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181화
‘……이게 무슨 소리야?’
수혁이 옆을 돌아봤다.
김강식 역시 놀란 표정으로 수혁을 쳐다보고 있었다.
수혁은 무전기를 들어 물었다.
“무슨 일 있습니까?”
하지만 대답은 바로 돌아오지 않았다.
한참 동안이나 무전이 침묵을 지키고 있는 사이 사다리가 다시 올라왔다.
“상태 형! 들었어요?”
“그래, 아래에서도 지금 상황 파악 중이다.”
사다리 위에 올라타 있던 박상태도 무슨 일인지 몰라 어리둥절한 얼굴이었다.
“일단 타. 움직이는 건 상황 파악이 된 다음에 하고.”
“강식 선배, 타세요.”
수혁은 일단 김강식을 사다리에 태워 내보내기로 했다.
“넌?”
“저는 여기서 바로 움직일게요.”
“뭐? 안 돼!”
김강식이 말도 안 된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가려면 같이 가, 인마. 혼자 갔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선배 지쳤잖아요. 좀 쉬셔야 돼요.”
지친 김강식과 함께 움직이는 것보단, 혼자 움직이는 것이 훨씬 빨랐다.
박상태 역시 그런 수혁을 말리려 했다.
하지만 수혁이 먼저 그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
“시간 없으니까, 먼저 움직일게요. 혹시 소식 들어오는 거 있으면 바로 알려줘요.”
수혁은 그 말을 끝으로 바로 몸을 돌려 검사실 밖으로 뛰어나가 버렸다.
“야, 김수혁! 이 새끼야!”
뒤에서 박상태가 소리를 지르는 것이 들려왔지만, 수혁은 듣지 못한 척 속도를 더했다.
주변의 풍경이 빠르게 수혁을 스쳐 지나갔다.
김강식, 신재식과 함께 움직일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속도였다.
그렇게 빠르게 달리면서도, 주변의 장애물을 손쉽게 피하며 스킬까지 사용했다.
‘생명 감지Ⅲ.’
수혁의 시야에 주변에 있는 생명이 모조리 들어오기 시작했다.
일단 수혁은 병원 밖에 있는 사람들은 무시한 채, 내부에만 집중했다.
‘여섯 명!’
수혁의 바로 아래에서 여섯 명이 감지되었다.
특수 구조대가 틀림없었다.
‘층수는……. 4층.’
‘미니 맵’과 연동해서 본 특수 구조대는 현재 꽤나 위험한 상황에 직면한 것 같았다.
복도 한복판에서 뭔가에 가로막혀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중 세 명은 부상을 당한 것인지 생명 반응이 다른 대원들과 다르게 조금씩 약해지고 있었다.
‘급하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불길이 그들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어느 정도 진압하면서 이동하던 것 같았는데, 지금은 그럴 수 없는 상황인 듯했다.
수혁의 표정에서 여유가 사라졌다.
‘계단으로!’
수혁은 일단 계단 쪽을 향해 뛰었다.
분명히 불길로 뒤덮여 있을 것이 분명했지만, 지금으로선 다른 길을 찾을 시간 따윈 없었다.
‘미니 맵’을 통해 가장 가까운 계단을 찾은 수혁은 순식간에 그곳에 도착했다.
예상했던 것처럼 계단은 도저히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장소처럼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방화복을 입고 있다 한들 똑같았다.
하지만 수혁은 망설임 없이 계단 밑으로 몸을 날렸다.
물론 ‘실드’를 사용한 채 말이다.
수혁은 자신을 태우기 위해 달려드는 화염을 무시하며 빠르게 계단을 내려갔다.
타다다닥-!
6층, 5층, 4층.
특수 구조대가 고립되어 있는 4층까지 내려오는 데는 10초도 채 걸리지 않았다.
‘혼자 있으면 이렇게 편한 것을…….’
괜히 남의 눈치를 살피며 스킬을 사용하지 못할 이유도 없었으니까.
수혁은 괜히 답답함이 사라지고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을 느꼈지만, 지금은 그런 기분을 만끽할 때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기서 왼쪽.’
4층 역시 화재로 인해 엉망진창이었다.
게다가 화재로 인해 구조물들이 무너지기까지 한 상태였다.
