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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165화 (165/425)

레스큐 시스템 165화

며칠이 흘렀다.

짐 머레이는 서울에 임시로 마련한 사무실에서, 자신이 부른 의사들의 보고를 들었다.

“모르겠습니다. 전혀 밝혀낼 수가 없더군요.”

그 말에 짐 머레이가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수혁은 자신의 비밀이 무엇인지 결국 털어놓지 않았다.

그저 ‘나는 비정상적인 회복이 가능하다’ 정도의 대답만 해주었을 뿐이었다.

짐 머레이 역시 수혁을 추궁해 가며 그것을 알아낼 생각이 없었기에 더는 묻지 않았다.

하지만 수혁의 상태를 세상에 알리려면 뭔가 그럴듯한 이유가 있어야만 했다.

그래서 짐 머레이가 선택한 것은 바로 수혁의 몸을 연구하는 것이었다.

인체실험 같은 끔찍한 것이 아닌, 수혁의 회복을 가능케 하는 원인이 무엇인지를 밝혀내는 것.

지난 시간 동안 짐 머레이가 데리고 온 의학자들이 그 비밀을 풀기 위해 수많은 검사를 진행했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지금 들은 것처럼 실패였다.

수혁의 몸은 일반인과 지극히 동일했다.

신체조건이 지나칠 정도로 좋다는 것만 제외하면, 특별한 기관이나 호르몬, DNA도 없었다.

“흐음. 그럼 결국 소설을 써야 한다는 건데…….”

짐 머레이는 실망한 표정을 지우며 생각에 잠겼다.

연구에 꽤 기대를 걸고 있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혹시 수혁에게서 뭔가를 찾게 된다면, 그게 사업적으로 연결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갖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실패의 가능성은 항상 열어두고 있었다.

그래서 짐 머레이는 다른 방법을 사용하기로 했다.

“좀 번거롭긴 하지만.”

일단은 수혁의 부상 정도가 원래 알려진 것보다 훨씬 양호했다고 알려야 했다.

반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입원해야 할 정도의 부상을 입긴 했지만, 충분히 치료가 가능한 상태.

그렇게 알리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이미 수혁의 모습을 본 사람들의 입막음을 하는 것이었다.

의사들과 간호사, 병원 관계자를 비롯한 구조 3팀까지.

“입단속을 시켜야 할 사람들의 수가 한두 명이 아니군. 돈을 좀 써야겠어.”

푼돈에 넘어가지 않을 사람들이 다수였으니, 지출을 꽤 해야 할 것 같았다.

물론 돈이 먹히지 않는다면 다른 방법을 사용할 용의도 있었다.

그리고 그 방법이 돈보다는 확실히 더 잘 먹힐 자신도 있었고.

“미스터 최에게도 부탁을 좀 해야 하려나.”

짐 머레이는 최문식을 떠올렸다.

최문식은 이 나라 권력의 중심에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말을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다.

자신의 돈과 최문식의 말이라면, 웬만한 이들의 입을 다물게 하기에는 충분할 것 같았다.

“설마 수혁의 여자친구가 미스터 최의 딸일 줄은 몰랐는데.”

어쩌면 사위가 될지도 모를 남자의 일이었으니, 발 벗고 도와줄 확률이 높았다.

특수 구조대 설립에 관여한 것처럼 말이다.

“이건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 봐야겠군.”

아직 수혁이 말한 8개월까지는 시간이 조금 남아 있었다.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빈틈없이 차근차근하다 보면 수혁이 완치되기 전까지 일을 수습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한참 동안이나 혼잣말을 하며 고민하던 짐 머레이가 퍼뜩 고개를 들었다.

앞에는 서로 눈치를 보며 이도저도 못하고 있는 의사들이 서 있었다.

“이런, 미안하네. 이제 나가봐도 좋아.”

“알겠습니다.”

의사들은 살았다는 표정으로 재빨리 사무실 밖으로 나가 버렸다.

“……아쉽긴 하군.”

만약 수혁에게서 뭔가를 발견했다면, 일이 쉽게 풀렸을 것이다.

그리고 그 후에 잡았을지도 모를 커다란 기회까지.

물론 짐 머레이가 수혁을 돈벌이로 이용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아무리 짐 머레이가 사업가로서 성공하기 위해 옳지 못한 일을 많이 행했다고는 하지만, 그 정도로 염치가 없는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그렇다 해도 아쉬운 것은 사실이었지만.

