게 그러겠다고 대답하려다, 순간 최은송의 눈을 확인하고는 멈칫했다.

‘눈이 안 웃는다.’

분명 입은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눈은 아니었다.

마치 ‘설마 정말로 먹고 갈 생각인 건 아니죠?’라고 묻는 것만 같았다.

“아, 하하하. 저도 그러고 싶은데 이제 진료를 봐야 할 시간이라…….”

임현수가 손을 내저으며 거절했다.

“아쉽네요. 다음에 또 해올 테니까 그땐 같이 먹어요.”

“그래 주시면 감사하죠.”

임현수는 당황한 표정으로 서둘러 인사하고는 병실을 빠져나갔다.

“저는 같이 먹어도 됐는데.”

수혁이 최은송에게 웃으며 말했다.

“오늘은 안 돼요. 이건 수혁 씨 먹으라고 해온 거니까. 선생님껜 죄송하지만, 다음에 해드리면 돼요.”

최은송이 도시락을 펼쳐 접시에 덜어 수혁에게 건넸다.

“잘 먹을게요.”

오랜만에 병원식이 아닌, 최은송의 요리를 먹게 되어 기뻤다.

‘다시는 못 먹을 줄 알았는데.’

요리는 맛있었지만, 그보다도 이것을 다시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더욱 좋았다.

“아, 그러고 보니. 상태 오빠한테 연락이 왔었는데…….”

“상태 형이요?”

수혁 역시 오랫동안 동료들을 보지 못해 궁금하던 차였다.

“뭐라고 해요?”

수혁이 묻자, 최은송이 잠시 기억을 더듬다가 대답했다.

“무슨 특구? 라는 게 만들어졌다고 하더라고요.”

수혁의 눈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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