하지만 수혁의 움직임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아직 ‘실드’의 지속 시간이 남아 있었기에, 그 어떤 것도 수혁에게 해를 입히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지간히도 막 지은 건물이네.’
수혁은 주변을 살펴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옥상이 붕괴됐을 때 알아봤어야 했다.
날림 공사도 이런 날림 공사가 따로 없었다.
화재로 인한 폭렬 현상이 일어나면, 건물이 무너질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화재가 일어난 지 고작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이다.
그런데도 벽과 천장이 무너져 내릴 정도면 문제가 심각했다.
‘이거 화재 진압이 더 늦어지면, 병원이 통째로 붕괴될 수도 있겠어.’
설마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은 했지만, 확신은 할 수가 없었다.
어찌 됐든, 수혁은 자신이 운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
‘다행인 건 이제 병원 안에 남은 사람이 없다는 건데…….’
4층에 고립되어 있는 특수 구조대와 1층에서 방수하고 있는 화재 진압대를 제외하면 요구조자가 더는 없었다.
‘빨리 구하고 여기서 나가야겠어.’
계속해서 전해지는 불길한 느낌에 수혁은 발걸음을 재촉했다.
“쯧.”
그리고 마침내 특수 구조대가 있는 위치에 도착한 수혁이 혀를 찼다.
길이 막혀 있었다.
조금 전 계단에서처럼 불로 인한 것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길이 막혀 있었다.
무너진 천장과 벽들, 그리고 온갖 잡동사니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던 것이다.
위쪽에는 사람 한 명 정도는 기어서 통과할 만한 공간이 있긴 했지만, 온갖 장비를 짊어지고 있는 구조대원이 빠져나오기에는 무리였다.
‘반대쪽도 마찬가지인가?’
그렇지 않으면 이런 곳에서 고립되어 있을 리가 없었다.
‘특구도 부실 공사는 예상하지 못했겠지.’
수혁도 알지 못한 것을 특수 구조대라고 알 리가 없었다.
어쨌든 특수 구조대는 이런 상정하지 못한 변수 때문에 고립된 것 같았다.
그 과정에서 여러 명이 부상을 당한 듯했고.
‘빠져나올 방법도 딱히 없었을 테니, 구조 요청을 할 수밖에.’
수혁은 대충 어떤 상황인지 짐작을 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전승철과 특수 구조대 대원들이 안쓰러워졌다.
자신들을 구하겠다며 들어왔다가 이런 꼴을 당했으니…….
괜히 미안한 마음까지 들 지경이었다.
상황을 대충 파악한 수혁이 잔해 근처까지 다가가 소리를 질렀다.
“신일서 김수혁입니다! 괜찮으십니까?”
수혁의 외침에 안쪽에서 소란스러운 기척이 들렸다.
“김수혁 씨! 맞습니까?”
전승철의 음성이 들려왔다.
하지만 주변의 소음 때문인지 잘 들리지 않았기에, 수혁은 무전기를 들었다.
“맞습니다. 지금 그쪽 상황이 어떤지 좀 설명해 주십시오.”
수혁이 무전기를 통해 묻자, 전승철 역시 무전기로 답을 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천장이 붕괴되며 대원 세 명이 그것에 깔렸습니다. 생명이 위험할 정도의 부상은 아니지만, 모두 다리를 다치는 바람에 거동할 수가 없는 상태고요.]
수혁이 파악한 그대로였다.
여섯 명 중 세 명이 부상당하고, 앞뒤로 길이 막혀 고립된 상태였으니 저들로서도 당황스럽기 그지없을 것이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수혁은 일단 전승철과의 무전을 끊었다.
이전 생에서와는 달리, 전승철은 뛰어난 구조대원이긴 했지만 아직 경험이 그리 많진 않았다.
덕분에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제대로 된 판단을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구조 요청 무전을 친 뒤 대답이 없던 것이나, 지금처럼 두서없이 장황하게 설명하는 것만 봐도 그랬다.
‘아직 젊구나.’
생각해 보면 전승철도 이제 고작 삼십대 중반에 불과했다.
뛰어난 실적 덕분에 특수 구조대 팀장이라는 위치까지 올라가긴 했어도, 아직 부족한 점이 많을 게 분명했다.
수혁은 괜히 이상한 기분이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휘저으며 떨쳐 냈다.
‘지금은 구조가 우선이지.’
일단 수혁은 길을 막고 있는 잔해들을 확인했다.