“좋아, 일단은 수혁에게 가서 이야기를 해줘야겠군.”

짐 머레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요즘 들어 수혁에게 너무 자주 찾아가는 느낌이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하루가 다르게 좋아지는 수혁을 보고 있으면, 자신도 왠지 기운이 나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차 준비시키게.”

문을 열고 나가며 비서에게 말을 하는 짐 머레이의 표정은, 왠지 임현수와 닮아 있었다.

* * *

“후욱- 후욱-!”

벌써 200회를 훨씬 넘겼다.

그럼에도 수혁은 멈추지 않았다.

얼굴에서 흐른 땀이 뚝뚝- 떨어지며 병실 바닥을 적셨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해요.”

최은송은 어느 정도 몸이 정상으로 돌아오자, 쉴 새 없이 운동만 하고 있는 수혁을 만류했다.

“이 정도는, 끄떡, 없어요.”

수혁은 팔굽혀펴기를 멈추지 않고 대답했다.

“오늘은 세 시간이나 했어요.”

수혁의 몸은 말 그대로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있었다.

이제 화상의 흔적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고, 다른 신체기능 역시 정상에 가깝게 회복이 되었다.

기적 같은 일이었다.

하지만 수혁은 그저 몸이 회복되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하루라도 빨리 예전처럼 돌아가야지.’

이대로라면 가만히 둬도 얼마 지나지 않아 본래의 모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긴 했다.

하지만 이렇게 운동하면 그 기간이 더욱 단축될 게 분명했다.

이 지루한 병실에 갇혀 가만히 있는 것이 질리기도 했고.

그 후로 한 시간이나 더 운동한 수혁이 몸을 일으켰다.

“후우…….”

약간 거칠어진 호흡을 가다듬은 수혁이 빙긋- 웃었다.

어느새 최은송이 물과 수건을 가지고 돌아온 것이다.

“고마워요.”

수혁은 수건을 받아 들었다.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고작 이 정도로 땀을 이리 많이 흘린 것을 보면 아직 먼 것 같았다.

“그렇게 심심해요?”

최은송이 땀을 닦은 후 물을 마시고 있는 수혁에게 물었다.

“조금 심심하긴 하네요. 은송 씨도 심심하죠?”

자신이야 그렇다 쳐도, 최은송은 얼마나 갑갑하고 지루하겠는가?

한창 활발하게 움직일 나이에, 수개월 동안 이렇게 좁은 병실에서 병수발을 들고 있으니…….

그것이 너무도 미안했다.

“전 이것도 그리 나쁘진 않은데요?”

하지만 최은송의 대답은 수혁의 예상과는 조금 달랐다.

“나쁘지 않다고요?”

“네, 가끔씩 좀이 쑤시긴 하는데, 그래도 옆에서 수혁 씨가 점점 좋아지는 모습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좋거든요.”

최은송이 배시시- 웃었다.

그녀의 말은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진심이었다.

평생 동안 몸이 망가진 수혁의 옆에서 보살필 각오를 했었는데, 이렇게 나아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정말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수혁은 자세하게 설명해 주지 않았지만, 상관없었다.

그저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녀는 만족했다.

최은송의 미소를 본 수혁은 괜히 민망해져 볼을 긁적였다.

그러면서 자신은 참 행운아라고 생각했다.

회귀하고 처음으로 만난 여자가 최은송이라는 것이.

‘승우 놈한테 밥이라도 사야겠다.’

최은송을 소개해 준 고승우에게 새삼 고마웠다.

“이제 한 달 남았네요, 이 병실에 있는 날도.”

“그러게요.”

얼마 전, 짐 머레이가 와서 앞으로의 계획을 설명해 주었다.

장황하게 늘어놓긴 했지만, 단순하게 말하자면 그냥 사람들을 속이자는 뜻이었다.

수혁 역시 그것 외에는 딱히 별다른 방법이 없었기에 수긍했고.

다만, 돈을 써서 사람들의 입을 막는다는 것에는 조금 부정적이었다.

그간 짐 머레이에게 받은 것이 너무도 많았다.