사람이 지나다닐 수 없을 정도로 높이 쌓여 있긴 했지만, 그리 견고해 보이지는 않았다.
애초에 쌓여 있는 잔해 중 무거운 것들이 그리 많지 않았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도끼 몇 번 휘두르면 뚫릴 것 같은데.’
물론 수혁에 한정된 이야기긴 했다.
아쉽게도 수중에 도끼가 없었던 수혁은 손으로 잔해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뒤로 좀 물러나세요.”
무전기로 전승철에게 경고한 뒤, 빠르게 손을 움직였다.
“음…….”
잔해들은 손쉽게 치워졌다.
하지만 수혁은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차라리 무거운 돌들이 쌓여 있는 편이 더 나았을 것이다.
힘이 조금 들긴 하겠지만, 그편이 훨씬 더 빠르고 간단하게 치울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온갖 자잘한 것들이 너무 많았다.
빨리 치운다고는 하지만, 워낙 양이 많은 데다 한 번에 치울 수 있는 양에는 한계가 있었으니 느릴 수밖에 없었다.
잠시 잔해들을 치우던 수혁이 한숨을 내쉬며 손을 멈추었다.
“이대론 끝이 없겠어.”
시간만 있다면 모두 치우고 길을 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유롭게 치우고 있을 순 없었다.
한 번 붕괴했으니, 추가 붕괴가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었으니 말이다.
잠시 고민하던 수혁이 다시 한 번 무전기를 들어 전승철에게 연락을 취했다.
“혹시 그 안에 도끼 있습니까?”
수혁이 묻자 몇 초 후 전승철에게서 대답이 들려왔다.
[있습니다.]
대답하는 전승철의 음성은 무전기 너머였음에도 확연하게 느껴질 정도로 떨리고 있었다.
‘이상한데?’
아무리 이전 생에 비해 경험이 부족하다고는 해도, 특수 구조대의 팀장이다.
경력도 거의 10년에 가까울 테고.
그런 사람이 고작 이런 일에 이렇게 당황을 하고 목소리가 떨린다는 것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내가 모르는 무슨 일이 있나?’
수혁은 스킬로도 감지하지 못하는 일이 이 벽 너머에서 벌어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전승철이 당황할 정도로 심각한 일이.
수혁이 더는 생각하는 것을 멈추고 말했다.
“위쪽에 보이는 틈으로 도끼를 던져 줄 수 있겠습니까?”
[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장비를 매고 있지 않은 사람 한 명은 통과할 수 있을 정도의 틈이다.
그러니 도끼를 넘겨주는 것 정도야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럼 잠시 피해 있을 테니까, 그쪽으로 도끼를 던져 주십시오.”
수혁은 그렇게 말하고는 한쪽 병실로 몸을 숨겼다.
병실 안은 화재로 인해 공기가 뜨겁게 달궈져 있었다.
때마침 ‘실드’의 지속 시간도 끝이 났기에 수혁은 숨이 턱턱 막히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도 아직은 참을 만해.’
화염 한복판에서 맨몸으로 있던 적도 있었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사우나에 들어온 정도밖에 안 된다며 인내했다.
그러는 사이 잔해 너머에서 뭔가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쇠와 돌이 충돌하는 소리.
아무래도 전승철이 틈 너머로 도끼를 통과시키기 위해 도끼를 던지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그것이 쉽지가 않은지, 몇 번이고 실패한 뒤에야 간신히 도끼가 틈 밖으로 빠져나왔다.
카가강-!
도끼는 조금 전까지 수혁이 있던 장소에 정확하게 떨어지며 날카로운 소음을 터트렸다.
‘빠져 있길 잘했고.’
혹시나 하는 생각에 물러선 것이었는데, 잘한 결정이었다.
“도끼 확인했습니다. 이제 정말 뒤로 멀찍이 물러나 계세요.”
수혁은 도끼를 들고 몸을 풀었다.
이제 장비가 손에 쥐어졌으니, 이 정도 길막은 아무렇지도 않게 뚫어낼 수가 있었다.
도끼를 든 손에 힘을 잔뜩 준 수혁이 팔을 휘둘렀다.
콰아아앙-!
도저히 도끼를 휘두른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소리와 함께 잔해 중 일부분이 뭉텅이로 흩어지며 허공에 비산했다.
“좋아.”