선물이라고 준 것들은 둘째치고, 자신의 상태를 노출시키지 않게 하기 위해 노력해 준 것과 특구 설립은 정말이지 평생 고마워해도 모자랄 정도였다.

그런 짐 머레이가 또다시 돈을 쓴다는 것이, 수혁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짐 머레이는 자신의 재산이 얼마나 되는지 아느냐며 껄껄- 웃었다.

그러곤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사람들의 입단속을 하는데 얼마가 들던, 자신에게는 별로 의미 있는 액수가 아니라면서 말이다.

결국 수혁은 짐 머레이의 생각에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부담스럽긴 했지만, 지금은 그것밖에 방법이 없었으니까.

그렇게 둘은 대화를 통해 퇴원 날까지 잡아두었다.

앞으로 한 달 후.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27일 후.

수혁은 최대한 조용히 퇴원 수속을 밟기로 했다.

“복귀는 어떻게 됐어요?”

“그것도 짐이 알아서 손을 써뒀다고 하더라고요.”

신일서에서는 이미 수혁을 은퇴자로 생각하고 있었다.

사실 수혁이 아닌, 다른 평범한 소방관이었다면 이미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수혁은 여전히 신일서 구조대원으로 남아 있었다.

짐 머레이가 행안부 장관과 이미 이야기를 끝내둔 것이다.

수혁은 퇴원하고 조금의 시간을 가진 뒤, 복귀하면 되었다.

“다행이네요.”

최은송이 웃으며 말했다.

사실 그녀는 수혁이 더는 소방관을 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벌써 이런 일을 몇 번이나 겪어왔다.

아무리 마음을 강하게 먹으려고 해도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최은송은 그런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그녀가 아는 수혁은 소방관이었다.

사람을 구하는데 그 누구보다도 열정적이고, 헌신적으로 일을 해온 사람.

그런 사람에게 힘을 주진 못할망정, 기운 빠지는 소리를 할 순 없었다.

‘더 강하게.’

최은송은 조금 더 마음을 단단하게 굳혔다.

이제 수혁이 웬만한 부상은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말 그대로 죽지만 않으면 된다, 죽지만 않으면.

그러면 지금처럼 수혁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자리를 훌훌- 털고 일어날 것이다.

‘그러니까 괜찮아, 기다릴 수 있어.’

푸켓에서 그랬던 것처럼.

신일역 붕괴사고 때 그랬던 것처럼.

최은송은 다시 한 번 다짐했다.

“그런데 생각대로 잘되려나 모르겠네요.”

짐 머레이의 생각은 간단하지만, 효과적이었다.

하지만 사람의 일이라는 것이 그렇게 생각처럼 흘러갈 때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 짐 머레이의 제안을 거절하고 입을 연다면?

그리고 그것이 세상에 퍼진다면?

수혁은 엄청난 관심의 집중을 받게 될 것이다.

특히나 전 세계에 수도 없이 많은 화상 환자들에게.

돈이라는 것은 큰 힘을 발휘하지만, 무조건적으로 믿을 수 있는 수단은 아니었다.

“걱정 마세요. 알아서 잘하실 거예요.”

반면 최은송은 그리 걱정하지 않았다.

수혁보다 짐 머레이와 같은 사람들을 만나본 경험이 훨씬 많은 그녀는, 그들이 절대 일을 허투루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수혁에게는 그저 돈을 주며 부탁한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했지만, 다른 방법도 병행할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것은 매우 효과가 클 테고.

그랬기에 최은송은 수혁의 이야기가 퍼질 것이란 생각을 하지 않았다.

“뭐, 그렇다면 다행이지만요.”

수혁은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운동 좀 더 할게요.”

“또요?”

수혁의 말에 최은송의 눈이 동그래졌다.

운동을 끝낸 지 얼마나 됐다고 또다시 시작한단 말인가?

“조금이라도 더 빨리 몸을 만들어둬야 해요.”

수혁이 회귀한 지 벌써 1년이 넘었다.

병실에 입원해 있던 시간이 7개월이 지났으니 말이다.

‘올해는 꽤 큰 사건이 많았지.’

작년에도 대형 재난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는 작년보다도 바쁠 것이다.

특수 구조대가 설립되어 조금은 나아지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도대체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죽지도 못하게 하는 걸 보면 분명 이유가 있을 거다.’

그때까지, 수혁은 한 명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 몸을 만들어놔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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